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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추상화에 대항하여 자본주의 균열내기

『크랙 캐피털리즘』을 읽고


엄진희(다중지성의 정원 회원)


* 이 글은 인터넷신문 『대자보』 2013년 2월 15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http://jabo.co.kr/sub_read.html?uid=33791%C2%A7ion=sc4%C2%A7ion2=

 

 

도대체 왜 자본주의는 멈추지 않는 것일까. 왜 그 숱한 반란들, 저항들은 번번히 실패로 돌아간 걸까.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 나라들의 붕괴, 중국의 자본주의화, 맑스주의의 종말. 우리는 왜 이런 결론에 이른 것일까. 우리는 엔클로저의 폭력을 애써 망각하고 원시 시대 사람들보다 더 많은 시간의 노동을 감내하고 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자본주의를 지속 시키는 것일까. 대학생들은 점점 더 보수화되어 가고 학생 시절 운동권이었던 부모들은 자식을 일류대에 보내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다. 젊은이들은 맑스를 그저 교양으로 읽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현상들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우리에겐 설명이 필요하다.

 

존 홀러웨이는 과거의 혁명들이 놓친 것이 무엇인지, 왜 실패했는지를 추적한다. 우리는 그곳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국가 중심 혁명이나 혁명 정당은 총체성의 관점으로, 그들의 논리에 맞지 않는 것들을 배제하고 짓밟았다. 총체성에서 벗어나는 것, 빠져나가는 것, 나머지,를 무참히 살해했다. 그것은 혁명이 아니었다. 혁명은 총체화하거나 추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화에 저항하고 그것을 멈추는 작업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것은 국가나 당이라는 추상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는 그저 하나의 노동력이고 여성이며 학생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만 정의되지 않는다. 나는 자본에 종속된 상품으로서의 노동력을 넘어서며 여성이지만 때론 여성이 아니기도 하다.

 

추상화된 사회, 자본주의 사회는 나를 여성으로 라벨 붙이고 비정규직 노동자로 이름 붙이지만 나는 항상 그것을 넘어선다. 나는 억압되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억압된 것은 사라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든 되돌아온다. 되돌아오는 그것, ‘흘러 넘치는 것’이 바로 ‘균열’이다. 우리는 이 균열을 통해 자본주의를 주저 앉혀야 한다. 여성이나 남성, 임노동자로서가 아니라 그 동일성에 갇히기를 거부하면서 그렇게 해야 한다.

 

정체성을 거부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불안만을 가져다 줄 것인가. 아니면 다른 가능성의 새로운 흐름을 열어 줄 것인가. 우리가 보지 못했던 세계, 이미 여기에 와 있지만 우리 눈에 띄지 않았던 세계를 향한 열림은 아닐까. 남성이나 여성으로 구분된 세계가 아니라 무성적이라서 성적 소수자를 박해하지 않는 세계를 꿈꿀 수는 없을까. 보르헤스가 꿈꾸었던 이름 붙이지 않는 세상,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이루어진 세상, 항상 변화해서 무엇도 가둘 수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쩌면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왜 우리는 늘 혁명 정당에 갇혀서, 노동 운동 조직에 갇혀, 그 외부의 것들을 모조리 말살하면서 자족하고 있었을까. 우리가 그렇게 반대하려고 했던 지배 세력이 했던 일들을 똑같이 반복하면서 안일하게 혁명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혁명 정당은 위계적이었으며 인간을 ‘객체화’ 했고 ‘독백적’이었다. 그들은 인간을 존중하지 않았고 대화하려고 하지 않았다. 혁명이 ‘모든 사람의 일상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과제를 자신의 첫 번째 목표로 생각하지 못했을 때, 그것은 억압에 무기를 제공’했다.

 

억압적으로 우린 어릴 때부터 반공 교육을 받아야 했다. 자유가 절대적 가치라고 배웠으며 자본주의 이외에 다른 체제를 상상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가르치는 대로 낙오자가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근면하고 성실하게 뭐든지 열심히 해서 짝궁을 제쳐 놓아야만 칭찬을 받곤 했던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크게 달라진 건 없다. 회사에서는 실적을 내야 하고 열심히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자본주의에 참여하며 그것을 창조하고 지속시킨다. 과연 이 흐름을 끊어낼 수 있을까. 왜 늘 나는 동료를 주시해야 하는 걸까. 우리에겐 정말이지 더 이상 인간적 관계라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 것일까. 자본주의, 즉 이익이라는 가치가 다른 가치에 비해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사회는 생각하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인간은 이익에 따라서 움직이지 않는다. 사랑으로 움직이고 우정으로 움직이며 아름다운 음악과 한권의 책에 의해 움직이기도 한다. 이러한 것들은 자본주의를 균열내는 것들이다. 그것은 잡히지 않는 것이며 그래서 추상화하거나 수량화하여 이름붙일 수 ‘없는’ 것들이다.

 

더 이상 시를 읽지 않게 된 시대, 합리적이며 과학적이라고 자랑하는 시대, 우주를 탐사하고 생명을 연장할 만큼 진보된 세계의 한편에 영양결핍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치욕이 아닌가.

 

우린 분명 자본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것은 인간을 소외시키고 인간의 의지를 넘어서 미친듯 질주하며 물을 비롯한 모든 공통적인 것을 사유화하려 한다. 자본주의의 미래는 없다. 자본주의 너머에는 ‘이익과 착취가 없는 이상적인 사회’가 있는 것이 아니라 파국만이 있을 뿐이다. 이 파국을 면할 수 있는 길은 자본에 대항한 노동 운동도 아니고(노동은 자본을 유지한다. 그것에 저항해야 한다) 혁명적 지도자나 엘리트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위계를 재생산할 뿐이며 폭력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성격 마스크로서의)을 고집할 뿐이다. 실제 자기를 소외시키는 동시에 바로 그가 구현한 정체성에 갇힘으로 인해 타자에로 무한히 나아가지 못할 뿐이다.

 

자본주의라는 무너지기 쉬운 절대성에 균열을 내자. 모든 추상화에 대항함으로써. 나는 여성이다. 나는 동성애자다. 나는 코뮤니스트다. 라는 동일성들은 ‘경찰이 일하기 쉽도록 만들 뿐’이다. 나를 명사로 부르는 모든 것들에 대항하자. 추상화되지 않는 나를 이웃과 관계 맺게 하고, 이름 붙여지지 않는 모든 것들을 활성화 시키자. 우리가 애매모호하고 비합리적이고 마법적인 것이어서 우리가 내팽겨쳤던 것들. 그것은 시이고 음악이며 사랑이고 동료애이다. 그것은 수수께끼 같은 것이다.

 

우리 손에서 빠져나가는 것들,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로부터 다시 시작하자. 혁명은 일상에서 온다. 아니 이미 도래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을 잡느냐 다시 놓치느냐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그리고 혁명으로서 실천으로서 책을 읽자. ‘행위’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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