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 인간이 섬처럼 홀로 존재할 수 있다는 환상

 

서구 역사에서 인간(주로 남성)은 세상을 정복하는 임무를 맡은 독립적인 개인으로 인식되는 반면 여성은 정반대 역할을 맡았다. 여성은 남성이 세상을 정복하기 위해 떠날 때 가지고 가지 못한 것들과 그를 연결해 주는 끈이었다.

 

기업의 세계에서 정상에 오른 여성들은 아직도 딱딱하고 수수한 옷차림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여성은 남성의 몸을 중심으로 구성된 기존의 구조에 자신을 맞춰야 한다. 동시에 너무 남성적이어서도 안된다

 

여성의 경험은 보편적인 것과 항상 별도로 취급된다. 인간으로서의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 출산에 관한 책을 읽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신 셰익스피어를 읽는다.

 

 

성역할을 가진 것은 여성뿐이다. 남성은 인간이다. 한 가지 성만이 존재한다. 다른 쪽은 반사된 이미지이며 보완적 존재일 뿐이다. 여성이 남성과 비슷하든 남성과 대조되든 여성은 늘 남성과의 관계 안에서 존재한다. 여성이 가치 있는 것은 여성이 남성과 비슷하거나, 혹은 남성을 보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든 항상 남성 중심의 화법이 동원된다.

 

우리는 다름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하지 않고 온전한 정체성을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리고 이 법칙은 경제적 인간에게도 적용된다. 경제적 인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경쟁이고, 따라서 그는 다른 사람들의 존재에 완전히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경쟁하지 않는 경제적 인간은 존재 의미가 없다. 그리고 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는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사는 것이 아니다. 다만 모든 관계가 경쟁으로 수렴하는 세상이 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공격적이고 도취적이다. 그는 자신과 끊임없이 갈들을 겪는다. 거기에 다른 사람들과의 갈등도 보태진다. 그는 이 갈등만이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유일한 동력이라 생각한다. 위험이 따르지 않는 움직임 말이다. 이것이 바로 그의 삶이다. 그는 쉼 없이 뛰는 중이다.

 

 

경제적 인간에게 느낌이나 감정은 사람의 일부가 아니다. 느낌이란 분류하고, 정리하고, 쌓고, 구분하는 것이다. 분노는 협상할 때 도움이 된다.

경제적 인간은 몸을 인적 자본으로 바꾼다. 갑자기 몸은 나의 일부가 아니라 내가 소유한 자본이 된다. 몸은 통화수단이 돼서 각 개인은 그것을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고, 거기에 투자할 수도 있다. 몸을 인적 자본으로 만드는 순간 몸의 정치적 의미는 사라지고 만다.

 

경제적 인간은 그가 제거해버리고자 하는 현실에 반응해 출현한 존재다.육체, 감정, 의존성, 불안감, 취약성 등 말이다. 그것은 수천 년간 사회에서 여성들의 자리라고 말해왔던 특징이기도 하다. 경제적 인간은 그런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것을 자신이 직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제적 이론은 도피처가 되었다. 사회가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곳.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이야기. 우리가 그냥 콧노래처럼 따라 하는 이야기. 유일한 성, 유일한 선택, 유일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