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운동으로서 종교운동의 재조명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여러 사회단체들의 천막촌이 자리 잡고 있는 광화문광장에서는 기이한 풍경을 목격할 수 있다. 천막 안에서는 세월호 사건의 진실 규명을 바라며 단식을 하는데 바로 그 앞에서 폭식을 해대는 이들의 몰염치한 행위도 분명 기이한 풍경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조금 더 시선을 돌려 주변을 주시하면 또 하나의 기이한 풍경을 목격할 수 있다. 그 주변에는 세월호 특별법을 요구하는 이들을 보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행위라며 저주성 발언을 쏟아내는가 하면 찬송을 부르는 기독교인들의 대열이 그것이다. 그것도 그 자체로는 그렇게 기이한 풍경이 아닐 수도 있다. 보수적 기독교인들이 길거리에 나와 목소리를 높이는 풍경은 흔히 봐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민주화 이후 보수적 기독교인들이 정치적 의제를 들고 광장에 나와 목소리를 높이는 풍경은 익숙한 풍경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천막촌 안의 여러 사람들 가운데는 종교인들, 그 가운데서도 기독교인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정말 기이한 점은 바로 그들과 그들을 둘러싸고 저주성 발언을 쏟아내며 찬송을 불러대는 기독교인들의 대조되는 현상이다.

똑같은 종교적 신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그렇게 대조되는 행동이 가능할까? 동일한 종교라 하더라도 그 안에는 매우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이 있고 그에 따라 다양한 종교적 신념의 표출이 가능하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기는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그 극단적 대비는 우리의 역사적 상황과 더불어 극적인 성격을 띠어온 것 같다.

예컨대 1970-80년대 한국의 종교는 고통 받는 민중의 현장에 가까이 다가가 있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 시기는 한편의 종교, 특히 기독교의 급성장 시기이기도 하고, 그렇게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주류를 형성한 기독교가 오늘의 정치적 보수주의를 뒷받침할 만한 내적 성격을 갖추게 된 것은 분명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당대 한국사회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기독교인들의 실천 또한 두드러진 시기였다. 요컨대 돌진적인 근대화와 더불어 정치적 권위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그 시절, 한편의 기독교인들은 경제개발과정에서 야기된 민중의 문제와 정치적 권위주의에 대처하는 사회적 활동을 활발히 전개함으로써 한국의 사회운동을 배태하고 육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기까지 하였다. 그것은 종교적 사회운동의 한 모형이 되었다. 그 운동은 한국의 사회운동의 발전에서 중요한 기여를 하였을 뿐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 여전히 압도적 다수를 이루고 있던 주류 기독교의 종교적 보수주의를 상당 부분 억제할 만큼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절차적 민주화가 진전된 이후 그와 같은 종교적 사회운동은 현저히 약화되는 양상을 띠었다. 다른 사회운동 진영과 연대하는 종교적 사회운동 자체가 현저히 약화되었을 뿐 아니라 종교적 보수주의가 정치적 목소리를 높이는 현상이 압도하기 시작하였다. 이즈음 광장에 나선 것은 과거 사회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던 종교인들이 아니라 정치사회적 의제에 대해 보수적 목소리를 높이는 종교인들이었다. 그것은 명백히 민주화 이후 강화된 사회적 공공성의 요구와 이념적 유연성의 확대를 자신들의 존립기반을 위태롭게 하는 것으로 간주한 종교적 보수주의 진영의 퇴행적 행태였다. 그들의 목소리가 우리 사회에서 높아졌을 때 기존의 종교적 사회운동 진영의 존재감은 미미해졌다. 실제로 민주화 이후 종교적 사회운동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스스로 약화되었을 뿐 아니라, 여타의 사회운동이 활성화되는 조건에서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있었다. 그러던 터에 종교적 보수주의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정치적 행동이 공공연하게 표출되는 조건에서 더더욱 그 존재감을 상실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한동안 종교적 사회운동이 그처럼 위축된 것처럼 보였던 것과 달리 우리 사회의 위기의 현상이 돌출된 현장에 종교인들의 참여가 두드러져 보이기 시작했다. 특별히 20144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 유족의 고통에 함께 하고자 하는 현장과 그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자 하는 대열에 종교인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번 특집에서는 종교적 사회운동이 다시 활성화된 것으로 보이는 일련의 현상을 주목하였다. 최근 종교적 사회운동은 과연 다시 활성화된 것인가, 그것이 일과적 현상이 아니라 일관된 하나의 추세로서 의미를 지닐 만큼 뚜렷한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그것이 사회운동에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이다. 한국 현대사의 사회운동에서 종교적 사회운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적지 않은 만큼 그와 같은 현상에 대해 분명한 진단을 내릴 수 있다면 종교적 사회운동 그 자체에 대한 평가와 아울러 일반 사회운동과 종교적 사회운동의 관계를 더욱 발전적으로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최형묵은 종교운동의 사회운동적 명암이라는 제하의 글에서 사회운동으로서의 종교운동이 갖는 적극적 측면과 소극적 측면을 규명하기 위해 종교적 사회운동의 주요 특성을 밝히고, 그 특성들이 종교적 사회운동의 전개과정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조명하고 있다.

지금, 민중신학에서 운동현장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에서 정용택은 종교적 사회운동 자체를 직접 다루기보다는, 그 하나의 범례로서 기독교 사회운동의 전개과정에서 형성되고 다시 그것을 뒷받침하는 민중신학의 과제와 관련하여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 이 글은 민중신학이 민중운동에 동참하는 실천을 통해 형성된 점을 부인할 수 없지만, 사실은 그보다 앞서 고통 받는 민중의 실재 그 상황으로부터 촉발된 성격을 강조한다.

복음교황 프란치스코와 한국사회에서 김선필은 한 종교 지도자의 방문 이상의 의미를 갖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방문 의의를 다루고 있다. 제목 자체가 시사하듯이 이른바 진보와 보수의 경계를 넘어 진정한 가르침으로서 복음을 온전히 구현하고자 한 교황 프란시스코의 삶의 여정 및 가톨릭의 사회적 가르침과 실천의 전통을 상세하게 조명한다. 그 가운데에 교황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나타난 우리 사회의 열광의 의미를 짚어내고 있다.

애초 종교와 사회운동의 표제를 내걸고 특집기획을 하였던 의욕만큼 충분한 내용을 담지 못한 것은 아쉽다. 종교적 사회운동 전반을 포괄할 수 있는 내용을 담지 못하고 주로 기독교(신교 구교 포함하는 의미에서) 사회운동만을 담을 수밖에 없었던 한계, 더불어 종교적 사회운동을 좀 더 다각적인 측면에서 다루는 내용이 충족되지 못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한동안 부정적 맥락에서만 다뤄질 수밖에 없었던 우리 사회의 종교 실태에 대한 접근에서 벗어나 사회운동의 맥락에서 긍정적으로 종교적 사회운동을 재조명하고자 한 시도는 적극적 대안을 모색하는 차원에서 종교의 사회적 책임을 환기시킬 뿐 아니라 종교적 사회운동과 일반 사회운동의 건설적 관계를 모색하는 계기를 만든 셈이다.

이번호에는 시평으로 김도민의 다시 함께 광화문으로 걸어야겠다: 세월호참사와 분단체제를 넘어서를 실었다. 이 글은 무책임한 국가폭력이라는 객관적 폭력을 가능케 하는 조건이 바로 분단체제임을 밝히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특경대(特警隊)라는 특별경찰이 이미 수사권을 가졌던 선례가 있음을 밝히고 조사권만 지닌 세월호진상위원회가 진실을 규명해 내기 위해서는 더더욱 국민의 끊임없는 감시와 지지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지난 호에 이어 쟁점란에서도 전교조 운동을 다뤘다. 지난 61호는 하성환의 전교조 운동 노선에 대한 비판적 제언과 이를 비판한 이철호의 전교조, 불순한 정치를 말하다: 하성환의 전교조 운동 노선에 대한 비판적 제언을 비판하며를 게재한 바 있다. 이번호에는 이철호를 재비판하며 하성환이 교육노동운동, 성찰과 전망, 그리고 하성환의 이 글에 대한 비판으로 다시 최덕현이 전교조운동의 성찰과 전망: 하성환의 교육노동운동 성찰과 전망을 보며를 썼다.

이번호 정세란에서는 공무원연금개혁을 비판한 이희우의 존재목적을 상실한 연금개혁 어떻게 하나?”를 실었다. 이 글에서는 새누리당의 공무원연금 개정안의 문제점에 대해 이해당사자 배제, 공무원연금의 특수성 무시, 재정건전성문제의 원인에 대한 정부의 책임, 공적연금의 적정성, 공직부패 확산과 인재유출, 공적연금 무력화와 사적연금 활성화라고 보고 조목조목 비판한다.

살을 에는 날씨다. 오늘도 광화문 전광판 위에서 씨앤엠 노동자 두 분이 20일 넘게 농성을 하고 있다. 왜 이렇게 가혹한 상황이 벌어질까? 정세란의 박재범은 케이블·통신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선 이유라는 글을 썼다. 삼성전자서비스,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씨앤앰·티브로드 케이블방송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최근 벌어진 투쟁을 다루며 전자·통신·케이블방송 등 서비스산업 전반의 다단계 하도급 구조와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착취 실태를 고발한다.

국제란의 이유철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비판적 재해석과 한반도에 주는 함의를 보내왔다. 이 글은 기존 주류학자들의 단순한 패권중심적 분석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역사와 신자유주의적 정책 실패를 갖고 우크라이나 사태를 재해석한다.

일반논문으로 이영롱의 “‘영원한 미생未生만을 위한 노동 공간 : 30-40대 직장인의 노동서사를 통해 본 신자유주의 노동의 성격불안한 노동현실 속에서 과감하게 실존적 결단을 통해 다운시프트한 청년 노동자들의 서사를 보여주는 현장 지향적인 글이다. 따라서 현 시기 청년노동자들이 처한 실존적 상황, 이 시대의 노동자 형상의 중요한 단면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해준다.

일반논문으로 심아정의 우파적 감성과의 사상사적 대결: 오에 겐자부로의 세븐틴과 후지타 쇼조의 불량소년에게 길을 묻다에서는 최근 일본에서 등장한 넷우익, ‘재일 특권을 용서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을 비롯한 행동하는 보수세력들을 분석하기 위한 하나의 사상사(思想史)적인 참조점을 찾고 있다. 전후 일본에서는 우익의 창궐에 대해 지식인의 심도 깊은 분석과 성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일베 등이 가시화된 우리에게 이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성찰의 방향을 제시해 준다.

소수자이야기로는 윤수종의 거지와 국가를 실었다. 이 글은 신문기사에 나타난 기사를 중심으로 1945년 이후의 거지의 실태와 생활, 그리고 국가의 단속과 수용에 주목한다.

이번호 다시읽기는 이윤율의 경제학에서 소득의 정치학으로?: G. 뒤메닐과 D. 레비의 신자유주의의 위기를 읽고를 송종운이 썼다. 그는 이 책의 저자들이 마르크스경제학자임에도 이 책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의 역사적 동학을 이윤율의 경제학이 아닌 소득의 정치학으로 해석하고 관리자 계급과 민중 계급의 동맹을 주요 대안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진보평론이 후원단체로 있는 일곡기념사업회 학술상, 7회 수장작의 수상소감, 심사의 변을 게재했다.

 

62호 목차

사회운동으로서 종교운동의 재조명/ 편집자의 글

 

특집: 종교와 사회운동

* 종교운동의 사회운동적 명암/ 최형묵

* 지금, 민중신학에서 운동현장이란 무엇인가?/ 정용택

* 복음교황 프란치스코와 한국사회/ 김선필

시평

다시 함께 광화문으로 걸어야겠다: 세월호참사와 분단체제를 넘어서/ 김도민

쟁점

* 교육노동운동, 성찰과 전망/ 하성환

* 전교조운동의 성찰과 전망: 하성환의 교육노동운동 성찰과 전망을 보며/ 최덕현

정세

* 존재목적을 상실한 연금개혁 어떻게 하나?/ 이희우

* 케이블·통신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선 이유/ 박재범

국제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비판적 재해석과 한반도에 주는 함의/ 이유철

일반논문

* ‘영원한 미생未生만을 위한 노동 공간: 30-40대 직장인의 노동서사를 통해 본 신자유주의 노동의 성격/ 이영롱

* 우파적 감성과의 사상사적 대결: 오에 겐자부로의 세븐틴과 후지타 쇼조의 불량소년에게 길을 묻다/ 심아정

소수자이야기: 거지와 국가/ 윤수종

다시읽기

이윤율의 경제학에서 소득의 정치학으로?: G.뒤메닐과 D. 레비의 "신자유주의의 위기"를 읽고/ 송종운

일곡유인호학술상

"1980 대중봉기의 민주주의"(김정한) 수상소감 및 심사의 변()

 

* 가격 : 15,000/ 1년구독료 58/ 2115천원/ 316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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