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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미학_들뢰즈와의 마주침

파시스트 아빠

발제문 조회 수 148 추천 수 0 2017.12.16 10:47:08

파시스트 아빠

 

억압은, 탄압이 의식적이기를 그치면서 욕망되게 되어 버린 그런 탄압이다. 그리고 억압은 후속욕망, 즉 억압이 행사되는 대상의 위조된 이미지를 유도하며, 억압은 이 이미지에 외견상 독립성을 부여한다. 고유한 의미의 억압은 탄압에 봉사하는 수단이다. 억압이 행사되는 대상은 또한 탄압의 대상, 즉 욕망적 생산이기도 하다. (A0 212~213)”

 

아이들을 키우면서 느끼는 것은 좌절감이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나를 배반하기 때문이다. 배반하는 아이들을 잔소리로, 때로는 거친 위협으로 밀어붙이지만 아이들에게 내 요구는 마치 견고한 상자의 틈에서 흘러 나가는 물처럼 사라진다.

들뢰즈는 뭐라 말할까?



1, 먼저 배반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까? 배반의 사전적 의미 보다는 그 배반의 화용론을 문제삼을 것 같다. 나의 배반감이 어떻게, 어디서, 어떤 관계 즉 어떤 배치체에서 생성됐는지 물을 것 같다. 배반감은 욕망 만큼이나 배치체와 구분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배반감에 대한 질문은 이제, ‘이 질문이 싹튼 배치체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으로 넘어간다. 내 배치체는 한편으로는 가시적이고 다른 한 편으로는 비가시적이다. 가시적이라는 것은 학교나 학원 성적의 석차표나 특정 대회에서 입상 기록으로, 미래에는 좋은 직장이나 직업으로 표현되는 층이고, 후자는 그 가시적인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며 동의하고 반응하고 분투하게하고 독려하는 층이다. 이 이중의 층은 배신감의 주변을 감싸며 흥분, 좌절 심지어 분노로 나를 반응하게 한다.


  

2. 나의 이 반응은 일종의 탄압으로 행사된다. “그만 PC보고 학원숙제 해!, 내 학교 성적 좀 봐, 어떻게 이런 성적으로 대학가니, 공부 해!”등등. 아이들은 내가 속한 배치체에서 문제아나 싹수가 노란, 버릇없는 아이가 될 수 있다.

아침 저녁, 일상적으로 탄압을 행사하는 나는 진실로 그 배치체들을 분명한 현실로 믿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의 확실성은 실상, 내 무의식에 기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내 무의식에는 지금 이렇게 기능하는 배치체가 이미 점령하고 있어 내 세계관과 판단기준, 성격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배치체는 그렇게 의식과 무의식의 영역을 차지하면서 내 현실적인 탄압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킨다. 하지만 무의식은 이런 배치체 만을 품고 있지 않다. 그것은 질료적이고 분자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식은 탄압을 넘어 그 무의식의 넘쳐흐르는 유동성을 억압하게 된다. 그 억압, 바로 그 고유한 의미의 억압을 통해 배치체는 유지된다.

 

억압은, 탄압이 의식적이기를 그치면서 욕망되게 되어 버린 그런 탄압이다. 그리고 억압은 후속욕망, 즉 억압이 행사되는 대상의 위조된 이미지를 유도하며, 억압은 이 이미지에 외견상 독립성을 부여한다. 고유한 의미의 억압은 탄압에 봉사하는 수단이다.”

 

이 문장에서 후속욕망이 유도하는 위조된 이미지는 내 탄압이 자리 잡은 배치체가 투자한 이미지이다. 배치체가 대체 투자한 그 이미지가 내 잔소리의 시발점이었다.

 

 

3. 결국 나는 아이들을 탄압하는 아버지로 태어나게 된다. 물론 나도 항거할 수 있다.

이 항거는 배치체가 내 의식을 결정하는 구조라는 것을 벗어나서, 나를 어떤 주체로 탄생시킨다. “세상 밥먹고 살기 얼마나 힘든지 알아, 성공하고 잘 먹고 잘 살고 싶잖아 그럼 지금 공부해, 아직 어려 자기 욕망을 다스리지 못해서 그런 거야. 그러니 야단이라도 쳐야지 매라도 들어야지, 안 그래!” 이때 나는 사회의 지배적인 담론을 되뇌고 있는데 그 담론이 제공하는 현실적 혹은 몰적 정당성의 틀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있다. 내 모든 욕망은 그 틀을 통해 정당성과 부당성으로 선과 악으로 재해석된다.

이 주체화의 과정으로 탄생한 나는, 스스로도 어떤 탄압과 억압을 겪고 있는데 그 탄압과 억압을 통해 앞에서 말한 몰적 정당성을 체화하고 있다. 이 체화의 대상은 즉 탄압과 억압을 겪고 있는 대상은 내 욕망이었던 것이다. 그런 나는 나의 욕망을 모르쇠하고 아이들을 탄압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것은 파시스트가 되는 과정과 동일하다. 파시스트들은 자신에게 체화된 사회적 탄압기제를 타인에게 똑같이 강요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대화에서 예와 아니오만을 감별하고 공히 모든 것을 그 기준에 따라 탄압한다. 어떤 새로운 것들이나 창조적인 것들은 그들에게 위험하고 불순한 것이다.

나는 아이들과 그들의 욕망에 대해 충분히 대화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욕망이 아이들에 대한 내 계획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고 적잖게 염려했다. 아이들이 자신의 욕망을 생산적으로 창조하는 과정보다 내 계획에서 정해진 좋은 성적을 더 갈구한 것이다.

 

억압이 행사되는 대상은 또한 탄압의 대상, 즉 욕망적 생산이기도 하다.”

 

내 탄압과 억압이 행사된 곳은 아이들의 무궁무진한 가능성, 새로운 변형 능력들, 새로운 현실 창조능력들이었다. 또 내 안에서도 내가 새로운 삶을 개척할 가능성에 대한 갈구들이었다.

결국 나는 아이들에게 파시스트 아빠로서 기능했다.


  

4. 내 기대에서 사라지는 아이들,

이 아이, 그는 거기 있지 않다.... 그러니까 아버지-어머니의 이 세계는 바로 가 버려야 할 세계이다.” 파시스트 아빠의 세계는 가버려야 할 세계이다.

우리의 세계는 이중의-이중화된 세계인 것이다. 항상 통일되기를 바라면서도 항상 흩어지는 상태에 있누나.... 이 상태 주위를 이 세계의 체계 전체가 돌고 있다. 가장 어두운 조직에 의해 빈틈없이 지탱된 채”(217).

다행히 내 세계도 이중화 되어 있다. 통일되고 흩어지는 그런 세계이다. 여전히 내 안의 분자들은 내 주변을 무한히 돌고 있다.


  

5. 아이들은 누구일까? 나보다 훨씬 분자적 세계에 가까워 부드럽고 유연하며 새로운 실험과 창조에 목말라하는 욕망 기계이다. 아이들을 키우며 나는 배우고 있었다. 조금씩 무너지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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