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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미학_들뢰즈와의 마주침

pp.128~139 죽음의 죽음

발제문 조회 수 154 추천 수 0 2017.11.18 14:19:10

설 선생님이 사정이 계셔서 대신 발제합니다.  





  미래에선, 우리는 여행자다. 비행기를 타고 몇 시간 후 도착하는 어느 나라, 어느 지방에서 우리가 여행자였듯이 미래에서는 이미 우리가 아닌 원주민이 살고 있다. 원주민인 미래의 주인은 우리와는 구별되는 새로운 기원, 새로운 목표, 새로운 존재 방식으로 거주하고 있다. 우리가 과거에서 지금까지 이어진 어떤 주체라면 그들은 그들의 과거에서 그들의 현재로 이어져 있다. 너무도 다른 두 계기가 시간 속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우리는 그 단절에 불안해하지 말아야 한다. 미래가 우리에게 전유되지 않는 다는 것은 미래 세대의 고유성을 수긍하게 해주지만 역으로 지금 우리 세대의 고유성 또한 보장해 주기 때문이다. 어떤 곳에 말뚝을 박고 수많은 말뚝과 말뚝을 연결해 대지를 연결하고 그 대지 위에 다시 새로운 기둥과 기둥, 그것을 잇는 신체 기관들과 그 위에 덧 입혀진 이미지들과 기표들, 그 수많은 얼개들이 이어지는  과정이 우리를 우리라는 주체로 구성하는 것이다.

무엇이 그 주체로 하여 이곳까지 달려오게 했을까? 도로 위를 마치 레이스하듯 달리는 저 욕망들은 어디서 기원한 것일까? 잠시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인 방을 상상해 보자. 지금 전면의 나를 바라보는 거울 속 내가 있다. 내 머리 속 수많은 상념을 다 아는 양 거울 속 나는 나를 바라본다. 나의 욕망을 바라보는 다른 나는 라캉의 자아 이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방안에서는 반대편에서 바라보는 또 다른 나가 이어진다. 약간 보이는 각도를 틀면 그런 또 다른 나들이 계속해서 나들을 바라보고 있다. 이렇게 이어지는 선은 무한한 계열을 이루며 지금 겨울 앞에선 내게 닿아있다. 거울 방의 유비는 그대로 욕망에게로 이어진다. 하나의 욕망은 수많은 욕망들의 계열 속에서 현재에 닿아있다. 이 사유를 확장시켜보면 하나의 시대라는 것, 예를 들어 푸코 고고학의 탐구 대상으로서의 어떤 시대라는 것도 그 안에 내재된 수많은 욕망들의 계열 속에서 드러난다. 다만 어떤 욕망과 시대의 욕망이라는 것은 들뢰즈의 표현으로 욕망 기계와 사회 기계라는 것은 체제에 있어서의 차이이지 그 본성은 같다. 들뢰즈는 그 욕망의 생상방식을 연접, 이접, 통접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럼 미래는 어디서 탄생하는가? 우리 시대의 탁월한 분열자인 이문재의 시의 전문을 인용하겠다. .


 

내가 죽어야 내 죽음도 죽는다

 


모든 빛을 통과시켜

유리창은 차갑다

아무것도 간직하지 않아

거울은 모든 것을 되비춘다

유리의 막힌 한쪽

거울은 따뜻하지 않다

 

내가 살아온 날들은

내 죽음이 함께 살아온 날들

살아있음의 뒤켠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나의 죽음

거울의 배면이다

 

내가 살아 있어야

내 죽음도 이렇게 살아 있다

내가 죽어야

내 죽음도 죽는다

 

 

  죽음은 두 가지다. 살아온 날들과 공존하는 죽음. 그 죽음은 살아있어 우리가 느끼고 상상하는 죽음이다. 그것은 현재 우리가 아는 죽음이리라. 다른 죽음도 있는데 그 죽음은 죽음의 죽음이다. 우리의 살아있음과 더불어 공존하는 죽음은 살아있음과 동시에 사라진다면, 사라짐 그 자체인 죽음도 존재하는 것이다. ‘내 죽음도 죽는다시인은 여기서 멈춘다. 시인의 시가 멈추는 것은 진정한 사라짐에 대한 시인의 무기력과 허무주의 때문일까? 우리에게 그 시인의 속내는 중요하지 않다. 시인은 여기서 사라지고 시만 남기 때문이다. 시인 역시 시 앞에서 사라진다. 시인이 없는 시는 그럴 때 새로운 해석의 요소로 자신을 자유롭게 풀어놓을 수 있다. 시인을 모르는 누군가가 이처럼 시를 인용하듯이 시는 새로운 욕망을 호명한다.

  진정한 사라짐이란 이런 의미가 아닐까? 시인이 사라진 시처럼 횡단을 그치고 요소로 남는 것, 그렇게 흩어진 요소들은 욕망들에 의해 응축되고, 응축된 요소들은 새로운 횡단이라는 잉여가치로 표현된다. 그 가치를 소비하는 새로운 주체가 펼쳐지는데, 그 주체들의 앙상블은 새로운 신체와 언표의 구축 속에서 미래를 창조한다.

 

무의식의 종합들이 주어질 때, 실천적 문제는 이 종합들 - 이것들이 정당하건 아니건 - 의 사용과, 종합의 사용이 정당한지 부당한지 규정하는 조건들의 문제이다.”(p 128)

 

우리의 모든 문제는 어떤 조건들의 문제인 바, 삶의 매 순간, 우리의 기쁨과 슬픔, 성공과 좌절, 희망과 절망, 등등 우리의 모든 정동들은 바로 그 조건들 위에서 기생한다. 마치 블랙박스처럼 우리 안에 내재된 우리 삶의 조건들은 정당함과 부당함의 기준이다. 죽음조차도 그 조건에서 삶과 대비됨으로 공존한다. 현재로 하는 시간은 이렇게 흐르고 미래조차 현재로 포획한다.

 

우리는 통계적 또는 그램분자적으로는 이성애자이지만, 인물적으로는 알게 모르게 동성애자이며, 결국 요소적으로, 분자적으로는 횡단 성애자이다.”(p 131)

 

우리는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밖에 모른다. 우리가 사는 공간에 새겨진 깊은 홈은 모든 욕망을 이렇게 조건 짓기 때문이다. 우리의 모든 정동은 이 홈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저 자아 이상이라는 수많은 욕망의 사슬들이 더 이상 생산을 어어가지 못하거나, ‘내 죽음도 죽는다고 시인이 종말을 선언할 때, 에로스와 타나투스가 무의식을 설명하지 못할 때, 기관없는 몸체는 모든 삶을 요소로 환원하고, 욕망은 분자운동하며, 성은 n개의 성으로 표현된다. ‘본성적으로 우리는 모두 횡단 성애자이다.’ 바로 이 선언만이 미래를 창조하고 새로운 주체를 구성짓는다. 물론 선언이 아니다. 그것은 실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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