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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미학_들뢰즈와의 마주침

p 88 ~ 95

발제문 조회 수 20 추천 수 0 2017.11.03 16:59:27

자전거

 

  

가을엔 오실 수 있나요.

제 텅 빈 가슴도 가을이 되었네요.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해지는 것입니다.

기다리는 동안 더 이상 말라버릴 살 하나 없이 앙상해졌으니까요.

 

앙상한 제 몸이 딱하다면 제 심장을 봐 주세요.

끝없이 둥글게 반복해 당신을 기억하는 커다란 원환을

당신에게 먼저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모든 관절은 둥근 원환을 위해 속으로 이어졌습니다.

제 숙명은 그리움만 반복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제 숙명이 안타깝다면 가을 햇살 담은 제 안장을 봐주세요.

모든 의미는 당신이 타고 가는 그 길에서만 제게 쏟아집니다.

 

저희의 만남을 가릴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가을 햇살과 차가운 바람이 우리를 비켜가지 않습니다.

 

가을의 그 길들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겠죠.

 

그 길 위에서 당신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만남을 위해서만 우리의 속도를 만들어가자는 것입니다.

낙엽들의 속도처럼 말입니다.

 

가을이 텅 빈 가슴을 채우네요.

제가 서 있는 것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이 시의 무의식을 탐색해 볼까요.

이탈-절단과 동시에 자전거는 더 이상 그 모습 그대로가 아닌 어떤 흐름혹은 질료로 바뀝니다. 이 흐름은 욕망기계를 밀쳐내고 욕망기계는 끌어당기죠. 밀쳐내 짐과 끌어당김 사이에서 동요하는 욕망기계는 어떤 새로운 부분대상을 채취해 새로운 이미지를 생산합니다. 이 때 이 욕망 기계 곁에서 이제 까지 경유한 과정을 소비하는 하나의 몫이 남게 되는 데, 그것은 통일체로 환원될 수 없는 긍정이며, 부분들의 전체이지만 이 부분들을 전체화하지 않는 총체성인, ‘나는 느낀다라고 말하는 어떤 시적 주체입니다.

 

부분대상들은 비-인물적인 하나의 흐름 내지 휠레에서 채취를 통해 현실적으로 생산되며, 다른 부분대상들에 자신을 연결함으로써 이 흐름 내지 휠레와 소통한다.”( p89)

 

이렇게 해서 텅 빈 프레임은 가을을 담고, 가는 파이프는 간절한 마음과 동화됩니다. 둥근 원환은 그 마음을 반복하고, 마침내 텅 빈 안장이 시야에 들어오는데, 모든 의미의 시발이 그곳인양, 그곳에서 새 생명을 얻고, 삶은 자연과 앙상블을 이루며, 시간은 낙엽의 속도처럼 과정만이 흐르게 됩니다. 서 있는 자전거는 피동적으로 서 있는 게 아닙니다. 이 이미지를 소비할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무의식은 인물들을 모른다. 부분대상들은 부모라는 인물의 대표가 아니며 가족 관계들의 받침대도 아니다.“(p 89)

 

텅 빈 안장은 오이디푸스의 상징일까요? 거세 콤플렉스로 망각된 욕망적 대상에 대한 그리움 혹은 메조키즘적 피동성으로 상징되는 유년시절의 억압된 기억들, 이렇게 시적 화자에게 그리움은 하나의 콤플렉스를 다르게 설명하는 것에 불과할까요? 적어도 이 시에서 그리움을 오이디푸스의 원리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화자는 우연히 자전거와 주체인 화자와 가을이 횡단적으로 섞인 것에서 새로운 부분대상을 채취 했을 뿐입니다. 물론 시에서 하나의 주제를 끄집어 낼 때는 의도적인게 있을 수 있습니다. 시의 작자는 그 부분대상들을 다소 의도적으로 어떤 그리움으로 배치한 것입니다.

 

중요한 건, 부모의 삶과 사랑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건, 욕망적 생산에서 부모의 위치와 부모의 기능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요. 거꾸로 욕망 기계들의 모든 작동을 오이디푸스의 제한된 코드로 복귀시키지 않는 것이다. .....<관계 짓는다>라는 것은 여기서 자연스러운 생산적 관계가 아니라. 기입에서의 누멘에서의 하나의 설명, 하나의 기입을 가리킨다. .. 아이는 직접적 생산이라는 관점에서는 부모와 관련이 없지만, 경과의 등록이라는 관점에서는, 이 등록의 아주 특수한 조건들 아래서, 이 조건들이 경과 자체에 대해 반작용을 하긴 해도(되먹임) (사랑이나 미움과 더불어) 부모와 관련되어 있다. (p91~92)

 

물론 <억압된 것의 회귀>로서, 시적 화자의 그리움을 해석해, 시적 화자를 어린 시절 오이디푸스의 지배 아래 남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한데 만일 똑같은 조건의 시를 이런 어린시절의 원리에 종합시키지 않고 다른 원리로 분석한다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기다리는 대상을 절대자나 우리 학창시절 많이 써먹었던 민족이나 국가 등으로 말입니다. 우습게도 계속 시는 이어집니다. 이렇게 시를 해석하는 것은 시를 하나의 원리로 퇴행시키는 것입니다. 시는 이렇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시는 "순수한 다양체“(p 84)로서 부분대상들, 벽돌들, 잔여물들을 생산하는 하나의 욕망 기계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시가 부모와 관련된다면 그것은 시의 본래적 원리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부분대상들에서 이탈시켜 등록하고 기입하는 부모라는 특수한 조건들 아래에서만 시는 부모와 관계 맺습니다. 이때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모를 경유해야겠지요. 하지만 이런 시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정신분석에 대한 로런스의 반발을 상기하고 잊자 말자. ... 그는 정신분석이 부르주아 장식이 달린 괴상한 상자 안에, 몹시 역겨운 일종의 인공 삼각형 안에 성욕을 가두고 있으며, 이 삼각형은 욕망의 생산으로서의 성욕 전체를 질식시켜, 새로운 양식으로 성욕을 다시 <더러운 작은 비밀>, 가족의 작은 비밀로 만들고, 자연과 생산이라는 엄청난 공장 대신 내밀한 극장으로 만들고 있다는 인상을, 순순한 인상을 갖고 있었다.”(p 94)

 

저희도 상기하고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삶이 하나의 이념으로 칠해지고, 오후 5시 애국가가 매일 가슴에 새겨지는, 욕망은 허가받은 욕망이어야 하고, 욕망의 생산은 하나의 생산방식으로만 양육되는, 가족은 국가의 반향이고 그 역도 마찬가지인, 국가라는 오이디푸스의 삼각형을. 밖에서 오는 탄압은 안에서 오는 자책으로, 삶은 무한한 결핍으로 떠돌고, 모든 분노는 대상을 결여한 체 극단으로 치닫고, 자유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구속해야하는 자본이라는 오이디푸스의 삼각형을, 어찌 보면 우리 시대의 모든 시는 바로 이 삼각형들과의 투쟁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가을입니다. 모두 낙엽처럼 내려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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