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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2017-Sep

발제문 9/12 [에티카] 4부

작성자: 보미 조회 수: 13

[에티카] 4부
 
 
1.
무한한 수의 정도와 인식의 차이를 인식하게 해주는 정서인 '좋은 슬픔(고통)'에 관해 공부해 보았으면 합니다. 
 
<정리 43>
쾌감은 과도할 수 있고 나쁜 것일 수 있다. 반면 쾌감 또는 기쁨이 나쁜 한에서 고통은 좋은 것일 수 있다. 
<증명>
쾌감은 신체와 관련되는 한에서 신체의 하나 내지 몇몇 부분이 다른 부분들보다 더 많이 변용되는 데서 성립하는 기쁨으로, 이 정서의 역량은 신체의 다른 모든 작용을 압도할 수 있을 만큼 클 수 있고, 신체에 집요하게 달라붙어 있어서 신체가 아주 많은 다른 방식으로 변용될 수 있는 것을 방해하며, 이에 따라 나쁜 것일 수 있다.
그 다음, 반대로 슬픔인 고통은 그 자신만으로 고려되었을 경우에는 좋은 것일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의 힘과 그 증대는 우리의 역량과 비교된 그 원인 외부 원인의 역량에 의해 정의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정서의 힘에서 무한한 수의 정도와 방식의 차이를 인식할 수 있으며 (4부 정리3), 이에 따라 우리는 고통이 쾌감을 억제하고 그것이 과도하게 되지 못하도록 인식할 수 있으며, 이런 한에서 고통은 신체의 능력이 감소되는 것을방지할 수 있으며 따라서 이런 한에서 이것은 좋을 것이다.
<정리 3>
인간이 실존 속에서 존속하는 힘은 제한적이며, 외부 원인들의 역량은 이 힘을 무한하게 능가한다.
<증명>
이는 4부의 공리로부터 명백하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주어져 있을 경우, 그보다 더 강한 다른 어떤 것(A라고 하자)이 존재하며, A가 주어져 있을 경우에는 A 자신보다 더 강한 다시 다른 어떤 것(B라고 하자)이 존재하며, 이처럼 무한히 나아간다. 그러므로 인간의 역량은 다른 실재의 역량에 의해 제한되며, 외부 원인들의 역량은 인간의 역량을 무한하게 능가한다. 
 
 
 
 
 
2.
어떤 '행위'는 그 자체로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이 '수동적인 정서에 의해 생겨나는 욕망'에 의해 실행되느냐 혹은, '이성에 의해 생겨나는 욕망'에 의해 실행되느냐에 따라 '좋은 행위'도 되고, '나쁜 행위'도 됩니다. 
이는 인간의 '행위'의 확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기술'에 관해서도 동일하게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이라는 구체적인 사물로 구현되어 있는 과학기술은 그 자체로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지만, 어떠한 정서에 의해 생겨나는 욕망에 의해 실행(활용)되느냐에 따라 '좋은 스마트폰'도 될 수 있고 '나쁜 스마트폰'도 될 수 있습니다. 
이에 관해, <정리 59>의 내용과 함께 공부해 보았으면 합니다. 
 
<정리 59>
우리가 수동적인 정서에 의해 수행하도록 규정되는 모든 행위를 우리는 수동적인 정서 없이 이성에 의해 수행하도록 규정될 수 있다. 
<증명>
이성에 의해 행위하는 것은, 그 자체만 고려된 우리 본성의 필연성으로부터 따라 나오는 것들을 실행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슬픔은 이 행위 역량을 감소시키거나 억제하는 한에서 나쁜 것이다. 따라서 이 정서에 의해 우리는, 만약 우리가 이성에 의해 인도될 경우 실행할 수 있는 어떠한 행위도 실행하도록 규정될 수 없다. 더욱이 기쁨은 인간이 행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한에서 나쁘며, 이에 따라 이런 한에서, 기쁨 역시 만약 우리가 이성에 의해 인도될 경우 실행할 수 있는 어떠한 행위도 실행하도록 규정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기쁨은 좋은 것인 한에서는 이성과 합치하며 인간이 그 자신 및 그의 행위를 적합하게 인식할 수 있게 할 만큼 인간의 행위 역량이 증대되지 않는 한에서만 기쁨은 수동적이다. 따라서 만약 기쁨으로 변용되는 사람이 아주 커다란 완전성으로 인도되어 자기 자신 및 자신의 행위를 적합하게 인식하게 된다면, 그는 그 자신이 지금 수동적인 정서에 의해 실행하도록 규정되는 동일한 행위를 실행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실로 더 잘 실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모든 정서는 기쁨, 슬픔 내지 욕망과 관련되며, 욕망은 행위하려는 노력[코나투스]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수동적인 정서가 우리로 하여금 실행하도록 규정하는 모든 행위에 대하여 우리는 이러한 정서 없이 이성에 의해서만 실행하도록 인도될 수 있다. 
<주석>
이는 사례를 통해 좀 더 분명하게 설명된다. 사실 때리는 행위는 물리적인 것으로 고려되는 한에서는, 그리고 우리가 사람의 팔을 들어올리고 주먹을 쥐고 팔 전체를 힘껏 아래로 움직이는 것에만 주목한다면, 인간 신체의 구조로 부터 인식되는 덕목이다. 따라서 만약 사람이 노여움이나 미움에 의해 자극되어 주먹을 쥐거나 팔을 움직이도록 규정된다면, 이는 우리가 2부에서 보여 준 것처럼 하나의 동일한 행위가 여하한 다른 실재들의 이미지와 결합될 수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일이다. 이에 따라 우리는 우리가 혼동스럽게 인식하는 것만이 아니라 명석판명하게 인식하는 실재들의 이미지에 의해서도 하나의 동일한 행위를 하도록 규정될 수 있다. 따라서 수동적인 정서에서 생겨나는 모든 욕망은 인간들이 이성에 의해 인도될 수 있다면 아무런 쓸모도 없을 것이다. 이제 왜 수동적인 정서에서 생겨나는 욕망을 우리가 맹목적이라고 부르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 유용성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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