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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_고전 읽기

상황상 분량이 많아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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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의 『프랑스 내전』 독일어 제3판 서설

(프리드리히 엥겔스)


1. 독일-프랑스 전쟁[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 관한 총평의회의 두 담화문 앞에 개제.(11)


2. 1789년 이후 프랑스의 경제적‧정치적 발전으로 인하여 최근 50년 동안 파리는, 여기서 혁명이 일어난다면 프롤레타리아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는(13) 상태에 놓여 있었음.

2.1 그 요구들은 그때그때 파리 노동자들의 발전 상태에 따라 다소 불명료하고 혼란스럽기까지 했지만, 결국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계급적 대립의 철폐로 귀결되는 것이었음.

2.2 더욱이 노동자들은 무장하고 있었음. 국가의 방향타를 쥔 부르주아에게 첫째가는 일은 노동자를 무장해제하는 것. 노동자가 전취한 각각의 혁명 후에는 새로운 투쟁이 벌어졌는데, 그것은 노동자로 패배로 끝났음.


3. 이런 일은 1848년에 처음 일어남. [2월 혁명 당시] 정부와 반정부파 사이 관계에 위기가 닥쳐왔을 때 노동자들은 시가전을 개시.(14) 루이 필립은 자취를 감추고 선거법 개정도 자취를 감춤. 그 대신 승리한 노동자들이 ‘사회’ 공화국이라고까지 명명한 그러한 공화국 등장.

그러나 부르주아 공화주의자들은 확고한 지반이 있다고 느끼자마자 노동자를 무장 해제하고자 함. 1848년 6월 봉기는 5일 간의 영웅적 투쟁 끝에 노동자의 패배. 이후 무방비 상태의 포로에 대한 잔인한 학살이 뒤따름.

3.1 이는 프롤레타리아트가 독립된 한 계급으로서 자신의 이익과 요구를 가지고 부르주아지에 맞서 용감하게 등장하자마자, 부르주아지가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얼마나 광적으로 복수하는가를 보여주는 최초의 일.(15)

3.2 이후 부르주아지의 알력으로 루이 보나파르트가 모든 권부(군대, 경찰, 행정기관)를 장악. 1851년 12월 2일 쿠데타로 부르주아지의 최후의 견고한 성곽인 국민의회를 분쇄.

3.3 제2제정은 정치 및 금융 모험가 도당에 의한 프랑스 착취를 출발시켰으며, 동시에 공업 발전의 길을 열었음.

보나파르트는 노동자와 부르주아지 양측에게서 정치권력을 빼앗았지만, 투기와 공업 활동, 요컨대 부르주아지 전체의 전대미문의 발흥과 치부를 비호. 큰 규모의 부패와 대량 절도 행위.


4. 제2제정은 1814년 상실한 제1제정의 국경, 적어도 제1공화국의 국경의 반환을 요구하는 프랑스 배외주의에 대한 호소. 때때로 전쟁을 하여 국경 확장할 필요 생김.(16)

4.1 독일의 라인 강 좌안에 대한 반환 청구는 시간문제로,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과 함께 닥쳐옴. 비스마르크 혹은 자신의 정책 때문에 기대했던 ‘영토 보상’에 기만당하자 보나파르트에게 남은 것은 전쟁뿐이었음.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그는 항복, 패배.]

4.2 그 필연적 결과는 1870년 9월 4일의 파리 혁명. 공화국이 다시 선포.

4.2.1 인민은 전 입법원 파리 대의원들이 ‘국민 방위 정부’로 등장하는 것을 묵인. 무장한 모든 파리 사람들이 방위를 위해 국민방위대에 편입되었고 그 결과 이제는 노동자들이 대다수를 이룸. 거의 전부가 부르주아들로 구성된 정부와 무장한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의 대립이 폭발.(17)

4.3 기아에 지친 파리는 1871년 1월 28일 마침내 항복.

4.3.1 요새 양도, 환상 방벽 무장 해제, 상비군‧기동방위대 무기 양도 및 전쟁 포로 간주. 그러나 국민방위대는 자신의 문기와 캐넌포를 소지하면서 승리자들과 휴전만을 체결했음.

승리자들 자신도 감히 파리에 개선 입성을 하지 못함. 131일이나 파리를 포위하고 있던 그들은 이제 무장한 파리 노동자들에게 포위되어 있었음.(18)

4.3.2 정부의 새로운 수반 티에르는 파리 노동자들이 손에 무기를 들고 있는 한 유산계급(대토지 소유자와 자본가)의 지배는 항상 위험한 상태에 처해 있다고 볼 수밖에 없었음. 첫째로 그가 한 일은 무장 해제를 시도. 그러나 실패.


5. 베르사유에 있는 프랑스 정부와 파리 사이에 전쟁이 선언됨. 1871년 3월 26일 파리 코뮌이 선거로 구성, 28일 선포.

5.1 파리 코뮌의 행적: ‘풍기 경찰’의 폐지, 국민방위대 유일한 무장력으로 선포, 1870년 10월부터 4월까지 주택 임대료 면제, 시영 전당포의 전당 잡힌 물건 판매 중지, 코뮌 선출된 외국인 집무 비준, 코뮌 직원 및 의원 봉급이 6000프랑 넘어서는 안 된다고 결정, 국가로부터 교회(19) 분리, 모든 종교적 상징, 성상, 교리, 기도의 학교로부터 추방, 기요틴 불태움, 방돔-광장 전승 원주 넘어뜨림, 노동자들을 협동조합들로 결합하여 이들의 힘으로 공장 경영 계획을 작성하고 이 조합들을 하나의 거대한 연합체로 조직할 계획 작성을 명령, 제빵공 야간 작업 폐지, 직업 소개소 폐지, 전당포 폐지,(20) 참회 예배당 파괴.

5.1.1 파리 운동의 계급적 성격이 날카롭고 확연히 나타나기 시작. 코뮌에는 거의 노동자들 혹은 공인된 노동자 대표들밖에 없었으므로 코뮌의 결정은 단호히 프롤레타리아적 성격을 띰.

개혁안과 낡은 사회 질서를 찌르는 결정을 내렸지만 포위당한 도시에서는 기껏해야 실행에 옮기는 것을 시작할 수 있었을 뿐. 5월 초부터는 증대된 베르사유 정부군과의 투쟁에 모든 힘이 요구됨.(21)

5.2 8일간의 마지막 전투 끝에 5월 28일 결국 코뮌의 함락. 일주일 내내 자행된 무방비 상태의 남자, 여자, 어린이에 대한 학살이 절정에 달함. 대규모 체포가 이뤄지고, 이들 포로는 총살되거나 대규모 수용소로 끌려가 군법회의 재판을 기다리게 됨.

프롤레타리아트가 자기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 과감히 일어설 때 지배계급들이 얼마나 광포하게 될 수 있는가를 증언.(23)


6. <내전>에 대한 오늘날의 첨언.

6.1 코뮌 의원들은 블랑키주의자들인 다수파와 주로 프루동 사회주의 학파의 추종자들로 이뤄진 국제노동자협회의 회원들인 소수파로 분열.

(그들이 장악했음에도 코뮌이 올바른 행동을 많이 한 것은 훨씬 더 놀라운 일.)

6.1.1 블랑키주의자: 혁명적이고 프롤레타리아적인 본능만을 따르는 사회주의자들.

이것으로 경제에 관련하여 코뮌이 반드시 해야 했지만 하지 못한 것을 이해할 수 있음. 코뮌이 프랑스은행을 장악하지 않은 것은 오류.(24)

6.1.2 소농민과 수공업 장인의 사회주의자인 프루동은 조합Assoziation을 한사코 증오. 노동자의 자유를 구속하는 쇠사슬로 여김.

그러나 1871년 공예 수공업 중심지인 파리에서조차 대공업은 예외 아님. 코뮌의 가장 중요한 훈령은 대공장 조직화와 심지어 매뉴팩쳐 조직화까지 명령. 이는 각 공장의 노동자[협동]조합에 근거하며, 이 모든 협동조합을 한 개의 대연합체로 통합하여야 했음.

6.1.2.1 이러한 조직은 맑스가 <내전>에서 아주 정확하게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결국은 공산주의로(25) 나가갈 것이 틀림없음. 코뮌은 프루동 학파 사회주의의 무덤.

6.1.3 블랑키주의자도 나을 바 없음. 소수의 결단성 있고 잘 조직된 사람들이 먼저 모든 권력을 새 혁명 정부의 수중에 가장 엄격히 독재적으로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

그러나 코뮌은 프랑스의 모든 코뮌들과 파리를 하나의 자유 연방으로, 즉 처음으로 국민 자신에 의하여 실제로 창조되어야 할 하나의 국가 조직으로 통합할 것을 요구.

이전의 중앙집권화된 정부의 억압권력, 즉 군대, 정치경찰,(26) 관료는 도처에서 몰락.

6.2 노동자계급은 일단 지배권을 회득하면 낡은 국가기구로는 더 이상 관리해나갈 수 없음. 6.2.1 지배권을 다시 상실하지 않기 위해서는 모든 낡은 억압기구를 제거하고, 대의원과 관리들은 누구나 예외 없이 언제든지 해임될 수 있다고 선언하여 안전을 확보해야 함.


7. 이전 국가의 특징적 성격: 사회는 자신의 공동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 처음에는 단순한 분업에 의하여 자신의 기관들을 창설. 그러나 국가권력을 정점으로 하는 이 기관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의 특수한 이익에 복무함으로써 사회의 종에서 사회의 주인으로 바뀜.(27)

7.1 미국의 사례.(27~28)

7.2 이에 반대해서 코뮌은 두 방법을 적용.

① 행정, 사법, 교육의 모든 직책들을 관계자들의 보통선거에 의거하여 선출하여 임명하고, 이 관계자들에게 언제든지 해임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

② 직위 고하를 불문하고 모든 공무원에게 다른 노동자들이 받는 정도의 임금을 지불.(28)


8. 독일에서는 국가에 대한 미신이 철학에서 부르주아지의 일반적 의식과 심지어 많은 노동자들의 일반적 의식까지 옮겨감.

공공사업과 공공이익은 국가와 높은 봉급의 관리들을 통하지 않고는 처리할 수 없다는 미신.

8.1 실제로 국가는 한 계급의 다른 계급에 대한 억압기구 이외에 아무것도 아님(민주공화제든 군주제든). 국가는 기껏해야 하나의 악.

8.2 승리한 프롤레타리아트는 이 악을 물려받는데,(29) 프롤레타리아트는 코뮌가 마찬가지로 새롭고 자유로운 사회 상태에서 성장한 한 세대가 모든 국가 폐물을 떨쳐버릴 수 있을 때까지 될 수 있는 한 국가의 최악의 측면을 감소시킬 수 있을 뿐, 그것을 피할 수 없음.


9. 파리 코뮌을 보라. 그것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였다.(30)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 관한 국제노동자협회 총평의회의 첫번째 담화문


1. 1864년 11월 국제노동자협회 발기문: “노동자 계급들의 해방이 그들의 우애어린 협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면, 민족적 편견 위에서 움직이는 약탈 전쟁에서 인민의 피와 재산을 탕진하는 범죄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대외 정책으로 그들이 어떻게 저 위대한 과업을 이룰 수 있겠는가?”(32)


2. 보나파르트는 [1870년 5월] 국민투표 전야에 인터내셔널 위원 일제 검거.

2.1 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들은 프랑스 인민에게 국민투표에 찬성표를 던지는 것은 국내의 전제주의와 대외전쟁에 찬성표를 던지는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단호히 말함. 대도시와 모든 공업 중심지에서 노동자계급이 한 사람처럼 일어나 국민투표를 거부한 것은 그들의 업적.

농촌 지역의 답답한 무지 때문에 균형이 무너짐.


3. 1870년 7월의 전쟁 음모는 1851년 쿠데타의 개정판일 뿐.(32)

3.1 7월 15일 입법원에서 개전이 공식 통고되었을 때, 반정부파 전체가 예비비 교부의 가결 거부, 띠에르조차 반대, 그리고 독립적인 신문은 물론 지방 언론도 거의 만장일치로 비난.

3.2 파리 인터내셔널 회원들도 다시 활동에 들어섬.

<만국의 노동자들에게>: “프랑스, 독일, 에스파냐의 노동자들이여! 목소리를 합쳐 전쟁 반대를 외치자! (…) 노동자의 눈으로 볼 때 패권 혹은 한 왕조의 문제를 위한 전쟁은 범죄적 어리석음에 불과하다. 혈세의 부담을 지지 않으면서 공중의 불행 속에서 새로운 투기의 원천을 찾는 자들의 호전적인 선언에 대해 우리는, 평화, 노동, 자유를 원하는 우리는 항의한다!”(33)


4. 보나파르트가 18년 동안 복고된 제정이라는 흉악한 소극을 연출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유럽의 정부들과 지배 계급들.

4.1 독일 측에서 보면 이는 방어 전쟁이지만, 국내의 인민의 반대를 분쇄하고 독일을 호엔촐레른 왕조에 병합하기 위해 보나파르트와 공모한 것은 비스마르크[프로이센].

4.2 전쟁이 엄격하게 방어적 성격을 버리고 프랑스 인민에 대한 전쟁으로 변질되는 것을 독일 노동자 계급이 허락한다면, 승리든 패배든 그 결과는 똑같이 불행한 것이 될 것.(35)


5. 인터내셔널 원칙들이 독일 노동자 계급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굳건히 뿌리내리고 이기 때문에 그렇게 비참한 종말을 우려하지 않아도 될 것.

5.1 “7월 16일 브라운슈바이크에서 열린 노동자 대중 집회”: “우리는 모든 전쟁의 적이며 무엇보다도 왕조 전쟁의 적이다. (…) 동시에 우리는 평화와 전쟁에 관해 결정할 권한이 인민 스스로에게 있음을 요구함”

“캠니츠 5만 명의 작센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대표자 회의”,(36) “인터내셔널 베를린 지부의 파리의 선언”


6. 이러한 자살적 투쟁의 배후에는 러시아의 섬뜩한 자태가 도사리고 있음.(37)


7. 새로운 사회의 각국의 지배자는 어디에서나 동일하게 노동일 것. 이 새로운 사회의 개척자는 국제노동자협회.(38)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 관한 국제노동자협회 총평의회의 두번째 담화문


1. 방어 전쟁은 보나파르트의 투항, 스당 항복, 파리의 공화정 선포로 끝남.

1.1 프로이센 군부는 제정 군대가 철저히 부패했음이 명백해진 바로 그 순간 정복을 결의. 다만 개전 당시 국왕 빌헬름의 선언이 장애물(전쟁의 방어적 성격 주장).(41)


2. 장애물을 넘기 위해 독일 국민의 거역할 수 없는 명령에 마지못해 따른다는 것을 보여줘야 함. 그들은 즉각 교수, 자본가, 시 의회 의원, 문인들을 포함한 독일의 자유주의적 중간계급에게 암시를 주었음. 시민적 자유를 위한 투쟁에서 무능하고 비겁했던 이 중간 계급은 독일 애국주의의 포효하는 사자로서 유럽 무대에 선 것을 기뻐했음.

2.1 감히 알자스와 로렌의 인민이 독일 품에 안기기를 원한다고 주장하지 않음. 오히려 이곳 인민의 프랑스에 대한 애국심을 징벌하기 위해 포격으로 불바다로 만들고 수많은 주민을 살해.(42)

2.2 좀 더 아는 체하는 애국자들은 프랑스 침략에 대한 ‘물질적 담보’로 알자스와 로렌의 독일어 사용 지역을 요구.

2.2.1 이 지역(알자스 스트라스부르 같은 요새)은 프랑스가 남부 독일을 침공하는 데 매우 유리하게 작용하는 반면, 남부 독일에서 프랑스를 침공하는 데는 특유한 어려움을 줌. 알자스와 로렌의 독일어 사용 지역의 병합은 남부 독일에 훨씬 더 튼튼한 국경선을 제공할 것.(43)

2.2.2 그러나 통일된 독일이라면 언제라도 현재 전쟁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프랑스군을 무력화시킬 수 있음. 이번 원정이 무엇인가 증명한 것이 있다면, 독일이 프랑스를 침략하는 것이 용이하다는 것.


3. 군사적 고려를 국민들 간의 경계를 정하는 원칙으로 삼는 것은 완전히 불합리하고 시대착오적인 것 아닌가?(44)

3.1 경계선을 군사적 이해관계에 따라 확정해야 한다면 요구는 끝이 없을 것. 모든 군사적 경계선은 필연적으로 결함을 가지고 있고, 경계선 바깥 영토를 더 병합함으로써 개선될 수 있기 때문.(45)


4. 튜튼족[게르만족] 애국주의 대변자들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영광이 아니라 안전이라고 하지만, 자신들의 군사 행위에 대해서는 눈 감음(사례: 1792년 프랑스 침입, 이탈리아 예속‧헝가리 억압‧폴란드 분할, 군사 체제).

4.1 프랑스 요새에 분개하면서, 모스크바인들이 새운 거대한 요새 체계에서는 아무 위해도 느끼지 않음.(46) 독일에 대한 전제 러시아와 차르의 영향력 설명.(46~47)

독일이 프랑스를 분할한다면 두 가지 길(47)만이 열림: ① 러시아 팽창의 공공연한 도구가 되거나, ② 짧은 휴식 후에 또 다른 ‘방어’ 전쟁을 준비해야 할 것인데, 이는 국지전이 아니라 슬라브 인종과 라틴 인종의 동맹을 상대로 한 종족전쟁이 될 것.


5. 독일 노동자계급은 이 전쟁을 방지할 힘이 없었기 때문에 이 전쟁을 제2정의 몹쓸 악몽에서 독일의 독립 및 프랑스와 유럽의 해방을 위한 전쟁으로 지지.

5.1 농촌 노동자와 더불어 군대에 힘을 제공한 것은 독일 노동자. 국외 전투에 대거 희생된 그들은 국내의 궁핍에 의해 또다시 대거 희생될 것.

자신의 차례가 된 그들은 이제 ‘담보’를 요구하기 위해 나서고 있음. 그들이 자유를 쟁취했다는 사실에 대한 담보. 첫번째 담보로서 프랑스에 대한 명예로운 강화와 프랑스 공화국의 승인을 요구.

5.1.1 “독일사회민주주의노동자당 중앙위원회의 9월 5일 선언”: “독일(48)과 프랑스의 공통의 이익을 위하여, 평화와 자유를 위하여, 동방의 야만에 맞서는 서방 문명을 위해 독일 노동자들은 알자스와 로렌의 병합을 묵과하지 않을 것이다.”

5.2 그들이 즉각 성공을 거두리라 낙관할 수 없지만, 역사는 독일 노동자계급이 독일 중간계급처럼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것.


6. 우리는 프랑스에서의 공화정의 도래를 환호함.

6.1 그러나 공화정은 사회적 획득물로 선포된 것이 아니라 국민적 방어 조치로 선포되었음.

공화정 일부는 악명 높은 오를레앙파로, 일부는 중간계급(49) 공화파로 구성되어 있는 임시 정부의 수중에 있는데, 이들 중 일부에게는 1848년 6월 봉기가 지울 수 없는 오명으로 남겨 놓았음.

6.1.1 오를레앙파: 군대와 경찰이라는 요새 장악. / 자칭 공화파: 수다스러운 부서.

6.2 이들이 최초로 취한 몇 가지 행동은 그들이 제정으로부터 폐허뿐만 아니라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포까지 물려받았다는 것을 잘 보여줌.


7. 프랑스 노동자계급은 극도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 움직이고 있음. 적이 거의 파리 성문을 두드리고 있는 현재의 위기 속에서 새로운 정부를 전복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자포자기에 빠진 어리석은 짓이 될 것.

7.1 그들은 그들 자신의 계급의 조직화 사업을 위해 공화주의적 자유의 기회를 조용하고도 결연하게 활용해야 할 것.(51)


9. 영국의 노동자들은 외부에서 효과적인 압력을 가함으로써 영국 정부가 프랑스 공화국을 인정하기를 주저하는 것을 분쇄하기 위한 조치를 이미 취했음.


10. 만국의 국제노동자협회 지부들은 노동자계급이 행동하도록 촉구해야 할 것.(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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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 이론]
[공유인으로 사고하라]
[9월, 도쿄의 거리에서]
[빚의 마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