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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미학_삶과 예술

모리스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ty),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Le Visible et l'invisible(1964), 남수인 옮김, 동문선, 2004, 153~173발제자: 공강일 20180126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물음과 직관


3. 철저한 철학을 위하여

철저주의의 결의를 관철하기 위해서라면 철학은 영구히 철학을 존재에 연결시키는 이 탯줄과 같은 관계를, 지금부터는 (이 지평에) 포위되어 있어서 파기 불가한 이 지평을, 철학이 되돌아오려고 하지만 헛된 사전의 입문을 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철학은 더 이상 부정하지 말아야 할 것이고, 더 이상 회의조차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다만 한 걸음 물러서서 세계와 존재를 보아야 할 것이다. 또는 타자의 말에 대해 그렇듯 세계와 존재에 따옴표를 쳐서 세계와 존재에게 말하게 하며, 귀를 기울이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4. 철학은 본질을 묻는다

이제 문제는 더 이상 ……은 존재하는가의 문제일 수가 없다면 그것은 ……은 무엇인가의 문제가 되며, 과제는 세계가 진리가 존재가 무엇인지 우리와의 공범 관계에서 연구하는 것이 된다. 회의가 포기됨과 동시에 존재에 대한 확신은 포기된다. [그런데 존재는 사유에 의해 형성된다. 존재와 사유가 결합된 것을 우리는 의미라고 부른다.] 의미가 없으면 세계도 없고 언어 활동도 없으며 무엇이 되었건 모두 없어져 버리는 그러한 것이다.

[푸코는 이렇게 말한다. “고전주의 시대에 자연과 인간의 관념이 상당한 중요성을 갖는 것은 이 두 관념은 상상력과 닮음의 귀속, 상호관련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아마 상상력은 겉보기에 인간을 구성하는 속성들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닮음은 자연의 효력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할 것이다. 인간은 인간의 재-현을 가능하게 하는 재현의 얇은 돌출부에 자리한다는 것, (인간 자체는 거기에, 즉 인간이 다시 출현하도록 그저 웬만큼 재현의 외부에, 현존을 재현으로부터 떼어 놓고 접두사 -’를 재현의 반복으로 갈라놓는 공백의 공간에 존재한다.) 그리고 자연은[,] 동일성들의 질서가 가시적이기 전에 닮음이 감지될 수 있게 하는 재현의 포착할 수 없는 혼란에 불과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차릴 수 있다. 자연과 인간은 에피스테메의 일반적 지형에서 닮음과 상상력의 조정을 가능하게 하는데, 질서의 모든 경험과학은 이 조정에 의해 정당화되고 가능해진다(말과 사물,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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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지원 기획세미나, 삶과 예술. ∥2018년 2월 2일∥보미

모리스 메를로-퐁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東文選, 2004.  225~234



[선先객관적 존재: 유아론唯我論적 세계]


선객관적인 것으로의 환원

1. 우리는[...] 경험이 어떻게 우리를 우리가 아닌 것에게 개방하는지 알기 위해 경험을 캐묻는다. 이러한 캐물음을 통해 우리는 경험 가운데서 하나의 운동을, 요컨대 어떤 경우에도 우리에게 본래 모습으로 나타나지 못하는 [어떤]것을 향해 가는 그 돌이킬 수 없는 부재가 우리의 원초적 경험들의 하나로 꼽힐 [어떤] 것을 향해가는 운동(선객관적인 것으로의 환원운동)을 발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단지 현전에 딸린 이러한 여백들을 보기 위해서든, 이러한 지시 관계들을 식별하기 위해서든, 이들 관계를 검토하거나 천착하기 위해서든 일단 우리는 맨 먼저 시선을 외견상 우리에게 주어진 것에 고정시켜야 한다. (230)

2.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내부로부터' 취하는 철학과 경험을 외부에서 예를 들어 논리적 기준들의 이름하에 판단할 철학 중 한쪽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 왜냐하면 어쩌면 자기와 비-자기란 (안과 밖inside and outside이 아니라) 안the obverse과 겉the reverse같은 것(앞면과 뒷면)이기 때문이고, 어쩌면 우리의 경험이란 것도 우리 자신을 '우리들'로부터 아주 멀리, 타인 안에, 사물들 가운데 정착시키는 그러한 반전일 수 있기 때문이다.(유아론적 세계를 벗어나는 경험) 우리는 자연인처럼 우리 자신 속에 그리고 사물 가운데, 또 우리 자신 속에 그리고 타인the other 속에 자리잡을 것이다. 즉 일종의 교차chiasma에 의해 우리는 타자the others가 되고 또한 우리는 세계가 되는 지점에 자리잡을 것이다. 

3. 자연인이 그렇듯 철학은 자기로부터 세계로, 그리고 타자(타인the other)에게로 이행the passage이 이루어지는 지점에, 즉 여러 대로가 모이는 교차로에 몸을 위탁하고 있다. (230)

[1. 현전 (있음, 존재함)]

사물과 어떤 것 the thing and the something

4. 사물the thing이란 여러 특성들의 매듭(뭉침node)이라 하겠는데, 이때 각 특성은 여러 특성 가운데 다른 하나가 주어져야만 주어진다. 요컨대 사물은 동일성의 원리principle of identity이다. 사물이 현재 있는 그대로의 사물인 것은 그 내적 안배에 의해서이다. [...] 사물은 그 자신의 힘에 의해, 정확히 말해 자기 자신 속에 응축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눈앞에 자신을 드러낸다. (232)

5. 우리는 사물들 자체의 원리로서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우리에게 사물 가능성의 조건으로서, 객관성, 자기 동일성, 긍정성, 충만함을 사물에 용인한다. 이처럼 정의했을 때, 사물이란 우리의 경험에 속하는 사물이 아니다. (233) [...] 요컨대 우리가 사물을 무의 가능성과 대질시킴으로써 사물에서 얻는 이미지이다.  [...] 즉 초월론적 관념론에 기초한 경험적 실재론은 그 역시 무를 기반으로 한 경험의 사유이다.  (234)

6. 사물에 대한 경험, 세계에 대한 경험이야말로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무를 사유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기반이 아닐까? 무를 기반으로 사물을 사유하는 것은 사물에 대해, 그리고 무에 대해 이중으로 오류를 범하는 것은 아닐까?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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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지원 기획세미나, 삶과 예술. ∥2018년 2월 2일∥파일로

모리스 메를로-퐁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東文選, 2004.  187-199.


나의 시선이 사물들을 감싸지만 은폐하지 못하는 것은, 그리고 끝내 사물들을 시선이라는 베일로 가리면서 사물들의 베일을 걷는 것은 어떻게 된 연유인가? 188

 

이 빨강은 자기 자리에서, 함께 무리를 이루는 주변의 다른 빨강들과 결속하면서, 또는 자신이 지배하거나 끌어당기거나 배척하는 다른 색깔들과 연결되면서만 오직 있는 그대로의 빨강이라는 말이다. 간단히 말해 그것은 동시적인 것과 순차적인 것의 그물에 맺힌 어떤 매듭이다. 그것은 가시성의 응결일 뿐 하나의 원자atome 가 아니다. 189

 

그리고 빨강은 문자 그대로 그것이 들어 있는 군락에 따라 동일하지 않다. 190

 

[손에 의한 촉지] ... 나의 손운동과 내가 만지는 것 사이에 어떤 원칙의 관계, 어떤 친적 관계가 있음에 틀림없다. 또한 이 혈연성에 따라 나의 손운동은 아메바의 위족처럼 신체 공간의 막연한 일시적인 변형에 불과하지 않으며, 축각 세계로 가는 입문이고 입구가 된다. ...어떤 의미에서 손이 그러한 사물들 가운데 하나이며, 끝내 손 역시 그 일부를 이루는 만져지는 존재를 향해 열리는 한에서 가능하다. 손 속에서 만지는 것과 만져지는 것의 이러한 재교차에 의해, 손의 적절한 운동은 이 운동이 물음을 던지는 우주에 합쳐지며, 이 우조와 동일한 지도 위에 옮겨진다. 191

 

우리는 보이는 것은 무엇이나 촉지되는 것 가운데 재단되었다고, 만질 수 있는 모든 존재는 어떤 식으로든 가시성을 약속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데에 익숙해져야 한다. 192

 

만질 수 있는 것 가운데의 보이는 것, 그리고 보이는 것 가운데의 만질 수 있는 것 사이에 서로 교차하는 이중의 방위 측정이 존재하는 것이다. 두 지도는 완전하지만 서로 혼동되지는 않는다. 두 부분은 전체적인 부분들이지만 서로 포개지지는 않는다. 193

 

결국 보는 자와 보이는 것의 고유한 연관성까지 개입시키지 않아도, 시각이란 시선에 의한 촉지이기 때문에, 우리는 시각 역시 우리에게 밝혀 주는 존재의 질서에 등재되어야 함을 알고 있으며, 또한 바라보는 자는 (이 사람이) 바라보는 세계에 대해 이방인일 수 없어야 함을 안다. 193

 

[우리가 시선의 두께와 몸의 두께 전체에 의해 사물들과 떨어져 있음] ..이 떨어짐은 근접의 정반대가 아니요, 이 떨어짐은 근접과 심오하게 조율되어 있는 근접의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193-194 ...요컨대 이 살의 두께는 보는 자와 사물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니라, 보는 자와 사물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194

 

성질quale 속에, 색깔 속에 들어 있는 정의할 수 없는 것은 다름 아니라 바로 무리진 과거 시각들, 앞으로 올 시각들을 하나의 어떤 것으로, 존재의 단 하나의 양식으로 내놓는 그 단호하고 간결한 양태이다. 194

 

몸의 두께는 세계의 두께와 경쟁하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몸의 두께는 내가 나를 세계로 만들고 사물들을 살로 만들어서, 사물의 심장부로 가는 유일한 수단이다. 194

 

중간에 있는 몸은 그 자체로는 사물도 조직 내적 물질도 결합 조직도 아니고, 그것은 대자적 감각적인 것sensible pur soi 이다. ...즉 촉각 작용, 시각 작용의 주재소인 색깔들과 표면들의 어떤 전체, 그러니까 결국 전형적인 감성체sensible exemplaire 라는 것이다. 전형적 감성체는 이 감성체에 주재하며, 이 감성체를 느끼는 사람에게 외부에서 자신과 비슷한 모든 것을 느끼는 데 필요한 수단을 제공한다. 그리하여 전형적인 감성체는 사물들의 조직 가운데 사로잡혔을 때, 이 조직을 모두 자기에게로 끌어당겨 체내화한다. ...이 체내화 운동을 통해 ...포개지지 못하는 동일성을, 모순 없는 차이를, 안과 밖의 이 편차를 전달한다. 몸은 자신의 개체 발생에 의해, 즉 몸을 이루는 두 기초 형태, 두 입술을 붙여서 우리를 직접 사물에게 결합시킨다. 두 입술, 곧 몸이라는 감성 덩어리la masse sensible , 감성적인 것의 덩어리 la masse du sensible. ...몸이 두 차원에 속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오직 몸만이 우리를 사물들 자체에게로 데려갈 수 있다. 195

 

몸은 하나의 소속 관계가 다른 하나를 부른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그것은 몸이 사물들에 속하기 때문에, 그리고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몸이 사물들을 배경으로 떠오른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점에서 사물들과 별개가 된다는 것이다. 몸은 사실상 단순히 보여진 사물이 아니며, 몸은 권리상 가시적인 것이다. ...몸은 때로는 떠도는, 때로는 집중된 가시성이다. 197

 

몸을 세계 속에, 보는 자를 몸속에 위치시키는, 또는 역으로 세계와 몸을 상자 속에 넣듯이 보는 자 속에 위치시킨, 수 세기에 걸친 편견을 버려야 한다. 세계가 살인데, 몸과 세계의 경계를 어디에 둘 것인가? 198

 

보이는 사물로서의 나의 몸은 거대한 경관 가운데 담겨 있다. 하지만 보는 자로서의 나의 몸은 이 보이는 몸의 기반을 이루며, 보이는 몸과 함께 보이는 모든 것들의 기반을 이룬다. 이 양자간에는 상호간의 삽입과 얽힘이 있다.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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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먼지님

2/2 모리스 메를로 퐁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4장 얽힘- 교차  199-209.3



살을 지칭하기 위해서는 ‘원소’ 라는 옛 용어를 써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 공기 흙 불을 말하며 사용했던 의미에서, 요컨대 시간과 공간상의 개체와 관념의 중간에 있는 것, 존재 양식이 조금이나마 존재하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그것을 입수하는 일종의 육화된 원리라는, 유에 속하는 사물이라는 의미에서의 원소. 살은 이러한 의미에서 존재의 한 ‘원소’이다. 살은 사실이 아니고 사실들의 합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장소와 지금에 유착되어 있다. 유착 이상이다: 어디서[장소]와 언제[때]의 개시, 사실의 가능성과 요구, 한마디로 사실성, 즉 사실을 사실이게 하는 것이다. 또한 동시에 사실들이 의미를 가지게 하는 것, 단편적인 사실들이 ‘어떤 것’의 주변에 배치되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살이 있으면, 즉 입방체의 감추어진 측면이 내가 눈 아래 가지고 있는 입방체의 측면처럼 어디에선가 빛을 발하고 있으면서 이 측면과 공존하고 있으면, 그리고 입방체를 보고 있는 내가 보이는 것에 속한다면, 나는 다른 곳에서도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며, 그리고 보이는 것과 내가 함께 동일한 ‘원소’에 -보는 자의 ‘원소’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보이는 것의 ‘원소’라고 해야 할까?- 사로잡혀 있으면 이러한 응집, 이러한 원리적 가시성은 일시적인 부조화보다 우세하기 때문이다. 200-201


살 자체로서 사유할 만한 것이라고 증명할 수 있다면, 나를 횡단하고, 나를 보는 자로서 구성하는 보이는 것이 그[보이는 것]자신과 맺는 관계가 있다면, 내가 만들지 않은 이 회로, 나를 만드는 이 회로, 보이는 것 위에서의 보이는 것의 이 감김은 나의 몸이나 마찬가지로 다를 몸들을 횡단할 수 있고 생동시킬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나의 내부에서 이러한 파동이 일어날 수 있는지, 어떻게 저편에 있는 보이는 것이 동시적으로 나의 풍경인지 이해했다면 당연히 나는 다른 곳에서도 보이는 것은 자기 자신에서 닫혀지리라, 나의 풍경이 아니 다른 풍경들이 있으리라 이해할 수 있다. 보이는 것이  (보이는 것의) 한 조각에 의해 포착 당했다면, 포착의 원리는 획득되고, 장은 다른 나르키소스들에게, ‘상호육체성’에게 열린다. 202

보이는 것의 특유한 점은 무궁무진한 깊이의 표면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보이는 것은 우리의 시각이 아닌 타시각들을 향해 열리는 것이다. 결국(우리의 시각이 아닌) 타시각들은 자신들을 실현하면서 사실상의 우리 시각의 한계를 부각시키고, 모든 넘어섬이 자기에 의한 넘어섬이라고 믿는 유아론적 착각을 강조한다. … 나의 운동들은 더 이상 보아야 할 사물들, 만져야 할 사물들 쪽으로 가지 않고, 사물들을 보고 있는 중인, 만지고 있는 중인 나의 몸 쪽으로 가지 않으며, 일반적인 몸(그것이 나의 몸이건 아니면 타인들의 몸이건)에게 그리고 몸 자신을 위해 몸에게 말을 건넨다. 왜냐하면 처음으로 다른 몸을 통해 나는 몸과 세계 살과의 연결에서, (몸이) 내가 보고 있는 세계에 다른 몸이 보는 것이라고 절대 필요한 보고를 첨가함으로써, 몸은 받는 것 이상으로 기여하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 다른 몸에 자신의 몸 전체를 갖다 붙이고, 이상한 인물상을 손으로 지출 줄 모르고 그린다. 이 인물상은 이제 자기가 받은 모든 것을 준다. 이제 몸은 세계와 목적들의 밖에서 길을 잃고, 존재 가운데 다른 삶과 함께 떠돌며, 자신을 이 삶 내부의 외부로, 이 삶 외부의 내부로 만드는 단 한가지의 일에 심취한다. 그리고 이제 운동, 촉각, 시각은 다른 것과 자기 자신들에게 기대어 자기들의 원천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고, 표현의 역설은 욕망의 끈기 있고 말없는 작업 속에서 시작된다. 206


우리가 자문하는 것은 정확히, 분산된 시각들을 연결하는 중심적 시각이 어떠한 것인가, 나의 몸의 촉각적 삶 전체를 총괄하는 단일한 촉각 작용은 어떠한 것인가, 우리의 경험들 전체를 동반할 수 있어야 할 이 나는 생각한다가 어떠한 것인가이다. 우리는 중심을 향해간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의 중앙이 있는지, 통일이 어떠한 것으로 되어 있는지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우리는 통일이 합이거나 결과이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유를  시각의 하부 구조를 기반으로 출현시키는 것은, 다만 사유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보거나 느껴야 한다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유는 살에서 일어난다는, 의심의 여지없는 이 명증성에 의거해서이다. 208-2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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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ty),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Le Visible et l'invisible(1964), 남수인 옮김, 동문선, 2004, 209~222발제자: 공강일 20180126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얽힘-교차

 

1. 닿을 수 없음

나는 사물들에게 나의 몸을 빌려 주고, 사물들은 나의 몸에 등재되어 나를 사물들과 흡사하게 만드는, 사물들과 나 사이의 이 마법적 관계, 이 계약; 바로 나의 시각인 보이는 것의 이 주름, 이 중심적 공동(空洞); 보는 자와 보이는 것의, 만지는 자와 만져진 것의 이 거울상 두 열, 이러한 것들은 내가 기초로 삼고 있는 밀접히 결속된 체계를 형성하며, 일반적 시각과 가시성의 항구적인 체계를 규정한다. 이 일반적 시각과 가시성의 항구적 체계로부터 나는 어떤 특정 시각이 착각이라고 밝혀질 때조차 결코 벗어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착각했을 때 나는 내가 좀더 잘 바라보았다면 올바른 시각을 가졌으리라고 확신하며, 또한 어쨌든 이 시각이건 다른 시각이건 올바른 시각이 하나 있다는 점을 확신하기 때문이다(209).

세계에 대해 접근하는 것, 진실한 세계를 만나는 것에 는 늘 실패한다. 그리고 그 실패는 늘 반복될 뿐 그 실패를 결코 없앨 수 없다.

 

2. 자기 자신에게 적합해진다는 것

살은 우발적인 것, 또는 카오스가 아니요, 자기에게로 되돌아와 자기 자신에게 적합해지는 짜임새이다(209).

내 몸과 나의 몸을 통한 경험이 나의 사유를 형성하고, 대상을 개념화한다. 그래서 나의 사유도, 나에 의해 개념화된 것도 모두 나의 몸을 의지한다.

 

3. 살을 사유하는 방식

나의 시각은 모든 앎이라 할 존재가 아닌 것이, 나의 시각은 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몸에 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을 몸과 정신이라는 실체에서 출발해서 사유할 경우 살이 모순들의 결합체가 될 터이므로 그렇게 하면 안 되고, 앞에서 우리가 말했듯이 기본 요소처럼, 존재하는 일반적인 양식의 구체적인 상징물처럼 사유해야 한다.

 

4. 그러한 합치?

보는 자와 보이는 것의 가역성에 대해, 만지는 자와 만져진 것의 가역성에 대해 대충 말한 바 있다. 이제 이 가역성은 언제나 임박해 있지만 결코 사실로 실현되지 못하는 그러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야겠다. 나의 왼손은 언제나 사물을 건드리고 있는 중인 오른손을 건드려는 찰나에 있기는 하지만, 결코 나는 그러한 합치에 이르지 못한다. 합치는 발생되려는 순간에 무산되며, 결코 나는 그러한 합치에 이르지 못한다.

나의 오른손을 진정으로 만질 수 없다. 왜냐하면 나의 왼손이 나의 오른손에 닿을 때 이미 상호적인 짜임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흡수해 버리기 때문이다.

 

5. 세계와의 연결

한 지점의 촉각 경험과 그 다음 순간의 동일한 지점의 촉각 경험을 포개지 못하는 무능력또는 내 목소리를 들을 때의 경험과 다른 목소리를 들을 때의 경험을 포개지 못하는 무능력이것은 실패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경험들이 절대로 서로 정확히 겹치지 못하는 것, 서로 합치는 순간에 빗나가는 것, 이들 경험들 사이에 언제나 움지여진, 간격이 있는 것, 그것은 정확히 나의 두 손이 동일한 몸의 부분을 이루고 있고, 나의 몸은 세계 속에서 움직이는 탓이며, 나는 나의 소리를 내부에서와 외부에서 듣는 탓이다. 나는 내가 원하는 만큼 여러 번, 경험들의 하나가 다른 경험으로 이전하고 변모함을 체험한다. 다만 경험들을 잇고 있는 경첩만이, 견고하고 흔들림 없는 이 경첩만이 내가 절대 볼 수 없는 것으로 내게 머무르는 듯하다. 하지만 만져진 나의 오른손과 만지는 나의 오른손 사이의, 들려진 나의 목소리와 발음된 나의 목소리 사이의, 나의 촉각적 삶의 순간과 후속 순간 사이의 단절은 존재론적 공허, 비존재가 아니다. 이 단절은 나의 몸의 전체적 존재에 의해, 그리고 세계의 존재 전체에 의해 이어져 있다(212).

 

6. 살과 관념의 연관성

최초의 시각, 최초의 접촉, 최초의 즐거움과 함께 비의 입문이 시작된다. 즉 내용의 정립이 아니라 다시는 닫혀지지 못할 차원의 열림이, 모든 다른 경험의 대조 지표가 될 한 수준의 확리이 있다. 관념은 이 수준, 이 차원이다. 그러므로 관념은 어떤 물건에 가려져 은폐된 물건처럼 사실로서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고, 보이는 것과 전혀 상관없는 절대적인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보이지 않는 것, 세계에서 살며 세계를 받쳐 주고 세계를 보이는 것으로 만드는 보이지 않는 것, 세계의 내적이며 고유한 가능성, 요컨대 이 존재자의 존재이다.

 

7. 육체, 관념, 언어

어떤 의미에서 우리들이 인체의 건축 구조를, 인체의 존재론적인 골조를 철저히 설명한다고 하면, 어떻게 인체가 자신을 보고 듣는지 설명한다면, 우리들은 말없는 인체 세계의 구조는 언어의 모든 가능성들이 거기에서 이미 주어지고 있는 그러한 구조라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8. 언어란

후설의 말처럼 철학의 본령은 의미하는 힘을, 의미의 탄생 또는 야생의 한 의미를 복원시키는 데에 특히 언어의 특별한 영역을 해명하는 경험에 의해 경험의 표현을 복원시키는 데에 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발레리의 말처럼 언어는 모든 것이다. 언어는 그 누구의 목소리도 아니요, 언어는 사물들, 파도들, 숲들의 목소리 자체이니까. 그리고 이해해야만 할 것은 이러한 견해의 하나에서 다른 하나까지에 변증법적인 역전은 없다는 점, 우리는 그것들을 집합시켜 하나로 종합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견해들은 궁극적인 진리인 가역성의 두 양상인 것이다.

이미지는 대상에 대한 나의 경험이다. 나의 경험에서 그치지 않고 그 경험을 공유할 수 있게 만드는, 혹은 다른 사람의 경험까지 잠식하는 강력한 어떤 것이다. 대상에 대한 나의 경험이 새로울 때 새로운 관념 새로운 이미지가 생겨난다. 그리고 대상도 나도 이 세계라는 거대한 맥락 속에 놓여 있다. 세계와 나의 몸, 이 두 개를 생각하지 않은 채 이미지를 말할 수 없다. 담론 역시도 마찬가지다.

 

*레이코프, 삶으로서의 은유

그래디는 복합적 은유가 감각 운동 경험을 주관적 판단의 영역에 연결해 주는 일상적 경험에 직접적으로 근거하고 있는 일차적 은유로부터 발생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애정에 관한 초기 경험이 꼭 껴안는 것의 따뜻함에 대한 신체적 경험에 대응하기 때문에 일차적인 개념적 은유인 '애정은 따뜻함'을 갖게 된다(p.391).

중략예를 들어 '그는 따뜻한 사람이다.', '그녀는 얼음 덩어리다.'에서처럼 애정은 따뜻함 은유는 부모에게 안기는 어린이의 평범한 경험에서 발생한다. 여기에서 애정은 따뜻함과 함께 발생한다. 존슨의 표현에 따르면 애정과 따뜻함은 융합된다. 두뇌 안의 두 부분에서 신경적 활성화가 동시적으로 일어난다. - 이러한 연결이 애정은 따뜻함 은유를 물리적으로 구성한(p.393).

중략우리의 두뇌가 신체화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은유는 세계 안에서의 평범한 경험을 반영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수많은 일차적 은유들은 보편적이다. 왜냐하면 은유와 관련된 특성에 관한 한 우리 모두가 기본적으로 동일한 종류의 환경에서 기본적으로 동일한 종류의 몸과 두뇌를 갖고 삶을 유지하기 때문이다(p.394).



쓰임

2018.02.02 21:23:50
*.6.177.233

빠른 거울과 느린 거울

어느 이른 봄날에 아테 공주가 말했다.

나는 옷에 길이 들 듯이 생각에 길이 들게 되었다. 내 생각의 허리선은 언제나 똑같으며, 나는 그것을 어디에서나 심지어 갈림길에서조차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가장 나쁜 점은 내 생각 때문에 갈림길들은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하루는 아테 공주의 시종들이 공주를 즐겁게 해줄 생각으로 두 개의 거울을 선물했다. 그 거울의 모양은 하자르의 다른 거울들과 거의 다름이 없었다. 반짝거리는 소금으로 만들어진 거울이었는데 하나는 빠르고 다른 하나는 느렸다. 빠른 거울에 무엇인가를 비추어 보면, 그 속의 세상은 미래로 한 걸음 나아가 있었다. 반면 느린 거울은 빠른 거울이 진 빚을 갚아 주는 셈이었다. 현재를 중심으로 해서, 앞에 말한 거울이 빠른 만큼 이 거울은 느렸기 때문이었다. 시종들이 아테공주에게 거울을 가져다주었을 때, 공주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눈꺼풀의 글자들도 그대로 쓰여 있었다.

아테 공주는 느린 거울에 비친, 눈을 감고 있는 자기의 모습을 보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 눈을 깜빡거린 다음, 다시 눈을 깜빡거리기 전에 목숨을 잃었다. 다시 말해서 공주는 난생 처음으로 자기 눈꺼풀에 적힌 그 치명적인 글자를 읽은 것이다. 그녀는 죽기 직전에 그리고 죽은 직후에 눈을 깜빡거렸고 그것이 거울에 비쳤기 때문이다. 결국 과거에서 온 글자와 미래에서 온 글자가 동시에 공주를 죽인 것이다(3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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