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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116~139면)

발제문 조회 수 248 추천 수 0 2018.01.19 19:37:27

모리스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ty),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Le Visible et l'invisible(1964), 남수인 옮김, 동문선, 2004, 117~139발제자: 공강일 20180119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물음과 변증법: 지각적 신념과 부정성(116~139)

 

1. 타인과의 만남: 위에서 내려다보는 투시적 시선으로는 타인과 만날 수 없다. 왜냐하면 시선은 오로지 내려다보기 때문에 사물들만을 지배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시선은 인간을 태엽에 의해서 움직이는 마네킹으로 변화시킨다. (즉 거시적 관점으로는 대상을 부분적이고 개괄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다는 것.) 이러한 시선이 유아론을 낳는다.

[유아론: 라틴어의 solus(오로지 하나)ipse(자신)에게 만들어진 말이다. 즉 오로지 자기 자신 하나뿐이라는 의미이다. 모든 주관적 관념론이 철저하게 자신의 입장을 추진해 나가면 자기 자신의 그 의식만이 있을 뿐이라는 주장]

따라서 유아론에서 벗어나 타인과 만나기 위해서는 가까운 곳에서 뿐이다. 시각과 몸을 매개로 하는 공간 속에서 타인을 만날 때 나는 유아론으로부터 벗어나 타인을 만날 수 있게 된다.

 

2. 시각의 철학: 시각의 철학이 나-타인 관계가 필연적으로 비대칭임을 강조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겉보기와는 달리 모든 상황들은 침투 불가한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하나의 상황은 다른 하나의 상황의 절대적 부정이라고 생각하면서, 독단적으로 모든 상황들 속에 동시에 자리 잡는 것이 바로 시각의 철학이다.

 

3. 즉자-대자: 사르트르는 대자가 상상적 즉자-대자에게 필연적으로 강박적으로 묶여 있다고 말하며 표현한 바 있다. 단지 우리는 즉자-대자란 하나의 상상적인 것 이상이라고만 말하겠다. 상상적인 것은 밀도가 없고 관찰이 불가능하며 상상적인 jt은 우리가 시각으로 이행하면 스러진다. 이처럼 즉자-대자는 철학적 의식 앞에서 해체되어서, 존재하는 존재에게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무에게 자리를 비켜 주고, 또한 존재를 필요로 하는 하나의 무, 자기의 부정이 됨으로써 존재에 도달하여 결국 존재에 내재하고 있었던 자기의 말없는 긍정을 완수하는 하나의 무에 관한 엄정한 사유에 자리를 비켜 준다. 사르트르적 즉자-대자의 진실은 순수 존재의 직관과 무의 부직관에 있다. 우리가 보기에는 오히려 즉자대자에게 내포된 신화의 견고성을 인정해야만 할 듯하다. 다시 말해 우리의 제도 일부를 이루고 있으며, 존재 자체의 정의에 의해 필요 불가결한 것인 작용하는 상상적인 것의 견고성을 인정해야 할 듯하다.

*대자/즉자: 각각 <그것 자체에서>, <자기에 대해서>를 뜻한다. 독일 관념론에서 사용되고 있던 개념이지만, 현상학 특히 사르트르의 그것에서, 그것 자체에서 존재하는 사물의 존재가 즉자라고 불리며, 이 즉자를 자기가 아닌 것으로서, 말하자면 무화하면서 대상으로서 정립하는 의식, 요컨대 자기 관계적인 존재가 대자라고 불린다. 의식은 무언가를 지향하면서 존재한다. 지향의 대상은 세계에 속하는 사물이며, 이것은 의식에 있어 현상의 존재이다. 요컨대 의식이란 자기와는 다른 존재를 감싸 덧붙이는 한에서 그 존재에서 그의 존재가 문제로 되는 그러한 존재인 것이다

현상의 존재는 의식의 지향적 대상이긴 하지만 의식에 대해 작용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이 존재는 자기를 문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동일하다. 존재는 그것 자체에서 존재한다. 존재는 자기관계가 아니다. 존재는 단적으로 긍정성 그 자체이다. 이러한 즉자존재는 사르트르에 의하면 의식에게 있어 여분인 것이다. 의식은 즉자존재를 어떠한 것으로부터도 이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의식은 모든 가능성의 원천이며 조건이다. 요컨대 의식의 존재야말로 의식의 본질을 포함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무엇도 대자로서의 의식의 원인이 아니다. 의식은 그 자신의 존재방식의 원인인 것이다. 이와 같이 의식적 존재로서의 대자는 <자기에의 현전>인바, 대자는 그의 존재 그 자체에서 자유인 것이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즉자/대자 [卽自/對自, en soi/pour soi, an sich/für sich] (현상학사전, 2011. 12. 24., 도서출판 b)).

 

4. 부정성의 철학: 부정성의 철학은 이러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그 순수성에서 사유하며, 동시에 무의 앎이 앎의 무라는 것을 무는 잡종적 형태로서만, 존재에 합체되어사만 접근이 가능함을 인정한다. 부정성의 철학은 논리인 한편 그와 불가분하게 경험이다. 이 철학에서 존재와 무의 변증법은 경험에의 준비일 따름이며, 역으로 부정성의 철학에서 기술되고 있는 바, 경험은 순수 존재성에 의해, 무의 순수 부정 존재성에 의해 지지되고 가공된다. 순수한 부정적인 것은 자신을 부정함으로써 자신을 긍정적인 것에 희생하고, 순수한 긍정적인 것은 무제한적으로 자기를 긍정한다는 점에서 이 희생을 비준한다.

*부정성: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 메를로-퐁티는 지각적 신념을 부정하는 데서 성립하는 무의 철학, 변증법 철학에서의 부정성에 대한 파악 방식을 비판한다. 부정주의 철학(une philosophie négativiste)은 결국 절대적인 긍정주의를 전제하며, 최종적으로는 부정의 부정으로서의 전체화의 요구에 굴복하게 된다[92, 93]. 순수한 존재와 순수한 무의 대립과 그 지양, 전체화라는 구도에서는 그의 철학의 출발점인 지각적 신념으로서의 존재에 대한 개방성은 불가능하게 된다[같은 책 122].

존재와 무의 부정적 매개에 반해, 메를로-퐁티가 채용하는 부정성이란 지각에서의 깊이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긴 하지만 보이는 것의 또 하나의 차원을 이루고 존재의 일반성에 포함되어 있는 것과 같은 지평적인 존재방식으로서의 부정성이다[같은 책 289, 290]. "접촉하는 것이 지니는 접촉할 수 없는 것", "보는 것이 지니는 볼 수 없는 것", "의식이 지니는 무의식"[같은 책 308]을 메를로-퐁티는 인정하지만, 거기에 존재하는 것은 "기준으로서의 부정", "거리로서의 부정"[같은 책 311]인바, 그것들은 바로 감각적 존재나 보이는 것의 차원 속에 포섭된 초월의 양상이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부정성 [否定性, négativité] (현상학사전, 2011. 12. 24., 도서출판 b)).

 

5. 반성철학의 출발점: 우리의 출발점은 존재는 존재하고 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아닐 것이고, 존재만이 있다는 전체화 사유, 조감적 사유의 공식도 아닐 것이요, 존재가 있다, 세계가 있다, 어떤 것이 있다일 것이다. 그리스어 토 레게인에서 말하는 강한 의미에서의 밀접한 연관이 있고, 의미가 있다. 우리들은 존재를 무에서부터 나타나게 하지 못하며, 우리들은 바탕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결코 말할 수 없는 그러한 존재론적 부조로부터 출발한다. 맨 먼저 있는 것, 그것은 무의 바탕 위에 있는 긍정적인 충만한 존재가 아니요, 그것은 외양들의 장이다.

 

6. 좋은 변증법: 나쁜 변증법은 변증법과 거의 함께 시작한다. 좋은 변증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을 비판하며, 분리된 진술로서 자신을 넘어서는 변증법뿐이다. 좋은 변증법이라고는 초변증법 뿐이다. 나쁜 변증법은 자신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버리고자 하지 않는 변증법, 직접적으로 변정법이고자 하고, 자율하며, 자기 고유의 이중 의미를 교묘히 피한 탓에 냉소주의에 형식주의에 귀착하고 만 변증법이다. 우리가 초변증법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와는 반대로 진실이 가능한 사유이다, 다양한 관계들과 애매성이라고 불려 온 것을 제한 없이 모조리 고찰하기 때문에 진실이 가능한 사유이다.

우리가 말하는 종합 없는 변증법은 그래도 회의론이나 대중적 상대주의나 형언할 수 없는 것의 지배가 아니라는 점을, 우리가 배척하거나 부인하는 것은 집결시키는 넘어섬의 관념이 아니요, 이 넘어섬이 새로운 긍정적인 것에, 새로운 정립에 귀착하리라는 관념이다. 사유 속에서 그리고 역사 속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넘어선 것들이란 인생에서처럼 잔존물로 가득 차고 모자람으로 각인된 구체적이고 부분적인 넘어섬들 뿐이다. 이전의 단계에서 획득된 모든 것을 간직하고 있으며, 거기에 기계적으로 무엇인가를 더 많이 덧붙이고, 거기다가 변증법적 단계들을 서열적 질서 가운데서 가장 덜 실제적인 것에서 가장 실제적인 것까지, 가장 덜 가치 있는 것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까지 서열을 정하게 해주는 모든 면에서의 넘처섬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우리가 변증법에서 배제하는 것은 순수한 부정적인 것의 관념이요, 우리가 추가하는 것은 존재의 변증법적 정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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