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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k ☆140자 다지원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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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문 올립니다

2018.02.13 19:14

영대 조회 수:105

□ 다지원 스피노자 세미나 ∥ 2018년 2월 13일 ∥ 발제자: 박영대
텍스트: 푸코, 『주체의 해석학』, 2월 10일 전/후반부, 2월 17일 전반부

1.1 268쪽 <관계적 앎, 윤리시학적 특성> “세계만이 문제이며,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바만이 오직 문제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을 단지 다른 방식으로 알 필요가 있습니다. 데메트리우스는 다른 방식의 앎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원인에 의한 앎과 누구는 무엇인가와 같은 또 다른 앎의 방식을 대립시킵니다. 우리는 누구는 무엇인가와 같은 앎의 방식을 간단히 관계적 앎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이제 신들과 여타의 인간들 우주와 세계 등을 고찰할 때, 설명해야 할 바는, 한편으로는 신들, 인간들, 세계, 세계의 사물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와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을 이 모든 관계들의 항구적이고 반복되는 사항으로 만들면서 세계의 사물과 신들과 그리고 인간들에게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앎은 만물과 자기 자신의 관계의 장 내에서 펼쳐질 수 있고 펼쳐져야만 합니다.”
→ 앎의 근본적 형식은 우리의 관계성을 이해시키는 방식이어야 한다. 별도로 존재하는 두 사물, 우리와 다른 것과의 관계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이미 ‘반복적이고 항구적인 관계’자체라는 점을 가리키는 것이어야 한다. 원인적 앎은 우리 자신을 관계의 총체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 사물로서 인과관계 속에 편입시키는 방식이다. 이 둘 사이의 대립이 중심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앎은 반드시 우리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윤리’를 즉각 도출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윤리가 도출되지 않는다면 충분히 알지 못한 것이고, 올바른 방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1.2 259쪽 : “내가 강조하지만, 타인에 대한 악의적인 호기심에 반해 요구되는 시선의 변화는 분석·해독·성찰의 대상으로 자기를 구축하는 결과를 발생시키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목적론적인 집중이 오히려 문제입니다. 주체가 자기 자신의 목적을 잘 바라다보는 것이 문제입니다. 목전에 가장 명철하게 자신이 지향하는 목표를 바라다보고, 말하자면 목표에 대한 명확한 의식과 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향해야 할 바와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신의 노력을 항구적으로 의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식의 대상, 의식과 무의식의 장으로 자기를 취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그것을 통해 목표로 향하는 이 집중에 대한 항구적이고 늘 각성된 의식이 문제입니다.” 
→ 나는 스피노자를 읽으면서 오늘의 우리들이 자기부정, 자기불신을 겪고 있다고 느꼈다. 자기 자신이 비어있는 허무감이나 자기 스스로에게 못마땅한 부분이 있어서 자신에게 느끼는 분노와 절망, 그리고 이것이 나아질 수 없으리라는 불신. 이런 욕망과 감정들이 알게 모르게 우리 사이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또 다른 한 편에서, 오히려 그럴수록 사람들은 ‘자기’에 더욱 집착하게 되는 면도 있다. 이 둘 사이에서 문제가 풀리지 않았는데, 이 문단이 도움을 주었다. 자기부정과 자기에 대한 집착은 모두 자기를 ‘분석, 해독, 성찰’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 아닐까. 삶에서 곤란을 겪거나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 자기를 돌아보고 분석하게 되는데, 이 때 우리는 자기 안에서 문제의 원인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자기에게 그 원인이 있음으로 인해, 자기를 부정하거나 불신하게 된다. 이를 해결하고자, 동일한 방식으로 자기에게 긍정이 가능한 지점, 문제를 해결하는 조건을 다시 찾고자 더 깊이 자기를 분석하게 된다. 하지만 주체를 향한 분석과 해석의 방식으로는, 끊임없는 부정과 불신, 일시적 긍정과 위안을 찾을 뿐 근본적 해결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애초부터 자기를 분석하려고 시도한 이상, 그것은 이미 자기를 고정된 실체로 상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큰 부정과 더 강한 집착 사이를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자기의 대상화가 아니다. 자기를 ‘볼’ 필요가 없다. ‘좋은 삶’을 향한 방법을 찾고 이를 획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 그래서 항구적으로 이를 향해 나아가면 그만이다. 그런 일련의 행위가 행복의 조건이자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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