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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주체의 해석학』1982.2.10

2018.02.13 19:03

보미 조회 수:15

푸코 세미나 ∥ 2018년 2월 13일 화요일 ∥ 발제자: 손보미

텍스트: 미셸 푸코, 『주체의 해석학』, 동문선, 심세광 옮김



푸코는 1982년 2월 10일에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한 강의 전반부에  episprophe(플라톤적 전향)도 아니고 metanoia(기독교적 개종)도 아닌, 혹은 그 둘 사이에 위치하는 헬레니즘적 전향conversion을 이야기합니다.


epistrophe(플라톤적 전향)
- 영혼이 자신의 원천으로 귀한하는 것을 함의하는 전향 개념
- 그 경험, 영혼이 존재의 완벽을 향해 회귀하는 운동
- 영혼이 존재의 영원한 운동 내에 다시 위치하는 운동
- 각성을 모델로 삼는다. 각성의 근본적인 방식은 '상기'. 빛의 원천으로 되돌아가기
metanoia (기독교적 개종)
- 정신의 동요, 철저한 혁신이 문제
- 그 중심에 자기 자신의 경험과 자기 자신에 의한 자기 자신의 포기인 죽음과 부활을 수반하는 주체 자신에 의한 자기의 재생산이 문제
conversion (헬레니즘적 전향)
- 시선의 전향(자기 자신으로의 귀한)문제
- 자기 자신에게 시선을 돌리기
'자기 자신에게 시선을 돌리기'가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게 시선을 돌려야 한다는 명령을 받을 때 시선은 무엇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우선 던질필요가 있다. 이는 우선 1)타자들로부터 시선을 해방하는 것(->호기심의 문제)을 말한다. 그 다음으로는 2)시선을 세계의 사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 사물,자연에 대한 지식의 문제)을 의미한다.

푸코는 이 헬레니즘적 전향(자기 자신에게 시선을 돌리기)을 이해하기 위한 두 가지 질문을 설정하고, 강의의 전반부에는 그 중 첫 번째 질문인 1)타자들로부터 시선을 해방하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가? 에 대해 설명하고 답하는 일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푸코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 자신이 강조하고자 하는 바를 정리하며 전반부의 강의를 마무리합니다. 전반부 강의 끝에 푸코가 강조하고 있는 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타인에 대한 악의적인 호기심에 반해 요구되는 시선의 변화-즉, 타자들로부터 시선을 해방하는 것-는 분석, 해독, 성찰의 대상으로 자기를 구축하는 결과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그보다는 목적론적인 집중이 오히려 문제이다. 
주체가 자기 자신의 목적을 잘 바라다보는 것이 문제이다. 
우리가 의식, 경계 주의할 대상은 목표와 자기 자신을 분리시키는 바, 즉 자기 자신과 목표를 분리시키는 거리이다. 
- 시선의 전향이란! 자기 주변에 공空만들기, 모든 소음과 얼굴 그리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 의해 방해를 받거나 정신이 분산되는 것을 막는 행위
- 시선의 전향이란! 자기 주변에 공을 만들고, 목표나 오히려 자기 자신과 목표와의 관계에 대해 사유하는 행위.

푸코가 강의 마지막에 제시하는 '자기 주변에 공空만들기'라는 것이 저에게는 매우 독특한 이미지로 다가왔습니다. '자기 주변에 공空만들기'가 저에게는, 주체가 타인을 향하고 있는 시선을 자기 자신으로 돌리기 위해, 즉 시선의 전향을 위해 자기 자신의 주변에 스스로 설정하는, 혹은 스스로 설정해야만 하는 '독특한 지대'처럼 느껴졌습니다. 시선의 전향을 이루려면, 스스로가 반드시 만들어내어야만 하는 이 독특한 지대는, '사람들에 의해 방해를 받거나 정신이 분산되는 것'을 막아주는 공空입니다.
'시선을 세계의 사물로부터 해방'하는 문제에 관해 논하는 후반부 강의를 통해 우리는 헬레니즘적 전향에서의 '시선을 돌린다'라는 것이 단순히 자신의 시선을 외부 환경 (자연, 사물, 타인) 에서 자신의 내면으로 돌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음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시선이 향하는 바를 인식의 대상으로 설정하고 그를 통해 각각의 경계를 설정하는 것(인간/자연), 그리고 그렇게 얻어지는 앎은 헬레니즘적 전향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헬레니즘적 전향은 그러한 앎은 겉치레에 불과한 교양적 앎이기 때문에 무용한 것이라고 규정합니다. 헬레니즘적 전향에서 세계에 대한 우리의 앎 중에 무용함과 유용함을 식별하는 근거는 앎 자체의 내용이나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앎의 방식에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식별법에 따라 앞서 이야기 한 방식의 앎은 무용한 앎이 되고, 이와는 다른 방식의 앎이 유용한 앎이 되는데, 이 다른 방식의 유용한 앎은 한마디로 '관계적 앎'이라고 푸코는 이야기합니다.
바로 이 '관계적 앎'의 방식을 밝히는 것이 후반부강의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계적 앎'은 교양적 앎과는 다른 방식의 앎입니다. 그것은 곧 에토스를 생산해 낼 수 있는 방식의 앎입니다. 즉 앎 자체의 내용이나 형식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이 에토스를 생산해 낼 수 있을 때 그것은 비로소 유용한 앎이 됩니다. 저는 이를 앞서 이야기 한 '자기 주변에 공空만들기'와 연결해서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왜냐면, 제가 보기에 어떤 앎이 에토스를 생산해 낼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앎 자체, 지식자체에 달린 것이 아니라면, 이는 앞서 이야기한, 앎의 주체인 자기의  '자기 주변에 공空만들기'에 달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시선의 전향을 위해 자기 자신의 주변에 반드시 설정해야 하는 이 독특한 지대는 에토스를 생성하기 위해 즉, 모든 앎이(앎의 내용이 문제가 아니므로) 에토스를 생산할 수 있는 앎이 되게 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지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시선의 전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이 독특한 지대에 관해
- 에토스를 생산해 낼 수 있는 방식의 앎에 관해
더 논의해 보면 좋겠습니다.


*워라벨'의 문제와 '시선의 전향'
'워라벨'이라는 개념은, 그리고 이 개념과 함께 '워라밸이 깨졌다'는 감각은 곧 우리(시대)의 자기배려가 위험에 처해 있음을 알리는 일종의 경보음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헬레니즘적 전향'에 비추어 이 워라밸에 관한 이야기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해석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저, '워크 라이프 밸런스'에서 '워크'와 '라이프'가 의미하는 바를 각각 '공적인 삶'과 '사적인 삶'으로 분리하고, '밸런스를 맞춘다'는 문제를 자신의 시간이나 감각 혹은 앎을 적절히 분배하는 문제로 해석 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이런 방식의 앎은 '헬레니즘적 전향'의 관점에서 보자면 무용한 앎일 것입니다.
어떻게, '워라벨'의 문제를 유용한 앎의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요? 
우선, '워크'와 '라이프'를 각각 '공적인 삶'과 '사적인 삶'등으로 분리하지 말고 타인을 향하는 시선의 문제와 그 시선을 자신에게 돌리는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발란스'의 문제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즉, 발란스를 맞춘다는 것을 단순히 자신의 시간과 감각을 적절히 분배함으로써 무게 균형을 맞추는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시간을, 감각을, 나의 모든 앎을 '에토스를 생성하는 시간, 감각, 앎'이 되게 하는  '자기 주변에 공空만들기'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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