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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의 해석학> 첫 세미나 발제

2018.01.16 17:24

jhsul 조회 수:38

19820106 강의 전반부

전반적 문제틀의 환기: 주체성과 진실

새로운 이론적 출발점: 자기 배려(le souci de soi)

델포이 신전의 격언 너 자신을 알라(connαis-toi, toi-même)’에 대한 해석들

배려의 인간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의 변명의 세 발췌문 분석

고대의 철학적·도덕적 삶의 계율로서의 자기 배려

초기 기독교 텍스트에서의 자기 배려

일반적 태도로서의 자기 배려, 자기와의 관계(rαppot à soi), 실천들의 총체

자기 인식(connαissαnce de soi)을 위해 자기 배려가 근대에 실추된 이유들: 근대의 도덕, 데카르트의 순간

영지주의(gnosis)의 예외

철학과 영성(spirituαlité)

 

 

1. 전반적 문제틀의 환기: 주체성과 진실
지난해(1981) 푸코는 주체성과 역사 간의 관계를 주제로 역사적 성찰을 했다. 고대의 성적 행동과 쾌락의 체제의 문제, AD 1, 2세기에 출현해 규정된 αphrodisiα의 체제를 선택했다. 이 체제는 다음 영역을 포함한다. 기독교 모럴이나 최악의 경우 유대-기독교적 모럴 내에서가 아니라 바로 이 아프로디지아 체제 내애서 근대 유럽 성모럴의 근본 토대를 발견했다.(구체적)
올해(1982)는 이 구체적인 αphrodisiα, 성적 행동들의 체제와 관련된 특수한 기제로부터 벗어나 거기로부터 주체와 진실이라는 문제로 넘어가보고자 한다.(일반적)
더 정확히 말해서 푸코가 주체성/진실 관계들에 관련된 문제를 설정하려고 시도한 역사적 차원을 소거하거나 취소하려는 의도는 결코 없지만 이 문제를 훨씬 더 일반적인 형식하에서 제기해 보고자 한다. 서양에서 실천의 소관도 아니고 익숙한 역사 분석의 소관도 아닌 주체진실의 관계들이 어떤 형태의 역사 내에서 서로 관계를 맺게 되었는지가 올해 강의에서 푸코가 접근하려 하는 문제이다.

2. 새로운 이론적 출발점: 자기 배려(le souci de soi)
자기 배려’(souci de soi-même) 개념을 출발점으로 취한다. 대단히 복잡하고 풍부한 의미를 가지며, 빈번히 발견되고 그리스 문화 전반에 걸쳐 오랜 생명력을 가졌던 개념인 epimeleiα heαutou를 푸코는 대략 자기 배려로 번역하였다.
주체와 진실의 관계를 연구하기 위해 철학사가 이제까지 그다지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은 epimeleiα heαutou 개념을 선택하는 것은 상당히 부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다.
주체 문제:(주체의 인식의 문제, 주체에 의한 주체의 인식의 문제)gnôthi seαuton(‘너 자신을 알라’)이라는 유명한 델포이의 신탁이라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정언에 의해 만인이 말하고 알며 반복하고 있다.

epimeleiα heαutou vs. gnôthi seαuton

(자기 배려) vs. (자기 인식)

3. 델포이 신전의 격언 너 자신을 알라(connαis-toi, toi-même)’에 대한 해석들

gnôthi seαuton은 신전의 돌에 새겨질 정도의 가치를 지닌 것은 아니었다. 그 의미는 철학적 의미에서의 너 자신을 알라는 아니었다. 이 표현은 자기 인식(connαissαnce de soi)을 규정한 것도 아니었고, 도덕의 토대가 되는 자기 인식이나 신과의 관계의 원리인 자기 인식을 규정한 것도 아니었다. 이 표현에 대한 여러 해석들이 제안된 적 있다.

1901문학학의 한 논문에서 로셔가 제안한 낡은 해석에 의하면 결국 델포이의 격언들은 신의 견해를 들으러 온 사람들을 겨냥한 것이었고, 상담 행위 자체와 연관된 일종의 규칙과 예식적 권고로 해석해야 한다는 점을 로셔는 환기시킨다.

1) Mêden αgαn(‘결코 도를 넘어서지 말 것’)은 인간의 행실에서 윤리나 절제의 보편적 원리를 지시하거나 표현하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신의 견해를 들으러 온 자는 과도한 질문을 하지 말고 필요한 질문만을 하며, 또 하고자 하는 질문들 가운데 꼭 필요한 것만 골라서 하라는 것을 의미한다.

2) egguê(보증금)과 관련된 둘째 격언, 신의 견해를 들으러 올 땐 지불하지 못할 것들을 약속하지 말고, 지키지 못할 것들을 맹세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3) gnôthi seαuton은 신탁에 의뢰할 때 제기해야할 질문들을 스스로 검토하고 최대 한도로 줄여야 하며, 과다하게 질문을 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에 자신이 알고 싶은 바에 대해 스스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드프라스의 또 다른 해석.

 

4. 배려의 인간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의 변명의 세 발췌문 분석

이런 해석과 관련된 사항은 푸코의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푸코의 관심은 주체이다. 아폴론의 경배에서 델포이의 격언 너 자신을 알라에 부여된 의미가 무엇이든 간에 이 격언이 철학과 철학적 사유속에 등장할 때, 그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소크라테스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등장한다.

이 델포이의 격언(Gnôthi seαuton)이 출현할 때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누차 아주 의미심장한 방식으로 이 격언은 자기 배려’(epimeleiα heαutou)와 연결되고 접합된다. 푸코는 연결되고’ ‘접합된다라고 말했는데 사실상 중요한 것은 결합이 아니다. 우리가 재검토해야할 텍스트에서 너 자신을 알라라는 표현은 자기 배려에 종속된 상태에서 표현된다.

Gnôthi seαuton(‘너 자신을 알라’)은 중요한 여러 텍스트에서 epimeleiα heαutou(자기 배려)라는 보다 일반적인 범주의 한 형식, 한 결과 또는 구체적으로 한정된 보편적 규칙의 특수한 적용으로 등장한다. 요컨대 그것은 자신을 망각하지 말고 돌보며 배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배려와 배려의 정점에서 너 자신을 알라라는 규칙이 등장해 표현된다.

그렇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플라톤의 텍스트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소크라테스가 본질적이고 근본적으로 또 시원적으로 타인들에게 자기 자신을 돌보고 배려하며 등한시하지 말라고 선동한 최초의 인물로 등장한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에는 사실상 세 개의 텍스트가 있고 위의 사실을 명시하는 세 구절이 있다.

 

1) 소크라테스의 변명29d. 고소인들과 판사들 앞에서 가상 변론을 하여 다음과 같은 반론에 응수한다. 사람들은 그가 수치감을 느껴야 되는상황에 현재 처해 있다고 비난한다. 이 비난은 다음과 같다. “네가 나쁜 짓을 범했는지 아닌지 나도 모르지만 지금 네가 법정에 이렇게 서 있고 고소의 충격 속에 있고, 또 유죄판결을 받고 아마도 사형에 처해질 운명에 있을 정도로 생을 영위했다면 그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자인하여라. 삶을 어떻게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판결 후 사형에 처해질 정도로 생을 영위한 자는 수치심을 느껴야 당연하지 않은가?”

여기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답 아테네의 시민 여러분, 나는 여러분들에게 감사하고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지만 여러분들을 따르기보다는 오히려 신을 따르겠으며, 또 목숨이 다할 때까지 그리고 힘닿는 데까지 철학하기를 중단하지 않을 것이고 내가 언제 누구를 만나든지 여러분을 타이르고 가르치기를 결코 중단하지 않을 것입니다.”

가르침의 내용. “친애하는 친구여, 자네는 과학과 세력에서 다른 어떤 도시국가보다도 명성이 자자한 위대한 나라인 아테네의 시민이면서 될 수만 있으면 재물이나 많이 차지하려 한다든가, 명예나 지위를 얻기에만 고심하고 있을 뿐, 이성이라든가 진리라든가 또한 자신의 영혼을 부단히 훌륭하게 만드는 일에는 배려를 하지 않고 마음도 쓰지 않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진 않는가?”

이어서 만약 여러분들 중에 이와는 의견을 달리해서 자신이 그것[자신의 영혼·진리·이성; M. F.]에 마음을 쓰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을 그냥 놓아 보내지 않을 것이고 나도 그 자리를 즉각 뜨지 않고서 오히려 그에게 묻고 시험하며 또 철저히 따질 겁니다. 나는 늙은이건 젊은이건 딴 나라 사람이건 내 나라 사람이건 만나는 사람마다 그렇게 할 것이고, 더욱이 핏줄이 나와 가장 가까운 이 나라 사람들에게는 더 말할 나위가 없지요.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하도록 신께서 명령하시기 때문인데, 이 점을 잘 유념하길 바라고 또한 여러분을 위해서는 신에 대한 이 봉사보다 더 큰 선한 일은 아직 이 나라에 한번도 없었다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명령은 신들이 소크라테스에게 늙은이건 젊은이건 시민이건 누구이던간에 사람들을 만나 여러분 자신을 돌보십시오라고 타이르는 과업을 수행하라는 명령이다. 바로 이것이 소크라테스의 임무이다.

2) 만약 아테네인들이 소크라테스를 사형에 처한다 할지라도 소크라테스는 그것 때문에 잃을 바가 거의 없지만 반면에 아테네인들은 그의 죽음으로 인해 아주 심각하고 무거운 상실감을 체험할 것이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신들이 아테네인들에 대한 충분한 배려를 해 소크라테스를 대신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부단히 배려하게 만드는 다른 사람을 보내지 않는 한 아테네인들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덕에 마음을 쓰도록 권고하는 최후의 사람을 잃게 되기 때문이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3) 36b-c. 소크라테스 나는 여러분들이 무엇이든 자기가 소유한 것들에 마음을 쓰기보다는 우선 자기 자신을 돌봄으로써 가능한 한 탁월하고 현명한 사람이 되도록, 그리고 나라에 속해 있는 것에 마음을 쓰기보다는 나라 자체에 마음을 쓰도록, 또한 그밖의 다른 것에도 이 동일한 원리들을 적용하도록 여러분들 각자를 설득해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행동한 내가[그리고 여러분들 자신에 마음을 쓰도록 선동한 것에 대해 내가 받아야 할 대가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당연히 처벌이나 징벌이 아닙니다; M. F.] 우리가 정의롭기를 원한다면 아테네의 여러분, 그것은 무엇인가 좋은 보상이어야 합니다.

당분간은 이 문제에 집중하고 푸코는 청중들에게 소크라테스가 본질적으로 중요한 서너 가지 사항을 주목하도록 간청하면서 타인들에게 자기 자신을 돌보도록 선동하는 사람으로 소개되는 구절을 알려준다.

첫째로, 타인들에게 자신을 돌보도록 선동하는 행위는 바로 소크라테스의 행위이지만, 그것은 신들이 소크라테스에게 위임한 일이다.

둘째로, 여기서 조금 전 푸코가 언급한 구절들 가운데 마지막 구절에서 (발제문엔 없음)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재산은 돌보지 않으면서 시민들을 돌보는 사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을 돌보기의 문제에 있어서 스승의 위상.

셋째로, 타자로 하여금 자신을 돌보도록 선동하는 행위 내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동료 시민들을 각성시키는 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자기 배려는 최초의 각성 순간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자기 배려는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고 최초의 빛을 접하는 순간에 위치한다. 바로 이것이 자기 자신을 돌보기의 문제에서 세 번째로 중요한 점이다.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와 등에의 유명한 비교. 등에라는 곤충은 동물들을 따라다니며 물고 달리게 하고, 동요시킨다. 자기배려는 인간의 신체 내에 이식되어야 하고 인간의 실존 내에 박혀야 하는 침이고 또한 동요, 운동의 원리이고 생애 내내 항구적으로 있어야 하는 배려의 원리이다.

따라서 푸코의 생각에 이 epimeleiα heαutou(자기 배려)의 문제는 문제의 중요성을 다소 약화시킨 gnôthi seαuton(자기 인식)의 명성으로부터 좀 탈피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나중에 알키비아데스의 결론에서 더 자세히 이 문제를 설명하고 나면 epimeleiα heαutou(자기 배려)가 어떻게 너 자신을 알라의 틀·토대·기초가 되었는지를 청중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5. 고대의 철학적·도덕적 삶의 계율로서의 자기 배려

푸코의 생각에 epimeleiα heαutou(자기 배려와 거기에 연관된 규율)는 그리스·헬레니즘·로마 문화 전반에 걸쳐서 철학적 태도를 특징짓는 항구적 원리였다. 당연히 이 자기 배려 개념은 플라톤에게 중요성을 갖는다.

에피쿠로스에게도 자기 배려 개념은 중요했다. 이렇게 볼 수 있는 이유는 모든 사람은 날마다 또 전 생애에 걸쳐 자기 자신의 영혼을 돌보아야 한다고 하며 이 개념을 아주 빈번히 반복했기 때문이다. 동사 therαpeuein. 의학적 치료.

견유학파 사람들에게도 자기 배려는 중요하다. 세네카의 자선에 관하여7권 서두 부분.

스토아주의자들에게 있어서도 말할 필요 없이 epimeleiα heαutou(자기 배려) 개념은 당연히 중요하다. 세네카에게 이 개념은 curα sui 개념과 더불어 중요성을 갖는다. 그리고 에픽테토스에게 자기 배려 개념은 어록전반에 걸쳐 등장한다. 이것들에 대해서는 더 길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6. 초기 기독교 텍스트에서의 자기 배려

epimeleiα(배려) 개념을 기독교에서, 어느 정도는 기독교의 윤곽을 구축한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영성 내에서도 재발견할 수 있다. 필론의 명상 생활에 관하여에서 특수한 의미를 갖는 epimeleiα 개념을 재발견할 수 있다. 플로티노스의 엔네아데스》Ⅱ에서 발견 등등.

젊은이를 붙잡아 세우고 자기 자신을 돌보라고 설교하는 소크라테스 이래로 자기 배려와 더불어 금욕 생활을 시작하게 한 기독교 금욕주의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epimeleiα heαutou(자기 배려)의 긴 역사와 만나게 된다.

 

7. 일반적 태도로서의 자기 배려, 자기와의 관계(rαppot à soi), 실천들의 총체

이 기간 동안에 epimeleiα heαutou 개념이 확장되고 또 그 의미들이 배가되었으며 변화된 것은 자명하다. 말하자면 올해(1982) 강의의 목적이 이 모든 것들을 명확히 밝혀내는 데 있기 때문에 epimeleiα heαutou(자기 배려)에서 다음과 같은 점들이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첫째로, 사물을 고려하는 방식, 세상에서 처신하는 방식, 행동하는 방식, 타인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방식과 같은 일반적인 태도의 테마가 있다. Epimeleiα heαutou는 자기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계에 대한 태도이다.

둘째로, epimeleiα heαutou는 또한 주의 시선의 일정한 형식이다. 자기 자신을 배려한다는 것은 자신의 시선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고, 말하자면 시선을 외부로부터 내부로 이동시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자기 자신(soi-même)’

셋째로, epimeleiα 개념은 단순하게 이 자기에 대한 일반적 태도나 자기 자신에게 되돌려진 주의의 형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epimeleiα는 또한 항시 자신에게 가하는 다수의 행위를 지칭한다. 이 행동들을 통해 인간은 자신을 변형하고 정화하며 변형하고 변모시킨다. 바로 여기로부터 일련의 실천들이 기인한다. 그리고 이 실천들은 대체적으로 서구 문화사·철학사·도덕사·정신사 내에서 아주 긴 생명력을 가지고 지속되었던 훈련들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그것은 명상의 테크닉, 과거에 대한 기억술, 의식 점검의 테크닉이다.

 

8. 자기 인식(connαissαnce de soi)을 위해 자기 배려가 근대에 실추된 이유들: 근대의 도덕, 데카르트의 순간

9. 영지주의(gnosis)의 예외

10. 철학과 영성(spirituαlit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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