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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계몽이란 무엇인가?> 발제문

2017.12.26 19:08

보미 조회 수:165

'도덕적으로 완벽하게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과 '어떠한 윤리적 모델(본보기)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두 말은 우리 시대에 거의 동일한 의미로, 혹은 당연히 따라오는 윤리적 명제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이를 오늘날의 윤리적 통념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러한 통념은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우리 시대에  '윤리적 모델(본보기)'이란것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기에 이러한 통념이 생긴 것일까?


푸코는 시기마다 달라지는 '자기 배려[돌봄]'의 유형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철)학자'와 '신'이라는 자기 배려에서 꽤 중요한 역할들을 만날 수 있는데, 간단히 분류해 보자면, '(철)학자'는 고대(기원전 4세기~)와 18세기에 중요하게 등장하고 '신'은 스토아 주의와 그리스도교에서 중요하게 등장한다. 그런데 여기서 매우 흥미로운 점은 '(철)학자'와 '신'이 동일한 이름으로 등장하면서도 각각의 시대마다 그것들이 '자기 배려'에 기여하는 바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고대의 철학자>

고대에 철학자는 '자기 배려'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철학자는 '스승'이었다. 

[스승은 .... 가장 탁월한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돌보는 방법에 대해 가르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 고대의 사람들은 이들을 '철학자'라 불렀습니다.]

고대에 스승 즉 철학자는 '자기 배려[돌봄]'에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스승은 자신을 돌보는 데 있어 중요한 자기 인식을 촉발하는 상대였다. 

<16세기의 학자>

푸코는 '비판이란 무엇인가?'에서 '비판'에 대해 이야기한다.

[비판은 극것이 다른 어떤 것과 맺는 관계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비판은 자신이 알지도 못하고 또 도달할 수도 없는 어떤 미래 혹은 어떤 진실을 위한 수단이자 방법이며, 자신이 잘 관리할 수 있길ㄹ 바라지만 법을 제정할 능력은 없는 영역을 향한 시선입니다. ]

푸코는 비판에서 '일반적인 덕으로서의 비판적 태도'라는 것을 끌어내고 이에 따라 비판적 태도의 역사를 기술한다. 18세기에 비판적 태도는 '어떻게 통치받지 않을 것인가?'라는 물음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이로써 푸코는 '통치받지 않기 위한 기술'이라는 말로 '비판'을 정의한다. 비판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계몽에 대한 칸트의 정의와 닿아있는데, 무엇보다 이는 18세기 '자기 배려'의 중요한 양식이었다. 즉 칸트는 '자기 배려'에 있어 여러모로 중요한 철학자이다. 
자기 배려의 자율성 문제에 있어서 칸트의 글은 상당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칸트는 자기 배려에서 자율성이 사라지게 하는 데 일정한 기여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칸트는 인식의 문제를 자기 돌봄의 기술의 차원에서 이야기하는 데에 머물지 않고, 인식에 대한 인식을 부과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는 칸트가 설정한 비판과 계몽 사이의 간극 때문에 발생한다.

[칸트 이후로 계몽의 문제는 칸트 때문에 그리고 아마도 그가 설정한 비판과 계몽 사이의 간극 때문에 본질적으로 인식의 측면에서 제기 되었습니다. 요컨대 근대 과학이 구축되는 시대에 인식의 역사적 운명이었던 것으로부터 출발함으로써, 또 객관주의 실증주의, 기술중심주의 등을 통해 계몽의 문제가 필연적으로 결부될 무한정의 권력 효과를 드러내는 바를 추적함으로써, 그리고 이 인식을 모든 가능한 인식의 구성 조건과 정당성의 조건에 결부시킴으로써, 마지막으로 역사 속에서 정당성 밖으로의 이행(환상, 오류, 망각, 은폐 등)이 어떻게 행해졌는지를 추적함으로써 계몽의 문제가 제기됐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칸트가 벌려 놓은 계몽과 비판의 간극으로 인해 상이한 분석 절차들이 동원 됩니다. 여기에서부터 요컨대 가장 빈번히 답습됐던 분석 절차, 즉 인식의 역사적 양식들의 정당성에 대한 탐구라고 불릴 수 있는 절차가 생겨납니다. 아무튼 18세기 상당수의 철학자들과 딜타이, 하버마스 등이 이런 식으로 계몽을 이해했습니다. 더 간단히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 인식은 자기 자신을 어떤 그릇된 관념으로 만들어버린 것일까?
- 그리고 인식은 어떠한 남용에 노출됐는가?
- 그 결과 인식은 어떠한 지배와 결부됐는가? ]

푸코의 강의에 의하면, 칸트에 의해 모든 통치화의 원인이 인식의 차원으로 환원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칸트 이후 계몽의 문제가 다른 철학자들에게 수용되는 과정에서 더욱 공고화되었다. 이렇듯 인식의 차원에서 문제들을 모두 설명하려는 태도는 인식의 역사적 양식들의 정당성에 대한 탐구라는 형태의 절차로 이어지고, 이는 결과적으로 '학자(지식인)'를 유일한 계몽의 자격 소지자로 위치시키게 된다. 모든 사람은 계몽을 위해 학자가 되어야 하는데, 여기서 학자는 모든 계몽의 문제를 정당하게 제시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인식의 전문가이다. 
칸트는 '계몽'을 이야기하면서 모든 지배적인 통치화에 대항하면서 '이런 식으로 통치 받지 않을 기술'을, 즉 (푸코식 표현으로는)비판적 태도를 갖추기를 요구한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모든 문제를 인식의 차원에서 제시함으로써 '인식에 대한 인식' 즉 가장 '정당한 인식'을 비판적 태도의 유일한 기술로 위치시킨다. 이것이 바로 칸트가 계몽과 비판 사이에 벌려 놓은 간극이다. 
18세기에 '학자(지식인)'는 계몽의 유일한 자격 소지자인 인식의 전문가로 등장한다. 즉 '(철)학자(혹은 과학자, 사회학자 .........)'는 '윤리적 모델(자기 배려의 본보기)'의 유일한 담지자로 등장한다.
푸코는 계몽의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 (칸트와는)다른 절차를 구성해 볼 것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는 절대 유일한 절차는 아니다.) 인식의 문제가 아닌 권력의 문제로 계몽의 문제에 접근했을 때 우리는 칸트의 이러한 태도를 어떤 역사-철학적 실천의 관점에서 바라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만 '자기 배려'의 자율성 속에서 칸트의 철학을 수용하는 것도 (오히려) 가능해진다. 즉, 칸트의 글들을 자기 배려의 지배적 원칙이 아니라, 자율적 기술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오늘날 '윤리적 모델' 혹은 '자기 배려의 본보기'는 채념 적으로 받아들여지거나 혹은 철저하게 거부된다. 혹은 여전히 남아있는 신화적 열광 (완전한 행복을 약속받는) 안에서 무차별적인 동일시로 이어진다. 어떤 쪽이 되었건 간에, 이는 모두 '자율적 자기 배려[돌봄]'의 불가능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윤리적 모델 (자기 배려의 본보기)' 자체가 오로지 거대한 구조에 의해 코드화된 (벗어날 수 없는)이미지로만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에 '본보기'와 '문학'은 자기 배려[돌봄]의 동일한 주제였을 뿐이라고 푸코는 이야기 한다. 나는 이를 '윤리적 모델 (자기 배려의 본보기)'이란 '자기'라는 윤리적 현실을 구축하기 위한 중요한 도구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윤리적 문제제기>

저 행동이(저 본보기가, 저 모델이) 옳은가? 그른가? 혹은 정당한가? 정당하지 않은가?
저 행동(저 본보기, 저 모델)을 통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혹은 구체적으로 어떤 기쁨과 슬픔을 얻을 수 있는가?(혹은 나아갈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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