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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k ☆140자 다지원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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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세미나 ∥ 2017년 12월 19일 금요일 ∥ 발제자: 손보미

텍스트: 미셸 푸코, 『비판이란 무엇인가? 자기수양』, 동녘, 심세광,전혜리 옮김,


[캘리포니아대학교 토론_ 불문과]



1. epimeleia heautou

'작업을 가하다', '돌보다'를 뜻하는 매우 강도 높은 그리스 단어.

Epimeleia 개념

1) epimeleia는 자기 자신에 대한 단순한 관심이나 주의보다는 자기 테크닉, 혹은 자기가 자기에게 가하는 작업에 훨씬 더 가깝다.

2) 여기서 상당수의 금욕주의 테마의 탄생과 발전을 발견할 수 있다.

관용적인 고대와 금욕주의적인 그리스도교 간의 거대한 단절을 볼 것이 아니라 자기 실천으로부터 출발하는 금욕주의 윤리, 엄격하고 준엄한 삶의 방식의 완만한 탄생을 여기서 확인할 필요가 있다.
3) 이 자기가 자기 자신에 가하는 작업은 민법이나 종교적 의무에 의해 개인에게 강제된 것이 아니다. 개인은 스스로 자신을 돌보는 일을 선택하고 결정했다. 요컨대 그것은 개인이 자기 자신에게 부과하는 일종의 실존의 선택, 삶의 방식의 선택이다.
우리가 배려해야 할[돌보아야 할]가장 중요한 예술 작품, 미학적 가치와 태크닉을 적용해야 할 가장 중요한 영역은 바로 자기 자신, 자신의 삶, 자신의 실존이라는 관념이 존재해왔고, 이 관념은 우리 사회 내에서도 오래전부터, 그러나 다소 약화된 형태로 존재해왔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2. 자기배려/ 자기인식

양자는 심층적으로 연관되어 있지만 서로 아주 다른 것이다.
우선 자기 자신을 인식해야 한다는 원리, 소크라테스의 이 정식이 사용됐을 때, 그것은 언제나, 그리고 애초부터.... 이 원리와는 다른 원리, 요컨대 "너 자신을 돌봐라, epimeleip heautou, 너 자신에 작업을 가해라 라는 원리와 항상 결부되어 있었다. 
이 두 정언은 .... 항상 복잡한 관계 속에서 서로를 참조한다. 

'돌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리고 나서 '자기 자신'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이런 식으로 소크라테스는 자기 돌봄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원리에 내포된 것으로서 자기 자신을 인식할 필요성을 도입한다. 


자기 자신을 인식해야 한다는 관념은 자기가 자기에게 가하는 수련과는 전적으로 별개의 것입니다. 



3. 자기수양/자아구축


자기 수양이라는 것은 은폐되었다거나 사라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수양의 많은 요소들이 곧바로 그리스도교내로 통합되고, 그 안으로 이전되고, 재사용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적 금욕주의라고 부르는 것의 많은 요소들이 이 자기 수양으로부터 왔다.


자기 수양이 그리스도교 내부에서 반복된 순간부터, epimeleia heautou[자기 돌봄]가 본질적으로 epimeleia ton allon[타자의 돌봄] , 즉 목자가 가져야 하는 타자들에 대한 배려가 된 한에서, 이 자기 수양은 어떤 의미로는 사목 권력의 행사로 여겨졌음에 틀림 없다.

각자의 구원이, 영혼의 배려를 목표로 해야 하는 사목 제도로 적어도 일정 부분 거쳐가게 된 바로 그 순간, 자기 수양은 자율성의 크 부분을 상실했다. (하지만) 이는 자기 수양이 사라졌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도덕사의 진정한 문제는 코드의 문제, 즉 허용과 금지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자기 실천의 역사였다.





4. 데카르트와 칸트


데카르트의 성찰들은 다름 아닌 자기 실천이다. 그리고 데카르트의 이 놀라운 텍스트는, 분명 (자기 실천의)왜곡인 것 같다. 명상의 과정이라는 .... 모델을 매우 명백하게 취함으로써, [데카르트는] 자기의 실천을 통해 구축된 주체를, 인식이라는 실천을 창설하는 주체로 대체하기에 이른다

그리스 철학 이래로, 사람들은 언제나 우선적으로 자신들로 하여금 진실을 알 수 있게 해주는 특정한 작업을 자기 자신에게 실행하지 않는 한, 어떤 주체가 진실에 접근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데카르트 이전까지) 금욕주의와 진실의 인식은 언제나 모호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데카르트의 수법은(금욕주의, 혹은 자기 실천과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주체를 분리시키려는 운동) 사실 한참 전에 이미 시작되었고, .... 데카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결론을 내버렸다.

"하지만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주체이건 간에 상관 없이 내게 보이는 것을 명확히 보는 것으로 충부하다."
이렇게 해서 명증성이, 자기가 자기와 맺는 관계와 자기가 진실과 맺는 관계의 결합 지점으로서의 고행을 대체했다(데카르트가 결론을 내버린 이후로는) 비도덕적이면서도 진실을 인식할 수 있다.  이는 모든 그리스 문화가 거부하는 어떤 생각이었다.  (고대에는) 불순하고 비도덕적이면서도 진실을 알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인식 주체와 관련해, 무엇이 도덕적 추제가 될 것인가? 이 문제를 둘러싸고 18세기 내내 주저하게 된다.
(이제 대한) 칸트의 해법은 보편 주체를 찾는 것이었고, 보펴적인 한에서 아마도 인식 주체는 그래도 도덕적인 태도를 요구하는데, 이것은 칸트가 <실천이성비판>에서 제시한 자기와의 관계의 유형임에 분명하다. 
나는 나를 보편 주체로서 인식해야 하고, 즉 내 각각의 행동들에서 나는 나 자신을 보편 규칙의 보편 주체로서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인이 명증성을 인식할 수 있기 대문에 도덕적 행위는 그 규칙이 보편적인 행위라는 말이다. 

데카르트의 명증성을 통해, 칸트는 도덕적 행위의 보편성을 통해 16세기 자기 수양의 심각한 위기로 인해 제기된 이 문제에 신속히 답하는 것처럼 보인다.



 

5. 자기 실천


이것은 개인이 자기 자신과 맺는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을 주체로서 구축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자기와 맺는 관계 속에서 주체로 구축되는 것이지, 주체가 [미리]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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