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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과 진실』, 첫 번째 강의

2017.10.24 19:02

보미 조회 수:90

푸코 세미나 ∥ 2017년 10월 17일 금요일 ∥ 발제자: 손보미

텍스트: 미셸 푸코, 『담론과 진실』, 동녘, 심세광,전혜리 옮김, ~134

 

[파레시아적 진실]
 
푸코는 파레시아 분석이 우리의 역사적 존재론에 속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이유는, 인간존재인 우리는 진실을 말할 능력이 있고, 그 능력을 통해 우리가 우리 자신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여기에서의 '진실'이 곧 파레시아적 진실이라는 점입니다.
오늘날에도 파레시아스트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는 '비판적 역할'은 매우 중요하며 치열한 경쟁 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진실'을 말 할 때, 혹은 '진실'에 관해 이야기 할 때, '파레시아적인 진실'이란 받아들이기가 힘들거나 심지어는 이해하기조차 힘든'진실'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어쩌면 '비판적 역할'의 위기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닐까요?
'파레시아적 진실'에 관한 푸코의 이야기들을 살펴 보고, 덧붙여 오늘날 우리 사회의 '비판적 역할'에서 이야기하는 '진실'에 관하여 또 오늘날 우리가 품고 있는 '진실'을 말하는 태도에 관하여 논의해 보았으면 합니다.
 
[첫 번째 강의, 발췌]
 
파레시아스트는 진실되다고 생각하는 바를 말하는 걸까요, 아니면 실제로 진실인 바를 말하는 걸까요? 답은 이렇습니다. 파레시아스트는 자신이 말하는 바가 진실되다고 믿기 때문에 진실된 바를 말하며, 그것이 진짜로 진실이기 때문에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습니다. 파레시아스트가 솔직하거나 자기 의견이 무엇인지를 솔직하게 말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의 의견이 진실이기 때문에, 진실임을 알고 있는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파레시아에서는 신념과 진실이 정확히 일치합니다. (94, 95)
 
파레시아의 기능은 누군가에게 진실을 증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파레시아는 진실과 관련해 누군가와 논의 혹은 논쟁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파레시아는 늘 화자 자신에 대한 비판이나 대화 상대자에 대한 비판이라는 비판적 기능을 갖습니다. (97)
 
파레시아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은 위험을 감수하거나 위협과 맞서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의무이기도 합니다. ..... 누구도 연사에게 진실을 말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지만, 연사 자신은 그렇게 하는 것이 의무라고 느낍니다. (100)
 
<질문자>
파레시아는 도덕적 진실과 연관된 겁니까, 아니면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진실된 인식과 연관된 겁니까?
<푸코>
근본적으로 파레시아는 도덕적 진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주의 법칙을 알고 있는 교육자나 철학자나 현자가 사람들에게 이 법칙을 이야기할 경우, 이들은 파레이사를 행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진실이 파문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또 그들이 다른 믿음을 갖고 있다는 이유 등으로 이런 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도시국가에 이들이 살고 있다면 또 그렇게 말하는 위험을 감수한다면, 이들은 파레시아스트입니다. (108)
 
<질문자>
도덕적 진실을 말해야 하는 의무와 비도덕적이라 할지라도 진실을 말해야 하는 의무 간에는 차이가 있는 걸까요?
<푸코>
진실이 비도덕적일 수 있다는 관념은 그리스적 태도와는 아주 거리가 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진실은 도덕의 토대일뿐만 아니라 도덕에 속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 우리가 윤리적이고 도덕적으로 행위하는 데 필요한 것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아야겠지만, 이와 상관없는 진실이나 인식에 대해서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109)
 
그리스 텍스트들에서 신념과 진실의 관계는 인식론적 차원에서 전개되지 않습니다. (111)
파레시아스트는 신뢰할 수 있는 자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믿음들이 진실인 사람이기 때문이죠.
그의 믿음은 진실입니다. 자기 자신에게만 진실이 아니라 그 자체로 진실입니다. 바로 이것이 파레시아입니다.  (112)
 
(파레시아에서) 진실을 시험할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명증성이나 증거는 결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114)
파레시아에서 화자는 진실을 말한다고가정되고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가 타인들을 설득할 수있느냐, 아니면 진실을 말함으로써 처벌을 받느냐에 있습니다. 
저는 고대 그리스 문화에서 파레시아스트가 자기 자신이 진실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조금이라도 의심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116)
 
'진실을 말하는 자'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 사회에서 누가 진실을 말할 능력이 있다고 간주될 수 있는지의 문제입니다. 누구의 말이 그 자체로 진실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요? 저는 우리 사회에는 진실을 말하는 자에게 부여된 네 가지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129)
 
<우리 사회에서 진실을 말하는 자에게 부여된 네 가지 역할>
첫째) 예언자 역할.
둘째) 현자의 역할
셋째) 교육자의 역할
넷째) 파레이사스트 역할 
(129,130)
 
파레시아스트는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이름으로 (진실을)말한다는 의미에서 예언자와 다릅니다.
파레시아스트는 현자와도 다릅니다. 현자는 자신이 아는 바를(진실을) 타자에게 말할 의무가 없기 때문입니다. ... 파레시아스트의 임무는 진실을 말하고 타인을 설득하는 것입니다. 
파레시아스는 교육자와도 다른데,.... 교육자는 가르칠 때(진실을 말할 때) 용기를 갖거나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 파레시아스트는 근본적으로 (진실을 말할 때) 분쟁적 상황 속에 위치합니다
예언자, 현자, 교육자, 파레시아스트 역할이라는 이 네 역할은 서로 섞여 왔습니다.  (130,131)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파레시아에 해당하는 말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래도 '비판하는 역할'이라 불릴 수 있는 파레시아스트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고, 파레이사스트적인 방식으로 진실을 말하는 임무의 수행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 내에는 매우 치열하고 격렬한 경쟁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134)
 
주체화의 계보와 비판적 태도의 계보와의 교차 지점에 있는 파레시아의 분석은 우리 자신에 대한 역사적 존재론이라 부를 수 있는 것에 속합니다. 왜냐하면 인간 존재로서 우리는 진실을 말할 능력이 있고,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우리 자신의 습관과 태도,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고, 진실을 말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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