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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k ☆140자 다지원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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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0 19:27

유목하는 강아지

조회 수 401 추천 수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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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강아지를 보고 있다. 글을 써 봤습니다.


구조주의는 주체를 분산시키며 체계적으로 분배하는 사유, 주체의 동일성에 저항하는 사유, 주체를 홑트리며 이리저리 이동시키는 사유, 그리하여 비인격적인 개별화나 선-개인적인 특이성을 가지고서 언제나 유목적인 주체를 만드는 사유이다

.”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 p 415. 구조주의를 어떻게 인지할 것인가? 중에서.

 

  빤히 바라보는 강아지 한 마리! 그 단순한 동선에 사람들은 애달파하고 열광하고 매달린다. 게다가 자신 삶의 모든 의미를 거기에 담아 어떤 중독처럼 자신이라고 할 만한 것들을 황폐화시킨다.

언제부터 강아지 한 마리가 타자가 됐는지는 모른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물질적 삶의 순환에서 자신이 겪어냈던 어떤 결핍, 구조의 빈터를 채우는 어떤 결핍뿐이다. 그 모호하고 강렬한 결핍은 삶을 어떤 공허로 치닫게 했다. 그래서 어떤 과잉을 찾았다. 결핍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하고 그 동안의 공허를 보상이라도 해 줄 것 같은 그 어떤 과잉을 자신의 구조에 가득 채웠다. 광적인 배회가 어떤 사물에 대한 강박증으로 바뀐 것이다. 저 강아지는 그 사물 중 하나이다. 저 강아지에게 투사된 관념은 강박증 환자의 관념이다. 대중매체의 해석들은 재해석으로 강박증을 심화시키고 강아지의 단순한 동선은 오히려 자신의 관념을 더 깊게 패는 훌륭한 배지가 되었다.

시간은 결코 미래로 향하지 않는다. 강아지와 강박증 환자 사이, 빈터를 채운 과잉의 관념들은 더 깊은 홈을 새겼다.


   구조주의가 미래를 연다는 것 즉 유목적인 주체를 만드는 사유를 이끌어 낸다는 것은 무엇일까? 강아지의 어떤 속도가 감염되는 것, 그들의 어떤 정동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태고적부터 강아지는 어떤 속도였다. 그것은 단순히 사냥을 위한 속도가 아니라 속도 자체를 긍정하고 유희하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의 강도는 그들의 속도에 내재되어 끊임없는 헥헥거림에도 시들지 않는다. 그들은 정동이었다. 가만히 앉아있거나 누워있을 때조차도 그들은 인간의 수 만배의 달하는 감각 기관의 능력을 가지고 수많은 정동을 일으킨다. 그 속도와 정동의 결정체는 인간의 마을에 항상 자연을 전염시켰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삶이 구조적이라는 것이다. 어떤 대상=x에 그들은 항상 열려있고 그들은 그곳을 향한 그리움을 정열적으로 품고 있다. 그 대상은 어떤 개로도 어떤 인간으로도 향하지 않는 강아지들만의 유목적 구조였다. 다행히 우리 인간은 그 구조의 빈터에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었다. 우린 거기서 어떤 야생의 내음을 맡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강아지의 구조가 말살되고 어떤 병적인 것으로 치달았을 때, 강아지도 사람도 어떤 강박증환자가 되었을 때, 모든 삶은 단단히 폐쇄된다. 사람들은 기가 막히게도 얼마짜리로 강아지를 치장하고 얼마짜리로 강아지를 이해한다. 그들은 얼마짜리로 삶을 사는 것이고, 웃고 우는 것이다. 얼마짜리의 순환이 저 강아지와 우리 사이에 반복되고 있다.

강아지의 속도가, 정동이 그리고 그들의 유목적 구조가 지금처럼 사라진 적이 있었을까?

   

  • ?
    Amelano 2016.06.12 10:11

    1. 체험에서 나오는 이야기군요. "얼마짜리"에서 짤랑짤랑 소리가 들립니다.

    2. 멧돼지와 돼지, 늑대와 개가 서로 다른 진화적 경로를 선택한 것일까요? 멧돼지나 늑대가 돼지나 개보다 더 위엄있으면서도 생존위기는 더 크게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 ?
    공유지 2016.06.12 19:23

    선생님이 댓글 달아주셨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떤 요란한 손님이 오셨다가셨는데 그 여운이 남아서 글을 쓰게되었습니다. 직업상 동물과 가까이 지내게 되는데 가까이 보면 결코 얼마짜리가 아니거든요. 정말 최선을 다해 자신의 역능을 펼친다고 할까요. 항상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인 존재들입니다. 당연히 멧돼지, 늑대들 모든 야생동물도 마찬가지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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