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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열린 "표절, 자본의 논리와 예술의 윤리 사이"(현장+담론 토론회, <리얼리스트 100>, <자율공공실천회의(준)> 공동주최)를 청중석에서 지켜보고 느낀 것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그리고 최대한 간단히 기록해 두고자 한다. (발표자들의 발제나 토론자들의 토론에 대해서도 요약해 두고 싶지만 시간관계상 생략한다. 꽤 열띠었던 분위기에 대한 서술도 생략한다.) 

1. 문학예술 비평계의 진보파 혹은 좌파가 그 내용상 보수파나 우파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표절' 개념을 자본과 권력 비판의 주제로 삼게 된 것은 그 자체로 의미심장한 사건이며 징후적인 현상이다. 과거에 문학예술에 대한 '탄압'이나 '검열'을 비판하고 '자유'를 옹호함으로써 권력에 맞선던 문학예술 좌파가 사적 소유의 목소리인 '표절'을 비판하는 것으로 권력에 맞서게 된 것은, 자본의 노동착취를 비판하던 노동운동이 정리해고에 맞서 자본에 의한 노동의 사용, 즉 고용를 옹호하는 운동으로 전환된 것과 조응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로부터 진보와 보수가 뒤섞이고 심지어 자리를 바꾸는 전환이 일어난다. 왜 이렇게 되는 것일까?

2. 표절(plagiarism)은 서구어에서는 어원적으로는 '납치'라는 뜻을 갖고 한자어에서도 겁박을 의미하는 '표'(剽)에 그러한 뜻이 새겨져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절도'를 의미하며 그 수법은 '복제'( copy)다. 표절문제가 저작권(copyright) 문제를 둘러싼 법적 다툼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은 이 때문이다.

3. 그 결과가 자본관계를 옹호하는 것으로 귀착된다 하더라도 정리해고에 대한 반대운동에 거부할 수 없는 정당성(삶의 권리)이 있듯이, 사적 소유를 옹호하는 것으로 귀착된다 하더라도 표절에 대한 비판이 거부할 수 없는 정당성이 있다. 이 정당성은 표절한 자들이 자신들의 재산(작품, 상품)에 대해서만은 표절을 금지하고 있다는 특수한 조건에서 나온다. 나의 도둑질은 되지만, 너의 도둑질은 안 된다는 모순논리 위에서 표절행위들이 전개되는 한에서 표절을 비판하는 것은 정당하다. 자본은 본질적으로 도둑질인데, 도둑질을 모질게 금지하고 있는 것 역시 자본이다. 부르주아적 사적 소유는 도둑질을 금지하는 도둑질의 체제이다.

4. 그런데 오늘날 예술활동은 그 어떤 의미로건 복제, 즉 표절에서 자유롭지 않다. 창조적인 것은 모방, 클리셰, 패러디... 등등 다양한 형태로 복제와 결합되어 있다. 과거의 예술활동이라고 해서 복제로부터 자유롭지는 않다. 복제는 예술활동의 필수적 계기이다. 창조는 복제 없이 성립할 수 없다. 차이는 반복을 통해 성립하는 것, 즉 다른 반복일 뿐이기 때문이다. 학파, 예술유파는 반복의 효과이다. 나아가 복제는 생명활동의 필수적 계기이다. 복제 없이 생명은 탄생할 수 없다. 변이는 복제를 기반으로 한다. 생명종도 반복의 효과이며 생물유파로서의 인간, 즉 인류도 반복을 통해서, 복제를 통해서 성립한다. 생명과 예술의 이 본질적 계기인 복제가 불륜으로, 범죄로 되는 것은 자본주의적 시장이라는 모순된 환경 때문이다. 생명과 예술이 시장에 포섭되면서 복제는 이윤논리에 따라 평가되어야 할 이윤종속적인 계기로 위치지어진다. 지불한 복제만이 정당성을 갖게 되며 지불되지 않은 복제는 부당하게 된다.

5. 복제가 생명과 예술에 필수적인 계기인 한에서 자본과 권력에 대해 비판적인 진보좌파가 반(反)표절주의를 자신의 입장으로 채택한다면 그것은 전술적 실수일 것이며 궁극적으로 실패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의 표절비판은 위험한 곡예이다. 문제는 표절(복제)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표절이 놓인 사회관계에 있다. 표절에 대한 자본주의 시장적 접근, 그것에 내재하는 모순적 태도가 문제이다. 자본은 어떤 창작물에 대해 지불하(또는 지불하지 않)고 복제한다. 여기서 지불하지 않은 복제만이 표절일까? 지불한 복제는 표절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 모든 생명체가 그렇듯이 모든 창작물이 복제를 필수적인 계기로 삼는 한에서 그것은 복제의 복제의 복제의 복제....이다. 즉 지불해야 할 고리는 끝나지 않는다.(단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모든 창작물이 공통적인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지적재산권은 최후 복제자에게 소유권을 부여함으로써 이 복제의 무한 고리를 끊어내고 이로써 최후 복제자에 대한 지불로써 충분한 지불이 이루어졌다는 가상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렇게 복제권에 대해 지불이 이루어진 것이기에 이후에 그것에 대해 지불되지 않은 복제(무단복제, 표절)를 금지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실제로는 표절자가 표절을 금지하는 것이다.

6. 그렇다면 오늘날 표절 비판은 무엇을 표적으로 삼는가? 지불되지 않은 복제를 비판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는가? 다시 말해 모든 복제는 지불되어야 한다는 주장인가? 무단복제를 금지하자는 주장인가? 만약 그것이라면, 그것이 예술의 윤리라는 이름으로 제기될 때조차, 자본의 논리를 벗어날 수 없다. 왜냐하면 자본(관계)이야말로 오늘날 무단복제 금지에 의거하여 생존하고 있는 표절(관계)이기 때문이다.

7. 그런데 예술가(창작자)야말로 무단복제 금지에 의해, 저작권에 의해 이익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것은, '저작권은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는가?'의 물음을 제기하도록 만든다. 저작권이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주장은 소생산자이자 소소유자로서의 예술가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한에서 (노동자로서의 예술가는 애초부터 저작권에 의한 보호와는 무관하다) 완전한 거짓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체제 전체적으로는 거짓이다. 저작권은 지불능력이 있는 사람을 보호하지 창작자를 보호하지는 않는다. 저작권은 창작자의 생존을 보장하는 듯하지만 창작행위를 지뢰밭을 걷는 것으로 만듦으로써 예술가의 생존을 위태롭게 하기도 한다. 또 저작권은 지불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창작자에게서 박탈되어 기업가에게로, 소유권자에게로, 기업적 창작가에게로 합법적으로 양도되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창작자는 저작권자가 아니다. 시장환경 속에서 창작물이 팔리고 나면 저작권은 그에게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의 기업으로 된 거대 창작가들을 제외한다면 대개는 팔리지 않은(아직 지불받지 못한) 창작물의 창작자만이 '저작권자인 창작자'로 남아 있다. 팔린 창작물에 대해 창작자의 권리는 보호되지 않는다. 결국 오늘날의 창작현실에서 '권리'를 결정하는 것은 '지불'이다.

8. 이런 의미에서 저작권이야말로 합법화된 표절권이고 저작권 체제야말로 광범위한 사적 표절체제이다. 표절비판은 '지불되지 않은 복제'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지불된 복제권'(합법적 표절권으로서의 저작권)에 대한 비판으로 넘어가야 한다. 사실상 오늘날 더 큰 문제는 '지불되지 않은 복제'라기보다 '지불된 복제'이다. 아니, 지불된 복제권(저작권)와 지불되지 않은 복제(표절) 사이의 구별과 차별이 문제이다. 지불에 따른 복제권의 불/합법화는, 생명과 예술의 본질적 계기인 복제를 지불역량에 따라 제한하며 이로써 생명과 예술의 사회적 진화를 왜곡하고 저지한다. 복제와 창조를 대립시키는 것으로 이 문제를 풀 수는 없다. 반복제주의를 통해서 이 문제를 풀어나갈 수는 없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지불에 따른 특수한 복제권이 아니라 보편적 복제권(즉 공통권)이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리고 창조를 위해서는 조건 없는 복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필요하다.

9. 여기에서 "지불된 표절권인 저작권에 대항하는 보편적 복제권. 이 보편적 복제권의 실제적 가능 조건은 무엇일까?"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우리의 현실은 공통적인 것의 광범위한 기능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지불된 표절권인 저작권과 사적 소유에 의해 지배되고 있기 때문에 공통권은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요구의 문제로 되고, 현실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로 된다. 표절이라는 협소한 문제를 넘어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다루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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