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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평론> 창간 취지문

 

 

자율평론 편집모임

 

 

 

계급, 인종, 성별, 문화, 세대 등 인류 사회의 제 집단들, 영역들 사이의 상호적대는 현대 사회의 우연적이고 일시적인 질병이 아니라 현대 사회 그 자체의 토대이며 작동 원리이다. 자연과 인간의 적대, 기술과 인간의 적대도 인간들 사이의 적대에 그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노동자는 더 열심히 생산을 하면 할수록 그의 노력으로 더 많아진 생산물로부터, 그리고 그 결과로 더욱 거대해지는 생산수단으로부터 나날이 유리된다. 가난, 사고, 해고 위협, 실업, 질병이 노동하는 그의 곁에 늘 함께 한다. 사회의 개인들은 세상을 바꿀 마음에서건 매수되어서건 투표를 열심히 하면 할수록 그 결과로 더 거대해지는 국가권력을 보게 된다. 그는 선거가 끝나자마자 자신에게 과세, 규제, 억압, 감시, 고문을 행하며 자신을 무시하는 초개인적 권력 앞에서 무력함을 느끼며 정치적으로 소외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여성들은 남편과 아이들을 돌보는 데 헌신하면 할수록 남편의 출세와 아이의 성적 향상에서 대리만족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소외된 처지에 놓이고 그러면 그럴수록 가부장제의 굴레가 자신을 가혹하게 옥죄이는 것을 발견한다. 열심히 공부하라는 사회적 가족적 압력 앞에서 숨막히는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도 예외가 아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할수록 친구들과의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는 어려워지고 경쟁의 사다리는 더 잔인한 모습으로 자신 앞에 나타난다. 민족국가간 경쟁에서 민족애와 민족적 응원이 강하면 강할수록 다른 민족들은 자신들로부터 더욱 멀어지며 그것이 처음에는 민족적 한을 풀고 자부감을 만회하기 위한 경우에도 더 깊은 자탄으로 빠지거나(실패의 경우) 민족적 우월감과 제국주의적 열정으로 쉽게 넘어가는 것(성공의 경우)을 막기란 쉽지 않다. 이렇게 우리는 인간적 능력들의 발휘가 그 능력들에 대한 억압력으로 되돌아오는 적대적 사회 속에 살고 있다. 그 결과 경쟁과 차별과 억압은 마치 대기처럼 지구사회를 뒤덮고 있다.

 

인류는 인간 사회 내부의 이 적대를 해결할 수 있을까? 그것은 자본가나 권력자들이 쉼 없이 이야기하듯이 인간들의 경쟁적 본성의 발현이므로 이 적대와 더불어 사는 것이 필연적인 것은 아닌가? 혹은 개혁주의자들이 강조하듯이 그 적대들은 조금씩 완화시킬 수는 있어도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는 성질의 것이므로 상식에 비추어 몰상식을 합리에 비추어 비합리를 고쳐 나가는 데 만족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권태롭고 불행한 것으로 정의하려는 이 시도들에 맞서고 싶다. 착취, 억압, 물신화, 소외, 빈곤, 차별, 폭력, 전쟁, 고문, 강제노동, 실업 등등을 가져오는 이 사회적 적대가 인류의 운명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이 욕구는 환상적인 것인가? 그렇지 않다. 역사는, 오늘날의 사회적 적대가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적 적대와 동일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적대는 지난날의 적대를 풀어나가는 수단들이 가져온 역사적 결과이며 우리의 나날의 행위에 의해 재생산되고 있는 결과물일 뿐 결코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절망과 타협이 아니라 사회적 적대를 우리의 선택, 우리의 행위, 우리의 삶이 가져온 결과로 이해하면서 새로운 선택, 새로운 행위, 새로운 삶의 구축을 통해 이 적대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근대의 인류는 평등한 개인들 사이의 자유로운 교환으로서의 시장과 그것을 보증하는 정치적 공동체로서의 국가를 도입함으로써 신분적 불평등과 인신적 구속, 그리고 자연에의 예속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런데 이제 바로 그 시장과 국가가 다중과 자연에 대한 착취와 억압의 거대한 체제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평등한 개인들 사이의 자유로운 교환을 매개하기 위해 탄생한 화폐는 인간의 능력을 노동시간으로 환원하는 물신의 역할을 수행할 뿐만 아니라 계량가능하고 축적가능하며 소진되지 않는 그것의 성질로 인하여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권력인 자본을 창출했다. 개인들 사이의 공적 관계를 보증함으로써 개인들 사이의 사적 교류관계의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탄생한 국가는 사적 개인들 위에 군림하는 거대 권력이면서 그 자체 자본의 역할을 수행하는 근대적 민족국가로 전화되었다.

 

20세기에 인류에게 대안을 제시해온 전통적 좌파는 시장에 대해서는 부정, 긍정, 불확정 등 다양한 태도를 보였지만 국가를 장악하고 그것을 현대 사회의 문제를 풀어가는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는 데에 대해서는 공통된 입장을 취했다. 20세기 말에 붕괴한 사회주의들이나 신자유주의에 융화된 사회민주주의는 그 대표적 사례들이며 생태주의 운동의 일부도 국가를 생태 문제 해결의 수단으로 삼자는 방향으로 기운 바 있다.

 

우리는 시장과 국가, 그리고 양자의 분화는 현대 사회의 적대를 재생산하는 기본 구조라고 생각한다. 개인들의 사적 관계를 화폐가 매개하고 개인들의 공적 관계를 국가가 매개한다. 이것은 현대 사회에서는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인간적 자연처럼,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신성한 진리처럼 우리의 삶 속에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역사적이며 과도적인 현실임은 이미 150여 년 전에 맑스에 의해 누구도 거부하기 어려운 술어들로 밝혀진 바 있다.

 

화폐는 개인들 사이의 평등하고 자유로운 교류를 보편적 교환관계의 구축을 통해 형식적으로 실현했지만 그것은 개인들 사이의 실질적 교류관계에서는 불평등과 부자유를 심화시킨다. 국가는 개인들 사이의 공동적 관계를 실현했지만 개인들의 수평적 교류를 막으면서 그 자신을 초월적 권력으로 옹립하는 한에서만 그렇게 했다. 이렇게 정치와 경제의 분리 위에서 각각 분업적 방식으로 자본주의적 관계를 지구적 규모에서 나날이 재생산하고 있는 시장과 국가는 개인들 사이의 실질적 교류관계, 소통관계의 확립을 갈망하는 현대의 인류와는 양립할 수 없는 제도들로 되고 있다.

 

우리는 인류에 대한 시장과 국가의 분업적 지배, 다르게 말해 인간의 유적 능력의 화폐 혹은 권력으로의 전화가 일상적으로 관철될 수 있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개인들의 다양한 능력들을 노동으로 환원하고 노동시간을 가치척도로 정의할 수 있는 시장과 국가의 환원주의에 기초한다고 생각한다. 이 환원주의는 다중의 지구적 탈주와 전통적 좌파의 국제주의 운동을 흡수하면서 이제 이른바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전 지구적 자본운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시장은 유통과 분배뿐만 아니라 생산까지 포괄하는 실질적 세계시장으로 작동하고 있고 국가는 거대한 네트워크적 통치인 지구제국의 정치적 마디로 편입되고 있다.

 

그렇다고 세계시장과 제국의 국제화된 분업적 지배에 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제1차 산업혁명기의 민중과 제2차 산업혁명기의 대중이 봉기와 전유를 넘어서는 구성적 탈주운동을 통해 다중으로 재편되고 있는 현실이 주목되어야 한다. 이것은 창출되고 있는 주체성, 화폐 및 국가의 환원주의를 폐지할 수 있는 새로운 주체성이다. 제3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리는 정보화는 자연과 육체를 넘어 인간의 지성을 착취의 주요 대상으로 포섭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 그것은 다중에게 버츄얼 스페이스를 통한 투쟁의 전 지구적 유통의 무대를 제공하면서 이 새로운 주체성의 형성을 자극하고 있다.

 

원주민과 인터넷의 전자적 직조를 보여준 치아빠스의 봉기, 그리고 인터넷의 도움을 빌어 초국적 금융자본에 대항하는 초국적의 시위를 조직한 시애틀-퀘벡-제노바를 잇는 반지구화 투쟁에서 확인되는 것은 다중이 노동자, 여성, 원주민, 국민, 동성애자, 실업자 등 위로부터 부과된 정체성들을 거부하면서 인간의 유적 능력을 다양성과 잡종성의 노선 속에서 실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고전적 맑스주의에 의해 추구된 노동 거부와 아나키즘에 의해 추구된 국가 거부를 개인들의 매개되고 소외된 관계에 대한 거부로 심화시키고, 인류의 집단성을 획일성 속에서가 아니라 복수성의 실질적 교류로 재정의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이것을 우리는 자율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자율을 ‘제 멋대로 한다’는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의 에피스테메로부터 구출하여 인류의 집단적 소통과 상승적 공생의 맥락 위에서 추구되는 개인성으로 재정의할 것이다. 그것은 개인의 자유로움이 인류의 자유로움의 전제가 되고 인류의 자유로움이 개인의 자유로움의 전제가 되게 하는 역동적 운동을 일컫는 이름에 다름 아니다.

 

오늘날 자율의 운동은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것은 지성적 차원, 감성적 차원, 실천적 차원, 육체적 차원 등 인간성의 모든 차원에서 가시적 형태로 혹은 비가시적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우리는 차원에서 분리되고 시간적으로 분절되며 공간적으로 분산된 이 다양한 운동들의 소통과 유통에 관심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인터넷이라고 하는 비교적 최근에 발전된 소통과 표현의 공간을 통해 이 운동들의 소통과 유통에 참여하고자 한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활력을 권력에 대항하는 방향에서 표현해 내고자 한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우리는 매스미디어들의 힘에 의해 끊임없이 억눌리고 감추어지며 소멸되는 경향이 있는 전 지구적 활력의 목소리들을 경청하고 조명하고 드러냄으로써 인종, 성, 지역, 국적, 언어, 문화를 넘어서는 광역적 소통의 문화를 만드는 운동 속에 살고자 한다. 이것이 우리가 21세기의 초에 『자율평론』을 창간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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