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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존재론과 정치학

마우리치오 랏자라또의 『사건의 정치』 (갈무리, 2017)

 

 

최진석(수유너머104)

 

 

* 이 서평은 2017년 12월 15일
웹진 <문화다>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s://goo.gl/WjHqKA

 

 

1

랏짜라또에게 『사건의 정치』란 책이 있다는 것은 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러시아에서 돌아온 후, 내가 바흐친에 관해 연구한다고 하니 모 선생님께서 일본어판을 보여주시며 여기에 관련된 내용이 상당히 있는 듯하니 읽어보라는 것이었다. 일어를 전혀 모르는 나로서는 다른 언어로 된 판본을 찾을 수밖에 없었는데, 영어판은 없고 불어판만 있는 듯했다. 사전을 곁에 두고 띄엄띄엄 읽어보며 대강 읽어볼 수밖에 없지만, 사실 좀 놀라운 기분이 들었다. 바흐친과 타르드를 중심적으로 논의하는 4장의 이야기는 사건이나 언어, 말의 존재론과 정치학 등에 대한 내 생각과 상당히 공명되는 지점들을 다루는 듯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짧은 불어 실력으로 책 전체를 읽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마침 이 책에 관심을 가진 다른 분이 있기에 출판사를 연결해서 이 책의 번역계약을 할 수 있게 돕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게 벌써 7-8년 전의 일인 듯하다.

그렇게 ‘미래의 독서’를 예약만 해 놓은 채 랏짜라또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지내던 중이었다. 『부채인간』이 나왔을 때도 막상 『사건의 정치』에 대해서는 떠올리지는 못했다. 아마 이 책의 불어판 제목이 『자본주의 혁명』이라는 다소 거리가 먼 제목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을 듯한데, 그러던 중 작년 겨울 다지원에서 나란히 강의를 했던 이성혁 선배가 이 책의 일본어판을 번역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잊었던 게 생각났다. 먼젓번 번역계약이 어떻게 된 것인지 궁금한 마음이 들면서도, 들뢰즈나 현대 정체철학에 꾸준한 관심을 가지신 성혁 선배가 번역을 한다기에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무엇보다도 바흐친에 대해 랏짜라또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책 전체를 한국어로 읽어보게 되어 예전의 욕구를 풀 수 있으리란 기대가 가장 컸다. 물론 걱정도 없지 않았다. 정치철학자가 인문학자의 논의를 대강 인용해주고 의의를 인정해 주는 그런 내용은 아닐지 우려도 되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 책에서 담긴 통찰이 내 생각과 갖는 거리가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서평회를 위해 책을 받아오면서 나도 모르게 잔뜩 긴장하며 책을 펼친 경위는 그와 같다.

2

구조주의를 역동화시키는 주요한 힘은 정보에 있다. 사회를 규정된 단위들의 위계적 전체로 보는 입장에서 그 전체 구조를 유지시키고 운동시키는 것은 체계의 내부와 외부, 내부의 이쪽과 저쪽 등을 지속적으로 구별짓고 대립시키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이며, 그러한 과정의 매체가 바로 정보인 것이다.

정보는 발신되는 전언과 수신받는 전언 사이의 정확한 일치를 전제로 하며, 그와 같은 일치만이 정보의 가치를 보장한다(176). 정보이론의 이상적인 목표는 단 하나의 잡음도 만들지 않고 티끌만큼의 결락도 발생시키지 않은 채 온전히 목적지에 도달하는 순환의 체계를 만드는 데 있다. 정보에 대한 이런 관점에 기대는 구조주의의 현대적 싹이 20세기 초엽의 러시아 형식주의에서 기원하는 언어관이며(야콥슨은 형식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만들어 놓은 대표적인 학자다), 전성기 이후의 구조주의자들이 1960년대에는 ‘기호학자’의 이름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은 상당한 흥미로운 지성사적 그림을 제시한다(롤랑 바르트, 유리 로트만 등).

다른 한편, ‘서구 근대 이성주의의 마지막 옹호자’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위르겐 하버마스의 ‘이상적 담론상황’이란 것도, 비록 구조주의적 틀과는 상당히 구분되지만 정보의 완전한 소통적 모델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다. 예컨대 공평무사하게 담론의 장에 진입하여 합리적인 대화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일단 테이블에 마주앉은 상대들 사이의 공통적 언어가 요청된다. 그 언어는 상황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되지 않는, 잉여성 없는 기호이어야 하기에 당연히 새로운 것의 발생을 거절할 수밖에 없다. 새로움은 소통의 이상주의를 방해하고, 대화를 불가능성에 빠뜨릴 위험이 있는 탓이다. 도대체 대화란 무엇인가?

3

대화주의는 다성악이란 말과 더불어 1929년 『도스토예프스키 창작의 제문제』에서 개진된 개념인데, 일종의 문학창작 방법론에 대한 비평적 이론으로 제안된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등장인물들을 완벽히 통제하는 유형이 있고, 거꾸로 그들에게 완전한 자유를 부여해 작가의 의도를 벗어나는 사유와 행위를 감행하도록 놓아주는 유형도 있다는 것이다. 소설의 주요 유형은 전자에 가까운데, 한 편의 ‘창조된 세계’로서 문학작품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작가가 등장인물들 위에 초월적으로 군림하는 신과 같아야 한다는 게 그 주장이다. 반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로 대변되는 후자는 작가가 다만 관찰자요, 보조자에 머물며 등장인물들을 지배할 수 없는 무능력을 보인다. 물론, 이러한 무능력이야말로 등장인물들이 자신들의 개성을 펼치는 세계의 창조성을 근거짓는다는 것이다. 이런 구도에서 대화주의는 등장인물들이 작가의 눈치를 보지 않은 채 자기들끼리 자유롭게 이념의 대결을 벌이는 것을 가리킨다. 바흐친을 자유주의적으로 해석하는 학자들은 대화가 등장인물들 사이의 어느 누군가의 우위적 구도로 작품을 끝내지 않는 탁월한 창작방법론이라 상찬해 왔다. 등장인물들의 이념‘들’은 서로가 서로에 대한 동등성을 갖고 선의의 경쟁을 벌인다는 뜻이다. 그들은 모두와 공평한 무게로 자신의 말을 제시하고, 타자의 말을 듣는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모든 말을 명령-어(슬로건)로 간주한다. 간단히 말해 언어는 의사소통의 단순한 매체가 아니란 뜻이다. 만일 의사소통이 특정한 의미를 담지한 언어적 기호의 교환관계라면 모든 대화는 평화로운 화합의 장이 될 것이다. 정확한 전언의 정확한 발신과 정확한 수신처럼 공평무사한 관계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언어는 그 자체가 불투명한 물질적 매체다. 순수한 아담의 언어는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언어는 역사와 지리, 사용자 공동체에 의해 오염되어 있다. 나아가 모든 언어 사용자들은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언어행위를 시작한다. 타자를 향해서든 자신을 향해서든 말은 발신되는 순간 그것이 관철하고자 하는 의지와 욕망의 힘에 의해 추동된다. 따라서 말은 언제나 명령-어로서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런 가정에서라면 공평무사하고 평화롭기만 한 언어적 의사소통, 이상적인 담론상황이란 게 가능할리 없다. 들뢰즈와 가타리를 거쳐 랏자라또 역시 이 점에 대한 인식을 명확히 하고 있는 듯하다.

이 점에서 바흐친의 대화주의는 지옥의 기술이다. 전형적인 도스토예프스키적 인물들을 떠올려 보라. 그들은 하나같이 타자의 말과 시선, 욕망에 대해 불안해 하고 공포에 젖으며 탈주하고 발악을 한다. 말은 그들이 도피하고자 하는 타자의 권력인 동시에, 그들이 역공을 취해 타자를 장악하려는 힘의 표현이다. 악령의 등장인물들은 사회주의나 민족주의, 개인주의, 허무주의 등으로 각자마다 다른 세계관과 이념을 대변하지만, 서로가 동등하게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각자 자신의 말이 타자의 말을 덮쳐 무너뜨리기 위해 지옥의 아귀다툼을 벌이길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대화는 상대를 설득시키기 위한 절대적인 투쟁에 가깝다. 단적으로 말해, 바흐친에게 대화는 정보의 발신과 수신이라는 기계론적 과정이 아니라, 의식적으로는 타자에게 강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고 무의식적으로는 끊임없이 영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정동적 과정이다. 랏짜라또 역시 이를 명확히 포착했으며, 동시대의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던 바흐친의 급진적 사유를 지적한 철학자라 말할 만하다.

4

일방향적 영향, 힘의 관계만을 인정하는 권위주의적 발화에 비해, “마음에 호소하여 설득하는 타자의 발화”(211)는 쌍방향적 영향관계, 특정하게 규정되지 않은 힘의 이동을 전제하는 정동적 발화를 가리킨다. 우리는 이런 표현들을 통념적으로 사용하는 온정적이고 배려심 깊은 발화와 같은 것들로 치환해서는 안 될 일이다. 왜냐면 말, 즉 발화에 대한 이러한 해석이야말로 대화를 언어학의 대상이 아니라 존재론과 정치학의 실재적 힘으로 간주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랏짜라또의 진술을 몇 가지 옮겨와 보자.

발화만이 세계의 존재를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은 존재가 ‘애초부터 모두 눈앞에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존재는 발화가 만들어 낸 평가 관계에서만 충분하게 구성된다. 그래서 존재는 단지 현실성으로 있는 것만이 아니라 잠재성으로서도 있다(222).

대화적 관계는 언어적 관계가 아니다. 대화적 관계는 확실히 언어를 전제하지만 그래도 언어시스템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와 같이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감정, 가치판단, 표현은 언어에서의 어구와는 많은 점에서 관계가 없고, 구체적인 언표에서 살아있ㄴㄴ 사용의 과정에서밖에는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구체적인 언표는 언어에서의 말처럼 이해할 수는 없다. 대부분의 바흐친 주석자들, 특히 프랑스의 주석자들(토도로프, 크리스테바)은 대화성을 언어학적 문제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해 왔다. 반대로 바흐친에게서 대화성은 존재론이자 정치적 문제였던 것이다(224).

대화는 언어 이상이며, 심지어 언어학에 한정된 언어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해도 좋으리라. 여기서 관건은 타자이다. 타자는 물론 인간으로서의 타인을 넘어선 모든 것, 랏짜라또가 지적하듯 “존재의 영역”에 걸쳐 있는 “응답과 물음의 영역”에 걸려있는 외부성이다. 1920년대에 바흐친은 응답과 책임에 대해 강력한 금언들을 남긴 바 있다. 가령 응답과 책임은 한 가지 뿌리를 가지며, 이는 존재능력에 대한 문제라는 것이다(answer/ability). 무엇에 대한 응답과 책임인가? 모든 이질적인 것, 외부적인 것, 즉 타자에 대한 응답과 책임이다. 타자의 영향에 대한 응답이고 그것을 책임지는 능력이 ‘이 나’인 주체를 규정한다는 말이다.

화용론은 바흐친 언어철학의 주요한 초점이다. 랑그적 언어학이 위세를 떨치던 20세기 초엽은 파롤이나 발화가 언어학의 중심문제로 제기될 수 없다고 간주되었을 뿐만 아니라, 문자적 기호체계를 넘어서는 언어활동은 아예 언어적인 것의 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말의 사용이란 관점에서 화용론은 제기될 수 없는 관점이었던 것이다. 들뢰즈와 가타리도 지적하다시피, 바흐친은 ‘어조’와 ‘강세’라는 언어학의 외부를 끌어옴으로써 언어학을 넘어서는 혁명을 일으킨 셈인데, 어조나 강제 등이 바로 정동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사건임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어조나 강제가 죽은 기호인 언어를 명령-어라는 살아있는 힘으로 바꾸어 놓고, 주체는 언제나 타자로부터 명령-어를 강제로 전송받거나 타자에게 자신의 명령-어를 방사한다. 대화란 바로 이와 같은 비대칭적인 힘의 전달과 강제, 그로 인한 주체와 타자의 혼성과 변이의 무한한 과정에 다름 아니다. 주체는 타자에 의해 항상 변용(affection)되는 정동적 주체란 사실을 깨닫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식적으로 언어생활을 통해 대화를 실행하고 있든 아니든, 우리의 존재 자체가 이미 그 기원에서부터 타자와 대화적 사건이란 관계 속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존재론으로서의 대화주의”(225)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럼 대화의 정치학이란 어떤 것인가?

5

대화를 기호들의 의사소통이라는 기계론적 관점에서 해석할 때, 그 정치적 현장을 국회에서 못 찾아낼 리 없다. 적어도 국회의원들이 진술하는 발언내용이나 회의록, 법률안들은 상호 타협과 절충, 상호공존과 최선의 해결책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이상적 담론’에 가까울지 모른다. 물론 여기에 수긍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정치인들이 주고받는 발언과 회의록, 법률안들이 ‘지배의 이상적 상황’을 보장하기 위한 것임을 잘 알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랏짜라또는 고전적 맑스주의에서 ‘진보’로 규정되었던 정치적 단위들에서도 그와 같은 이율배반적인 이상적 담론이 강력히 온존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책의 전편에 걸쳐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맑스주의 사상과 조직은 이미 거대담론으로 구축된 “과거의 발화”(212)로서 일방향적인 권위의 산물일 뿐이다. 소통은 자기의 언어를 다시 자기에게 되돌리는 비잉여적인 순환만을 목표로 삼고 있을 뿐 외부로부터의 영향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경화된 왕년의 진보적 조직은 자본주의의 상대적인 유연화 체제에 전혀 대응할 수 없으며, 거꾸로 자본주의를 보완하는 반동적 기구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들뢰즈·가타리를 경유해 랏짜라또가 거듭 강조하는 것은 정치운동에 새로움을 도입하는 것이고, 이는 노동운동이든 좌파정당운동이든 혹은 다른 무엇이든간에 진영이라는 몰적 절단선에 의해서가 아니라 분자적 생성이라는 관점에서 이질적인 “생성변화”의 길을 여는 데 있다(그 구체적인 실천 양상들에 대해서는 일단 다른 서평자들의 말을 듣기로 하자).
아직은 추상적인, 이와 같은 생성변화의 근본 전제에 대해서만 몇 마디 덧붙여 보자. 인간의 존재 조건을 말과 떼어놓을 수 없다면, 그리고 대화는 바로 그와 같은 말의 비대칭적인 교환과 이입, (무)의식적인 영향관계를 뜻한다면, 궁극적으로 말이란 무엇이고 무엇이 아닌가?

정확한 정보의 정확한 발신과 정확한 수신이라는 소통모델은 언어를 투명한 매개체로 간주하는 기계론의 산물이다. 반면 기계적(machinic) 사유는 말과 인간을 공통적으로 기계로 간주하며, 결합과 분해의 양태에 따라 서로 다른 개체들로 구성되는 과정에 관심을 갖는다. 아마도 그와 같은 개체(singular thing)를 구성하고자 할 때 ‘볼트와 너트’로 소용되는 것이 정동이라 말할 수 있을 듯하다. 말은 인간이라는 기계들을 더 큰 사회적 기계들로 조직하고 작동하게 만드는 정동적 힘이자 공통재로서, 기성의 존재로는 이미 주어진 것이자 장래의 사건으로는 아직 합성되지 않은 것이다. 달리 말해, 자본주의가 정동을 관리하고 착취하는 새로운 사회적 기계로서 거듭 진화하는 현대의 조건에서 또 다른 사회적 기계를 창안하고 작동시켜야 하는 우리들로서는 바로 그러한 공통재로서의 정동, 말의 문제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지 않을까?

『사건의 정치』를 읽으며 정동과 말의 문제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최근 지식사회에서 부각된 정동에 관한 관심과 더불어 여성과 지역, 장애인과 소수자 전반에 대한 혐오의 문제가 바로 정동과 말을 주제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견고하다고 믿어졌던 사회가 거대한 검은 구멍을 벌리면서 균열을 증거하고 있는 이때, 어설픈 공존과 합의의 가상에 포섭되지 않기 위해서는 대화를 사회적 (계급)투쟁의 주요한 양상으로 가속화시키고, 정동의 대항적 배치를 견인하는 말의 힘에 대한 촉수를 더욱 예민하게 세워두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랏짜라또의 후속 번역들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몹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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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와 기계』(마우리치오 랏자라또 지음, 신병현‧심성보 옮김, 갈무리, 2017)

들뢰즈와 가따리의 기호론으로 자크 랑시에르,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빠올로 비르노, 주디스 버틀러,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안또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등에까지 걸쳐 있는 언어중심적 정치이론을 비판하면서 물질적 흐름과 기계들의 흐름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기호들을 분석한다. “자본은 기호로 움직인다.”는 가따리의 주장에 근거하여 “오늘날 비판이론은 언어와 재현 중심의 사고를 넘어서고 있는가?”, “오늘날 기호들이 정치, 경제, 주체성의 생산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묻고 이로부터 자본주의 비판을 위한 새로운 이론과 비재현적 주체 이론을 전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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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민주주의』(조정환 지음, 갈무리, 2017)

전 세계적 정치상황과 사회운동에 대한 경험적 분석을 통해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 속에서 진동해온 민주주의 논쟁을 절대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지평의 발견과 발명을 통해 한 걸음 더 전진시키려는 것으로 이러한 주제의 단행본으로서는 국내외를 통틀어 최초의 책이다. ‘절대민주주의’라는 개념을 통해, 대선 이후 초미의 관심으로 부상할 수밖에 없는 ‘사회대개혁’이라는 문제를 어떤 방향으로 구체화해 나가야 할지를 사유할 개념적 틀과 근거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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