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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지 노인과 랏자라또, 사건과 정치의 재구성

마우리치오 랏자라또의 『사건의 정치』 (갈무리, 2017)

 

 

신현진
(자본주의와 현대미술의 제도적, 존재론적 관계를 고민하는 글을 쓰는 사람)

 

 

* 이 서평은 2017년 12월 7일
인터넷신문 『대자보』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s://goo.gl/YDmjfb

 

 

* 이 글은 마우리치오 랏자라또의 『사건의 정치』(이성혁 옮김, 아우또노미아 총서 56, 갈무리, 2017)를 리뷰하는 글입니다.
** 괄호 안의 숫자는 이글이 언급하는 내용이 서술된 페이지의 숫자입니다.

아마도 ‘인간극장’이나 ‘세상에 이런 일이’ 류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다. 몇 년 전 그 방송 프로그램은 강원도인가 어느 산골에서 혼자 사는 노인을 비추고 있었다. 그 노인은 나무의 열매를 따먹거나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아서 끼니를 때우며 생을 보내온 노인이셨다. 그런데 방송이 보여준 노인이 갓 잡아 아직도 꼬물락거리는 낙지를 먹을 때의 모습에 나는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노인은 치아가 하나도 남지 않았기 때문에 씹어 먹는다기보다는 대충 침을 발라 삼키는 것에 가까웠을 뿐만 아니라 여기에 노인의 천진난만한 웃음을 대조하는 바람에 나는 몇 분을 채 지켜보지 못하고 채널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노인의 천진난만한 웃음을 가리키며 누구는 그러한 삶에 감히 가치 판단을 내리지 말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극단적인 삶의 형태를 보면서 그가 인생을 산 것이 아니라 그저 오랜 기간을 생존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고 동시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더구나 산낙지를 먹던 모습에서 나는 이빨 없는 괴물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자연인으로 살겠다는 결정을 하게 만들었을까? 사회 안에서 얼마나 견디기 힘든 상처를 받았기에 그런 극단의 처방이 불가피했을까? 여기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그가 사회와 공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의 생각에 사회에는 오직 하나의 규율만 있고 그 규율이 자신과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을까? 적어도 그런 사회가 변하지 않을 것이며, 자신이 설자리는 없다고 판단하는 사건이 있었으리라 추측하기란 어렵지 않다. 이러한 사회를 랏자라또는 규율 훈련 사회라 일컬으며 그러한 사회에서는 제도라는 이름으로 너와 나 사이에, 사물과 기호 사이에 위계를 설정하고 이에 따르도록 사람들을 훈련한다고 한다. 이러한 사회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배정된 기표에 스스로를 동일시함으로써 제도를 따른다 한다. 이제 사회는 통제 사회로 전환되었지만 통제사회 또한 사람들을 학교와 공장, 회사에 가두는 감금의 기술이나 사람들의 공중위생, 가정 정책과 같은 인간의 삶을 관리해 주리라 약속하는 생명정치의 기술을 활용해 규율을 강제하기는 마찬가지라고 한다(69-73). 하지만 낙지 노인은 이를 따르지 않았다. 이 노인은 사회에 적응하는 대신에,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대신에 자연으로 돌아갔다.

마우리치오 랏자라또의 근간 『사건의 정치』는 어쩌면 이 노인에게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일 수 있다. 혹은 랏자라또가 그 노인을 만났다면 자신이 엿본 꿈같은 세계에 대해 낙지 노인과 한동안 이야기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랏자라또가 자신이 꿈꾸는 세계를 말할 때 그 노인은 난 그런 거 안 하고 만다고 대답할 가능성은 다분하다. 노인이 어떠한 집단에도 소속되지 않고 사회적 인간이기를 포기했다는 것은 자신이 동일시하는 특정한 정체성을 조금도 해치지 않겠다는 의지의 궁극적인 표명일 수도 있지 않은가? 낙지 노인이 사회를 버릴 수 있었다면 그것은 노인 자신이 동일시하는 자아 정체성도 불변하는 것으로 상정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는 이미 사회는 전체를 관통해 하나로 환원되는 본질적인 구조가 있으며 이것이 가능하려면 사람들은 불변하는 자아 정체성 가진다는 당시 사회 원리에 동의했던 셈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태극기 집회에 나가는 애국보수의 행동과 노인과의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전후 산업화 시대를 산 사람으로서, 노인이나 애국보수는 국가와 가정에 번영을 가져오는 일꾼의 정체성을 배정받고 그러한 사회가 요구하는 서열의, 계급의 정체성을 바꾸지 않고 평생 자신과 동일시할 것을 요구받은 사람들이다. 낙지 노인은 거부했지만 애국보수는 그렇지 않았다. 그것이 봉건적이라 하더라도 탄핵과 같은 행위는 자신의 변치 않는 정체성에 대한 부정,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알다시피 이들은 낙지 노인과 달리 산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마우리치오 랏자라또는 낙지 노인에게 그가 다른 이들과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다른 세상의 존재 방식을 발견하였다고 이야기하고 싶을 것 같다 (8-11). 그리고 이어서 그가 꿈꾸는 세계의 이모저모를 이야기 전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그의 책, 『사건의 정치』를 건넬 수도 있겠지만. 그런데 랏자라또가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하는 바는 미래에 올 유토피아, 혹은 대안적 세계의 “구조”는 아니다. 또 하나의 구조를 제시하는 대신에 랏자라또는 사회라는 구조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라는 자신의 존재론, 즉 사건의 철학을 설명하는 데에 책 전체를 할애한다. 그의 존재론은 불변하는 구조에 녹아 있을 무엇으로써의 특정 관념에 대해 어느 관념이 더 옳다거나 더 나은가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그는 관념이 정작 현실 사회에서 발현되기까지에는 관념이 물질세계에서 현재화되는 과정이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리고 너와 나 (아마도 촛불과 애국보수)가 협동해서 관념을 실효화하는 과정의 시간, 즉 존재론적 시간을(70, 80, 135) 고민한다. 그리고 그 시간 안에서 살아가는 주체와 타자는 어떤 존재로 상정될 수 있으며 이들 각각의 사고가 어떻게 동적 편성(304), 혹은 배치가 되는지, 그 배치의 다이내믹이 어떻게 전개되는가를(4장) 설명한다.

랏자라또는 그의 연구가 어느 사건을 목도하면서 가능했노라 말한다. 랏자라또가 말하는 사건의 예는 시애틀 봉기와 오큐파잉 월스트리트다. 랏자라또는 이들 사건이 사회적 존재에게 “다른 세계를” 만들어가도록 했다고 말한다. 랏자라또가 사건을 가능태로 바라본다는 점은 무척 흥미롭다. 왜냐면 바디우의 존재론에서도 사건을 특이점, 즉 어느 시점 이후로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지기 때문에 새로운 철학으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시간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둘은 모두 다른 세계(진리)를(진리)를 향한 과정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2016년 촛불집회가 이들과 궤를 같이하는 사건들에 포함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랬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촛불집회가 옳지 않은 대통령을 끌어내렸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건이 이른바 수구 꼴통, 태극기 보수와 촛불집회가 상징하는 진보적 시민이 함께 혼란을 겪는 시-공간을 포함하기 때문에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시점 이후에는 “다른 세계”가 가능해지는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오랫동안의 시-공간을 이들과 함께 할 운명인데 이들과 같이 하는 방식을 상상하지 못하거나 다양체를 다수로 구성하는 기술 (91)이 발명되지 못한다면 분통을 터뜨릴 것 같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내가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나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나는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들과 결별하지 않기 위해서는 뭔가 문제 해결방안이 상상되어야 한다. 그것은 랏자라또가 제시하듯이 진리 건 이데아 건 어떤 나은 관념을 발견해 동일한 판단에 도달하는 방안이 아니다. 그것은 사건을 공통의 지각형태로(209) 감각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종국에는 사건을 표현하는 바가 물질세계에 현실화되는 다이내믹과 관련된 방안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쩌면 랏자라또는 이 낙지 노인에게 연애를 권유하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에 빠졌을 때 우리는 우리가 경험하는 모순을 수용하고 타자와의 만남이 만들어내는 사유는 새로운 사회를 구축한다.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는 상대는 그 인물이 아니라 그 인물이 표현하는 가능의 세계이다. 즉 사람들은 타자 안에서 이미 실재화된 존재가 아니라 타자와의 만남에 의해 창출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손에 넣는다(17-18).” 이것이 언어학과 라캉이 말하는 간주체성(intersubjectivity) 아닌가? 사랑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의 문을 열고(혹은 에고의 일정 부분을 포기하고) 타자의 생각에 귀를 기울이며 자발적으로 그것에 전이되기도 한다. 때문에 바디우의 존재론도 사랑이 진리를 만들어낼 잠재성을 가진다고 설파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랏자라또는 언어적 전회에서 시작된(226) 20세기 이후의 철학은 누군가의 관념에 주체가 전이, 혹은 포위되는 타협을 포함하면서(37) 계급이나 이데올로기의 정치를 극복하지 못했음을 지적한다(5장).

그러니 그의 세계관에서 주체와 주체 사이의 관계는 사랑과 조금 다르다. 랏자라또는 라이프니츠의 모나드와 이를 계승한 타르드의 논리에서부터 신모나돌로지적 주체를 규정한다(31, 42, 44, 135, 208). 이어서 그러한 주체가 인지 자본주의의 메커니즘 안에서 어떻게 작동했는가를 사례로 들어 신모나돌로지의 주체를 설명한다(3장). 그리고 그러한 주체가 다른 세계를 만들어내는 여정이 이 책의 골자다(1장). 만약 당신이 비물질 노동의 순환을 살펴보면서 인지자본주의의 메커니즘을 설명한 랏자라또의 논문에 매료된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이 랏자라토의 세계관을 엿보게 해줄 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의 주체는 자본주의에 착취되는 다중으로서의 주체가 아니고 상대주의의 미로에서 길을 잃는 주체도 아니다. 욕구하고 감각하는 신모나돌로지적 주체(246, 285)로서 뇌의 협동을 통해 감각을 재배치함으로써 가치를 현실화하는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주체이다. 단 신모나돌로지의 주체는 사건을 바라보고 표현하는 방법을 창조해야 한다.

감각 양식의 변화는 우리에 의해 실재 세계를 은폐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 세계를 구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34). 따라서 발화 (222) 만이 사건을 현실화, 실효화 하는 것이다. 이러한 창조적 인간의 조건의 필요성은 조정환의 예술인간과 맞닿는다. 이 둘은 자본주의에 끌려가는 주체가 아니라 자본주의에 뒤통수를 칠 수 있는 통쾌한 주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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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와 기계』(마우리치오 랏자라또 지음, 신병현‧심성보 옮김, 갈무리, 2017)

들뢰즈와 가따리의 기호론으로 자크 랑시에르,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빠올로 비르노, 주디스 버틀러,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안또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등에까지 걸쳐 있는 언어중심적 정치이론을 비판하면서 물질적 흐름과 기계들의 흐름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기호들을 분석한다. “자본은 기호로 움직인다.”는 가따리의 주장에 근거하여 “오늘날 비판이론은 언어와 재현 중심의 사고를 넘어서고 있는가?”, “오늘날 기호들이 정치, 경제, 주체성의 생산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묻고 이로부터 자본주의 비판을 위한 새로운 이론과 비재현적 주체 이론을 전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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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민주주의』(조정환 지음, 갈무리, 2017)

전 세계적 정치상황과 사회운동에 대한 경험적 분석을 통해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 속에서 진동해온 민주주의 논쟁을 절대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지평의 발견과 발명을 통해 한 걸음 더 전진시키려는 것으로 이러한 주제의 단행본으로서는 국내외를 통틀어 최초의 책이다. ‘절대민주주의’라는 개념을 통해, 대선 이후 초미의 관심으로 부상할 수밖에 없는 ‘사회대개혁’이라는 문제를 어떤 방향으로 구체화해 나가야 할지를 사유할 개념적 틀과 근거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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