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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소수자를 발명해야 한다!

마우리치오 랏자라또의 『사건의 정치』 (갈무리, 2017)

 

 

신승철(철학공방 별난 공동대표)

 

* 이 서평은 2017년 11월 25일 다중지성의 정원에서 개최된 『사건의 정치』 서평회에서 발표되었으며, 독립언론 『울산저널』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s://goo.gl/QJVQAd

 

 

우리는 생태적 다양성의 경우의 수 만들어야 한다!

#2007-07일화 : 공동체에서 회의를 하는데, 중구난방 여러 의견들이 나왔습니다. 긴 시간이 흐르고, 의견의 집중이나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고 더 많은 의견으로의 가지치기와 의견의 분기가 있었지요. 한참을 인내하며 기다리던 저는 온몸이 근질거리고 참 화가 나고 짜증도 났습니다. 그래서 옆 사람에게 “의견이 너무 많아 굉장히 어수선하고 생산적이지 않네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그 많은 의견은 우리가 선택할 경우의 수가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라고 나지막이 말했습니다. 그때 저는 우리의 가능태, 경우의 수를 생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습니다.

저는 랏자라또의 책을 읽으면서 제가 겪은 이런 일화가 생각났습니다.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라는 반세계화 시위의 슬로건처럼, 우리가 선택할 경우의 수를 설립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생태적 다양성을 이루는 공동체, 네트워크, 생태계에서 경우의 수는 특이점(singularity) 하나하나의 설립 속에서 생성됩니다. 그러나 특이점은 외부로부터 다가오지 않고, 우리의 정동, 사랑, 욕망이 만든 창조와 생성의 실천으로부터 생산됩니다. 펠릭스 가타리가 제안한 특이성 생산, 차이 생산, 다양성 생산이라는 색다른 과제에 대해서 랏자라또는 공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은 ~이다”라는 식의 의미화와 모델화의 본질이 아닌, 생성과 창조로 이루어진 사건의 지도제작에 주목하자고 말합니다.

외부의 소멸을 둘러싼 지도제작

그런데 사건은 외부로부터 우발적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물론 외부를 향해 열려 있고 이방인을 환대하는 것이 공동체의 토대가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통합된 세계자본주의 시대에는 동질발생적인 문화, 향유, 소비, 미디어 등이 중심을 이루고 있고 끊임없이 외부를 포섭해 왔습니다. 이미 외부는 소멸하였다는 증후가 도처에서 보이고 있습니다. 마침내 이러한 국면에 이른 현존 문명 자체는 성장의 동력을 상실하고, 위기나 재난의 상황에서 선택할 경우의 수를 거의 갖고 있지 않습니다. 세계 어디를 가나 똑같은 삶의 형태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문명이 탄력성이나 지속가능성을 갖기 위해서라도 특이성 생산, 경우의 수의 생산이 중요해진 상황입니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동물되기라고 표현했던 ‘외부성=야생성=자율성’의 신화는 이제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자연주의는 생태주의가 아닌 상황이 도래했습니다. 자연과 생명을 몸에 털이 자라듯이 그대로 놔두기만 해도 잘 살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제 사건이 외부로부터 우발적으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부의 욕망과 정동이 특이점을 생성시켜야 사건이 생산되는 국면으로 이미 접어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는 문명의 외부의 소멸 국면에서 어떤 전략적 지도제작을 해야 할까요? ① 네그리가 <공통체>에서 단상을 밝히고 있는 우발성의 구성요소를 절차와 과정에 들어가게 하는 협치(governance)의 가능성은 생명 위기 국면에 하나의 대응책일 수 있습니다. 즉, 자연과 생명의 우발성과 예외상태를 문명 내부로 끌어들이는 거대한 협치, 위기에 강한 협치의 전략이 그것입니다. 이는 실질적 포섭의 힘을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② 또한 외부의 소멸 이후에 자본은 공동체의 경우의 수를 탐하기 시작했습니다. ‘코드의 잉여가치’라고 불리는 이러한 국면은 원격제어를 가능케 한 인지자본주의단계까지 이어집니다. 랏자라또가 말하듯 ‘경우의 수를 포획하지만 경우의 수를 생산할 가능태와 생성의 판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인지자본의 한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진정한 외부 생산은 바로 우리의 가능태의 생산, 경우의 수의 생산, 특이성 생산인 셈이지요. 랏자라또는 공중이라는 개념을 등장시켜 문명의 외부로서의 가능태를 생산할 수 있는 존재를 모색합니다.

우리는 연대할수록 달라져야 한다!

차이의 정치는 ‘차이를 낳는 차이’에 주목합니다. 사람들은 의아해합니다. 차이로 어떻게 세상을 바꾸냐고 말이지요. 그런데 랏자라또는, 들뢰즈가 말한 차이의 정치가 갖는 가능성을 더 밀고 나갑니다. 계급이라는 평면은 차이를 축소시키고 모순과 대립으로 결집시키는 몰(mole)적 구도입니다. 이 속에서는 차이는 극도로 축소되고 하나의 모델과 의미에 집중되고 수렴되지요. 그러나 그것은 바로 가능성의 축소이자, 차이의 풍부함과 다양성이 갖는 잠재력의 상실입니다. 반면 차이의 평면은 다양성과 차이를 만개시키는 분자적인(molecular) 구도입니다. 각각의 다양성 역시 고정되어 있고 주류미디어처럼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늘 생산되고 구성과정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다양성 생산, 차이 생산, 특이성 생산이 중요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차이로 인한 경우의 수의 확대는 문명의 선택지를 늘려나갈 것이며, 색다른 상상력과 전망, 대안사회의 구성을 가능케 할 것입니다.

더욱이 차이의 정치는 생태적 다양성의 1차적 차이와 그 차이와 다양성이 생산하는 색다른 차이라는 2차적 차이로 구분됩니다. 즉, 생태적 다양성이 만개하고 풍부해지고 다양해지면 색다른 차이가 생산되고 구성되는 과정으로 나아간다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차이는 미리 주어진 것이 아니라 과정적이고 진행형적인 것, 생산적이고 구성적인 것이 됩니다. 그것을 펠릭스 가타리는 이질발생으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다양체로서의 공중이 나서서 차이의 생산적이고 구성적인 힘을 전유할 가능성이 여기서 생깁니다. 즉, 공통제 생산의 무한한 과정이 등장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러한 생산적인 역능으로 인해, 기본소득의 상상력이 그저 보편적인 복지의 수혜가 아닌 비물질적인 노동의 구성과 생산의 힘에 대한 보장과 대가로서 논의되게 됩니다.

소수자되기, 특이점을 통해 풍부해지고 다양해지기

랏자라또는 하나의 모델에 집중되고 수렴됨으로써 가능한 경우의 수를 축소시키는 몰적인 노동자계급을 넘어서 분자적인 움직임 즉 소수자되기로 향하자고 거침없이 말합니다. 여기서 소수자는 양적 소수나 사회적 약자, 피해자가 아니라, 외부 생산, 특이성 생산을 가능케 할 특이점입니다. 그는 다수자주체로는 삶 전체의 역능을 고무시키는 생성변화에 참여하는 다양체로 행동할 수 없다고 꼬집습니다. 재특이화과정이라고 일컬어지는 소수자되기의 과정적이고 진행형적인 움직임, 즉, 몰적인 것이 아닌 분자적인 움직임으로 향하자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의 정답이나 해답이 있다는 의미화=모델화=표상화의 질서가 아닌, 여러 가지 대답이 있거나 아예 대답이 없을 수도 있는 문제제기의 지평을 열자는 것으로도 독해됩니다.

랏자라또는 가능성을 발명하고, 경우의 수를 발명하고, 차이를 증폭시키자고 말하며, 이를 소수자되기의 실천으로 제안합니다. 그를 통해 1968년 혁명의 뜨거운 5월을 상상하게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68년 혁명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아이되기, 여성되기, 장애인되기, 광인되기, 동물되기, 투명인간되기의 강렬한 흐름이 거리에 나설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68혁명은 잘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랏자라또의 소수자되기는 가능태를 발명하고, 세계를 재창조하고, 삶의 역능과 활력을 고무하는 실천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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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표지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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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와 기계』(마우리치오 랏자라또 지음, 신병현‧심성보 옮김, 갈무리, 2017)

들뢰즈와 가따리의 기호론으로 자크 랑시에르,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빠올로 비르노, 주디스 버틀러,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안또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등에까지 걸쳐 있는 언어중심적 정치이론을 비판하면서 물질적 흐름과 기계들의 흐름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기호들을 분석한다. “자본은 기호로 움직인다.”는 가따리의 주장에 근거하여 “오늘날 비판이론은 언어와 재현 중심의 사고를 넘어서고 있는가?”, “오늘날 기호들이 정치, 경제, 주체성의 생산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묻고 이로부터 자본주의 비판을 위한 새로운 이론과 비재현적 주체 이론을 전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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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민주주의』(조정환 지음, 갈무리, 2017)

전 세계적 정치상황과 사회운동에 대한 경험적 분석을 통해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 속에서 진동해온 민주주의 논쟁을 절대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지평의 발견과 발명을 통해 한 걸음 더 전진시키려는 것으로 이러한 주제의 단행본으로서는 국내외를 통틀어 최초의 책이다. ‘절대민주주의’라는 개념을 통해, 대선 이후 초미의 관심으로 부상할 수밖에 없는 ‘사회대개혁’이라는 문제를 어떤 방향으로 구체화해 나가야 할지를 사유할 개념적 틀과 근거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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