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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하는 여성들의 다양한 정체성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의 『집안의 노동자』 (갈무리, 2017)

 

 

박재연 (예술사학자, 문화예술교육그룹 Art PicNik)

 

* 이 서평은 웹진 <문화다>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s://goo.gl/xz5w6S

 

 

최근 한 트위터리안이 쓴 흥미로운 글을 읽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기업과 국가의 위기일 뿐 개인에겐 전혀 위기가 아니다. 그 아이가 가정에서 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과 국가는 출산율이 낮은 게 우리 모두의 위기인 것처럼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인구가 줄어서 우리에게 아쉬운 것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작년 여름 십여 년 간의 해외 체류를 마치고 돌아온 서울, 전입신고를 하러 찾은 동사무소 (주민센터는 아직 어색하다) 직원은 « 아이가 둘이시네요 !»라며 다둥이 카드 신청서를 내밀었다. 애국하시는 데 도움되시라는 말도 덧붙이며.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출산은 대중담론과 일상언어를 막론하고 ‘애국적 행위’로 승격된다. 어리둥절하고 어안벙벙한 한국식 재사회화를 한 일 년 겪다 보니, 한 가지는 확실해진다. ‘큰 아이만 낳고 귀국했으면 이번 생엔 아이 하나로 끝냈겠구나’. 저출산 대책이 국가주의적 캠페인으로 흐르는 한국 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의문을 표하기 시작한다 : 개개인이 반드시 재생산을 할 필요가 있는가 ?

달라 코스따의 ‘집안의 노동자’는, 기존의 여성과 노동 관련 정치 및 정책 연구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않은, 어쩌면 의도적으로 누락된 여성과 국가와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고찰한다. 다소 도발적인 제목과는 달리, 이 책은 단순한 가사 노동의 차원이 아니라 높은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는 노동력을 생산/재생산하는 주체로서의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생산과 재생산은 단지 출산과 양육뿐만 아니라, 변화한 사회가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관리하고 사회화하는 전략적인 역할을 의미한다. 사회적 공장(p.12)으로 변모한 가정에서, 여성들은 보다 더 ‘복잡하고 다양한 과업’(p.19)을 수행해야 했으며, 끊임없이 ‘언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하는 가정관리프로젝트의 매니저가 되어야 했다. 달라 코스따는 가사일을 조직하는 동시에 실행하는 여성의 부담을 담보로 형성된 ‘가족 중심 문화’ 프레임을 바탕으로, 뉴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다. 1장 ‘대량 생산과 새로운 도시 가족 질서’에서는, 20세기 초 미국 여성에게 강요된 물질적이고 심리적인 재생산-다시 말해 ‘훈육과 사회화’-(p.57)의 부담을 분석하고 있는데, 가족 정책이 없는 가족주의, 주택대란, 극심한 경쟁으로 치닫는 노동시장, 대량 실업, 생활 수준의 보편적 하락 등 오늘날 한국 사회와도 접점을 갖는 부분들이 많아 매우 흥미롭게 읽혔다.

이 시기 가족 이데올로기에 대한 달라 코스따의 분석이 지니는 미덕은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직관적이면서도 촘촘한 시각이다. 1920년대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한 전자 기기 덕분에 육체적이고 가시적인 노동의 강도는 줄어들었으나, 가족의 가치를 높이는 사회화 기능이 더욱 중요시되면서 비물질적 과제는 더욱 확대되었다. 자식을 키우고 남편의 재생산을 돌보는 일상적인 일은 더 다양하고 복잡해졌으며(p.46), 아내는 ‘좋은 관리자’(p.35)가 되어 최소 비용으로 최대 성과를 내어야 하는 합리적인 노동시장의 일원이 되었다. 달라 코스따는 가정학의 대두와 같은 사회문화적인 맥락을 통해 만들어지는 ‘나쁜 엄마와 나쁜 아내’의 프레임을 고발한다. 헌신하는 마음, 헌신하는 노동에 대한 사회심리학적 부담은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중요한 문제로, 동등한 가사 노동의 현장에서 ‘여성만 무언가를 더 생각해야 하는’ 이중적인 책임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져준다.

2장 ‘1929년 대공황과 가족 붕괴’와 3장 ‘투쟁 방식과 실업자 결집’에서 달라 코스따는, 성별 문제에 인종 문제를 결합하여 1929년 대공황과 노동운동에 대한 보다 종합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노동운동 관련 활동가로서 달라 코스따의 전문성이 돋보이는 이 부분에서, 저자는 대공황으로 인한 가족 해체, 위축된 가족 형성과 출산 (p.77)에 맞서 국가가 재건하고자 했던 것은 백인 가족이었음을 꾸준히 강조한다. 흑인 공동체에 대한 차별, 궁극적으로 가사노동으로 돌아가야 하는 존재로서 상정된 여성에 대한 차별을 고발하면서, 달라 코스따는 빈민가 흑인 공동체가 보여준 매우 흥미로운 양상에 주목한다. 해당 공동체에서 여성은 가난 때문에 남성에게 지나치게 의지하지 않고, 무료 가사 노동을 무제한으로 연장하지도 않았거니와, 성적인 통제도 받지 않았다 (p.83). 남녀는 완전히 개별화되어 물리적 환경뿐만 아니라 남녀 상대방에 대해서도 아주 ‘합리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다. 물론 위생상태, 사망률, 사생아 출산, 낙태율 등 달라 코스따가 이 공동체의 모든 모습을 이상적으로 보는 것을 아니지만, 친족구조를 바탕으로 한 공동체의 물리적, 정치적 재생산을 위한 독특한 협력에서 살아있는 저항 세력의 가능성을 읽어낸다.

제목에 위배되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물론 이 저작의 원제는 ‘가족, 복지와 국가’다) 인종과 계급 문제에 집중한 분석을 통해, 궁극적으로 달라 코스따가 주목하는 것은 집단 전체 사고방식의 근본적인 변화(p.124)다. 1932년 시위를 통해 흑인 조직 활동이 변화되었고, 국가에 대한 투쟁의 요구사항이 이전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새롭고 강력한 단계로 발전하게 되었다 (p.110). 흑인 노동 운동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게 언급된 여성의 투쟁이 입체적으로 그려지지 못한 점은 아쉽게 여겨지는데, 당시 전형적인 여성은 ‘한때 가장이었던 남편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한편 뒤에서 일을 처리해야 했고, 동시에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주도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p.97-98) IMF 사태 혹은 오늘날 남편 은퇴 후의 여성의 삶을 떠올리게 하는 당시의 상황 묘사를 보며, 투쟁의 진지함 정도나 규모, 의의를 논할 만큼의 여성들의 투쟁은 양적으로 적었다는 달라 코스따의 분석에, 이것은 투쟁 불가능의 문제 (경제구조적이고 사회심리적인 이유에서)이지 여성의 투쟁과 연대에의 의지가 박약했기 때문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첨언한다.

4장 ‘후버와 루즈벨트’, 5장 ‘여성과 가족, 복지, 유급노동’은 대공황 이후 뉴딜 정책을 통해 국가가 노동력 재생산 과정을 담당하는 주요 주체로 나아가는 과정과, 이에 맞서 투쟁한 실업자, 노동자, 여성의 모습들을 그리고 있다. 효율성과 기업, 기회와 개인주의, 실질적 자유방임주의와 같은 미국적 가치가 공고해진 시기에 닥친 대공황에 맞서 국가는 가족 모형의 기초를 기둥부터 다시 세워야 했다. 기존 사회 질서가 가족의 안정을 기반으로 성립되고 가족이 남성이 벌어오는 임금으로 유지되는 한, 소득을 마련하는 남성과 이를 바탕으로 가사노동을 하는 여성의 모델은 하나의 레퍼런스로 자리잡아야 했던 것이다. 주택소유주대부법 등은 가족이 거처할 곳을 국가가 마련해줌으로써 노동력을 재건하고 안정시키기 위한 방법이었다. 뉴딜 정책의 대표 실업 타개 정책이었던 대규모 토목사업에서, 대다수 여성은 배제되었고, 흑인은 심각하게 받았다.

달라 코스따는 뉴딜 복지정책과 어머니 투쟁, 사회보장법 통과 등을 역사적으로 고찰하는데, 이 부분에서 뛰어난 사회사학자로서의 면모가 돋보인다. 그녀의 분석에 따르면, 자본과 계급 사이의 갈등은 투쟁 분야를 객관적으로 확장하면서 갈등 상황 속에서 새로운 국가 활동을 위한 기초를 다졌(p.176)고, 이를 바탕으로 1960년대 여성은 정부로부터 받는 돈에 지원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것을 거부하면서 이 돈이 자녀 양육이라는 노동에 대한 임금임을 주장(p.174)하게 되고, 1970년대 여성은 자녀 양육 분야에서 모성이 가족제도에 속박되는 것을 계속해서 거부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집안의 노동자>라는 제목을 <집안에서도 노동하는 자>로 읽히게 하는 ‘집 밖에서 일했던 여성들’에 대한 예리한 분석을 통해, 달라 코스따는 고용 범위의 차이, 임금 격차 등의 지표를 기반으로 당시 여성의 유급노동 상황을 섬세하게 비판한다.

대공황이 붕괴시킨 가족을 가능한 한 빨리 재건하고 안정시키려 했던 뉴딜 정책 지지자들은 여성의 일자리로 가정 또는 집이 유일하다고 생각하였고 (p.204), 부엌에 중점을 두어 설계된 단독 주택 건설을 장려하였다. 가사 노동의 육체적인 업무를 간소화 시키고 개별 과제를 수행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단축시켜줌으로써 여성을 ‘자유롭게’ 하여, 심리적, 정서적 노동력 재생산에 더욱 전념하게 만든 것이다(p.209). 한층 복잡해진 아내 및 어머니 상은 주로 중산층 여성을 겨냥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여성들에게 하나의 모범으로 자리잡게 (p.206)되었다. 여성 고용을 장려하는 것은 뉴딜의 합리화 과정에 부합하지 않는 일이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달라 코스따는 정부 차원과 학계 차원을 함께 고려하며 정책과 연구 이면의 욕망을 고발한다.

<집안의 노동자>는 제목과는 달리 가사 노동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가사 노동에 대한 재정의와 가치 평가 작업의 선봉에 섰던 작가의 입체적이고 꼼꼼한 분석에도 불구하고, 투쟁의 목소리의 당위를 거세당한 중산층 백인 여성에 대한 포커스와 투쟁을 해야 했고 실제로 투쟁을 했던 노동자 계층 여성에 대한 포커스가 엇갈리며 서술되어, 여성의 노동을 지나치게 거칠게 분류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전업과 워킹이라는 이분법적인 프레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책은 여성 노동력에 대한 복합적인 접근과 더불어, 노동하는 여성들의 다양한 정체성에 대한 발화의 필요성을 제시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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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영점』(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황성원 옮김, 갈무리, 2013)

페데리치는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지불을 요구했던 1970년대 여성운동에서 출발하여 1990년대 이후 여성운동의 제도화에 대한 비판과, 신자유주의의 등장으로 더욱 열악해진 삶의 조건들을 회복하기 위한 공유재 재구축을 위한 운동까지, 급진주의 여성운동에 몸담아 왔다. 『혁명의 영점』은 이러한 여성투쟁의 본질에 대한 페데리치의 40년간의 연구와 이론 작업을 집대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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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번과 마녀』(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황성원·김민철 옮김, 갈무리, 2011)

자본주의의 역사에 있어서, 남성이 임금 노동자로 탈바꿈된 것만큼 여성이 가사노동자이자 노동력 재생산기계로 되었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는 페미니즘 역사서이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물질적 토대를 닦았던 이 폭력적인 시초축적 과정에서 마녀사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이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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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와 자본주의』(마리아 미즈 지음, 갈무리, 2014)

『에코페미니즘』,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의 저자로 알려진 에코페미니스트 마리아 미즈의 고전적 저작. 가사노동, 비공식 영역의 노동, 식민지에서의 노동과 자연이 만들어 내는 생산(물)이 경제의 수면 아래 있는 보이지 않는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4, 5백년 동안 여성, 자연, 식민지는 문명사회 외부로 축출되고, 가려져 왔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는 이 ‘빙산의 보이지 않는 부분’이 왜 가려졌는지, 이 부분의 가치와 비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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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물질노동과 다중』(안또니오 네그리, 질 들뢰즈 외 지음, 갈무리, 2005)

'신자유주의, 정보사회, 탈산업사회, 주목경제, 신경제, 포스트 포드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의 응답을 한 권에 엮은 책. '물질노동이 헤게모니에서 비물질노동의 헤게모니'로의 노동형태 변화를 주요 현상으로 지적하고, 비물질노동의 두 축인 정동노동과 지성노동을 분석한 후, '다중'이라는 새로운 주체성의 형성에 비물질노동이 미치는 영향을 살핀다. 1부에는 '정동'에 관한 질 들뢰즈의 연속 강의, 2부에는 마우리찌오 랏짜라또와 삐올로 비르노의 글을 실었다. 3부에서는 새로운 주체성, 미적 생산, 시간의 재구성의 문제를 실마리로 비물질노동 개념을 발전시켜 보려는 나름의 이론적 개입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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