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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k ☆140자 다지원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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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서 읽는 ‘인지적 마음의 흔적’

김진호,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 (갈무리, 2017)

 

 

박찬울 (다중지성의 정원 회원)

 

* 이 서평은 <웹진 문화다>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s://goo.gl/ESasrn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기타를 맨 채 지하철을 타고 있었다. 그러다 불현듯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다.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언젠가 맡아봤던 냄새를 느낀 것이다. 습기 찬 곰팡이 냄새인지 옷의 찌든 냄새인지 알 수 없었지만 곰곰이 생각을 해보다 한순간 머리를 탁 치며 깨닫는다. 과거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시절 연습실에서 질리도록 맡았던 냄새이다. 동시에 입시를 하던 그 때 질리도록 듣고 연습했던 Wes Montgomery의 In your own sweet way가 생각난다. 그러면서 과거에 느꼈던 복잡한 감정들, 성공욕, 불안, 경쟁, 그리고 재즈가 떠오른다.

세상 어디를 가도 음악이 가득하다. 길을 걷는 사람들 귀의 이어폰에서는 끊임없이 음악이 재생되고, 카페에 가도 스피커에서 음악이 끊이질 않으며, 앞에 앉아 있는 친구는 시키지도 않은 어떤 선율을 흥얼거리고 있다. 심지어 집에 들어가기 위해 도어락을 열 때도 '띠리링' 선율이 울린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음악은 하루의 대부분에 함께하고 있다. 우리는 왜 이리도 음악을 좋아할까? 아니면 좋든 싫든 음악 없는 삶이란 게 존재하기는 했을까?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는 우리의 삶에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이 음악의 근원을 탐구한다.

이 책은 음악이 단순히 삶의 부속품내지 장식품처럼 여겨지는 생각들을 공격한다. 오히려 음악은 인류 역사와 하나였다. 이 책의 관점에 따르면, 생명체가 생존 욕구를 통해 진화하면서 발달한 감각 기관들과 인지 능력은 우리가 음악을 하는 방식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어디에 사자가 있는지 감지하는 사슴의 귀는 왼쪽에서 첼로가 들리고 오른쪽에서 바이올린이 들린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인간의 귀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음악활동이 몸의 작용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이 화폐로 교환가능한 세상에 살아가면서 음악은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밖에 있는 것, 즉 구입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음악하는 인간'이라는 뜻인 '호모 무지쿠스'는 우리 안에 내재된 음악성을 되살리는 용어이다. 하지만 저자는 인간과 음악을 탐구하기엔 호모 무지쿠스라는 용어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하며 이는 호모 사피엔스로 채워져야 한다고 말한다. 즉, 인간 자체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이 책은 '음악 하는 인간으로서의 모차르트' (그렇다면 제목이 모차르트 호모 무지쿠스가 될 것이다.)가 아니라 더욱 포괄적인 인간으로서의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를 탐구한다. 그렇다면 '호모 무지쿠스'라는 단어에는 무엇이 결여되어 있는 것일까?

'음악가'라는 직업은 조금 이상하다. 우리 모두가 음악을 하는 호모 무지쿠스일텐데, 어떤 사람은 '음악가'이고 다른 사람들은 '비음악가'인가? 좀더 깊고 전문적인 공부를 한 사람들이 '음악가'인가? 자본이 전문직 음악가를 양성하고자 하는 것은 좋은 수익을 내줄 수 있는 상품에 투자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본의 탐욕에 대한 비판을 제외하더라도, 음악가가 점점 더 전문직이 되어 가는 것은 음악의 주체들을 분화 시키는 문제를 가진다. 음악의 공급자, 수용자는 철저히 나뉘어지며 서로의 역할이 분명하게 정해진다. 공급자는 생산하고, 수용자는 소비하는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음악의 주체는 작곡가(음악의 공급자)와 감상자(음악의 소비자)로 분리되지 않는다. 이 책에서 이 두 종류의 주체는 하나로 통합된다. 바로 통합적 마음을 가지고 음악을 대하는 인간이다. 이를 위해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는 마음을 연구하는 수단으로 과학을 동원한다. 그럼에도 이 책은 과학과 거리가 먼 음악가들에게도 좋은 과학 입문서가 되고, 그 반대도 가능하게 한다. 이 책은 호모 무지쿠스로서의 독자와 호모 사피엔스로서의 독자를 통합하게 해준다.

인류의 근원과 현재 우리가 음악을 사유하는 방식을 연관시켜 탐구하는 방식은 흥미롭다. 흔히 음악은 비과학적이고 신비로운 것으로 여겨지거나, 혹은 반대로 작곡가의 통제에 놓여 있는 도구로 인식되어 왔다. 어느 작곡가의 “제 음악에는 특별한 메시지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라는 인터뷰는 자신의 음악이 정치나 사회 현상과는 무관한 순수 예술임을 증명하려 애쓰는 듯하다. 반면 작곡가가 곡에 명확한 감정과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도 있다. 비 내리는 거리의 쓸쓸함, 사랑 고백 이야기 등등… 음악은 정말 메시지가 있는 음악과 메시지가 없는 순수 음악으로 나뉠 수 있을까? 현실과 무관한 순수한 예술의 세계가 존재할까?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해 다소 도발적인 대답을 내놓는다. 사회와 분리된 예술이란 없다. 사회로부터 자유로운 창조적인 개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과 무관하다고 주장하며 예술 자체의 가치만을 강조하는 자율적 음악이라 할지라도 ‘인지적 마음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118p) 즉, 어떤 작곡행위도 삶과 유리되지 않는다.

작곡행위와 마찬가지로 감상행위도 생각해볼 수 있다. 감상은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다. ‘사회와 분리된 예술이란 없다’고 말할 때 ‘사회와 분리된’ 작곡이란 없으며 ‘사회와 분리된’ 감상도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래된 통념은 곡이란 작곡가의 의도에 따라 만들어 지며, 곡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이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작곡가의 마음이 반영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작곡가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하고, 심지어 다른 방향으로 이해하는 감상태도는 잘못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좋은 곡이란 더 명확하게, 확실하게, 성공적으로 의도와 내용을 전달할 수 있도록 작곡되어야 한다. 지난 2016년 박근혜 퇴진 운동 당시 친박단체에서 신중현 씨의 <아름다운 강산>을 불렀던 것을 기억해보자. 그리고 그 아들 신대철 씨가 격분하여 ‘이것이 진짜 아름다운 강산의 의미이다’라면서 광화문에서 <아름다운 강산>을 연주했었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강산>은 작곡가의 의도가 효과적으로 투영되지 못해서 감상자마다 다르게 이해한 것일까? <아름다운 강산>은 신중현 씨가 권력자-박정희를 찬양하는 곡을 쓰라는 요구를 거부하고 조국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내용을 담은 곡이다. 신대철 씨로서는 지금의 권력자-박근혜를 옹호하는 집회에서 이 곡이 불리는 것을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이는 <아름다운 강산>이 곡 자체만으로는 자신의 본래 의미를 지켜낼 수 없음을, 신대철 씨가 적극적으로 성토하지 않고서는 지켜낼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감상자의 자의적 해석이 작곡가의 의도만큼 강한 힘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바그너의 오페라 <리엔치>가 드레스덴의 진보적인 독일인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반면, 파리의 중산층에게서는 외면 받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심지어 이 오페라가 히틀러에게는 냉혹한 권력의지를 주게 된 것은 왜일까? (56p) 이처럼 감상자들은 저마다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그 원인은 인간의 마음작용에 있다.

저자는 작곡가의 의도와 감상자의 자의적 해석 사이에서 어느 편을 들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갈등 구도는 음악이 인간의 마음과 관련이 없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다. 즉 호모 사피엔스라는 인간으로서 모든 작곡행위, 감상행위는 작곡자, 감상자의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 작곡에 작곡가의 삶이 투영되듯이, 감상에는 감상자의 삶이 투영된다. <아름다운 강산>을 부른 친박단체의 마음에는 아름다운 대한민국에 대한 찬양과 위협받는 조국, 그것을 지켜내야 할 의무 등이 투영되어 있었다. 그 반대편, 탄핵 시위에서 <아름다운 강산>을 부른 촛불 시민들의 마음에는 독재자에 대한 저항, 국민 주권의 민주 공화국 정신이 있었다. 그들은 같은 곡에서 서로 다른 삶의 경험을 통해 다른 감상을 도출해냈다. 다만 신대철 씨의 주장처럼 친박단체는 작곡가의 마음과 감상자의 마음이 연결되지는 못한 듯하다. 감상자는 자신의 마음에 기반해서 감상을 하지만, 작곡가의 마음도 고려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작곡가는 감상자를 고려하면서 작곡을 한다. 그렇지 않고 순수하게 독자적으로 보이는 작곡/감상 행위가 있을지라도 인지적 마음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는 그다지 쉬운 책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음악과 진화심리학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힘들다. 이 책의 주장 자체가 ‘작곡, 지식과 과학의 반영’이기에 음악서적인 동시에 과학서적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기초 지식이 있어야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음악가의 입장에서도, 사회학자, 과학자의 입장에서도 혹은 음악의 감상자인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도 접근하기 좋게 만들어진 책이다. 어쩌면 이 책이 다루는 내용들이 음악가만을 위함도 아니고 학자들을 위함도 아닌, 모두를 아우르는 호모 사피엔스, 인간을 위함이기 때문일 것이다. 음악이 인류의 생활에 너무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면 인간을 탐구하는 것은 음악을 통해서도 가능하지 않을까?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는 음악을 통해 인간을 탐구하고, 인간을 통해 음악을 탐구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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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의 음색』(김진호 지음, 갈무리, 2014)

우리 주변의 소리 중에는 악음(도, 레, 미 등)보다 소음이 훨씬 더 많고 종류도 다양하다. 그런데 근대 작곡가들은 어째서 소음을 음악의 재료로 여기지 않았을까? 멋진 풍경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리는 경우는 허다하다. 왜 지리산의 시냇물 소리는 녹음하여 블로그에 올리지 않을까? 우리의 음악청취 경험은 언제부터, 무슨 이유로 고전음악과 대중음악으로 한정되었을까? 음악의 가능성은 거기까지일까? 이 책은 근대 서양음악의 역사와 이론을 ‘음색’과 ‘소음’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비판적으로 조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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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간의 탄생』(조정환 지음, 갈무리, 2015)

예술성이 협의의 예술사회는 물론이고 생산사회와 소비사회 모두를 횡단하면서, 예술의 일반화, ‘누구나’의 예술가화, 모든 것의 예술 작품화라고 부를 수 있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예술의 범람에도 불구하고, 센세이셔널한 예술종말론들이 유행하고 있다. 어째서인가? 종말로 파악할 만큼 급격한 예술의 위치와 양태변화는 항상 새로운 주체성의 대두와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단토, 가라타니 고진, 벤야민 등의 예술종말론들은,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기에 나타난 예술적 변화를 예술종말로 파악한 과거의 관점들(헤겔, 맑스)을 산업자본주의에서 인지자본주의로의 이행이라는 다른 맥락에서 되풀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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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로서의 삶』(재커리 심슨 지음, 김동규·윤동민 옮김, 갈무리, 2016)

우리가 이 땅에서 먹고, 마시고, 말하고, 즐기고, 고통을 받으며 숨을 쉬고 있는 한 자기의 삶에 대한 관심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재커리 심슨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이 좋은 삶인지에 대한 물음에 예술로서의 삶이라는 철학자들의 통찰을 나름의 해법으로 제시한다. 니체, 아도르노, 마르쿠제, 하이데거, 메를로-퐁티, 마리옹, 카뮈, 푸코에 이르기까지 19~20세기를 수놓은 기라성 같은 철학자들이 제시한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저자는 ‘예술’을 매개로 정돈한다. 참된 자유가 구현될 수 없는 조건 속에서도 ‘세계’는 우리에게 창조적 삶을 살 수 있는 소재들을 끊임없이 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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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럭서스 예술혁명』(조정환·전선자·김진호 지음, 갈무리, 2011)

플럭서스 예술운동에 대한 한국 최초의 본격연구서이다. 플럭서스는 전통적이고 경직된 재현적 예술체제를 타파하고 예술을 삶과 통합시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모색하고 실험하고 실천하였다.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해체하고, 예술적인 것에 대한 제도적 ․ 전통적 통념을 넘어, 예술과 삶 그리고 존재와 생명의 통일을 실천했던 플럭서스 총체예술을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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