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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잉여 ― 암(cancer)과 되기(becoming)

[서평]잉여로서의 생명

 

이정섭 (수의사)

 

* 이 서평은 2017.1.8.(일) 2시 <다중지성의 정원>에서 열린 <잉여로서의 생명> 서평회에서 발표되었습니다. http://waam.net/xe/free/469675

 

* 이 서평은 『진보평론』 2016년 겨울호(제70호)에 게재되었습니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오직 영원한 것은 저 푸르른 생명의 나무이다.

― 괴테, 『파우스트』

 
“유전자 조작기술 어디까지 왔나?” “약품-臟器(장기) 대량공급 멀지 않다.” “암·에이즈 정복…손상된 신체 복제.”  2005년, 황우석 박사는 『사이언스』지에 사람 난자로부터 환자맞춤형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를 세계 최초로 추출했다는 내용의 논문을 실었다. 당시 모든 신문은 황우석 박사의 연구 성과를 이렇게 앞다투어 보도했다. 모든 언론은 생명공학이 열어줄 황금빛 미래를 생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미래의 약속은 “생명 신기원 열 땐 돈방석”, “과학자-거대자본 ‘쌍끌이’ ” 등의 기사처럼 이 생명공학이 가져올 경제적 축복을 지시했다. 주지하듯황우석 박사의 이 연구는 해프닝으로 막 내렸다. 하지만 그 사건이 가져온 생명공학과 관련된 미래의 약속과 경제적 축복의 기원은 사라지지 않았다. 


『잉여로서의 생명』은 생명과학과 그 관련 학문이 미국 신자유주의라는 프로젝트와 결정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신자유주의와 생명공학 산업은 상업주의적 생산의 종말과 연관된 성장의 생태학적이고 경제학적인 한계를 미래의 투기적 재발명을 통해 극복하려는 야심을 공유하고 있다”(p 31)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저자의 이런 관점을 통해, 왜 황우석 박사의 생명공학의 성과가 “돈방석”과 “쌍끌이”의 경제적 약속과 연관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성장의 생명공학적 미래상과 경제 성장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이론의 역사는 동시에 탐구되어야 한다”(p 41)고 주장한다. 따라서 “생명경제에 대한 비판에서는 요즘의 이론 생물학과, 경제 성장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수사 간의 긴밀한 의견 교류를 간과”(p45)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 ‘생명’이라는 모든 인간에게 내재된 어떤 기원을 신자유주의의 연장 속에서 조명하고 있다. 이 과정은 생명이 신자유주의의 지정학적 조건에서 어떻게 논의되고 포획되는지를 다루는 생명 지식의 고고학이며 생명 권력의 계보학이다. 


유기체로서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 우리 인간에게 생명은 가장 소중할 수밖에 없다. 이 소중한 생명을 어떻게 이해하고 행동하는가는 우리 삶을 규정할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가 점령하려는 곳은 바로 이 생명이다. 그런데 이 생명이 어떤 생산과 재생산의 과정을 겪을 때, 이 과정의 주요 생산자와 소비자가 여성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다시 말하자면 생명의 신체, 그중에서도 여성의 신체는 신자유주의의 일차적인 포획대상일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하에서 “생명의 재생산은 국민의 여성들에게 부과되는 부채노예의 특정한 형태가 된다.”(p 300) 


지은이가 여성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멜린다 쿠퍼(Melinda Cooper)는 그녀 자신이 생물학적인 여성이기에, 여성의 신체가 받는 위협을 간과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들뢰즈의 소수자 ‘되기’가 함의하고 있는 ‘여성-되기’는, 바로 저자의 이론적 실천의 동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마침 들뢰즈 전공자였다. 파리8대학에서 들뢰즈와 가따리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시드니 대학에 재직 중이라고 한다. 그녀의 이 책 『잉여로서의 생명』(갈무리, 2016)은 그녀의 첫 저서로서 미국 생명공학의 발전과 신자유주의의 발흥을 연결시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갈무리 편집부 소개글) 이 책 이외에 캐서린 월비(Catherine Waldby)와 함께 『임상 노동 : 지구적 생명경제에서의 인간 연구 피험자와 신체조직 기증자』(2014)도 중요한 저서로 취급되고 있다. 그녀는 이 책에서, “중국과 인도의 사례를 중심으로 신자유주의적 생명경제에서 임상 시험에 참여하며 위험을 체화하는 노동의 변화”를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옮긴이 안성우 님의 지적대로 이 책이 미국의 신자유주의와 생명과학을 중심으로 기술된 것을 염두에 둔다면 그녀의 앞으로의 연구가 미국을 넘어 중국과 인도 그리고 한국에까지 이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 


“현재 기술혁신이 이끄는 생명경제에 대한 폭넓은 역사적, 이론적, 정치적 논의들을 이렇게 한 번에 살펴볼 수 있었던 덕분에, 이 번역은 번역자로서는 부담스러운 작업이었지만 독자로서는 즐겁고도 고마운 배움의 기회였다”(p 319)라는 옮긴이의 후기의 문장에서 안성우 님이 지적한 대로 이 책은 생명과 관련된 다양한 스펙트럼을 담고 있다. 게다가 철학자 푸코의 고고학과 계보학의 방법론을 수렴하고, 위상수학과 유클리드 기하학의 수학적 담론과 노동가치론을 비롯한 공급 측 경제이론까지, 미국의 복음주의 우파의 역사적 변천과 현재의 활동상을 폭넓게 기술하고 있다. 옮긴이의 번역자로서의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고 독자로서 이 책을 덮고 늘어난 지식의 양에 감사할 수 있었다. 번역서의 껄끄러움을 없애기 위한 옮긴이의 노력도 엿볼 수 있었다. 


이런 사정으로 이 서평을 쓰면서 ‘어떻게 이렇게 풍부하고 폭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책을 소개할 것인가?’를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을 3부로 나누어서 개괄하려 한다. 이렇게 나누는 것은 들뢰즈가 『철학이란 무엇인가?』 에서 스피노자의 도움으로 설정한 내재성의 구도, 개념적 인물들, 개념, 이 세 지평의 패러디다. 즉 이 책을 신자유주의의 구도, 생명, 그리고 신자유주의 구도에서 생명 현상이 재생산하는 개념으로서의 생명권, 배아줄기세포, 특허권, 복음주의, 신제국주의 정치경제학 등을 일별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결론 부분에서 이 책이 던진 ‘잉여’를 분석하고 나는 두 종류의 잉여를 설명할 것이다. 즉 현재로 포획되는 잉여와 생성하는 잉여. 전자는 망각하지 않는 잉여이다. 후자는 망각하고 생성하는 잉여이다. 생명에 대한 화두는 후자에 가까운 게 아닐까? 

 


1. 신자유주의의 구도   

 

데이비드 하비가 어떤 ‘교리’라 부른 신자유주의는 자유주의와 구별된다. 쿠퍼 역시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구별을 전제한다.(p 16 주1) 이 책에서 쿠퍼가 자유주의와 구별되는 신자유주의 특징을 몇 가지로 선별해 설명한 것을 추리자면 다음과 같다. 

 

1) 국가와 금융자본의 그 어느 때보다 강고한 동맹의 구축이다.(p 16) 하비가 지적했듯이 신자유주의 경제하에서 세계경제는 거의 상승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가 생산성의 증대보다는 불균등한 배분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위 계급은 성공적으로 자신의 부와 권력을 집중시킬 수 있지만 그 밖의 모든 영역에서는 상품화의 촉진, 사회복지의 철회, 성과급 노동시장의 도입, 기후온난화, 오존층의 파괴, 채무국의 자원 남발 등이 가속화된다. 신자유주의는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와 금융자본의 동맹, 국가 재정의 재분배, 민영화 등을 발생시킨다. 이 과정에서 신자유주의는 자신의 약속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의 폭력을 반드시 요구한다. 신자유주의적 폭력의 수사학적 형태는 이 책의 ‘생물학적 안보, 그리고 “복합적 비상사태”(complex emergency)라는 개념’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3장 「인도주의적 전쟁의 귀환: 테러와의 전쟁과 전쟁대응」)

 

2) 미국의 신자유주의라는 프로젝트는 생명과학의 새로운 가능성과 결정적으로 연관되어 있다.(p 17) 쿠퍼는 생명과학이 정치경제학의 전통적 개념들을 피할 수 없고 경제학적 범주들의 범위를 생명과학과의 관련 속에서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배경에서 생명의 분자단위(줄기세포주?)부터 생물권(biospheric) 규모의 생명과학을, 생물학적 특허와 대재해 채권(catastrophe bonds)을 아우르는 재산법의 새로운 정의로 확장한다. 또 생물학적 성장, 복잡성, 진화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신자유주의적 축적이론과 연관시킨다. 


또한 신자유주의 담론은 복지국가의 생산과 재생산, 노동 그리고 인권담론을 지워버리고 전체 사회 체계를 관통해 시장의 경제적 형태를 일반화한다. 이 지점에서 쿠퍼는 신자유주의 이론의 흐름이 카오스 및 복잡성 이론의 발흥 및 조지프 슘페터의 진화 경제학(1934), 그리고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1969)가 제안한 자기 조직하는 복잡 모델로의 회귀와 밀접하게 연관되었다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는 이들 이론이 설명하는 생명의 “규제되지 않고” “한계를 넘어서는” 능력으로부터 더욱 극단적인 이윤을 얻는다.

 

3) 신자유주의는 끝없이 잉여를 위한 자신의 가능성을 재생하는 자본의 투기적인 축적의 논리를 대변한다. 신자유주의가 약속하는 것은 단순한 자본의 재생이 아니라 미래에서 지구 자체의 재생에 대한 믿음이다. 이 믿음은 신자유주의가 활기를 띤 세상에서 지구 자원의 최종적인 고갈이나 성장의 생태적 한계란 없으며, 적절한 시점이 되면 때맞춰 신자유주의는 그 자체의 끊임없는 부흥으로 갱신되고 다시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이 영구적인 잉여의 약속은 신자유주의가 제시하는 새로운 복음주의이다.(6장)   

 

4) 신자유주의는 지리적으로 불균등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국가별로 다양한 방식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 이 책이 주로 미국의 신자유주의에 제한된 측면이 있어, 쿠퍼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남미, 동유럽, 인도, 중국 및 한국을 포함한 여타 아시아 경제들로 대규모의 외주가 진행 중인 최근 임상 시험 산업의 점증하는 초국가적인 지평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신자유주의는 미국의 신자유주의와는 전혀 다른 공고화의 과정을 거치고 다른 위기를 겪을 것이다. 따라서 이들 나라의 신자유주의와 생명정치 담론은 새로운 연구 과제로 남아있다. 
     

 

2. 생명

 

신자유주의하에서 생명은 그 자체로 사유되지 않는다. 생명은 ‘Life is ~ ’처럼 항상 3인칭으로 자신을 전개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즉 신자유주의하에서 생명은 생명경제, 생명공학, 생명정치, 생명권 등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이 책의 각 장에서 생명이 어떻게 자신을 전개하는지 살펴보자. 

1장에서 생명은 생명경제로 발명된다. 이때 생명경제는 포드주의적 산업 생산을 지배하던 생산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생명경제에서 생명은 생명 그 자체가 생산성으로 발명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농업 분야 사업은 화학 비료와 제초제의 대량 생산에 따른 이윤 대신, 식물 자체의 생산을 통해 생물학적 생산을 잉여 가치의 창출을 위한 수단으로 전환하는 발명 쪽으로 선회하고자 했다.(p 50) 


2장에서 저자는 HIV/AIDS의 확산, 현대 제약 산업의 구조적 폭력에 초점을 맞춰, 특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관점에서 채무 제국주의의 문제에 접근한다. 이 지역은 혹독한 부채와 HIV/AIDS 감염자의 증가로 고통 받고 있다. WTO의 새로운 특허법, 미국 및 유럽 제약 기업들의 가격 전략에 의해 극히 소수만이 새로운 항레트로바이러스치료를 받을 수 있다.(p 102) 쿠퍼는 이 HIV/AIDS 문제가 전개되는 양상을 채무 제국주의의 생명 정치적 형태의 징후라고 주장한다. 이 징후는 더 나은 삶에 대한 신자유주의의 약속이 반드시 폭력을 수반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3장에서는 부시 행정부의 생물학적 방어의 연구와 더불어 생의학과 군 사이에 새로이 형성된 제도적 연합뿐만 아니라 두 영역 사이에서 일어난 개념적 교환에 관해 설명한다. 특히 생물학적 창발성, 내성, 그리고 선제성 같은 개념의 복잡한 역사와 이들 개념과 미국 국방 담론의 교차에 주목한다. 


4장은 조직 공학이 등장한 1990년대 후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시기는 생물학에서 만능 인간배아줄기 세포주가 배양되었고, 성체줄기세포의 가소성, 변화가능성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조직 공학은 신체의 재생 가능성에서 면역원성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됐다. 이 조직 공학이 활용하고 있는 힘의 연속적인 변조는 위상학적 공간의 수학과 연관된다. 조직 공학에는 신체의 연속적인 기하학적 배열을 재생하기 위해 초기 배아의 위상공간을 재생산하려는 목표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이 가능성이야말로 포드주의와 정반대인 포스트 포드주의적인 생의학 생산 기법을 특징짓는다. 후기 산업시대의 몸은 생명의 잉여와 구분 불가능한 잉여 생산성에, 즉 과잉생산의 위기 혹은 위험하고도 과도한 암의 생명력에 의해 압도될 공산이 크다. 


5장에서 설명하는 줄기세포 과학의 더 넓은 학문 분야로서의 재생 의학(regenerative medicine)과 재생산 의학(혹은 생식 의학[reproductive medicine])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전자는 산업적인 가축 생산의 맥락에서 시작해 나중에 부인과학(gynecology)이라는 독자적인 연구 분야로 등장한다. 여타 포드주의적 제조 분야들처럼, 이들 공정의 목적은 재생산 노동에서 잉여가치 생산을 증대하는 것에 있다. 반면 줄기세포 과학인 재생의학은 생물학적 약속 그 자체를, 발생기의 변형 가능성의 상태로 생산하고자 한다. 즉 생물학적 약속이 자기-재생적, 자기-축적적, 그리고 자기-갱신적이 되도록 하는 배양 조건을 발견하고자 한다. 줄기세포과학은 배아줄기세포가, 아직 실현되지 않은 생명의 잉여의 형태로, 영구적으로 자신의 잠재력을 재생할 수 있도록 이 세포들을 배양하고자 한다. 이 재생의학의 대표적인 기업이 ‘제론’사이다. 이 기업은 미국의 특허법 확대에 의해 배아줄기세포의 자기 재생을 잉여가치로 축적할 수 있는 지위를 획득했다. 즉 생명과학에서 중요한 새로운 변화는 생물학적 생명의 상업화가 아니라 생명의 투기적 잉여가치로의 변형이다.(p 265)


6장에서 부시는 그의 선거 운동 당시 내세웠던 생명 옹호-낙태 반대 의제와 일견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연구비 사용을 승인하다, 한편 생명은 양도불가능한 선물로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특허를 받은 배아줄기 세포주는 끝없이 재생이 가능한 선물, 자기 재생적이면서 또한 자기 가치 증식하는 자본으로 기능하는 듯 보인다. 이를 통해 그는 신보수주의, 신자유주의적 경제학, 생명 옹호 혹은 생명정치의 문화를 교묘하게 엮어내고 있다. 또한 생명옹호의 복음주의 우파의 생명권 정치는 세계 경제에서의 미국 채무의 역할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이처럼 쿠퍼의 생명은 신자유주의의 구도하에서 다양한 통시적 인과 관계와 공시적 사회적 관계들에 의해 자신의 본질을 드러낸다. 이 생명은 경제, 정치, 문화, 사회 등 인접한 관계들을 통해 이론적으로뿐만 아니라 실천적으로도 스스로를 현시한다. 이 책에서 독특한 점은 신과학운동으로 대별되는 복잡성이론이나 생명권 개념 같은 생명과학과 신자유주의 이론들을 접속시키는 것이다. 내게는 다소 생소했는데, 이들 접속의 유형들을 이 책에서 살피면서 모든 지식에 내재된 권력의 계보학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즉 ‘무엇이 생명인가?’ 라는 질문은 ‘누가 생명을 어디서, 어떻게 말하는가?’라는 화행론적 질문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명이 스스로를 어떻게 3인칭으로 전개하는지 민감하게 살필 일이다. 
   

 

3. 생명현상의 현실에서 개념들
 
생명을 사유한다는 것은 생명이 현실에서 스스로 어떤 개념을 통해 드러나는가를 사유한다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 개념들은 현실에서 상호작용하며 구체적으로 효과를 발휘한다. 즉 강도적 세로 좌표들을 가지고, 포화하며 현실의 지평에 일관성을 부여한다.(들뢰즈, 『철학이란 무엇인가?』 , p 35) 신자유주의적 구도에서 드러나는 생명의 개념들은 우리에게 어떤 생명에 대한 조감되고 일관된 이미지를 생산하는 것이다. 이 생명의 개념들은 인접한 개념들과 연계하고 참조하면서 스스로를 포화시켜 나간다. 그 포화된 개념들은 신자유주의 사유의 이미지를 포획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포화하는 이 개념들이 어떻게 다시 과포화되는지도 살펴야 한다. 이 과포화된 개념들은 스스로를 다시 변형시키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에서 절대적인 탈영토화로 나아가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 책에서 나타난 생명의 개념 중 여기서는 두 가지만 살펴보기로 하자. 

 

1) 생명권: 마굴리스와 러브록의 생명권은 미생물의 세계에 자리한다(p 73) 생물권이 자신을 조절하는 역량은 미생물의 대사과정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는 것이 이들 작업의 핵심명제이다.(p 73) 여기서 출발해 그들은 폐기물 축적이 특정한 생명 형태에 치명적일 수는 있더라도 생명 그 자체의 진화를 중단시킬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들 주장이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넘는 성장이라는 과제와 맥을 같이하고 실제로 이들 관점은 환경규제에 대한 노골적인 반대 관점과 결합해서 핵에너지를 공개적으로 옹호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더 근본적으로는 한계를 넘는 성장이라는 이들의 논리가 신자유주의의 이상에 다름 아니다.  

 

2) 배아줄기세포: 과학은 개념들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기능이나 명제에 의해 규정된다. 과학이 이러한 일을 하는 데 철학은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어떤 대상이 기능들에 의해 과학적으로 구축되었을 경우, 철학적 개념을 찾아내야 할 일이 남는다.(『철학이란 무엇인가?』 p 169)  배아줄기세포가 실험실에서 과학적으로 그 기능과 원리가 드러난 후 신자유주의의 자본의 약속은 그 과학적 결과물을 배아선물시장 같은 것으로 묶는다. 이제 배아줄기세포는 미국 및 세계 자본시장 모두에서 일어나고 있는 선물 거래의 증가라는 거대한 추세(p 251)와 일치하게 된다.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급성장은 약속으로부터 약속을 생산하는 투기적 축적의 논리가 실험적 생명 형태이자 무한정한 잉여 가능성의 재생을 약속하는 불멸화된 배아적 줄기세포주의 특정한 생식성과 함께 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p 253)

 

3) 이 외에도 복잡성 이론, 지적재산권에 대한 새로운 정의, 복음주의 교리들 등 이 책에서는 신자유주의와 접속된 생명과 관계된 새로운 개념들이 등장한다. 
 
이 개념들은 현실에서 끊임없는 탈영토화와 재영토화의 운동을 통해 신자유주의를 일관되게 실현시켜 나간다. 이 개념들을 어떻게 과포화시켜 새로운 구도를 낳는 개념들로 생성시킬지가 우리의 고민일 것이다.   

 


4. 두 잉여들

 

이제까지 우리는 세 개 층위의 여정을 통해 이 책을 일별했다. 그 층위들은 신자유주의의 구도, 그 구도에서의 생명담론의 전개 그리고 그 전개가 생산해 낸 생명 관련 개념들의 층위들이다. 이 층위들에서 작동하는 신자유주의적 생명의 운동은 무한하게 연기된 약속을 향해 나아가면서 미래의 잉여를 신자유주의 시장 질서 속에서 다시 무한정 포획하고 있다. 또한 이 운동은 새로운 생명에 대한 담론과 개념들을 수정하고 생산한다. 


하지만 이 탐식하는 무한한 운동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의 고유한 구도이다. 오히려 신자유주의하에서 모든 변화는 이 고유한 구도를 향해, 마치 어떤 기원처럼 반복적으로 환원되고 있다. 불확정된 미래의 잉여를 향해, 항상 운동하고 생성하지만, 그 생성은 신자유주의라는 고유한 구도의 지점를 드러내는 어떤 견해(doxa)로서 반복되는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이런 현상을 무엇이라 부를까? 아마도 그것은 암적인 존재라 진단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쿠퍼가 지적한 대로 신자유주의 구도의 모델인 줄기세포는 이미 암을 자신의 원형으로 삼고 있다.(p 246) 이 생명의 과잉 생산은 최후에는 언제나 죽음을 초래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책에서 쿠퍼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나는 또 다른 잉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되기(becoming)’이다. 


그런데 쿠퍼는 재생 의학을 설명하면서 이 ‘되기’의 과정을 재생의학과 관련해서 간략히 설명하고 있다. 그녀는 재생의학의 자기 영속화하는, 비실현화하는 그리고 끝날 수 없는 배발생의 과정과 들뢰즈의 ‘되기’ 개념이 ‘매우 가까운 시간에 대한 이해’라고 설명한다.(p 229 주 22) 들뢰즈는 어떤 순간이나 찰나 즉 어떤 점으로의 회귀를 상정하지 않는다. 그에게 이런 순간은 이미 지나갔으며, 곧 태어날 것이고 언제나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일견 재생의학의 개념과 들뢰즈의 ‘되기’는 유사한 것 같지만 그것은 쿠퍼가 ‘매우 가까운’이라는 제한을 둔 것처럼 재생의학은 결코 다가갈 수 없어, ‘되기’의 주변에서 서성거릴 뿐이다. 재생의학이 진정으로 ‘되기’를 이룬다면 자신의 신자유주의적 구도에서 절대적인 탈영토화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되기’는 생명이 신자유주의의 구도로 환원되지 않는 생명 그 자체의 내재성의 구도에서만 자신을 펼칠 수 있다.


두 가지 잉여는 명확히 구분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지점에서 생명권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들뢰즈의 ‘되기’는 비유기체적 생명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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