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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환의 삐라의 추억
2016.10.02 12:04

[자율평론 50호] 비창 / 김명환 시인

조회 수 205 추천 수 0 댓글 1

김명환의 삐라의 추억 4

 

비창

 

 

 

“이제는 노는 물이 달라져서 운동을 잘 못 배운 나는 버티기가 힘이 든다. 노동자는 하나다. 젊을 때 이렇게 배워 평생을 믿고 살았건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그렇게 믿는 일부 사람이 있을 뿐이다. 한국사회에서 비정규직은 한국판 수드라이다. 불가촉천민이다. 노동운동판도 마찬가지다. 입으로는 연대, 단결, 투쟁을 말하지만 경제적 이해가 엇갈리면 유유상종. 비정규직끼리 내몰릴 뿐이다. 철도도 마찬가지. 겉으로는 웃으며 악수를 하지만 실은 위험하고, 번거롭고, 귀찮은 존재일 뿐. 비정규직 조합원이 사망했다. 그 원인을 나는 말할 수 없다. 그 조합원들은 해고된 지 9년. 마지막 투쟁을 끝으로 투쟁을 접었다.”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교육국장 이철의 동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는 순간, 예리한 칼날이 가슴을 사선으로 그으며 천천히 내려갔다. 눈을 감았다.

 

2006년 3월, 파업 중인 KTX열차승무지부로부터 시민홍보물 의뢰가 들어왔다. 2005년 말부터 한사코 거절했었지만, 그날따라 이상하게, 덜컥 수락했다.
마침 결혼을 앞둔 여승무원 인터뷰가 신문에 실렸다. 슬픈 결혼식! ‘눈물의 웨딩드레스’로 가기로 했다. 결혼을 앞둔 여승무원에게 글을 부탁했다. 여승무원이 이철 사장에게 쓴 편지는 가슴을 쥐어뜯었다. 슬픈 결혼식 연출사진을 찍자고 하자 여승무원이 난색을 표했다. 할 수 없이 연극패에게 대역을 부탁했다. 용산 철도노조 웨딩홀에서 예복을 빌려 입고 촬영을 했다. 여승무원들이 하객으로 출연했다.
편집을 하는 내내 디자이너가 눈물을 흘렸다. 영화 리플릿을 패러디한 ‘눈물의 웨딩드레스’ 3만 마리를 서울역 집회에 떨궜다.
‘눈물의 웨딩드레스’는 시민들을 만나지 못했다. 여승무원들이 배포거부를 했다. 나는 공황상태에 빠졌다.
3만 마리를 수거해 2만9천 마리를 파쇄했다. 백 마리는 철도노조 자료실에 처박고 9백 마리를 화장하러 동해바다로 갔다. 이른 봄 저녁바다는 쓸쓸했다.
“좀 어떠세요?”
철도노조 교선실장 조연호 동지가 물었다.
“삐라에 정 띠려고 그런 거 같아…….”
아트지 코팅이 파랗게 타올랐다. 삐라 한 마리를 파란 불빛에 던졌다. 다시 파란 불꽃이 일었다. 꼬박 20년을 삐라만 만들며 살아왔다. 한 순간에 이렇게 재가 되는 걸 죽어라고 만들어 댔으니……. 삐라 한 무더기를 불빛에 던졌다. 하얀 연기가 피어나는 삐라 위에 소주를 부었다. 다시 파란 불꽃이 일었다.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에서 KTX승무지부장 김승하 동지를 만났다. 파라솔 탁자에 앉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 자살한 거죠?”
김승하 동지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25층에서…….”
숨이 막히고 가슴이 뛰었다. 눈물이 쏟아져 고개를 돌렸다.

 

“7월 10일 부산에서 촛불문화제가 있는 데요…….”
추모시를 청탁하는 김승하 동지의 전화가 왔다. 1989년 김종수 열사 이후 추모시를 쓰지 않았다. 시를 쓰려면 죽은 자의 넋과 만나야 하는데, 나는 너무 약했다.
“한번 써볼 게요. 기대는 하지 마세요.”

대답은 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꼭 써야 할 거 같았다. 그래야 내가 살 거 같았다.

 

철도노조 자료실을 뒤졌다. 9년 전에 처박은 ‘눈물의 웨딩드레스’를 찾았다. 코팅이 스러지고 색이 바래 있었다. 이깟 종이쪼가리가 뭐라고…….

 

추모시를 쓰려면 죽은 자와 만나야 했다. 부산행 고속버스를 탔다. 수첩과 볼펜을 꺼냈다. 가슴 깊숙한 곳으로부터 오열이 터져 나왔다. 입을 막았다.
쓰고, 뜯어내고 다시 쓰고, 뜯어내고 다시 쓰고……. 추모공원에 가서도 쓰고, 뜯어내고 다시 쓰고, 돌아오는 고속버스에서도 쓰고, 뜯어내고 다시 쓰고…….
시에 그림을 앉힌 추모삐라 ‘비창’ 200마리를 만들었다. 표지 끝에 내 이름을 박았다. 내가 발행인인 삐라는 처음이었다. 삐라쟁이 30년을 남의 삐라만 만들며 살아온 것이다. 그것이 내 삐란 줄 알고…….

 

부산역광장에서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시작하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준비해간 여행용 티슈를 몽땅 써버렸다. 마이크로 휴지를 부탁했다. 견딜 수 없었지만 시를 읽어야 했다.

 

스물다섯에 KTX 승무원이 된 유난히 잘 웃던 아이는 스물일곱에 해고돼 서른여섯에 생을 마감했다 나의 슬픔이 그 아이에게 조그만 위로도 될 수 없다는 것에 나는 절망한다 그 아이는 이제 여기에 없다

 

비창
- 어느 KTX 여승무원의 죽음을 슬퍼하며

 

2006년 3월 14일 서울역광장에서
나는 울었다
뿌려지지 않은 유인물
눈물의 웨딩드레스 3만부

 

해고당한 비정규직으로
웨딩드레스 입고 싶진 않다고
결혼 앞둔 승무원이 편지를 쓰고
슬픈 결혼식 연출사진 찍어 만든
꽁꽁 묶여 세상 못 본 유인물 풀어 태우며
나는 울었다

 

10년 지나
25층 아파트
끝 모를 어둠으로 넌
몸을 던졌다
그 10년
내가 너희들을 먼 기억의 저편으로
밀어낸 동안
무엇이 널 죽음으로 몰아갔을까

 

제복을 입히고 스카프를 두르고
화사하게 웃는 인형으로 만들어
이 회사 저 회사 내돌리며
비정규직 일회용품으로 쓰던 철도공사였을까
공기업부터 인건비 줄이라고 닦달하던 정부였을까
애원하는데 호소하는데 경찰 불러 끌어내던
국회였을까 정치인이었을까
승객들 안전 하고는 관련 없는
날품팔이라고 판결한 대법원이었을까
무서운데 외로운데 더 이상 버틸 힘없는데
끝내 손 잡아주지 않은 이웃들이었을까
그깟 유인물 안 뿌렸다고 외면한 나였을까

 

널 만나러 추모공원 가는 길
버스에 앉아 참회록을 쓰며 나는 울었다
어린 여자아이들이 울고 있다고
지금 이 아이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으면
눈물이 모두 말라 더 이상
울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고 나는 썼었다
그런데 이제 넌 더 이상 울 수 없구나
널 외면한 난 이렇게 울고 있는데
넌 울 수 없구나

 

부산추모공원 가족봉안묘 6묘역
조그만 가족묘 제일 아래 오른쪽
네가 홀로 누워 있구나
먼저 간 너와 함께 묻히려고
가족들이 널 제일 아래 묻었구나
보고 싶다
편히 쉬어라
친구들이 만든 분홍색 리본 달고
꽃다발 놓여 있구나
네가 웃고 있구나

 

촛불문화제가 끝나자 사회자가 ‘비창’을 모아서 앞으로 전달해 달라고 했다.
“그 유인물 왜 수거한 거죠?”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김진숙 동지가 물었다.
“글쎄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서울로 올라오는 KTX에서 김승하 동지에게 물었다.
“그 유인물이 버려지는 게 싫었어요.”

 

일행에게 캔맥주를 돌렸다. 저녁 안개가 끝없이 차창 밖으로 지나갔다. 나는 그렇게, 내 오랜 삐라쟁이 시절과 작별했다.


* 추모시 첫 구절은 오장환의 ‘병든 서울’에서 가져왔다.


* 김명환은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84년 사화집 『시여 무기여』에 시 「봄」 등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89년 월간 『노동해방문학』 문예창작부장, 2000년 ‘철도노조 전면적 직선제 쟁취를 위한 공동투쟁본부’ 기관지 『바꿔야 산다』 편집장, 2007년 철도노조 기관지 『철도노동자』 편집주간으로 활동했다. 시집 『첫사랑』이 있다.

  • 공유지 2016.10.03 12:08
    마음이 아프네요. 좋은 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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