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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림 소설 『넥타이를 세 번 맨 오쿠바』(2016) 읽기

 

 

김미정 (문학평론가, 『정동의 힘』 옮긴이)

 

 

* 편집자 주 : 이 글은 <다중지성의 정원>에서 2016년 8월 13일 토요일 저녁 7시에 열린

"제1회 톺아보기 ― 유채림 작가의 『넥타이를 세 번 맨 오쿠바』"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1. 2016년, 역사적 제재나 배경을 서사화하기, 어떻게 할 수 있는가


한국 근현대사의 여러 용공조작, 공안사건들을 돌아보면, 독점적, 합법적으로 폭력을 점유하는 국가의 민낯을 더없이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국가폭력의 민낯을 폭로하고, 그 희생자들의 참담함과 억울함을 위로하는 영화나 소설도 이제는 낯설지 않습니다. 기억하거나 증명해야 할 것은 많은데, 그 시절과 관련된 이들은 점점 사라져갑니다. 역사라는 것이 거창한 무엇이기 이전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발밑의 지층을 이루고 있는 것이라는 점도 종종 잊혀지곤 합니다. 그렇기에 예술, 문화 장르로서의 영화나 소설들이 지금 이런 우리 발밑의 일들을 환기시키고, 우리 삶이 그것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이것은 공식기록이나 역사책에서의 깨달음과는 전혀 다릅니다. 인식적 깨달음 뿐 아니라 감정적 체험의 회로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유에서 역사적 제재나 배경을 서사화하는 것은 오늘날 각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넥타이를 세 번 맨 오쿠바』는 국가폭력이 용공조작을 넘어서 일반 형사사건 수준에서도 공공연히 자행되던 시절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소설 속 오쿠바는 대통령 발(發) 시한부 검거령의 희생양입니다. 경찰과 사법부는 합동으로 시나리오를 짜고, 오쿠바는 거기에 끼워 맞춰진 범인으로 선택된 것입니다. 이 사건은, 반체제, 반정부 혐의로 용공조작된 당시의 다른 사건들과 성격이 많이 달라 보입니다. 하지만 정권 유지를 위해 무고하고 평범한 개인들의 삶이 유린되고 파괴되었다는 본질에서는 똑같습니다. 아니, 오히려 대중의 감각에서는 더없이 평범했던 오쿠바가 겪은 일이 더 가깝게 와닿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 점을 좀더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이것은 『넥타이를 세 번 맨 오쿠바』가 소설로서 지닌 강점, 성취와 관련될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이 특별하게 느껴진 것은, 비슷한 제재, 시절을 다루는 다른 소설, 영화들과 비교할 때, 독자(관객)로서 가져야할 어떤 마음가짐(숙연함, 부담)이 덜했다는 점입니다. 이 소설은, 역사적 제재를 다룰 때 작가가 가질 수밖에 없을 어떤 강박이나 부채감으로부터도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느껴집니다. 물론 작가가 그런 강박, 부채감을 갖지 않을 리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작가의 태도가 존재하는 것과, 그것이 문면으로 독자에게 전달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즉, 이 소설은 취하고 있는 역사적 제재나 배경의 ‘내용’으로부터 그 ‘표현’ 미학을 탈구시킵니다. 블랙유머, 경쾌하고 속도감 있는 문체와 서사화는, 독자로 하여금 역사적 제재나 배경에 대한 마음가짐 이전에 읽는 재미나 감동을 우선 느끼게 합니다.


저는 단순히 이 소설의 재미를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소설 서평을 쓰신 박광철 님은 이 소설에서 ‘대중문화로서의 즐거움’을 읽어낸 바 있습니다.(「지독한 무기력 속에서 우리가 기댈 것은 무엇일까」,《오마이뉴스》, 2016.7.14.) ‘순수소설(본격문학)vs.대중소설(대중문학)’ 식의 구도와 무관하게, 이 지적(‘대중문화로서의 즐거움’)은 온당합니다. 오쿠바의 유년과 구체적인 에피소드, 그 실감나는 세태, 풍속에 대한 작가의 공력과 치밀함. 이런 것은 분명 대중적, 혹은 ‘대중’ 문화적 감수성과 관련되어 있을 것입니다. (‘대중’에 관련하자면 덧붙여야 할 이야기가 많지만, 여기에서는 소박하게, ‘특별한 미적 감수성의 훈련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사람들 정도로만 말해두고 싶습니다.)


이런 대중적, 대중 문화적 감수성은 이 소설 전체의 큰 골격으로 놓인 국가폭력과 공권력의 문제를 다소 후경으로 미루어놓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골격과 세부의 (느슨한) 긴장감으로 인해 그 낙차, 아이러니가 부각됩니다. 세태, 풍속 이야기들 속에서 독자는 무방비하게, 읽을거리로서의 소설에 빨려 들어갑니다. 하지만 또 어느 순간 문득, 이 소설이 단지 유희를 목적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오쿠바의 성장기 속에서 한국 근현대사 같은 큰 이야기는 잠시 잊혀지거나 느슨하게만 환기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오쿠바의 삶이 근현대사의 맥락에 놓여 있으면서, 극단적으로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삶이라는 것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 두 개의 다른 층위의 경험(소설 읽기의 재미와 감동, 그리고 서사화되고 있는 과거 사실에 대한 인식론적 깨달음)을 이 소설은 계속 교차시키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오늘날 역사를 제재 혹은 배경으로 하는 서사가 미학적(소설공학적)으로 고민해야 할 부분이 무엇일지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2. 이것은 오쿠바의 이야기이면서 오쿠바‘들’의 이야기이다.


한편 이 소설은 국가폭력, 공권력 만행을 고발, 폭로하는 소설이면서, (정원섭 목사라는 실존인물을 모델로 한)오쿠바라는 한 개인의 참담한 생을 복권, 위로하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동시에 이 소설이, 오쿠바라는 개인으로만 환원할 수 없는 이야기라는 점도 특별히 강조하고 싶습니다.


오래된 문학(극) 용어 중에 프로타고니스트, 안타고니스트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동자, 적대자 혹은 주동인물, 반동인물 정도로 바꿔 말해도 될 것입니다. 서사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요소, 축이면서, 동시에 각 인물들의 캐릭터를 일찌감치 할당하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안타고니스트는 확실합니다. 공권력(국가)입니다. 국가는 이 소설의 배경이 아니라 아예 서사 전체에 있어서 강력한 안타고니스트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국가는, 폭력을 독점적, 합법적으로 소유하고 행사하는 기구로서 이미 캐릭터화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프로타고니스트는 누구일까요. 물론 이 책의 표제에도 있듯, 소설 속의 중요 인물인 오쿠바일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오쿠바 한 명이 이 소설의 프로타고니스트일까요. 


저는 이 소설에서 오쿠바 못지않게 중요한, 아니 오쿠바만큼의 비중과 위상을 지닌 인물들을 잠시 생각해봅니다. 우선 이 책의 1장은 ‘변호사 이덕열’이라는 제목으로 이덕열의 시점에서 서사되고 있습니다. 또한 3장에 다시 이덕열이 등장합니다. 이 소설이 단지 오쿠바 이야기가 아니라, 이덕열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덕열은 1971년 사법파동의 주역이었던 이범렬 변호사를 모델로 삼은 듯합니다. 사법살인의 하수인으로서의 불명예와 함께 종종 이야기되어온 당시 사법부를 생각할 때, 소설 속 이덕열을 비롯한 그 동료들의 의미는 중요하게 부각되어야 합니다. 


즉, 공권력의 피해자 오쿠바의 진실이 뒤늦게 해명된 것은, 결코 그 혼자의 힘으로 인한 것도 아니었고, 그가 믿는 신의 은총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오쿠바 편에서 고군분투했던 이덕열. “인간의 얼굴을 하고 온 신의 모습”으로 오쿠바에게 감화를 주고 힘을 실어준 김재준. 그리고 출소한 오쿠바의 무기력을 깨트리는 전화의 주인공인 고 이덕열의 부인. 또한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하고 재심판결을 얻어내는 데 힘을 보태고 함께 움직인 무수한 사람들(소설 속에는 이들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거론되고 있으나 여기에서는 생략합니다). 사실 이 모두가 이 소설 속의 프로타고니스트인 셈입니다. (이들의 고군분투가 후반부에서 다소 스케치로 처리된 것은 좀 아쉽습니다만) 이 소설의 서사는, 오쿠바에게 힘을 실어준 이들이 없었으면 완성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소설 바깥이야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 소설의 모델이 된 정원섭 목사에게도 함께 공분하고 함께 행동해주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국가라는 무소불위의 권력에 맞서 진실을 밝혀낸 것은 사실상 그‘들’의 힘이었던 것이지요.


여기에서 저는 상상력과 공감을 다시금 우리 삶이나 미학의 중요한 원리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상상력은 협소한 문학, 예술의 범주에만 놓이지 않습니다. 상상력이란 나의 감각적 경험의 한계를 극복케 하는 힘입니다. 이곳에서 저곳을, 저곳에서 이곳을 연결지을 수 있게 하는 힘입니다. 또한 현재의 시간과 과거 및 미래의 시간을 동시적으로 사유할 수 있게 하는 힘입니다.


우리는 파천황적 상상력만 상상력이라고 오해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상상력은 나와 타자의 간극을 조정하고 나의 존재적 한계를 극복하게 하는 매개입니다. 현실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내가 발 딛고 있는 땅 밑의 보이지 않는 수맥과 생명들과 화석들을 굴착하는 집요함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각자 발밑의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상상력은 이곳과 저곳을 연결하고, 나와 너를 연결하는 매개이자 공감을 위한 직접적 방법인 것입니다. ‘나’와 오쿠바의 억울함이 무관하지 않다는 자각, 부당하게 처벌받는 이들과 그들을 처벌하는 시스템이 우리 모두가 무관치 않다는 자각, 우리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그리고 시스템 안에서 연루되어 있다는 자각. 이런 자각과 상상력이 오쿠바를 둘러싼 이들 모두에게 공유되고 있었던 것 아닐까요. 오쿠바를 중심으로 그들이 움직인 것을 우리는 공감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때의 공감은 소위 선한 이들의 선한 의지와 거리가 먼 것입니다. 공감은 일종의 ‘행위능력’인 것이고, 나와 타자를 네트워킹하는 힘의 다른 말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소설 바깥의 작가 유채림 선생님의 개인적 이력과도 무관치 않은 이야기이고, 그리고 단자화된 ‘개인’을 기본단위로 작동하는 신자유주의 시스템의 통치술 속 우리와도 무관치 않은 이야기일 것입니다. 두리반 철거농성이 531일 만에 끝나고 그 터전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 홍대 인근 예술인들과의 연대로 가능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고, 작가 스스로 누구보다 실감하셨을 것입니다. 


또, 홍대 두리반 싸움은 성공했지만 한편으로 자본주의와 국가권력이 세련되게 결탁, 공고화하고 버전업하면서 두리반들은 계속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사실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개인은 더없이 중요한 주체의 장소이지만, 단독적 개인 주체라는 것은 어떠면 환상입니다. 우리가 사람 사이(間)에 있는 존재(人間)라는 것은 너무 당연한 원리입니다. 그리고 지금 더 중요한 것은, 개인을 더욱 파편화, 단자화로 몰고 갈수록 이 시스템(국가-자본주의)은 작동하기 용이하다는 점의 자각과 공유입니다. 접속이나 연대가 다시 중요해지는 것도 이 지점입니다. 


그런데 그 개인들을 모이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요. 이전 시대였다면, 어떤 깃발이나 조직을 통해 가능했을테지만, 터전을 지킨 두리반은 그런 깃발이나 조직에 의하지 않은 개인‘들’의 승리였습니다. 또한 그것은 유채림 선생님의 르포 『매력만점 철거농성장』(2012)나 짧은 소설 「흑염소 밴드」(『황해문화』2014 가을)에도 유쾌하게 드러나 있듯, 문화, 예술이 매개가 된 싸움의 승리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런 점들을 생각하면서, 이 소설 속 모든 인물들이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또한 나아가 이 소설 자체가 역시 하나의 문화, 예술콘텐츠로서 독자들에게 어떤 매개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두리반에서 사람들을 잇고 모이게 하던 흥겨운 음악 같은 것 말이지요. 앞서 제가, 이 소설에 대해 독자로서의 재미를 잠시 이야기한 것도, 오늘날의 감수성과(달라진 데모감수성도 그 한 예입니다.) 두리반의 승리가 무관치 않다고 보기 때문이고, 나아가 오늘날의 조건들에 대해 문학(소설)도 함께 적극적으로 사유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주지하듯, 근대문학(소설)은 네이션이든 연대든 일종의 ‘공동체’를 형성, 상상하는데 중요한, 결정적인 역할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더 이상 그런 것이 가능하지 않은 시대입니다. 정확히 말해 문학이 그렇게 작동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시대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지금 이곳에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늘 중요합니다. 특히 연결, 접속을 가로막고 우리를 ‘개인’으로 흩어내고자 하는 이 세계의 지배 시스템 속에서 ‘지금-이곳에-함께-있다’는 감각은 너무 소중한 것입니다. 이제 문학이 그런 감각을 발견하는 것에 주력해야 할 시대는 아닐까요. 큰 공동체가 아니라 작은 코뮌들을 발명하고 접속시키는 상상력을 문학이 주목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문학이 근대의 산물, 즉 역사적 산물이라는 것이 이제는 공공연하게 이야기됩니다. 특히 한국 같은 경우 근대의 프로젝트로서 문학이 보편적 앎과 보편적 공감을 이루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것도 주지의 사실입니다. (근대 프로젝트로서의 문학은, 근대 초기, 식민지문학, 7,80년대 민중문학 모두에 해당할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지금 더 이상 그런 문학이 작동할 수 없는 시대라고 하더라도, 문학이 그저 유희, 오락 혹은 개인의 사사로운 이야기를 오가는 것에 만족해도 될까요. 이런 장소 이외에도 다양한 문학의 장소가 있을 것입니다. 그 유력한 장소 중 하나가 저는 ‘두리반’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리반에는 우리 개별 삶을 위협하는 시스템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또한 그것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힘이 있(었)습니다. 또한 거대한 상대를 우스꽝스럽게 추락시키는 기술로서의 ‘유머’와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그런 장소가 더 많이 문학이라는 이름과 함께 사유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 『넥타이를 세 번 맨 오쿠바』는 그 중요한 한 사례로서 놓여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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