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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도시 생명의 거리』 마음이 따뜻해진다


선유리(다중지성의 정원 회원)



* 이 글은 인터넷신문 『대자보』 2013년 4월 9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http://jabo.co.kr/sub_read.html?uid=33885&section=sc4&section2=



우리가 현재 지구상에서 경험하고 있는 것은 '죽음을 향해 가는 도시'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되돌아오는 거리' 바로 이것이다(에필로그)

 
우리는 정말 저런 도시와 저런 거리를 경험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경험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떤 사람은 도시와 거리에 대해 관심도 없고 그것이 왜 얘기거리가 되는지 조차 의아해 할 것이다. 그런데 코소는 어떻게 '우리는 경험한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을까
 
책의 제목은 '죽음의 도시'로 시작하고 있지만 코소가 다루고 있는 뉴욕과 세계의 도시들이 '죽음이 점령해 버린' 도시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생명의 거리' 역시 생명력이 넘치는 어느 특정 거리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코소가 나름대로 정의하고 있는 '거리'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코소가 가장 마지막에 던진 에필로그의 이 한 마디로 인해 독자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난 뒤의 느낌은 '따뜻하다'
 
거북이 등짝처럼 갈라진 가혹한 가뭄의 땅에 힘겹게 피어난 풀 한포기의 사진을 보고서는 쉽사리 풍성한 수확의 그림을 그릴 수 없다. 화재로 다 타버린 산등성이에 바람을 타고 날아와 막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잡목 하나를 보고도 상쾌한 숨을 들이쉬기는 쉽지 않다. 코소가 결국 뉴욕의 거리에서 찾아낸 것들이란 게 가뭄의 풀 한 포기 만도 못하고 산등성이 어린 잡목만도 못해 보인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음 한쪽에서 빛이라고 하기에도 기대라고 하기에도 뭐한 이상한 것이 꿈틀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을 뭐라고 부를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움직임으로 인해 마음이 따뜻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의 저자 이와사부로 코소는 1955년 일본에서 태어나 20대 중반인 1980년대 초 뉴욕으로 건너가 약 30여 년간 뉴욕에서 살고 있다. 그는 이미『뉴욕열전』(2010)과 『유체도시를 구축하라!』(2012)를 통해 도시와 거리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을 펼쳐 보였다. 『뉴욕열전』에서는 운동하는 뉴욕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운동은 사람들의 운동이다. 『유체도시를 구축하라!』에서는 사람들의 움직임, 움직이는 신체 곧 유체(流體)에 주목하고 있다.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활력으로 도시를 바라본다. 이 책에서는 4년 동안 뉴욕 등의 도시에서 생긴 일들과 위의 두 책에서 펼친 저자의 도시와 거리에 대한 생각을 한층 더 쉬운 말로 연결해서 풀어냈다.
 
이 책에 실린 42편의 글은 일본의 아사히신문출판사에서 간행하는 월간지 『한 권의 책』에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연재되었다. 저자가 뉴욕에서 4년 동안 겪은 크고 작은 일들을 어렵지 않은 말로 담담하게 써내고 있지만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그의 애정 어린 비판 정신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도시'일까?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 한국 인구의 90% 이상이 도시에 산다고 한다. 우리가 도시에 산다고 할 때의 도시는 특정지역, 공간, 장소로서의 도시를 말한다.

가수 이용은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보자/ 그 길에서 꿈을 꾸며 걸어가리라/ 을지로에는 감나무를 심어보자/ 감이 익을 무렵 사랑도 익어 가리라" 라고 서울을 노래했었다. 이 노래를 듣고 부르는 사람들이 서울거리의 과일나무들을 떠올리며 휴지회사의 광고처럼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를 떠올리지 않을 것은 너무 뻔한 일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도 '서울'을 떠올리며 사람들을, 관계를, 꿈을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면 한결 더 명확하게 도시를 볼 수 있게 된다.

누각이란 … 대규모 건물 및 교통기관 등의 상징적/기반적 시설이다. 그에 반해 '거리'는 사람들의 집합성과 관계성이 최대로 활성화된 상황/장소이다(프롤로그) 


코소는 도시를 두개의 개념으로 분해했다. 정확히는 그가 분해한 것이 아니라 도시에서 진행된 누각과 거리의 분리현상을 파악한 것이다. 그래서 코소의 시각은 다르다. 독특하고 진지하다. 겉으로 쉽게 나타나지 않는 현상들을 친절하게 보여준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경제문제에 대한 코소의 시각>

2007년부터 촉발된 미국의 금융위기는 2008년 9월에 이르러 미국의 투자은행(IB)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 신청을 하면서 정점에 다다랐다. 나를 비롯한 보통의 비금융권 사람들은 그동안 듣도 보도 못하던 '서브프라임모기지론(비유량주택담보대출)'이란 용어를 처음 듣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와 서브프라임모기지사태를 이해하게 되었다. 물론 그것도 이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제대로 이해를 했을 경우에 한해서 말이다.

서브프라임모기지사태 : 사태의 발단은 2000년대 초부터 시작된다. 2000년대 초 IT버블붕괴, 911테러, 아프간/이라크 전쟁 등으로 미국 경기가 악화되자 미국은 경기부양책으로 초 저금리 정책을 펼쳤다. 이에 따라 주택융자 금리가 인하되었고 그러자 부동산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주택담보대출인 서브프라임모기지론의 대출금리보다 높은 상승률 보이는 주택가격 때문에 파산하더라도 주택가격 상승으로 보전되어 금융회사가 손해를 보지 않는 구조여서 거래량은 대폭 증가하였다. 증권화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은 높은 수익률이 보장되며 신용등급이 높은 상품으로 알려져 거래량이 증폭했다. 하지만 2004년 미국이 저금리 정책을 종료하면서 미국 부동산 버블이 꺼지기 시작했으며 서브프라임모기지론 금리가 올라갔고 저소득층 대출자들은 원리금을 제대로 갚지 못하게 된다. 증권화되어 거래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을 구매한 금융기관들은 대출금 회수불능사태에 빠지게 되고 손실이 발생하였고 그 과정에서 여러 기업들이 부실화된다. 미 정부는 개입을 공식적으로 부정했고 미국의 대형 금융사, 증권회사의 파산이 이어졌다. 이것이 세계적인 신용경색을 가져왔고 실물경제에 악영향을 주어 세계 경제시장에 타격을 준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이다.(출처: 위키피디아)


뉴욕(및 그 외 미국의 대도시)의 '비유량주택담보대출'에는 잔혹한 역사성이 새겨져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이야말로 인종(계급)차별의 도시공간적 표현이었던 것이다. … 오랫동안 … 미국 대도시에는 '융자거절지대'가 존재해 왔다. 이는 금융기관이 흑인과 히스패닉계 주민의 거주구에 부여한 가치적 차별의 지표인 셈이다. 이러한 장소의 지정이야말로 이른바 게토라고 하는 지역성을 고정시켰다고 일컬어진다.(34쪽)

 
위의 두 개의 단락에서 우리는 같은 '서브프라임모기지'라는 단어를 사람들이 어떻게 해석하는지 어떻게 경험하는지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코소는 사태 이면의 소리를 듣고 보고자 한다. 그는 집을 빼앗기고 주거할 곳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들의 '움직임'을 주시한다. 그리고 스쾃(squat)이나 점거행동(occupation)으로 논의를 이어가기도 한다. 도시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도시를 영속하는 구조, 요컨대 '고정체'로 떠올린다. 그러나 도시에서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는 '일시적인 것'으로 관점을 옮기면 도시는 '운동체'로 보이기 시작한다.(44쪽)
 

<정치문제에 대한 코소의 시작> 
 
부시정권 아래에서의 기나긴 8년은 강요된 군사적 위기감과 한껏 부추겨진 소비문화라는 기괴한 한 쌍의 가치관이 미디어의 조작에 힘입어 훌륭하게 달성된 무시무시한 시대였다(259쪽)

그런데 도대체 왜 미국 대중은 두 번씩이나 부시를 뽑았을까 도대체 왜 어느나라의 대통령은 이번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 우리에게도 궁금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코소는 가장 큰 원인중의 하나가 지식인이나 예술가들이 살고 있는 뉴욕의 도시문화와 미국적인 대중사이의 어긋남이라고 한다.


이 도시에는 지식인이나 예술가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그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세계에 대한 정보, 발달된 의식, 비판적 사고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훨씬 세련되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믿음은 진정한 대안을 형성하는 것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세련된 문화는 주로 특권계급의 사회 안에서 소비되고, 축적된 지성은 폐쇄적인 아카데미즘 내부에서의 발표로 소모되고 소비된다. 비찬적인 담론도 많은 경우 멋들어진 디너파치 석상에서의 회화로 해소되어 버릴 뿐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결국 맛있는 와인을 마시며 세상을 근심하고 서로의 지성과 혁신성을 확인한 후 집으로 돌아간다.(129쪽)

 
그렇다면 서울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일까. 뉴욕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엘리트들이 도시와 풍요로움이 제공하는 고급소비재로서의 '문화'를 향유하며 실천하지 않는 지성에 만족하고 있을 때, 서울의 엘리트와 대중들 사이에는 어떤 간극이 생겨나고 있었던 것일까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코소가 본 직장이란 어떤 곳일까>

2001년 9월 11일. 많은 미국인들에게 이 날은 아직 과거로 남기에는 이른 것 같다. 아직도 생생하게 괴물처럼 살아 꿈틀거리며 많은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다. 이는 단지 어느 해 9월 11일에 있었던 어마어마한 사건 때문이 아니다. 그 이후로 미국인들에게 체계적이고 치밀하게 이식된 '공포'의 망령이 그 부피를 키워가며 성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정치가들에게 있어 '공포'만큼 효율적이고 성공률이 높은 억압의 도구가 있을까. 그리고 그 공포는 지금 사람들의 일상에까지 뿌리를 내렸고 아주 성공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 다름 아닌 직장에서 말이다.


미국에서 사람들이 가장 자신을 드러내놓고 말할 수 없는 장소인 직장이야 말로 자유의 나라 미국이라는 신화와는 가장 거리가 먼 '억압과 공포가 지배하는 장소'이다. 20세기 초반 철학자 존 듀이는 미국의 민주주의는 그것이 직장으로까지 확장되지 않는 이상 결국 실현되지 않을 것임을 예견했다.(150쪽)

 
학벌, 출신지역, 남성/여성, 이성애자/동성애자, 인종, 민족, 피부색, 기혼/비혼 등 세상이 만든 온갖 분류와 그것에 따른 차별과 불평등이 직장만큼 적나라하게 그리고 잔인하고 처절하게 드러나는 곳이 없다는 생각을 해보면 직장이 갖는 '공포성'은 가히 짐작하고도 남을 만하다.
 

<센트럴파크는 어떤 곳인가>

뉴욕을 생각하면서 센트럴파크를 생각하지 않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다. 뉴욕을 배경으로 한 많은 영화 속에서도 센트럴파크는 빼놓을 수 없는 배경이다. 뉴욕을 여행하는 관광객들도 그곳엔 꼭 가게 될 것 같다.
 
거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코소는 왜 센트럴파크를 도시 한가운데 보존된 아름다운 자연으로만 편안하게 감상할 수 없을까. 그곳에 계획된 '말소'가 있었다고 한다. 대지를 점유하는 일 없이 자연과 공존하며 살던 먼시족(Munsee Indians) 문명의 말소, 공원과 그 주변부지에 살던 농민들과 아프로아메리칸 커뮤니티의 말소, 그리고 공사현장에 투입된 약 2만여 명의 이민노동자들의 노동의 말소가 있었다고 한다.


센트럴파크는 문명 이전의 맨하튼섬이 마치 그랬으리라는 듯이 무구한 자연을 표상/대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곳을 걷는 주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이 자연환경 밖의 경관일 것이다. 이공원안의 자연환경은 그 자체를 바라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 환경 사리로 불쑥불쑥 얼굴을 내미는 문명을 보기위한 무대이다. 나는 내 마음대로 이를 '역차경'이라고 부른다.(152쪽)

 

위베르 다미쉬는 이 공원을 '문화가 자연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드라마를 영원히 전시하기 위한 자연의 박제' 센트럴파크는 변치 않는 그 모습을 보존함으로써 공원밖에 바둑판 모양의 그리드로 펼쳐진 시가지에서 영원히 계속될 개발과 그에 의한 변화를 관찰하고 칭찬하기 위한 장치이다. (153쪽)


이밖에도 코소는 메가슬럼, 현대 정치의 한계, 보안문화, 신자본주의, 세계민중음악, 미디어의 민심통제, 부동산 예술(투자)등에 대해서 얘기한다. 그리고 그와 함께, 조심스러운 질문을 던지면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인류/세계를 사고할 때, 더 이상 '대립/투쟁 모델'에 기댈 수 없다는 사실이다. '대립/모순과 그것의 통합/해결'이라는 사고방식은 언뜻 볼 땐 그럴듯한 것 같지만 사실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만약 우리들이 계속해서 '대립/투쟁 모델'에 구애된다면, 사회는 점점 더 다양한 형태의 광적인 타자배척으로 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에 맞서기 위해 필요한 것은 … 불가피한 공생상태를 전제로 삼아 차이를 긍정적인 원리로 바꾸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이상주의적이라고 비판받아 온 아나키스트적 원리들 - 자율, 자주연합, 자기조직화, 상호부조, 그리고 직접민주주의 - 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절박한 리얼리티를 가지고 일어서기 시작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까지도 이런 원리들을 믿고 일상 속에서 조용히 실천해 온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보이지 않는 일상의 온갖 국면에서 언제나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다하여, 권력자들이 뿌려놓은 문제를 뒤치다꺼리해 온 여성, 인종적 소수자, 무산자들이다.(221~222쪽)

 

현재 세계는 대격변의 시기에 있다. … 사회주의권의 붕괴이후 지금까지,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가 이끌어 온 지배적인 가치와 스타일, 그것들이 구성해 온 가치체계가 와해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 지금까지의 정치/경제를 대체하는 새로운 원리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러한 원리가 제도로서 설립되기 전에 그 토대로서 필요한 것은 사람들의 마음속의 가치들의 가치전환이다.(263~264쪽)

 
그래서 거리가 중요하고, 거리에서 살아나고 있는 사람들이 중요하고, 거리에서 우리의 가치를 바꿔나가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거리로 생명이 돌아오고 있다는 것을 함께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거리에서 우리는 가슴에서 가슴으로 따뜻함을 전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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