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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미학_정동과 정서

2017년 10월 30일 정동 세미나 발제문 모음

발제문 조회 수 38 추천 수 0 2017.10.30 19:42:56

3장 기술적 사유와 철학적 사유, 307~318
  
1. 기술과 종교 사이에 존재하는 대립의 두 번째 위상은 인간적 세계의 정교화로 방향을 돌린 인간공학적 사유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사유들 간의 대립이다.(307) 


2. 인간공학적 기술은 모양의 특성들을 수단으로 인간에 작용하며, 인간을 시민, 노동자, 가족의 일원으로 복수화하면서 검토한다.(308) 

 

3. 사회적, 정치적 사유는 바탕의 질과 힘에 의해 정의된 범주들 안으로 인간을 들어가게 만들어 인간을 분류하고 판단한다. 이 사유는 인간에 대한 기술들을 제한하고 자신의 실재를 존경하라고 강요한다. 

 

4. 기술들은 인간 세계를 복수화하고, 정치적 사유들은 그것을 상위의 단일성으로, 즉 개체가 집단 안에서 그렇듯이, 인간 세계가 그 안에서 실제적 단일성을 잃어버리는, 변화하는 인류 총체의 단일성으로 통합시킨다. 

 

5. 인간적 실재의 개체화의 참된 수준은 철학적 사유를 통해서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309) 미학적 사유는 각각의 양분과 동시대적이기 때문에 불충분하다. 

 

6. 철학적 노력의 임무는 사유의 기술적인 양식들과 비-기술적인 양식들 사이의 단일성을 탐색하는 것이다. 이 임무는 서로 다른 두 노선을 취할 수 있다. 첫 번째 노선은 인간적 세계의 미학을 실현하고자 한다.(310) 두 번째 노선은 과학과 윤리로 재결합하게 되는 그런 기술들과 사유들을 취하는 것으로, 이 노선이 철학적 탐구에 잘 맞는다. 

 

7. 철학적 사유는 기술들에 대해서 그리고 종교에 대해서 반성하면서, 아마도 서로 직접적으로 완전하게 일치할, 반성적 기술공학과 종교로부터 온 영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311)


8. 철학적 사유는 자연적이면서 동시에 인간적인 단 하나의 세계 속에 기술과 종교를 삽입시키고자 하면서 미학적 활동이 부분적인 방식으로만 완수했던 역할을 실제적으로 완벽하게 충족시킬 것이다.

 

9. 기술적 실재의 진정한 요소적 단일성은 구체화된 기술적 개체이다. 구체화된 기술적 개체들에 대한 반성을 통해서 진짜 순수한 기술적 도식들을 발견하는 것이 가능하다.(312)

 

10. 과학적 사유는 조작적 도식이 되거나 조작적 도식들의 표현매체가 되어야 한다. 이와 반대로 순수 기술공학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여러 과학이 협력하는 지점에, 또한 여러 직업들로 분배된 전통적인 여러 기술 영역들이 협력하는 지점에 있다. (313) 일반화된 기술공학의 도식들은 분리된 기술적 대상 그 이상에 도달한다. 기술적 사유는 기술적 개체에 연합된 환경의 존재 양식과 요구들을 융합하면서 확정된다. 

 

11. 이렇게 종합기술적 기술공학이 분리된 기술들을 대체함에 따라 기술적 실재들 자체는 그들의 실현된 대상성 안에서 연결망의 구조를 획득한다. (314)

 

12. 그런데 기술적 사유에서 기술들이 마치 분리되어 있었던 것처럼 남아있는 이유는 구체적인 앙상블들의 기술적 망상을 이론화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전개된 사유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유의 형성이 철학의 임무이다.(315)

 

13. 기술적 앙상블들이 자연적이고 인간적인 시민권을 갖지 않는 것처럼 세계 안에 도입되지만, 산이나 곶은 세계에 대한 표상의 부분을 이루며 한 지역의 모든 인간들에게 인식된다. 

 

14. 기술적 연결망들을 통해서 인간적 세계는 높은 정도의 내적 공명을 획득한다.(316) 기술적 연결망들은 인간 활동의 내적 공명이 기술적 실재들을 통해서 더 커질수록 그만큼 더 규범적인 능력도 갖는다. 

 

15. 기술적 대상에 대한 존경과 비존경의 형태들은 자연적이면서 인간적인 세계에 통합되어 있는 기술성 안에서 유용성을 뛰어넘는 가치들의 내속을 드러내 보여 준다. 기술적 실재의 본성을 알아보는 사유는, ... 분리된 대상들이나 사용기구들 너머로 가서, 그 분리된 대상들과 전문화된 직업들 너머에서, 기술적 조직화의 본질과 중요성을 발견하는 사유다.(318)

 

 

# 질문 

1. 종합기술적 기술공학이 철학의 목표인가? 문화적 실재의 영역(312:13)의 자리와 역할은 어디인가?

 

 

□ 정동과 정서 세미나 ∥2017년 10월 30일∥발제자 : 김민수 □

질베르 시몽동,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 양식에 대하여』 318:17-330:3

 

III부 > 3장 기술적 사유와 철학적 사유

1. 요약

 

1.1 (318-319면)

▶ 어떤 시대에 속하는 한 위상과 다른 시대 속하는 그와 대립된 위상 사이의 대립 안에서가 아니라, 같은 시대 기술들과 종교들의 짝짓기가 실현된 이후에라야만 잇따른 단계들의 연속성이 지각될 수 있는 것이다.

 

1.2 3가지 독트린: 각자 독자적인 방식으로 통합된 기술들에 대한 표상과 가치부여를 흡수(319-320면)

(1) 국가사회주의적 사유: 국민의 운명을 기술 확장에 연결시키고 나아가 이런 확장을 주도하는 관점에서 어떤 구상에 집착함.

(2) 미국 민주주의 독트린: 기술적 진보를 문명에 흡수하는 것에 대한 특정한 정의를 포함한다. ‘삶의 수준’은 기술공학적으로 중요한 항목이다(이런 기술적 도구의 소유 뿐만 아니라 이들의 연결망을 사용하고 여기에 기능적으로 부합될 수 있는 것).

(3) 맑스적 공산주의 독트린: 기술적 발전을 수행해야 할 사회적, 정치적 노력의 본질적 측면으로 고려한다. 공장들의 설립, 견인차들의 활용을 통해 자신을 의식화한다.

 

1.3 사회적 사유와 정치적 사유 (320면)

▶ 사회적 사유와 정치적 사유는, 연결망으로 고찰된 기술성의 삽입 지점들과 일치하는 문제적 지점들, 상당수의 주목할 만한 지점들에 따라 세계 안에 삽입되어 있다.

▶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사유의 요충지들이 세계 안에 삽입되고 분배되는 것은 최소한 부분적으로라도 기술적 요충지들의 것과 일치한다는 것, 그리고 이 일치가 점점 더 완벽해지는 것은 기술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고정된 앙상블들의 형태로, 그 기술들이 결정하는 그물코들 안에 인간 개체들을 구속하면서, 우주 안에 점점 더 삽입되는 만큼이라는 것이다.

 

1.4 여러 사유들의 연속성 (323면)

▶ 철학적 사유는 기술적 사유의 잇따른 단계들 사이의 연속성, 그리고 종교적이다가 그 다음엔 사회적이고 정치적이 되는 사유의 잇따른 단계들 사이의 연속성을 유지해야만 한다. 

▶ 기술성은 자연적 세계에 적용된 기술들로부터 인간적 세계에 관련된 기술들에 이르기까지 유지되어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총체성에 대한 관심도 종교들로부터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사유에 이르기까지 유지되어야만 한다.

▶ 총체성의 기능에 관련된 사유들과 기술들의 생선에 실재적인 이런 (연속성 및) 단일성이 없다면, 자연적 세계에 관련된 형태들과 인간적 세계에 관련된 형태들 사이에 거짓 대화가 성립한다.

 

1.5 기술적 사유 (324면)

▶ 자연적 세계와 인간적 세계 사이의 매개인 기술적 사유는 이 중개를 통해서만 인간적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뿐이다. 인간적 실재는 그것이 이미 기술적 관계 안에 참여하고 있을 때에만 기술의 대상일 수 있을 뿐이다.

▶ [그래서] 기술적 사유는 인간과 세계의 관계적 지점들의 연결망을 발전시켜야만 한다.

 

1.6 문화의 특성/역할 (324-325면)

▶ 노동이 물질 위에서 가능한 것처럼, 인간적인 실재가, 특히 인간적 실재 중에 변경될 수 있는 것인 문화가 기술들에 융합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문화는 잇따른 세대들, 동시적인 인간 집단들, 잇따르거나 동시적인 개체들, 이들 사이를 능동적으로 중개한다. (따라서) 오히려 기술적 앙상블들을 흡수해야만 하는 것이 바로 문화다. 문화는 모든 기술 위에 있어야만 한다.

▶ 문화를 통해 인간이 세계에 대한 자신의 관계, 그리고 인간 자신에 대한 자신의 관계를 조절하게 한다.

▶ 문화는 기술들과 동시대적이어야만 하고 단계별로 자신의 내용을 갱신하며 다시 취해야만 한다. 문화가 오로지 전통적이기만 한다면 그 문화는 거짓이다. 왜냐하면 문화란 특정 시대에 속하는 기술들의 조절 표상을 암묵적으로 저절로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고, 또한 그런 전통적이기만 한 문화는 이 조절 표상을 적용될 수 없는 세계 속으로 잘못 가져가기 때문이다.

▶ 사용기구와 유용성이라는 관념은 인간적 세계 안에서 기술적 앙상블들이 하는 효과적이고 현실적인 역할에는 부적합하며, 따라서 효과적인 방식의 조절일 수도 없다.

 

1.7 기술적 앙상블 (326면)

▶ 연장, 도구, 독립된 기계는 그것들로부터 탈착된 채로 있는 주체에 의해서 지각될 수 있다. 그러나 기술적 앙상블은 오로지 직관에 의해서만 파악될 수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그것(기술적 앙상블)은 인간의 재량에 따르는 추상적이며 조작가능한 탈착된 하나의 대상으로 간주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술적 앙상블은 모의상황과 [그 안에서의] 존재에 대한 시험에 관련된다. 즉, 그것은 주체와의 상호 작용에 연결되어 있다.

 

1.8 철학자의 역할 (327면)

▶ 철학자의 역할은 예술가에 비교할 수 있다. 철학자는 기술적 앙상블 안에서 그 모의상황을 반성하고 표현하면서, 그 안에서의 상황에 대한 의식화를 도울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감각이 깨어나서 실제 시험의 의미를 파악하게 할 때, 그(철학자)는 여전히 예술가처럼 단지 타자 안에 어떤 직관을 야기하는 자일 수 있을 뿐이다. 

 

1.9 예술과 기술적 실재지각되는 것과 사유되는  (327-328면)

▶ 예술은 지각을 통해 받아들여지므로, 자연스럽게 대상, 연장, 도구, 기계를 파악하는 경향을 갖는다. 그러나 문화에 통합될 수 있는 기술성은 표현된  안에 있지 않다.

▶ 화려한 색의 사진들, 소음/소리들, 이미지들의 모든 녹음들은, 일반적으로 기술적 실재를 이용하는 데 머무르는 것이지 이 실재를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기술적 실재는 사유되어야만 한다. 이는 또한 그것의 작용 도식들에 참여함으로써 인식되어야만 한다.

 

1.10 정치-사회적 사유 (328면)

▶ 기술적 직관들은 종교적이고 정치-사회적인 사유의 힘들과 질들에 대립되지 않는다. 정치-사회적 사유는 종교적 사유와 관련하여 연속적이다.

▶ 정치-사회적 사유가 표현하는 것은 바로 부분에 대한 총체성의 관계, 현실적인 부분에 대한 잠재적인 총체성의 관계다.

▶ 종교들이 절대적인 총체성의 기능을 표현한다면, 정치-사회적 사유는 상대적인 총체성의 기능을 표현한다. 또 종교들이 현실적인 총체성의 기능을 표현하다면, 정치-사회적 사유는 잠재적인 총체성의 기능을 표현한다. (종교는 현실성, 정치-사회적 사유는 잠재성을 대표한다.)

▶ 기술적 직관들이 지금 여기(hic et nunc)’ 삶의 역사와 삶의 조정의 결과물을 표현하는 반면에, 정치-사회적 직관들은 장래를 향한 투기, 퍼텐셜들의 능동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정치-사회적 사유들은 현실적으로 주어져 있는 모든 구조를 뛰어넘는 경향성들과 힘들의 표현이다.

 

1.11 철학적 사유 (329면)

▶ 대상화된 기술적 요소와 보편적인 종교적 사유 사이의 관계 맺음이라는 수준에서는 불가능한 그 관계가 현실성의 표현인 ‘기술적 앙상블’과 잠재성의 표현인 ‘정치-사회적 사유’ 사이에 확립될 때는 가능해진다. 이 현실성과 이 잠재성 사이에 상보성이 있다. 철학적 사유는 현실성과 잠재성의 상관관계를 파악하고, 이 관계의 정합성을 확립하면서 그것을 유지한다.

   

1.12 (329면)

▶ 정치적-사회적 직관은 동일한 실재 안에서의 경향성들의 삽입, 잠재성들과 생성의 힘들의 표현이다. 연장들에 결부된 기술적 사유와 보편화는 종교적 사유의 수준에서 사유의 두 유형들 간의 직접적 만남은 있을 수 없는데, 이는 생성의 매개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 보편화하는 종교적 사유 또한 초시간성의 바탕에 준거하여 안정적이고 결정적인 으로 주어진다. 이와 반대로, 조직자나 요소의 명목으로 인간을 포함하는 앙상블들 안에 기술성을 도입하는 것은 기술들을 진화하게 한다.

 

(생각해보기)

현실성과 잠재성에 대한 구분은 역시 개체화 개념의 연장선 상에서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다지원 세미나 정동과 정서∥2017년 10월 30일∥발제자: 반명진

텍스트: 질베르 시몽동,『기술적 대상들의 존재 양식에 대하여』, 그린비, 2011, 330:5~343

 

1. 요약

 

1.1. 기술적 사유와 정치-사회적 사유가 일치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기술적이고 정치-사회적인 구조들의 영속적인 변화에 대한 전망 안에서다. (330)

 

1.2. 정치-사회적 사유 안에서 표상되는 인간 집단들에 대한 이해에다가, 앙상블들의 기술성에 대한 체험된 이해를 연결시키는 것이 바로 그 문화이다. (330)

 

1.3. 잠재적인 것을 그 가치 속에서 파악하고, 촉진시키기 위해서는, 문화가 문화적인 것에서 잠재적인 것으로 진행하면서, 보편화된 종교적 사유 안에 뿌리박혀 있는 정치-사회적 사유를 갱신해야만 한다. (331)

 

1.4. 망상 구조를 실현하는 단일성과 관련되어 있는, 우월성의 지위와 복수성의 지위 사이의 만남이라는 수준에서, 매개가 사유 생성의 중립 지점에서 기능할 수 있기 위해서는, 복수성의 기능과 단일성의 기능에 대한 의식적인 파악이 토대로서 필수적이다. (333)

 

1.5. 기술성의 발생적 특성에 대한 의식화는 개념, 직관, 이념 사이의 관계 맺음들에 관한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제기하도록, 그리고 이와 상관해서 유명론과 실재론의 의미를 교정하도록 철학적 사유를 이끌어야만 한다. (333)

 

1.6. 후험론, 경험론, 개념론, 부분적인 유명론은 개념을 활용하는 조작으로 인식을 정의한다. 선험론, 연역론, 관념론, 최소한 무주론은 아닌 실재론은 이념을 수단으로 한 실재적인 것의 파악을 인식으로 정의한다. (336)

 

1.7. 직관에 의한 인식은 진정으로 매개적이다. (...) 직관은 (...) 알려진 존재의 생성과 주체의 생성 사이의 유비, 두 생성들의 일치다. 직관은 (...) 어떤 발생이 실행되는 시스템들을 형태화하는 것으로서의 실재적인 것에 말을 건다. (337)

 

1.8. 개념은 자신의 기술적 본성으로부터 본질적으로 모양의 실재들을 파악하는 역량을 보존한다. 이념은 특별히 바탕의 실재들에 대한 인식에 알맞다. 직관은 구조의 발생, 즉 모양과 바탕 사이의 상관관계의 발생이 일어나는 앙상블들을 고려하면서 매개자처럼 개입한다. (338)

 

1.9. 직관이란 실재적인 것과의 이론적이면서 동시에 실천적 관계이다. 직관은 실재적인 것을 인식하면서, 그것에 대해 작용한다. 직관은 그 실재적인 것이 생성하는 바로 그 순간에 그 실재적인 것을 파악하기 때문이다. (...) 철학은 [존재 영역들의 망상적 다양성인 총체성과 복수성 사이의 이런 중간적 본성의 수준에서, 구조화의 능력으로,] 생성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그런 구조들을 발명하는 역량으로 개입한다. (340)

 

1.10. 직관은 모양의 측면과 바탕의 측면을 실재적 단일성 속에서 재발견한다. (...) 직관은 그 자체로 모양과 바탕의 관계이다. (340)

 

1.11. 사유의 생성에 따라서, 직관의 세 유형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마술적 직관, 미학적 직관, 철학적 직관. (341)

 

1.12. 기술적 대상은 (...) 철학적 사유를 통해서, 즉 인간과 세계 사이의 관계 양식들의 생성에 대한 직관을 갖는 사유를 통해서 인식되어야만 한다. (342)

 

1.13. [기술적 대상의 구체화 과정]. 구체화의 의미는 오로지 인간과 세계의 관계 맺음에서 기술적인 양식들과 비-기술적인 양식들의 발생을 추적하는 철학적 사유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을 뿐이다. (343)

 

 

□ 정동과 정서 세미나 ∥2017년 10월 30일∥발제자 : 김지혜 □

질베르 시몽동,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 양식에 대하여』 345-354:1

결론

 

1. 요약

1.1 (345-347)

기술적 대상은 인간 노동을 통해, 그 노동의 산물로서 사유되고 판단되어왔다. 그러나 노동이 구성하는 앙상블이 곧 기술성이므로, 노동은 기술성의 위상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노동은 기술적 대상에 자신의 의미를 부여하며, 이 노동은 기술적 조작(노동으로 환완되지 않는)의 측면으로 이해될 수 있다. 노동을 통해 인간은 자신 안에서 인간 종과 자연 사이의 매개를 실현시키며, 여기서 인간은 연장들의 운반자로 작용한다. 인간이 종과 자연 사이의 매개기능을 기술적 대상에 맡길 수 없을 때, 인간이 자신의 신체, 사유, 행동을 통해 관계기능을 수행해야 할 때 노동이 있다. 이 점에 있어서 인간은 연장들의 운반자이다. 노동 안에서 인간은 형태를 따라 질료를 빚어낸다. 노동의 활동성은 인간적 기원을 갖는 형태와 자연적 질료 사이의 연결을 만드는 것이다. 이 노동 가운데 인간은 두 항들에 시선을 고정시키며, 조작의 내면(두 항의 관계)는 은폐된다.

 

1.2 (347-349) 질료형상 도식

노동자의 노예상태는 질료와 형태가 일치되게 하는 조작을 불투명하게 만드는데 기여해왔다. 일간은 질료와 형태에 몰두하지만, 형태화를 완수시키는 조작 그 자체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관계가 불투명한다. 질료형상 도식은 이런 면에서 노동으로 환원된 기술적 조작을 철학적 사유 안으로 전환한 것이고, 존재자들의 발생에 대한 보편적 패러다임으로 취급된다. (+거푸집과 점토에 대한 예)

 

노동하는 인간은 매개를 준비하지만, 매개를 완수하지는 않는다. 매개는 그 자체로 완수된다.

은폐되어 있는 것은 기술적 조작의 능동적인 중심이다.

기술적 대상을 사용하지 않은 노동 가운데 기술적 지식은 오로지 암묵적이고 실천적 형태로만 전달됐고(=운동적 지식), 이는 형태/질료로부터 나오는 기술적 연쇄의 두 반쪽들을 정교화할 수 있게 하는 지식이다. 그러나 조작 앞에서 멈추는, 전-기술적, 비-기술적 지식이다.

 

1.3 (349-350)

그러나 기술적 지식은 기술적 조작의 중심을 준비할 수 있는 상이한 정교화작업을 그 중심(거푸집 내부에서 일어나는)에 입각해서 발견하며, 이 중심은 기술적 대상에 의해 생산되어야만 한다. 이 중심은 사유되지도, 느껴지지도, 습관을 형성하지도 않는다. 기술적 대상의 작동은 기술적 조작과 동일한 인과시스템의, 실재의 동일한 차원의 일부를 이룬다. 여기서 조작의 준비와 작동 사이에는 이질성이 없다. 기술적인 지식은 관계의 내면성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논리적이다 (운동적 지식은 전-논리적이다)

 

1.4 (350-352)

- 노동의 관계로부터 비롯한 패러다임 체계는 기술적 조작과 기술적 지식으로부터 나온 패러다임 체계와 매우 다르다.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 양식에 대한 연구는 이들의 작동 결과들에 대한 연구, 기술적 대상들을 대면하는 인간의 태도에 대한 연구로 연장되어야 한다. 기술적대상의 현상학은 인간과 기술적 대상 사이의 관계의 심리학으로 연장될 것이다. 이 연구의 두 가지 위험요소는 기술적 조작의 본질에 의해 피해갈 수 있다.

기술적 활동은 집단적인 관계의 모델이며, 이 주위에서 공동집단이 태어날 수 있다. 이 활동을 통해 인간은 매개들을 창조하고, 이 매개들은 인간으로부터 탈착될 수 있다. 이 탈착현상 때문에 인간적 실재는 소외될 수 있다.

기술적 활동은 기술적 대상들의 세계를 건립하면서, 인간과 자연 사이의 대상적인 매개를 일반화하면서 인간을 다시 자연에 연결시킨다. 이러한 연합 가운데 기술적 세계는 전환가능성의 시스템으로 개입한다.

기술적 대상은 다른 기술적 대상들과 함께 집단화 될 수 있다.

1.5 (352-354:1)

- 기술적 대상을 실용적인 것으로 고려하게 추동하는 것은 바로 노동이라는 패러다임이다. 기술적 대상은 실용성이 본질적 정의가 아니다. 다만 결정된 조직을 실행하고, 결정된 도식에 따라 특정 작동을 수행하는 것이다. 기술적 대상을 특징짓는 것은 노동이 아닌, 작동이다.

기술적 대상은 노동보다 더 넓은, 조작적 작동이라는 범주를 가져오며, 이는 가능성의 조건으로서 발명 행위를 그 토대에 상정한다. 발명은 과학적 지식과 동일한 차원에 속하는 정신적 조작이자 정신적 작동이다. 과학과 발명은 정신적 도식이 허용하는 것이며, 정신적 도식은 산업적 앙상블에서는 생산적인 것으로, 실험적 조립 안에서는 과학적인 것으로 기술적 대상을 사용하게 한다.

 

 

 

□ 정동과 정서 세미나 ∥2017년 10월 30일∥발제자 : 권혜린 □

질베르 시몽동,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 양식에 대하여』 354:2~367

 

 

1.1. 인간 주체에 의해 발명되었고, 사유되었고, 요구되었고, 책임 지워졌던 것으로서의 기술적 대상은, 우리가 개체초월적이라 부르고자 하는 관계의 표현매체이자 상징이 된다. (…) 발명의 인간적 행위를 따라서 평가되고 인식된 기술적 대상은 기능적인 가지성이 침투되어 있고 자신의 내적 규범들에 따라 가치부여된 것으로서 순수한 정보를 가져온다. 순수한 정보란 우발적이지 않은 것, 즉 정보를 받는 주체가 정보의 표현 매체에 의해 전달된 형태들과 유사한 형태를 자기 안에 불러일으킬 때에만 일으킬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정보는 절대적으로 새로운 것의 도래가 아니라, 주체와 관련해서 하나는 외생적이고 다른 하나는 내생적인, 두 형태들의 관계 맺음으로부터 귀결하는 의미작용이다. (…) 그것을 받아들이는 주체가 자기 안에 기술적 형태들을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 따라서 기술적 대상의 중개를 통해서 개체초월성의 모델인 인간 사이의(interhumaine)의 관계가 창조된다. (…) 전(前)-개체적 실재의 하중을 수단으로, 개체적 존재와 더불어 보존되며 퍼텐셜들과 잠재성을 담고 있는 자연의 그 무게를 수단으로, 개체들을 관계 맺게 하는 그런 관계다. (354~355)

 

1.2. 발명하는 것은 개체가 아니라 바로 주체다. 그리고 이 주체는 개체보다 더 광대하고, 더 풍부하며, 개체화된 존재의 개체성 이외에 자연의 어떤 하중, 비-개체화된 존재의 어떤 무게를 포함하고 있다. (356)

 

1.3. 조절 활동은 발명과 구축의 기능을 가장 자연스럽게 연장하는 것이다. 조절이란 비록 제한적이긴 하지만 끊임없이 반복되는 발명이다. (…) 제작 견본은 기술적 사유의 상징이자 형태들의 운반자이며, 이 형태들이야말로 기술적 사유의 수행을 연장하고 완성하기 위해서 주체가 만나야만 하는 것이다. 사용자는 자기 안에 그 형태들을 소유하고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 그 기술적 형태들과, 기계를 통해 전달되고 이 기계 안에서 더나 덜 완전하게 실현되어 있는 형태들이 만나면서 의미작용이 솟아나고, 이 의미작용에 입각해서 기술적 대상에 대한 노동이 단순한 노동이 아닌 기술적 활동이 되는 것이다. (…) 기술적 활동은 단지 기계의 활용만이 아니라, 발명과 구축 활동을 연장하는 것인, 기계의 보전이나 조절이나 개량, 기술적 작동에 기울이는 주의의 특정한 비율 또한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58~359)

 

1.4. 경제적 개념들은 노동에 특징적인 소외를 이해하는 데 불충분하다. 노동의 태도들은 그 자체로 기술적 사유와 기술적 활동에 부적합한데, 이는 그 태도들이 기술적 대상에 대한 인식을 가능하게 할, 과학들에 가까운, 명시적인 지식의 양식과 형태들을 포함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외를 축소시키기 위해서는 노동, 수고로움, 육체의 사용을 함축하는 구체적인 적용, 작동들의 상호작용을 기술적 활동 안에서 단일성으로 귀결시켜야 할 것이다. 즉 노동이 기술적 활동이 되어야만 한다. (360)

 

1.5. 정보가 교환될 수 있기 위해서는 인간이 자신 안에 기술적 문화를, 즉 기계가 가져온 형태들과 만나면서 의미작용을 야기할 수 있을 그런 형태들의 앙상블을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 산업 생활의 진정한 중심, 바로 이것과 관련해서 모든 것이 기능적 규범들에 따라 질서정연해져야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기술적 활동이다. (…) 규범들의 권리의 근거는 노동도 소유도 아니고 기술성이다. 인간 사이의 소통은 노동의 가치들이나 경제적 기준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기술적 활동을 통해서 기술들의 수준에서 확립되어야만 한다. (…) 인간이 인간을 만날 때 어떤 계급의 구성원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활동과 동질적인 기술적 대상 안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존재자로서 만날 수 있는 그런 기술적 조직화의 수준이란, 바로 주어져 있는 사회적인 것과 개체상호적인 것을 초월하는, 집단적인 것의 수준이다. (…) 기술적 대상에 대한 관계는 (…) 개체초월적이라 부르는, 집단적인 개체간 실재를 존재하게 만드는 데 도달하는 한에서만 (…) 확립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실재가 발명적 역량들과 여러 주체들의 조직자들 사이에 짝짓기를 창조하기 때문이다. (361~362)

 

1.6. 철학적 사유는 (…) 사회적인 것과 심리적 개체들 사이를 중개하면서 기술적 실재에 대해 해명하는 데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 기술적인 비결들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그것들이 실재적인 것 자체의 법칙들에 따라서 실재적인 것에 도달해야만 한다. 이런 의미에서, 기술들은 그것들이 보여 줄 수 있는 그 모든 유용성의 측면들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이다. 과학적 지식은 기술들이 실재적인 것 앞에서 좌초하거나 기술들 사이에서 서로 일치하지 않을 때 출현한다. (364~365)

 

1.7.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 양식에 대한 분석은 (…) 인식론적 중요성을 갖는다. (…) 만일 자연과 인간 사이의 진정한 매개에 호소할 수 있다면, 즉 기술에 그리고 기술적 대상들의 세계에 호소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유명론적이지 않은 인식 이론이 가능할 것이다. 인식화가 실행되는 것은 조작을 통해서다. 그러나 조작적인 것은 실천적인 것과 동의어가 아니다. (…) 기술적 조작은 자연적 실재의 진정한 법칙들을 이용하는 순수한 조작이다. 인공적인 것은 (…) 되살아난 자연적인 것에 속한다. (365~366)

 

1.8. 이론적인 것과 실천적인 것에 이중으로 준거하는 데서 기인한 원리들과 태도들의 이원론은, 철학적 사유 안에서 반성의 영역으로 취급된 기술적 활동의 도입을 통해서 근본적으로 변경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 행동과 관조 사이의, 불변하는 것과 움직이는 것 사이의 이런 대립은 기술적 조작을 반성의 영역으로서 심지어 패러다임으로서 철학적 사유 안으로 도입하는 것 앞에서 중단되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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