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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미학_정동과 정서

10/16 발제문 통합본

발제문 조회 수 29 추천 수 0 2017.10.20 02:27:41

 

□ 다지원 세미나 정동과 정서∥2017년 10월 16일∥발제자: 반명진

텍스트: 질베르 시몽동,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 양식에 대하여』, 그린비, 2011, 256~267:10

 

 

1. 요약

2장. 기술적 사유와 다른 사유들 사이의 관계 맺음들

1. 기술적 사유와 미학적 사유

 

1.1. 기술적 사유와 종교적 사유는 (...) 원초적인 완전한 사유, 즉 마술적 사유의 양분에서 귀결된 것으로서 한 쌍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256)

 

1.2. 미학적 사유는 위상들이 출현하면서 이 위상들과 관련된 사유들이 서로 고립될 수 있는 바로 그 지점에서 유비적 관계를 통해 단일성을 재구성하고자 하며 사유의 총체성을 추구한다. (257)

 

1.3. 예술 작품이라는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것들이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어떤 경향성에 의해, 그리고 생활 속에 있는 현실적인 어떤 상황들에서 미학적 인상을 느낄 수 있는 역량에 의해 가능하게 되어야 한다. (257)

 

1.4. 언어가 비록 사유는 아니지만 사유의 역량을 보유하는 것처럼, 사실상 예술 작품은 미학적 인상을 느끼는 역량을 특히 유지하고 보존한다. (257-258)

 

1.5. 하나의 행위나 하나의 사물이 지닌 미학적 특성은 그 행위나 사물의 총체적인 기능, 그 행위나 사물의 존재 자체이며, 이 존재는 대상적이면서 동시에 주체적인 것으로서 주목할 만한 지점과도 같은 것이다. (258)

 

1.6. 미학적 사유의 운명. 아니 더 정확하게 자신의 완성을 겨냥하는 모든 사유의 미학적 영감이 갖는 운명은 각각의 사유 양식 내부에다가 다른 사유 양식들의 망상(網狀)과 일치하는 망상을 재구성하는 데 있다. (259)

 

1.7. 미학적 사유는 미학적 실재, 인간과 세계 사이의 새로운 매개, 인간과 세계 사이의 중간intermediate 세계를 만들어 낸다. (261)

 

1.8. 작품이란 이러한 창조의 요구로부터, 즉 예외적인 장소들과 순간들에 대한 이러한 감수성으로부터 귀결되는 것으로, 세계나 인간을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예외적인 장소들과 순간들)을 연장시키고 그것들 안에 삽입되는 것이다. (263)

 

1.9. 미학적 작품은 인간적이면서 동시에 자연적인 우주의 요충지들이자 빛나는 예외적 실재들인 작품들의 연결망을 형성하면서 우주를 꽃피우고 연장시킨다. (...) 예술 작품들의 공간적이고 시간적인 연결망은 인간과 세계 사이에서 마술적 세계의 구조를 보존하는 하나의 매개이다. (264)

 

1.10. 모든 기술적 대상은 움직이는 것이든 고정된 것이든, 세계를 연장시키고 세계 안에 삽입되어 있는 한, 그 자신의 미학적 에피파니를 가질 수 있다. *에피파니: 평범한 사건이나 경험을 통하여 직관적으로 진실의 전모를 파악하는 일, 또는 어떤 사물의 본질에 대한 직관이나 통찰

(265)

 

1.11. 기술적 대상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바탕을 만나서 자신이 이 바탕의 고유한 모양일 수 있을 때, 다시 말해 자신이 세계를 완성하고 표현할 때 아름답다. (266)

 

 

 

 

□ 다지원 세미나 정동과 정서∥2017년 10월 16일∥발제자: 김지혜
텍스트: 질베르 시몽동,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 양식에 대하여』, 그린비, 2011,

267:11—278:3

 

1. 요약

1.1 기술적 대상은 그것이 연장시키고 있는 인간 세계로의 통합을 통해서 상이한 방식으로 아름다울 수 있다. 기술적 앙상블은 인간 세계 안에 삽입되어 이 세계를 표현하면서 회복시킬 때 아름답다. (267) 예) 운행 중인 전화 교환국은 집단적/개인적 삶의 요충지이기에, 플랫폼의 신호기는 그 능력에 의해 아름답다. (268)

질문- 저자가 가정하는 '아름다움'에 대해 논의해봤으면..

 

1.2 미학적 대상은 실재 안에 삽입된 채로 있으면서 자연적 세계나 인간적 세계를 연장한다. 고로 우주의 주목할만한 지점인 미학적 대상은 세계를 표현하고, 바탕의 힘들과 질들을 집중시킨다. 순수한 대상성과 순수한 주체성 사이의 중간적 지위 속에서 스스로를 유지한다. (269)

 

1.3 미학적 실재는 자신을 보편화하지도 주체화하지도 않는다는 면에서 종교적 실재와 구분된다. 미학적 실재가 보편적인 총체성의 기능과 혼동되는 것을 막아주는 것은 바로 예술 작품의 "기술성"이다. 예술 작품들의 앙상블은 마술적 세계를 계승하며, 그 세계의 구조를 유지한다. 기술과 종교 사이의 중립지점을 표시한다. (269)

 

1.4 기술들과 종교는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없지만, 미학적 활동의 중개로는 가능하다. 미학적 작품을 통해 종교적 행위는 삽입되며, 이 종교적 행위 자체가 작품이 된다. 종교적 몸짓은 특정 장소와 순간에 행해지면서 세계 안에 삽입될 때 아름답다- 바탕의 질들이 구조들을 새롭게 만나는 것. (270)

 

1.5 미학적 실재는 주어진 실재에 덧붙여져 있다. 그러나 주어진 실재 안에 이미 존재하는 선들을 따라 그렇게 된다. 미학적 활동 덕분에, 기술들과 종교 사이의 중립지대가 어떤 밀도와 의미를 재발견하며, 이 지대는 미학적인 작품을 통해 마술적 사유의 분리 이전에 있던 우주의 앙상블까지 펼쳐지는 망상구조를 회복한다. (271)

 

1.6
기술적 사유가: 도식, (바탕의 실재가 없는) 모양의 요소로 이루어짐 - 요소들의 기능을 표상
종교적 사유가: (모양의 구조들이 없는) 바탕의 질, 힘들로 이루어짐 - 총체성의 기능을 표상
미학적 사유는: 모양의 구조들과 바탕의 질들을 결합함 - 요소들과 총체성(즉, 모양과 바탕)을 유비적인 관계 속에서 함께 유지함. (272)

 

1.7 중간 실재로서 미학적인 작품은 세계, 인간뿐 아닌, 다른 작품에도 연결되어 있다. 미학적 우주는 본질적인 유비적 관계를 따라 작품 사이를 이행하며, 다른 항으로 이행한다. (그러나 순수하게 기술적 사유의 영역이나 순수하게 종교적 사유의 영역 안에서는 완전한 유비가 존재하지 않는다) (272)

 

1.8 미학적인 것은 존재자들이 출현하는, 스스로를 나타내는 방식, 즉 스스로를 양분하면서 모양과 바탕이 되는 방식을 포착한다.
기술적 사유는: 오로지 존재자들의 모양의 구조만 포착, 이들을 자신의 도식에 동화시킴
종교적 사유는: 오로지 존재자들의 실재의 바탕들만을 포착, 이로써 바탕은 순수/불순, 세속/고결/오염됨

 

기술적 사유는: 존재자들의 작동을 분석, 재구성. 조작.
종교적 사유는: 판단.
미학적 사유는: 조작하며 동시에 판단. 각 존재의 단일성 안에서 연결하고 보완하며 실재의 바탕의 질을 포착하고 구조들을 구축함. 존재자들을 개체화된 것으로 포착하고, 세계를 유비관계에 있는 존재자들의 연결망으로 포착. (273-4)

 

1.9 미학적인 작품은 완전하고 절대적인 작품이 아니며, 완전한 작품을 향해 나아갈 것을(경향성들을 움직이는 동력) 가르친다. 아름다운 것은 대상이 아니다. 대상에 대한 세계의 실재적 측면과 인간의 몸짓 사이의 만남이다. 혼합물이다. 대상인 동시에 주체이다. (275)

 

2.0 예술은 우주를 재구성한다: 새로운 망상을 솟아오르게 하고, 이를 통해 하나의 실재적 우주를 솟아나게 한다. 반면, 마술은 하나의 우주로부터 출발하는데, 이는 방향과 능력이 실린 영역들로 그 우주를 이미 분화시키고 절단하는 어떤 구조를 수립하기 위해서다.(277).

 

 

 

 

□ 다지원 세미나 정동과 정서∥2017년 10월 16일∥발제자: 김민수

질베르 시몽동,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 양식에 대하여』, 그린비, 2011, 278:4-289

 

 

III부 > 2장 기술적 사유와 다른 사유들 사이의 관계 맺음들

 

1. 요약

1.1 예술의 가지 존재 형태 (278면)

예술은 신비적 태도와 의식(儀式)적인 태도 사이에 매개자로서 개입할 수 있다. 예술은 예술적 활동과 대상화된, 즉 현실화된 작품으로 이루어진다.

예술에는 두 가지 부분적인 형태들이 존재한다. – 신성한 예술 vs. 세속적인 예술

신성한 예술: 신성한 예술은 몸짓이면서 동시에 실재이고, 대상이면서 동시에 주체다. 왜냐하면 예술은 미학적 태도 이면서 동시에 작품이기 때문이다. 작품은 실행되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세속적인 예술: 예술적 노동의 결과인 자신의 대상을 이론적 지식과 도덕적 요구 사이에 세운다.

     → ‘’는 ‘’과 ‘’ 사이에서 중개한다.

     → 미학적 대상은 지식의지 사이의 매개자다.

     → 미학적 대상은 지식행위 사이를 중개하는 조작의 결과물이다.

 

1.2 (279면)

모든 미학적 대상은 신성하거나 세속적이지만, 미학적 인상은 신성하면서 동시에 세속적이다.

미학적 인상은 대상의 매개와 동시에 인간의 매개를 상정한다.

고대 비극의 대단원만이 진정한 미학적 판단에 해당한다.

 

1.3 (280면)

미학적 판단은 기술적 판단과 순수한 미학적 판단의 혼합물이다.

 

1.4 (281면)

신성한 세속적인 은 실재적인 삶 안에서 그리고 미학적인 인상 안에서 서로 만난다.

신성한 예술세속적 예술은 단지 완전하고 실재적인 미학적 인상의 보조물이다.

낭만주의의 미학적 인상은 삶의 태도 안에 있다.

고전주의의 미학적 인상은 예술 작품 안에 있다.

 

1.5 (282면)

► ‘제도화된 예술, 인공적인 예술은

→ 가까운 사유들 사이의 부분적인 결합을 실행할 수 있으나, 종교적 사유와 기술적 사유를 완전히 접근시킬 수 없다.

→ 여전히 참된 미학적 인상을 발견하기 위한 하나의 준비이자 하나의 언어에 불과하다. 참된 미학적 인상은 마술적 사유 만큼이다 실재적이고 심원한 것이다.

 

1.6 (284면)

► 미학적 판단의 두 번째 기능 – 전문화된 사유의 상이한 유형들을 대변하는 사회 집단들 사이의 소통을 준비하는 것이다.

 

1.7 (285면)

총체성을 향한 경향성은 미학적 추구의 원리다. 그러나 이같은 추구는 끝없이 나아가기를 시작한다.

() 결정화 작용의 유비적 현상을 떠올리게 한다. ‘미학적 경향성’이란 한 결정된 영역에서 다른 모든 영역들의 등가물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다.

 

1.8 (285-289면)

예술은

→ 특수한  존재 안에 있는 보편성에 대한 의지, 즉 자기 양식을 초극하고자 하고, 자신의 한계들을 초극함으로써, 자기 안에서 모든 양식들을 실현하고자 하는 그런 의지다.

→ 그 예술이 실현하는 축하의식과 취임식 피날레에서, 지금 여기서(hic et name) 완수되고 국지화된 실재를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을 수 있을 실재로 변형시킨다.

→ 영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국지적으로 완수된 실재에게  다른 장소나 다른 순간들로 이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면서 변환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 영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태어나고 다시 실행되는 능력을 주는 것이다.

→ 본질의 씨앗을 남긴다.

지금 여기(hic et nunc) 실현된 특수한 존재자에게 그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을, 그러나 언젠가는 다시, 그리고 무수히 많이 그 자신일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한다.

→ 매번 새로 시작하는 실재를 무화시키지 않는 되풀이의 능력이다. 바로 이 점에서 예술은 마술적이다.

() 물질계에서의 결정화 과정을 연상해서 비교해볼 수 있다.

 

1.9 변환성 (286면)

예술이란 서로서로에 대하여 상이한 양식들의 변환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미학적 지향 – 사유의 상이한 양식들 사이에 수평적인 관계를 확립하는 것. 양식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변환적 연속성’의 확립을 허용한다.

 

() 미학적 사유의 기능/위치: 기술적 사유종교적 사유를 매개하고 결합시킨다. 기술적 사유는 조작하고, 종교적 사유는 판단하며, 미학적 사유는 조작하며 동시에 판단한다.

기술적 사유

종교적 사유

도식들, 즉 바탕의 실재가 없는 모양의 요소들로 구성

모양의 구조들이 없는 바탕의 질들과 힘들로 구성

모양

바탕

요소들의 기능을 표상한다.

총체성의 기능을 표상한다.

조작

판단

미학적 사유는 요소들과 총체성, 즉 모양과 바탕을 유비적인 관계 속에서 함께 유지한다. 세계의 미학적 망상은 유비들의 연결망이다. 여기서 ‘부분적 동일성의 관계 맺음’에 해당하는 유사성과 달리 유비를 ‘관계 맺음들의 동일성’이라 정의한다

 

 

 

□ 정동과 정서 세미나 ∥2017년 10월 16일∥발제자 : 권혜린 □

질베르 시몽동,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 양식에 대하여』 289 소제목 2—306(2장 끝)

 

 

2. 기술적 사유, 이론적 사유, 실천적 사유

 

 

1.1. 미학적 사유와 마찬가지로, 철학적 사유도 대립되는 위상들 사이의 중립 지점에 위치한다. 그러나 그 수준은 마술적 단일성의 위상차로부터 귀결된 일차적인 대립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술적 사유와 종교적 사유가 〔각각〕양분되어 산출된 결과물들 사이의 이차적인 대립의 수준이다. (…) 사유의 일차적인 양상들의 수준(기술, 종교, 미학)은 소통과 표현의 간헐적인 사용만으로 특징지어진다. (…) 그 사유의 정수는 표현을 통해 전달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유의 그 상이한 유형들은 인간과 세계 사이의 매개들에 속하지, 주체들 사이의 만남에 속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이와 반대로 사유의 이차적인 양상들은 소통과 표현을 상정하며, 표현적 소통의 매듭인 판단의 가능성을 함축한다. 또한 그것들은 발화의 내용을 대하는 주체의 태도들과 양상들을 본래적인 의미에서 내포한다. (289~290)

 

1.2. 기술성은 (…) 특히 이론적인 판단과 실천적인 판단에, 아니면 최소한 몇몇 이론적인 판단들과 몇몇 실천들의 판단들에 도입된다. (…) 잠재성은 이론적이고 객관적인 양상이다. (…) 그것은 순수한 능력, 절대적인 능력이다. 기술적 행동의 좌초는, 잠재성과 동시에, 이 잠재성의 주관적 대응물, 즉 소망으로서의 가능적인 것을 발견하게 한다. (…) 모양의 실재가 바탕의 실재에 상응하듯이, 실천적으로 바라는 것은 이론적으로 잠재적인 것에 상응한다. (…) 하나는 이론적이고 다른 하나는 실천적인 이 두 양상들의 출현은, 인식이면서 동시에 행동이었던 일차적 단일성의, 즉 완전하고 구체적인 기술적 사유의 파열을 표현한다. (290~292)

 

1.3. 퍼텐셜한 잠재성 개념은 항상 특수하다는 걸 주목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중요하다. (…) 그것은 세계의 앙상블에 관련되지 않는다. (…) 잠재성의 바로 이런 특성은 (…) 기술성으로부터 비롯한다. (…) 그것은 기술적인 몸짓 아래 현실화될 준비가 되어 있는 어떤 잠재성을 지금 여기에서 만나야만 한다. 이 잠재성은 삽입되어 있고, 국지화되어 있으며, 특수한 것이다. 소망이 주관적으로 가능한 것이듯이, 잠재성은 객관적으로 가능한 것이다. (293)

 

1.4. 따라서 잠재성의 이런 양상이 하나하나씩 겪은 항들의 축적을 통해서 진리를 발견하고자 하는 귀납적 사고방식을 지배한다는 것은 자연스럽다. 귀납은 그 원초적인 형태들에서, 필연성이 아니라 잠재성에 근거해서 정초된다. (…) 귀납적 사유는 (…) 기술들의 분열로부터 산출된 이론적 사유의 형태다. 방법의 측면에서 보자면, 그것은 특수한 체험들의 타당성을 축적하여 그 속에서 전체적인 발화의 타당성을 파악하면서, 요소들과 특수한 경험들로부터 집합 전체와 앙상블의 긍정으로 진행하는 사유다. 내용의 측면에서 보자면, 이 사유는 (…) 세계의 발생적 능력들과 질들을 붙잡고 있는 사유다. (…) 귀납적 사유는 직접적이고 파편적이며 국지화된 기술적 행동의 실패로부터 비롯하고, 이 실패는 모양의 실재와 여기에 연합되어 있었던 바탕의 실재 사이의 탈구를 야기하는데, 귀납적 사유는 바탕의 실재들을 조직화하기 때문이다. (293~295)

 

1.5. 기술적 사유가 실천과 이론으로 양분하는 것은 바로 부서진 양립가능성을 되찾기 위해서다. 기술들에서 나온 이론적 사유는 조작의 조건들 총체를 동질적이고 정합적인 새로운 방식으로 사유할 수 있게 하는 그런 사유다. (…) 기술적 실패는 사유가 새롭게 변화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다. 즉 그것은 기술적 조작의 모양 도식들과, 이 모양 도식들이 기술적 몸짓 안에서 갖는 효력에 자연이 부여한 한계들의 표상을 양립가능하게 만들면서 동질적인 방식으로 융합하는 새로운 공리계를 정초하게끔 강제한다. 관념적인 양립가능성을 확립하는 이 새로운 표상이 바로 개념이다. (296~297)

 

1.6. 기술적 사유의 실천적 사유 : 기술적 몸짓에 적용하기로부터 자유로운, 그 소망들은 세계의 객관적인 잠재성들처럼 서로서로에게 맞추어 조화를 이루고 있고, 이론적 지식에서의 귀납과 유사한 과정을 따라서 실천적 앙상블을 형성하고 있다. 바로 거기에 (…) 실천적 도덕의 토대들이 있다. 이러한 가치들은 집단화되고 체계화되기 전에 먼저, 세계 안에 삽입되어 있는 행동 안에서 느껴지고 체험되어야만 한다. 게다가 그것들은 결코 완전하게 체계화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 상이한 가치들의 복수성에 이르기 때문이다. 기술들로부터 나온 이론적 사유와 실천적 사유가 복수적인 것으로 남아 있게 되는 것은 그것들의 귀납적인 특성 때문이다. (297~298)

 

1.7. 종교적 사유 역시 (…) 이론적 양식과 실천적 양식으로 양분된다. (…) 실천적 사유가 행동의 코드를 제공하는 동안, 이론적 사유는 (…) 하나의 탁월한 표상 안에서 세계의 질들과 힘들을 양립가능하게 하려고 애쓴다. 종교성을 표현하는 이론적 지식은 우주와 인간을 일원화하는 체계적 표상을 찾는다. (…) 이 일원적이고 연역적인 지식은 본질적으로 관조적이다. (…) 인식의 노력은 오로지 이미 존재하는 질서를 의식화하는 것일 뿐이지 결과로서 질서를 놓는 것이 아니다. 그 지식은 존재를 변화시키지 않으며, 존재를 파악하기에는 항상 부분적으로 불충분하게 남아 있다. (…) 실천적 차원에서, 종교적 사유는 무조건적으로 주어진 원리로부터 출발하고 그 원리로부터 특수한 규칙들로 내려오는 의무의 윤리를 탄생시킨다. (298~301)

 

1.8. 이론적인 연역적 인식의 양상은 필연성이다. 실천적 차원에서 필연성의 이론적 양상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명령의 유일하고 무조건적인 특성, 즉 정언적인 특성이다. (…) 종교적 정언명력은 (…) 절대적이다. (…) 정언명령은 무엇보다 총체성에 대한 존경이다. 그것은 바탕의 실재의 자기-정당화된 타고난 특성으로 이루어진다. 정언명령 안에서 도덕적 주체가 존경하는 것, 그것은 바로 자신을 무한히 넘어서며, 자신의 행동을 조건 짓고 정당화하는 (…) 총체성으로서의 실재적인 것이다. (301~302)

 

1.9. 따라서 이론적 사유의 두 원천들과 실천적 사유의 두 원천들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 이론적 사유는 기술들의 바탕의 내용과 종교들의 모양의 내용을 모은다. 그래서 그것은 귀납적이고 연역적이게, 조작적이고 관조적이게 된다. 실천적 사유는 기술들의 모양의 내용과 종교들의 바탕의 내용을 모은다. 이는 실천적 사유에게 가언적인 규범들과 정언적인 규범들, 다원론과 일원론을 제공한다. (302)

 

1.10. 완전한 지식과 완전한 도덕은 이론적 차원과 실천적 차원에서 각각 대립하고 있는 두 원천들로부터 나온 사유 양식들의 수렴 지점에 있을 것이다. (…) 이론적 차원에서는 (…) 실재적인 것은 우선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서 귀납적인 지식과 연역적인 지식 사이의 만남이 이루어질 것이다. (…) 실재적인 것은 잠재적인 것과 필연적인 것의 종합이고, 아니 차라리 그것들의 양립가능성의 근거다. 그것은 귀납적 다원론과 연역적 일원론 사이에서 완전한 실재로서 이해된 모양-바탕 관계의 안정성이다. (…) 실천적 차원에서는, 기술들로부터 나온 실천적 사유의 소망 양상과 정언명령 사이에, 실천적 가치들의 다원론과 정언명령의 일원론 사이에, 바라는 것과 의무가 만나는 바로 그 지점에, 중심적인 도덕적 범주가 존재한다. (…) 그것은 양립가능성 규범의 단일성과 가치들의 가능한 복수성을 함축하면서, 행동의 최적 조건을 겨냥한다. 그 최적 조건은 총체성의 무조건적인 요구와 가치들의 복수성을 양립가능하게 하는 행동의 어떤 특성이다. (303)

 

1.11. 미학적 사유가 기술과 종교 사이에 원초적 대립의 수준에서 이루었던 작품을, 이론적 사유와 실천적 사유의 관계라는 수준에서 다시 취해야만 할 것이다. (…) 이것을 완수해야만 하는 것이 철학적 반성이다. (…) 철학적 사유는 따라서, 수렴의 역할을 할 수 있기 위해서 무엇보다 이전의 발생들에 대해 각성하고, 그것들의 참된 의미 안에서 양상들을 파악하도록 해야 하며, 철학적 사유의 진정한 중립 중심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 철학적 사유는 맨 끝에 가서야 자신이 수렴의 힘으로 개입하게 되는 그 생성을 다시 떠맡아야만 한다. 철학적 사유 그 자체는 (…) 분리 이전의 관계적 양식들로 기술적 사유와 종교적 사유를 전환시킬 수 있다. (…) 철학은 종교들과 기술들을 문화적 내용으로 번역하면서 문화를 건설하고 조절할 것이다. (…) 문화는 그래서 사유의 상이한 형태들의 발생에 동반하면서, 또 수렴하는 힘들의 실행 결과를 보존하면서, 중립 지점에 있을 것이다. (304~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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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기타 결석계 296 2017-10-30 22
1009 발제문 10/30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 양식에 대하여』 345~354:1 발제문 296 2017-10-30 22
1008 발제문 10/30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 양식에 대하여』 330:5~343 mjBan 2017-10-30 20
1007 발제문 10/30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 양식에 대하여』 354:2~367 발제문 몽슈슈무민 2017-10-30 20
1006 발제문 10/30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 양식에 대하여』 354:2~367 발제문 초고리 2017-10-28 27
1005 발제 공지 10/30 세미나 발제 공지 초고리 2017-10-20 37
» 발제문 10/16 발제문 통합본 초고리 2017-10-20 29
1003 발제문 [10/16] 시몽동,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양식에 대하여』, 267:11—278:3 296 2017-10-16 35
1002 발제문 10/16 발제문 통합본 (1) 초고리 2017-10-16 29
1001 기타 결석계 mjBan 2017-10-16 25
1000 발제문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 양식에 대하여』 289 소제목 2—306(2장 끝) [1] 초고리 2017-10-16 29
999 발제문 [10/16] 시몽동,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양식에 대하여』, 278:4~289 몽슈슈무민 2017-10-16 26
998 발제문 [10/16] 시몽동,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양식에 대하여』, 256~267:10 mjBan 2017-10-1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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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나온 책 [사건의 정치]

2017년 새책 [영화와 공간]
[집안의 노동자]
[기호와 기계]
[만화로 보는 철도이야기]
[절대민주주의]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
[신정-정치]
[기린은 왜 목이 길까?]
[로지스틱스]
[잉여로서의 생명]
[전쟁론 강의]
[전쟁론]
[천만 관객의 영화 천만 표의 정치]
[가상과 사건]
[예술로서의 삶]
[크레디토크라시]
[대테러전쟁 주식회사]
[마이너리티 코뮌]
[정동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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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인으로 사고하라]
[9월, 도쿄의 거리에서]
[빚의 마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