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 2월16일 '오늘의책'에『푸코의 맑스』가 추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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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이 책을 추천해주신 블로거 '드보르작' 님의 추천 글입니다. 


‘자유’와 균형을 맞추어온 강압적인 권력 기술


푸코가 누구인지, 그의 철학은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인터뷰 형식으로 푸코의 생각을 쉽게 알 수 있는 책이다.

푸코에게 맑스주의는 무엇일까. 그는 ‘추상적’이며 ‘신성’하고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분석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연구 방법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연역적 체계를 상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맑스주의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나의 고정된 규칙이나 법칙이란 있을 수 없다.


지식인이 비지식인을 계몽시킨다고 하는 생각도 실상은 지식인이 권력의 대리인 기능을 하는 것에 불과한 것 아닐까. 푸코는 지식인들이 학구적이고 학술적이며 박식한 연구들로 출발해서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의 핵심적인 문제들을 지적해낼 수 없다고 본다. 이미 대중들은 지식인보다 충분히 아는 것도 많다.

비지식인과 함께, 그들과 작업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정신병자들은 무엇을 말하는가. 정신병동에서의 삶은 어떠한가. 간호사의 일은 무엇인가. 병자들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등등. 푸코는 이런 경험적 연구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광인은 감금해야 마땅한 것인가. 아니다. 그것은 푸코의 연구에 의하면 근대의 현상이다. 서양에서 18세기에 ‘광기’는 과학적 조사와 분석의 ‘대상’이었다. 동시에 대상으로서의 ‘광기’를 ‘이해할 수 있는’ 주체가 필요했다. 이렇게 지식과 권력은 결부된 것이다.

그는 정상과 비정상인의 이분법에 반대한다. 비정상인을 규정하는 이성은 그 자체가 이미 폭력적이며 ‘비정상적’이다. 그에겐 칼 슈미트 식의 ‘적과 동지’ 라는 구분도 물론 가능하지 않다. 부르주아 대 프롤레타리아라는 대립은 주체를 그 범주 안에 고정시켜 버린다. 하지만 하나의 주체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자신을 갱신시켜 간다. 그는 본질주의적으로 인간을 규정짓지 않는다. 학교 다닐 때 꼴지도 성장하면서 다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 늦게 공부를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 한번 꼴찌는 영원한 꼴찌 아니다.


푸코는 어떤 문제를 놓고 지식인이나 전문가에게 위임하지 말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런 문제제기는 어쩌면 직접 민주주의(대의가 아닌)를 향한 하나의 아이디어를 제공해 줄지도 모르겠다. 푸코에 의하면 극도로 강압적인 권력 기술을 발달시킨 것은 민주주의였다. 강압적인 권력 기술은 ‘자유’와 균형을 맞추는 기능을 해왔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지금 랑시에르가 말하는 것처럼 ‘치안’ 사회에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거리 곳곳에는 감시 카메라가 작동하고 있다. 모든 위험으로부터 우리는 ‘안전’해야 하고 ‘웰빙’해야 한다. 물론 그렇게 우리는 생명을 저당 잡힌 채, 정치적 동물도 사회적 동물도 될 수 없다. 되어서는 안 된다. 그저 내 방안에 얌전히 앉아서 ‘잘 먹고 잘 살면’ 되는 것이다. 이 사회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듯이. 하지만 지젝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바로 그것이 ‘문제’다.


푸코를 경유해서 현대 사회의 문제점들을 같이 생각해 보는 것도 유익할 것 같다. 아래 책들도 함께 읽어보면 도움이 될 듯하다.


오늘의 책 선정의 변을 써주신 `드보르작`님은

아침에 농사 짓고 오후에 낚시하고 저녁에 토론하며 살고 싶은 사람입니다. http://blog.naver.com/ahxkvjavm


- 원문 링크 주소: http://book.naver.com/bookdb/today_book.nhn?bid=14728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