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지원 세미나강좌 PRAB & NEHU ∥2010년 9월 3일∥발제자: 이 성 혁

텍스트: 발터 벤야민, <<아케이드 프로젝트>> <a 5, 4∼a, 9, 4>, 새물결, 2006.

1. 요약

1.1. “엄격하고 비장감마저 감도는 말로 노동을 칭송하는 한편으로 노동자의 생계를 지탱시켜주는 노동은 사실 본인의 자발적 의지의 소산이 아니라 노동자의 땀으로 살찌고 있는 어떤 무리들이 그에게서 징수한 세금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노동자에게 주입하는 것은 절대 허용되지 않던 시대가 있었다. …… 대부분의 경우 노동은 자연의 법칙, 쾌락이나 은총으로 칭송되었다.” 샤를 니자르, <<민중의 노래>>, 파리, 1867. (a 5a, 2)

1.2. “1857/58년의 공황은 …제국 사회주의에 대한 모든 환상에 즉각 종지부를 찍었다.” 라자노프, <제1인터내셔널의 역사>, 프랑크푸르트, 1928. (a 5a, 4)

1.3. “리옹에서는 경제 공황이 견직물 직공들의 임금을 하루 15-16 시간의 노동 시간당 18수까지 폭락시켰다. 1831년 11월 21일 노동자들은 폭동을 일으켰다. 그것은 전혀 정치적 성격을 갖지 않은 것으로,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이 든 검은 깃발에는 “일하면서 사느냐, 투쟁하면서 죽느냐”라고 쓰여 있었다.” 말레/그리예, <<19세기>>, 파리, 1919. (a 6, 1)

1.4. “1830년 대다수 사람들은 프랑스에서 카톨리시즘이 빈사상태에 놓였으며 성직자들의 정치적 역할은 영원히 끝났다고 생각했다. … 그러나 1848년 2월 24일 봉기한 자들은 튈르리 궁전을 약탈하기 시작하다가 예배당에서 끌고 나온 십자가 앞에서 모자를 벗고 이 십자가를 생-로슈 성당까지 호위해서 운반했다.” 말레/그리예, 위의 책. (a 6, 3)

1.5. “정통 왕당파들은 노동자계급이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에게 맞서 싸우도록 하며, 이를 이용해 부르봉 왕조를 재건하려고 했다. 이에 반해 공화파는 노동계급 운동의 순순히 프롤레타리아적인 뉘앙스를 되도록 약화시키는 데 관심을 갖고 있었다. 7월 왕정에 맞선 투쟁에서 장래의 동맹자가 될 노동자 계급을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7월 봉기를 경험한 세대는 …리옹 봉기에서 전혀 새로운 것을 간파했는데 막상 리옹의 노동자들 본인들은 이 새로운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큰 충격을 받았다.” 타틀레, <<리옹의 노동자봉기>> (a 6a, 1)

1.6. “페리에가 리옹 봉기에 정치적 요소가 결여되어 있는 것을 반긴 것은, 이 봉기가 부유한 자에 맞선 가난한 자들의 전쟁에 불과하다는 것에 만족했기 때문이다.” 타틀레, 위의 글.(a 6a, 2)

1.7. 정치적 상투어에 미친 낭만주의의 영향, 이것이 종교 결사에 대한 공격을 설명해준다. “이제 막 낭만주의가 시작되려 하고 있다. 뭐든지 극적으로 과장하려는 것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고르스, <<왕정복고>>, 파리.(a 7, 1)

1.8. 카샤나크, <<노동자 계급과 부르주아 계급의 역사>>의 1838년 이론. 프롤레타리아의 선조는 도적과 매춘부들이다. (a 7a, 3)

1.9. 레옹 기유맹. “그에게는 두 개의 구세구가 있다. ……신과 에콜 폴리테크니크가 그것이다.” 피네, <<에콜폴리테크니크의 역사>>, 파리, 1887.(a 7a, 6)

1.10. 2월 혁명기의 한 장면. 튈르리 궁이 약탈당할 때 에콜 폴리테크니크 학생이 그리스도 조상을 옮기려고 하자 일군의 무리가 공손히 그의 뒤를 따랐다. “이 시기에는 성직자조차 볼테르 풍의 국왕 아래서 박해받았기에 혁명을 열광적으로 환영했다.” 피네, 위의 책. (a 8, 1)

1.11. 2월 혁명 때 에콜 폴리테크니크 학생들은 튈르리 궁에서 서명자들을 곤란하게 만들 문서를 소각했다. 그것은 바로 루이-필립에 대한 충성 선서였다. 피네, 위의 책. (a 8, 3)

1.12. “1840년경 일군의 노동자들이 여론 앞에 직접 그들의 대의를 호소하기로 결의했다. 이 순간부터 그때까지 공세로 나왔던 공산주의는 조심스럽게 수세로 방향을 바꾼다.” 코르봉, <<파리 민중의 비밀>>, 파리, 1863년. (a 8, 5)

1.13. “노동자는 일반적으로 실질적인 문제를 이해하는 데 서툴다. …… 작업장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하는 모든 시스템은 ……우리 노동자들에게는 맞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코르봉, 위의 책. (a 8, 6)

1.14. “아동과 부녀자에 대한 산업적 착취야말로 박애의 가장 영광스러운 성과 중의 하나이다. 또한 임금 인하를 목적으로 한 노동자의 싸구려 급식은 18세기의 공장주와 국민경제학자들의 특히 선호한 박애주의의 아이디어 중 하나였다. …… 편견 없이 대혁명을 직시하게 된다면 이 혁명을 위대한 것으로 만들어준 이념이 이미 부르주아지가 지배권을 확보하고 있던 스위스에서 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폴 라파르그, <그리스도의 박애 사업>.(a 8a, 1)

1.15. “우리의 공포정치의 거물들은 결코 민중 출신이 아니라 부르주아와 귀족이며, 게다가 교양 있고 영리하며 변덕스러운 사람들, 궤변가와 스콜라 철학자들이었다는 것이다.” 미슐레, <<민중>>, 파리, 1846년. (a 8a, 2)

1.16. <<감정 교육>> 중 2월 혁명에 관한 묘사 - “전체적인 움직임이나 큰 충돌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묘사되어 있지 않다. 사사로운 사건들이 지루하게 열거되어 있을 뿐 그것들이 하나의 전체를 구성하거나 하자는 않는다. … 할 일 없는 사람의 관점에서 본 서술의 모델이자 허무주의자의 관점에서 본 정치의 모델이기도 하다.” 네시오, <<양 제정 하의 문학 : 1804-1852년>>, 파리, 1874. (a 8a, 4)

1.17. 라스네르가 작사한 <기요틴에 바치는 송가>에서는 범죄자가 여성이라는 알레고리적 형상 속에서 미화되고 있다. "이 여자는 웃고 있었다. 소름끼칠 정도로 환하게./타도한 왕좌 쪽에서 웃고 있는 저 민중처럼." 델보, <<낮의 라이언족>>, 1867년. (a 9,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