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지원 미학 시학 세미나 ∥2010년 8월 6일∥발제자: 알마

텍스트: 발터 벤야민, 『아케이드 프로젝트』, 새물결, 2008, 239 - 258쪽

 

 

S [회화, 유겐트슈틸, 새로움]

1.1.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몇 가지 소소한 사건들에서 그것만의 특유한 양상을 발견해내고는 거기서 이 시대 특유의 정신을 간파해내곤 하던 일이 종종 있었다. 나는 이렇게 중얼거리곤 했다. ‘이는 현대이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옛날이었다면 어림도 없다. 즉 그것은 이 시대의 징후이다.’ 그러던 중 나응 오래된 회상록이나 옛날 역사책 속에서 이와 유사한 상황에서는 열에 아홉 번은 똑같은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아나톨 프랑스, 『에피쿠로서의 정원』, 파리

1.2. 항상 이미 존재했던 것과 관련해 새로운 것으로서의 ‘현대적인 것’에 대한 정의. 카프카(『소송』)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항상 새롭고도 동일한 황야의 풍경은 이러한 사태를 매우 교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잠시만요, 그림 하나 보시겠습니까? 뭣하면 팔 수도 있겠습니다만,’… 화가는 침대 아래에서 액자 없는 그림들을 한 무더기 꺼냈는데, 온통 먼지 투성이여서 화가가 맨 위 그림에서 먼지를 불자 카는 눈앞이 안보이면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황야로 이루어진 풍경이지요’라고 화가가 말하고는 카에게 그림을 내밀었다. 거긴엔 약해 보이는 나무 두 그루가 어두운 풀밭 위에 서로 멀찍이 떨어져 서 있었다. 배경은 찬란한 일몰이었다. ‘좋습니다.’카가 말했다. ‘사겠습니다.’깊이 생각하지 않고 짤막하게 말해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카는 화가가 불쾌하게 생각지 않고 두번째 그림을 치켜들자 기뻤다. ‘아까 그림과 한 쌍입니다.’화가가 말했다. 한 쌍으로 하려고 그린 것인지는 몰라도 첫번째 그림하고 조금도 차이가 없었다. … ‘아름다운 풍경이군요’ 그가 말했다. ‘둘 다 사서 사무실에 걸도록 하겠습니다.’‘주제가 마음에 드시는 모양이군요’ 화가가 세번쩨 그림을 쳐들었다. ‘다행히도 비슷한 그림이 여기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비슷하다기 보다는 완전히 똑같은 황야로 이루어진 풍경이었다. 화가는 낡은 그림을 팔 수 있는 이 기회를 십분 활용했다. ‘세 작품 모두 얼마지요?’‘거기에 대해선 다음번에 말하기로 하지요’화가가 말했다. … ‘여하튼 그림이 마음에 드신다니 기쁩니다. 이 아래에 있는 그림들을 모두 드리겠습니다. 전부 황야로 이루어진 풍경입니다. 전 황야가 담긴 그림을 많이 그렸지요. 너무 황량하다고 이런 그림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당신도 그런 분이신데 바로 황량한 점을 좋아하지요.’”프란츠 카프카, 『소송』, 베를린, 1925년

1.3. 지옥의 시간인 ‘현대.’이 지옥의 형벌이란 언제나 이 일대에 존재하는 최신의 것이다. ‘언제나 동일한 것이 반복적으로’발생하는 것이 문제가 아닐뿐더러 나아가 영겁회귀 또한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최신의 것 속에서도 세계의 양상은 결코 변하지 않으며, 이 최신의 것이 모든 측면에서 동일한 것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 이것이 바로 지옥의 영원성을 구성한다. ‘현대’를 생생하게 나타내는 특징들 전체를 규정한다는 것은 이 지옥을 그려내는 것이 될 것이다.

1.4. “역사에서 가장 일반적인 사항들, 즉 비교와 이론화에 가장 적합한 사항들만 거론한다면 쇼펜하우어 말대로 조간 신문과 헤로도토스를 비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이 둘 사이에 있는 모든 것, 즉 가장 오래전의 사실과 최근의 사실들의 자명하고 피할 수 없는 반복 등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 채 그저 사람을 질리게나 할 뿐이다.”레미 드 구르몬, 『제2의 가면의 책』, 파리, 1924년, 이 구절은 다소 애매하다. 역사의 흐름에 있어 반복은 큰 사건이든 작은 사건이든 모든 경우에 적용된다고 상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전자뿐이다. 이와 반대로 영원히 동일한 것은 다름 아니라 ‘이 둘 사이에 있는’사사로운 사건 속에서 생생하게 나타난다는 점을 보여줄 것.

1.5. 역사(학)의 구성물들은 진정한 삶을 훈련시켜 막사에 가두는 군대의 군기에 비유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삽화라고 하는 것은 가두 봉기이다. 삽화는 사태를 공간적으로 우리 쪽으로 바짝 끌어 당겨 우리 삶 속으로 들어오도록 해준다. 삽화는 모든 것을 추상화해버리는‘감정이입’을 요구하는 역사학과 첨예한 대조를 이룬다.

1.6. 규범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에서 ‘현대적’이라고 느끼고 자신의 시대가 심연의 바로 코앞에 서 있다고 생각하지 않은 시대는 하나도 없었다. 결정적 위기의 한가운데 있다는 식으로 절망으로 치달은 의식은 인류에게는 늘 있어온 것이다. 모든 시대가 자신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새로운 시대로 보인다. 그러나 이 ‘현대적인 것’은 마치 동일한 만화경이 다른 면들을 보여주듯이 각기 상이한 의미를 갖고 있다.

1.7. 아케이드들의 몰락이 아니라 급변. 순식간에 아케이드는 ‘현대’의 이미지가 주조된 주형이 되었다. 여기에 19세기는 자신의 최신의 과거를 자부<심>과 함께 반영시켰다.

1.8. 16세기의 숫자는 모두 자포/성직자의 복장/를 뒤에 끌고 다녔다. 19세기의 숫자들은 오늘날에 와서야 비로소 어던 양상을 띠고 잇는지가 밝혀지고 있다. 특히 건축물의 날짜와 사회주의와 관련된 날짜에서.

1.9. 꿈꾸는 집단은 역사를 모른다. 이 집단에게 있어 사건의 경과는 항상 동일하며 또한 항상 최신의 것으로서 흘러간다. 즉 최신의 것, 가장 현대적인 것이 주는 센세이션은 모든 동일한 것의 영겁회귀와 마찬가지로 사건의 몽상적 형식이다. 이러한 시간 지각에 대응하는 공간 지각이 모든 것이 상호 침투하고 서로 겹쳐지는 산책자의 세계의 투명성을 이룬다. 이러한 공간 감정, 시간 감정이 현대의 잡문업을 요람으로 탄생했다.

1.10. “우리를 과거에 대한 고찰로 내모는 것은 과거에 존재했던 것과 현재의 우리의 삶 사이의 유사성으로, 여기서 말하는 유사성이란 어쨌든 동일한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동일성을 파악함으로써 우리는 스스로를 죽임이라는 가장 순수한 영역으로 옮겨놓을 수 잇게 된다.”후고 폰 호프만슈탈, 『친구들의 책』, 라이프치히, 1929년

1.11. “아마 어떠한 겉모습도 모던스타일/아루누보./의 놀랄 만한 장식적 건축을 구성하고 있는 거대한 외관보다 더 이상적이라는 말에 정확하게 어울리는 무리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도 이들 모던스타일의 건축군만큼 순수하며 마음을 뒤흔드는 꿈의 세계를 만들어낼 수 없었다. 이러한 건축군은 건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의 주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강건한 실질을 갖춘 욕망을 진정한 의미에서 현실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폭력적이며 잔혹한 자동반복에 의해, 현실에 대한 증오와 관념 세계로 도망가려는 욕망이 안타깝게도 유아기 신경증처럼 고통스럽게 그대로 노출된다. 살바도르 달리, 「썩은 당나귀」(『 혁명에 봉사하는 초현실주의』, 1권, 파리, 1930년, 12페이지). 아마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설계한 건축가의 건물이 있는 바르셀로나만큼 이러한 유겐트슈틸의 완벽한 전형을 가진 도시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1.12. 카프카의 『소송』에 나오는 황야로 이루어진 그림의 주제에 대해, 지옥의 시대에는 새로운 것(대조를 이루는 것)은 항상 영원히 동일한<것>이다.

1.13. “무에서 하나의 스타일을 만들어내려고 했다. 외국의 영향을 받아 ‘모던 스타일’이 조장되었는데, 그것은 거의 식물 장식에서만 영감을 끌어왔다. 영국의 라파엘 전파나 뮌헨의 도시 계획자들이 모델이 되었다. 철골 건축에 이어 강화 콘크리트가 나타났다. 그것은 건축에서 곡선의 최저점을 형성하는데, 정치의 가장 심각한 침체기와 때를 같이한다. 파리가 상당히 기이할 뿐 아니라 오래된 도시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집과 기념 건조물을 받아들인 것은 바로 이 시기이다. 케 도르세 27번지에 M. 부벤스에 의해 세워진 중구난방식의 집, 지하철 출입구, 생-제르뱅 록스루아 구역의 역사적인 풍경 한가운데 프란츠 주르댕에 의해 건립된 사마리텐 백화점 등이 그러한 예이다.” 뒤베크/데스프젤

1.14. 철골 건축과 건축 기술 분야에서 유켄트슈틸로 흘러들어온 여러가지 양식적 요소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꽉 찬 것에 대한 틈의 우위이다.

1.15. 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에 대해. “기술과 기계의 영역뿐만 아니라 예술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도 이 박랍회는 성과를 거두었는데, 지금 우리는 그것의 후과속에서 살고 있다. … 지금 우리는 이렇게 자문하고 있다. 유리와 철로 된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만들어낸 운동은 가구나 도구의 디자인에서도 두드러진 성과를 가져오지 않았는가라고 말이다. 1851년에는 이러한 질문이 나올수가 없었다. 하지만 주목할 만한 점은 제법 많았다. 19세기의 첫 10년 동안 영국의 기계 산업은 기계에 의한 기계의 생산을 한층 더 용이하게 하기 위해 도구나 가구에서 불필요한 장식을 제거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이런 식으로, 특히 가구는 아주 단순하게 구성되어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잇는 일련의 형태가 등장하게 되는데, 오늘날 우리는 다시 그러한 형태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있다. 모든 장식을 배제하고 순수한 선을 강조하는 1900년의 완전히 현대적인 가구, 그것은 견고하며 완만한 선을 강조했던 1830-1850년의 마호가니제 가구에 직접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1850년에는 누구도 이미 새로운 스타일을 찾는 도중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사람들은 오히려 르네상스 양식의 유행을 가져온 역사주의에 빠져 있엇다). 율리우스 레싱, 『만국박람회 50년』, 베를린, 1900년

1.16. 1860년경의 자연주의 화가들의 프로그램을 카프카의 티토렐리 /『소송』에 등장하는 화가/와 비교해볼 것. “그들에 따르면 자연에 대한 예술가의 태도는 … 비개성적이어야 한다. 10번 계속해서 같은 그림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비개성적이어야 한다. 그것도 아무런 주저함도 없이, 또한 나중에 그린 그림이 이전 그림과 조금도 다르지 않도록.”기셀라 프로인트, 『사회학적 관점에서 본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