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자 다지원 소식
□ 다지원 혁명사 세미나 ∥2010년 8월 14일∥발제자: 김정연(루드)
텍스트: 조정환,『아우또노미아』, 갈무리, 2004, 335~348쪽.
1. 요약 - 제 9장 자율주의의 쟁점들
맑스주의와 그 혁신
1.1. 가치론, 계급구성론, 제국론, 코뮤니즘론, 조직론에 걸친 네그리의 혁신적인 사고에 대한 다양한 비판과 반응들을 살펴보자.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판단들을 어떤 관점에서 어떤 태도로 다룰 것인가를 고민해 보자.
1.2. 비판/반비판을 진위의 문제가 아닌 ‘이론의 수준에서 전개되는 계급투쟁’으로 고찰하자. 이 계급투쟁은 차이들을 드러내며, 차이들은 계급투쟁의 지형을 드러내며, 그 지형 속에서 우리의 실천적 과제들이 드러난다. 즉 계급투쟁으로서의 비판/반비판은 채택 혹은 기각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실천의 창조와 생성의 공간이다.
1.3. 네그리를 ‘테러범’으로 몰아가는 이딸리아 정부의 입장, 자본과 국가의 위로부터의 계급투쟁은 여기에서 별도로 다뤄지지 않는다. 다양한 운동과 좌파들의 비판에 관심을 가질 것이며, 운동의 전진을 갈망하는 그 의견들의 선의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 비판들이 운동의 이론과 실천에 어떠한 실제적 효과를 생산하는가를 다룰 것이다.
1.4. 네그리가 ‘맑스와의 이별’(포스트모더니즘), ‘스딸린 없는 맑스-레닌’(트로츠키주의), ‘레닌 없는 맑스’(서구 맑스주의), ‘초기 맑스’(실존주의적 인간주의적 맑스주의), ‘성숙된 맑스’(알뛰세르주의) 등과 모두 거리를 두면서 ‘맑스를 넘어선 맑스’를 추구하기 때문에 네그리 이론을 둘러싼 쟁점들은 전면적, 포괄적이다. 이 쟁점들에 대한 고찰은 우리의 삶과 운동을 확장하고, 오늘날 우리에게 제기된 문제들이 놓여진 지형을 통찰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 맑스주의와의 쟁점 - 경쟁의 문제
1.5. ��자본론��에 계급투쟁이 최소한으로만 언급되었다는 점 때문에 ��자본론�� 이후 맑스주의는 자본주의 발전을 자본들 사이의 경쟁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자유경쟁 자본주의에서 독점자본주의로, 다시 국가독점자본주의로 이행이라는 발전단계론이 그 대표적인 에이다.
1.6. 노동계급의 투쟁은 자본주의 발전의 내적 요인이기보다 자본 붕괴의 시점에 등장하여 혁명적 생산주체로 나서게 될 예비군으로 설정된다. 제2인터내셔널의 사회민주주의 그리고 레닌의 혁명이론에서도 이 같은 객관주의, 그리고 이행에서 자본 간의 경쟁의 중심성이 뚜렷이 나타난다.
1.7. 네그리는 계급투쟁이 가시화되지 않을 때에도 그것이 역사발전의 원동력이고 오히려 투쟁이 독립변수, 자본은 종속변수임을 밝히고자 했다.
1.8. 이런 관점은 정통적 맑스레닌주의나 볼셰비끼주의에 의해 비판받고 있고,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볼셰비키주의(트로츠끼주의적)의 입장에서 네그리가 제국주의 내부의 갈등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1.9. 네그리는 제국주의 갈등의 부재를 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현대사회에서 자본이 제국주의 갈등을 통합할 새로운 주권형태를 창안하여, 오늘날 주권의 형태가 변화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경쟁이라는 민족국가 주권형태에서 --> 경쟁하는 민족국가들을 위로부터 결정, 구조화하고 공통적 권리관념에서 다루는 단일한 권력으로서의 제국적 주권형태)
1.10. 캘리니코스는 제국 내에서도 제국주의 열강 간의 적대, 민족국가 간 위계가 실재하기 때문에 제국론이 틀리다고 말한다. 또한 네그리가 제국의 표현형태들로 제시한 유엔, IMF, WTO, 세계은행, NATO 등은 초국적으로 움직여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능동적 주체로 기능하기보다 특정 민족국가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것으로 설정된다. 이런 분석은 미국 등 특정 민족국가에 대한 반감을 고조시킬 수 있지만, 초국적으로 움직이는 자본의 세계에서 유효한 실천적 전략을 수립하는 데에는 유익하지 않다.
1.11. 캘리니코스는 주권형태의 제국적 이행이 맑스의 이론과 배치된다고 비판한다. 즉 이것은 네그리가 자본가들 간의 경쟁을 무시하고 자본가들을 ‘지배에만 관심이 있는 자들’로 묘사하고 있는 관념론자라는 비판이다. 그러나 실제로 네그리는 1960년대 이래로 자본이 자신들 내부의 경쟁을 조절하고 통제할 수단을 찾아왔으며 그 결과가 제국적 주권으로의 이행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1.12. 경쟁을 계급투쟁의 종속변수로 이해할 것인가, 아니면 경쟁의 현재적 중요성을 강조할 것인가는 사회주의에 대한 이해와 결부된다. 즉 제2인터네셔널의 사회주의는 경쟁과 계획을 대립시켜 시장경쟁의 무정부성을 계획으로 대치하려 했지만, 인류를 더욱더 노동체제에 속박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네그리는 경쟁과 계획이 모두 자본의 전략임을 폭로하면서 혁명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1.13. 캘리니코스는 네그리가 레닌의 관점과도 상충된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하지만 제국주의론의 레닌과 초제국주의론의 카우츠키 논쟁에서 레닌이 카우츠키에게 가한 비판은 자본의 경쟁을 조절하는 초민족국가적 조절기관이 등장할 수 없다는 요지가 아니라 카우츠키의 대기주의에 맞서서 지금 현재 프롤레타리아의 현실 개입이 필요하다는 혁명주의 입장의 역설이었다.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실천적인 것)
1.14. 맑스는 프루동이 ‘경쟁은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사회관계’라고 경쟁을 영속화하고 형이상학화했다고 비판한다. 캘리니코스 또한 경쟁의 영속성을 형이상학화하면서 경쟁이 다른 요소(예컨대 계급투쟁)에 종속될 수 있음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에서 자본은 계획과 협력으로 경쟁을 조절하고자 한다. 이럴 때 경쟁에 대립하는 계획의 대안으로서 사회주의라는 캘리니코스의 혁명론은 현실과 배치되며 설득력을 잃는다.
폭력과 주의주의라는 비판
1.15. 전통적 맑스주의는 이딸리아 정부의 네그리에 대한 비판과 공명하면서 네그리를 이딸리아 테러리즘 30년 역사의 일부로 위치시키며 그가 테러리즘에 이론적 자원을 제공한다고 비판한다.
1.16. 이것은 네그리가 경쟁을 무시한다는 생각의 이면이다. 캘리니코스에게 있어, 그리고 지금까지 정통적 맑스주의에 기반한 노동운동에 있어 노동계급의 투쟁이란, 경쟁하는 자들 사이의 적대라는 객관적 조건 안에서 착취를 당하는 노동계급이라는 구조적 위치에 놓인 주체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실현하기 위해 집단적으로 조직되는 것이다. 따라서 경쟁하는 자본들 사이의 적대라는 객관적 조건 없이는 노동계급의 이해 혹은 욕구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즉 이해나 욕구는 특정한 구조 속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구조 속에서 만들어지는 욕구나 이해가 그 구조를 넘어설 이해를 가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캘리니코스는 ‘이데올로기의 중요한 역할’을 역설하지만 이것은 계몽 전략에 다름 아니다.
1.17. 반면 네그리는 구조에서 발생하는 이해, 욕구를 부르주아 사회의 것으로 상대화하고 혁명을 원하는 인류 속에 흐르는 잠재력, 활력, 역능을 절대적 범주로 정초한다. 이 힘은 구조에 의해 규정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구조를 창조하고 구성하는 힘이다.
1.18. 초기의 네그리는 활력과 폭력의 개념사용을 구분하지 않아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었지만, 초기부터 그가 테러리즘에 대하여 비판적 입장을 취해 왔음은 분명하다. 따라서 캘리니코스의 비판은 지나친 감이 있고 그에게 ‘객관주의 아니면 테러리즘’이라는 거친 이분법만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하게 된다. 이러한 이분법은 활력(혹은 자신이 객관적 혁명주체성으로 인정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의 싸움, 투쟁)을 폭력으로 폄하하고 활력의 권력화, 자율의 경제화를 통해 작동하는 부르주아 사회의 운동법칙을 긍정하는 역할을 할 위험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