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자 다지원 소식
2010년 08월 10일
가라타니 고진 “세계 공화국으로”
5.아주변의 장래
주변, 아주변의 유럽
일반적으로는, 봉건제를 무너뜨려 부르조아 사회(시민사회)가 탄생했다고 생각되고 있습니다만, 어떤 의미에서, 부르죠아사회를 품고있었던 자유 도시를 낳은 것은 이러한 봉건제입니다. 따라서, 전근대적인 것을 모두 [봉건제]라고 부르는 것은 틀린 것입니다. 이러했던 봉건제는, 그 이후에 자본주의의 발전과 서양의 우위에 귀결되기 때문에, 왠지 서양의 고유의 원리처럼 생각되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서양에서 고유의 원리는, 그리스 이래의 전통속에 위치지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서술한 것처럼, 그리스의 특성은 그것이 이집트등 오리엔트 제국의 아주변에 위치한 것에서 오고 있습니다. 서유럽의 봉건제도 로마제국의 주변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도, 영국은 가장 아주변적이었습니다. 라고 하는 것도, 프랑스나 독일은 로마 제국에 대해서 주변적이었고, 그것을 계승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러한 특성은, [옥시덴트(서양)] 일반의 특징이 아닌, 중심, 주변, 아주변이라고 하는 위치와의 관계에 기반하는 것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것은, 동 아시아의 일본을 예로 드는 것으로 명확하게 됩니다.
중국의 아주변으로서의 일본
마르크스도 베버도 일본에 봉건제가 성립했던 거세 주목하고는 있습니다만, 그것이 왜 그러한지를 설득적으로 설명하고 이해한 것은, 위트포겔뿐입니다. ([오리엔탈 Despotism (독재정치, 전제정치) 그는, 일본 봉건제를, 중국 제국에 대해서 아주변에 위치한 것에서 설명했습니다. 중국 주변에 있는 조선에 있어서는, 중국 제도가 완전히 도입되어 동양적인 국가가 구축되어진 것에 대해서, 일본에서는 7,8세기에 율령제를 도입하고 중국형 국가가 형성되어지긴 했지만, 그것은 결국 겉모양에만 머물렀다. 또 일본인은 한자를 받아들이면서 가나를 발명하고, 독자의 문화를 형성했습니다. 그러나, 제국 문명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종속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일본 독자의 특징이라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아주변의 특징인것입니다.
집권화를 부정하는 봉건제
일본에서는, 8세기에 천황을 받드는 율령제국가가 성립한 것입니다만, 그것은 이윽고 빈껍데기화되었습니다. 율령제국가의 관료기구나 공지공민제에 대해서, 토지의 사유화와 장원제가 진행되고, 그곳에서 봉건제가 생겨납니다. 그 기반은, 동쪽의 나라를 중심으로 한 전사=농민공동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무가 권력은, 쿄토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적 국가=문명의 유산을 일소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할수없었다고 해야만 하겠지요.
인격적인 충성관계에 기반한 봉건제에 있어서는, 집권적인 체제를 형성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일본역사에 관해서, 고대 율령국가의 법이나 기구가 빈껍데기화한것에 상관없이, 한번도 공식적으로는 부정되었던 적이 없었다고 하는 것, 그래서, 메이지 유신에 있어서, 그것이 중앙집권화를 위해서 활용되어진다고 하는 것이, 주목되어집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렇게 특이한 현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봉건적(분권적)이라고 하는 것의 특징입니다. 예를 들어, 서 유럽에 있어서도, 각지의 왕이나 봉건제후는 누구도 집권적인 체제를 만들지 못하고 로마 제국을 계승하는 황제라고 하는 초월적인 존재를 필요로 한 것입니다.
일본은[아시아적]인가?
다음으로, 일본에 있어서 봉건제는 지배계급의 무사만이 아닌, 피지배계급의 편에서도 보지 않으면 안됩니다. 벼농사을 동반하는 공동체적 소유와 구속이 있었다고 하지만, 일본의 농민은 실질적으로 토지를 사유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16세기의[태합(섭정)검지]는, 국가가 조세(연공)을 확보하기 위해서, 농민의 소유지를 확인하고자 한 것입니다. 또한, 16세기에는, 사카이(도시) 나 쿄토와 같은 자치도시가 존재했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17세기이후, 도쿠가와 체제 속에서 억압되어 졌습니다만, 전면적으로 억압되어진 것이 아닌, 이후에도 마을사람(부르죠아) 의 문화적인 활동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 사회 구성체는 봉건제 였지만, 아시아적은 아니었다고 해야 겠지요. 물론, 그것은 일본이 이미 아시아적인 제국=문명의 영향에 있었다고 하는 것과 모순되지 않습니다.
전전에 있었던 [일본자본주의논쟁] 또는 [봉건논쟁]에 있어서는, [아시아적] 과 [봉건적]의 구별이 없었습니다. 일본도 러시아도 중국도, 결국, 전자본주의사회는 모조리 [봉건적]이라 불리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러시아의 마르크스 주의자가 [아시아적 생산양식]이라 하는 개념을 부정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논쟁은 정말로 무모한 결과로 끝났습니다. 현재에도, 아시아적이라던지 동양적이라던지 하는 표현은 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시아나 동양으로의 편견에 기반하고, 그것을 강화한다고 하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시아적이라던지 동양적이라던지 하는 개념은, 특별히, 문명의 우열이나 발전순서를 의미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개념은 , 오히려 그 반대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역사 속의 국가란
이상 정리해서 말하자면, 세계역사는 다음과 같이 바라볼수 있습니다. (표2) 중앙집권적인 제국이 먼저 서 아시아와 동아시아에 성립하고, 그 외(아주변)에는, 중심의 문명이나 제도를 받아들이면서도, 중심부의 집권적원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곳에 고전고대적인 도시국가와 제국, 더 나아가, 그 아주변에 봉건제라 불리어지는 것이 발달했다. 그리고, 그곳에 이윽고 중앙집권적 국가 형성되었다. 그것이 상비군과 관료기구를 갖춘 절대주의국가인것입니다만, 그것은 어떤의미에서, 아시아적 국가의 수준으로 따라잡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국가에 관해서 생각할 때, 동양적전제국가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국가일반의 고찰에 있어 불가결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