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자 다지원 소식
『삶으로 배우고 사랑으로 가르치라』, 5장 스승과 제자, 발제: 성용
1. 스승과 제자-창조적인 관계/ 교사와 학생이 생산적인 일(직물 가꾸기, 옷 만들기등)을 함께하는 것과 한 가족을 이루어서 함께 사는 것은 지극히 중요하다. 필요학 책은 하나된 삶의 경험의 열매로써 그 자리에서 만들어질 것이다.(‘구루쿨,스승과 제자 공동체’)
1.1. 교사와 학생은 함께 계획을 세우고, 자신들의 이론을 논의해서 그것을 실험하고 시험해본다. 그 결과 세상이 삶과 하나된 지식으로 풍부해질 것이다. 실제적인 기반 없이 의견만 내놓거나(낡은 유형의 교육), 실용적인 일과 경험은 있으나 토론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수많은 농부들과 진배없는 육체 노동을 하는 셈이다. 나이탈림 교사와 학생은 자신 속에서 농부와 철학자를 하나로 아울러야 한다.
1.2. 자신의 삶 속에서 지식과 노동의 두 흐름이 하나로 통합되어야 힌다. 기초 교육 담당 교사는 이 이상을 늘 마음속에 담고 있어야 한다. 기능인으로서 숙련된 기술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또한 그는 일반적인 기능공들이 모르는 것들에 대해서 언질을 줄 수 있어야 하며 그들의 수준을 넘어서는 자세한 사항들도 아주 잘 알고 있어야 한다.
1.3. 나이탈림과 일반 학교들의 커다란 차이점은 일반 학교는 이론적인 경향으로 흐르는 반면에 나이탈림의 교육은 삶에서 솟아나고 그러는 만큼 교육에 확신이 있다는 것이다. 나이탈림에서는 인간의 삶을 가지런하게 하는 고금의 모든 삶의 원칙들이 연구되어야 한다.
1.4. 스승과 제자는 서로에게 봉사하는 마음을 갖어야 한다. 봉사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하지 자신을 위한 지식을 습득하는 수단으로 행해져서는 안 된다.
2. 가르치는 일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데요?/ “단지 가르치는 일밖에 모른다.”는 것은 1) 실용적인 기능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것, 2) 새로운 것들을 배울 역량이 없고, 어떤 종류의 기능에 대해서도 무관심하다는 것, 3) 자만심이 가득 차 있다는 것, 4) 책에만 파묻혀 지낸다는 것, 5) 게을러진다는 것을 뜻한다
2.1. 선생님들은 농부들이 그러는 것처럼 스스로를 부양하는 책임을 끌어안아야 한다. 말하자면 삶에서 저절로 우러나는 교육이 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3. 마을 교사/ 나이탈림에 있는 교사들은 마을 전체의 종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시골 학교는 그러한 봉사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마을 청소가 필요하다면 학교가 그 시발점이 되어야 하며, 사람들은 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선생님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이고, 학교는 축일봉행 계획을 세운다. 이런 식으로 학교는 마을 공동체의 중심이 될 것이다.
3.1. 또 농업은 그것이 모든 곳에서 행해지는 까닭에 매우 중요하다. 베짜기는 모든 곳에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도 중요하다. 그래서 학교는 농업을 택해서 개선해야하고 베짜기를 택해서 소개하고 또 뿌리내리게 해야 한다.
3.2. 교사들은 세계를 한 마을과의 관계 속에서 파악한다. 만일 그가 한 마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세계 어디서든지 그것을 풀어낼 실마리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탈림을 수단으로 해서 우리 앞에 산적된 국가적 어려움들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4. 교사가 되기에 적합한 시기-바나프라스티: 임주기/ 가르치는 일을 하기 위한 적절한 시간은 ‘바나프라아쉬람, 힌두교 인생 주기의 세번째 단계인 임주기에 머무르는 공동체’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4.1. 한 인간은 그리하스타 시기에, 세대주 노릇을 하는 동안에는 경험을 쌓아간다.(1주기: 브라마차리: 학생기) 그가 스스로 어느 정도 인생에 대한 경험을 획득했고, 이제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수해줄 수 있다고 느꼈을 때 바나프라스티의 단계에 진입해야 한다.
4.2. 나이탈림의 의미는 늘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데 기여하는 교육이다. 그러한 교육은 오로지 경험이 풍부하고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데 유능하며 개인적인 삶의 정화를 이뤄낸 사람들만이 시킬 수 있다. 오직 이들만이 혁명의 기치를 높이 세울 수 있다.
5. 가정 학교/ 사유와 현실적인 삶의 연결고리가 끊겨버린 까닭에 사고는 활기를 잃었고 삶은 생각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사람은 생활은 집에서 하고 사고하는 법은 학교에서 배우는 까닭에 사고와 삶이 함께 하지 않는다.
5.1. 이 상황을 치유하는 길은 학교는 가정 속으로 파고들고 가정은 도한 학교에 스며들게 하는 방법뿐이다. 유일하게 가정 학교라고 부를 수 있는 학교는 교육의 기초가 학생들이 교사들과 함께 살며, 그것을 중심에 두고 교육 체계를 세워나가는 가정 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학교이다.
5.2. 이어지는 글은 가정 학교에서의 생활을 어떻게 구비해갈 것인가에 대한 몇 가지 제안입니다. 총 14개의 제안이며 특정 제안만 임의로 발췌 합니다.(p233~236) 3) 요리 기술은 교육의 중요한 일부분이고 공익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요리지식을 갖고 있을 필요가 있다. 5) 학교는 모든 불가촉 천민을 포함해서 모든 계급에게 열려있어야 한다. 8) 학교는 책을 배우는 것보다는 노작을 더 강조해야 하며 적어도 하루에 세 시간 정도는 일을 하는 데 할당해야 한다. 베다 공부는 일 하고 난 후 생는 틈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 ‘스루티, 경전읽기’의 원칙이다. 11) 학교의 성원들은 언제나 카디를 입어야하며, 가능한 스스로 생산한 상품을 써야한다.
6. 학생의 도리/ 흔히 학생과 시민을 구분하고 또 학생은 그들만의 의무들을 갖고 있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오늘의 학생은 내일의 건실한 시민이며, 오늘의 시민 또한 학생으로 여겨져야 한다.
6.1. 어린이들과 청년들이 민족을 이끌었던 경우들도 수백 가지이고 학창 시절을 마치고 가족 생활이라는 짐을 떠안게 되는 순간 공부도 끝나는 것이라면, 이는 마치 사람이 걷는 방법을 배우자마자 걷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6.2. 그렇기 때문에 학생과 시민을 따로 떼어놓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학생단계와 관련한 몇 가지 특별한 의무들도 있다.
6.3. 첫 번째, 자기 지성의 완전한 독립을 유지하는 것이다. 신뢰, 혹은 믿음은 배움의 기반이다. 지식은 믿음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지식의 완성은 이성 속에서 이뤄진다. 그러므로 학생들은 사고의 자유라는 권리를 절대로 내버려서는 안 된다.
6.4. 교육이 정부의 규제를 받고 있는 현대 세계에서 “훈련”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학생들의 지성을 똑같은 형상으로 주조해 내려는 시도가 행해지고 있다. 물론 훈련 없이 어떤 공부도 할 수 없다. 그러나 훈련이라는 이름을 빌미로 우리는 기계적인 통일성을 강요하고 있으며, 이는 학생들의 지성에 해를 끼친다.
6.5. 두 번째, 자기 조절. 자신의 충동과 감각, 그리고 마음을 잘 조절해야 하며 결단력을 키워가야 한다. 우리는 일단 한 가지 결심을 했다면,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것을 고수해야 한다. 만약 어떤 결심을 했다가 스스로 깨버린다면 우리가 가진 힘 전체가 약해지게 된다.
6.6. 세 번째, 헌신하여 섬김. 지식을 어떻게 얻는가 하는 질문의 대답은 바로 어른들을 섬기는 것을 통해서다. 학생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어른과 부모, 가난한 사람들과 슬픔에 빠진 사람들에게 봉사해야 한다. 오직 봉사함으로써만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
6.7. 네 번째,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눈여겨보는 것. 학생이라면 모름지기 자신을 말이나 하는 사람, 혹은 인도인으로 생각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는 자신을 인간 활동의 파노라마를 바라보는, 그러나 한 발짝 떨어진 채 그것에 휩쓸리지는 않는, 그러한 관찰자라고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편협한 분파주의가 될 수 없다.
7. 교사라는 지고한 소명/ 베다에서는 교사를 “가투빗”이라고 부른다. “가투빗”은 그 길을 찾아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길잡이”이다.
7.1. 오늘날 교사들의 위상은 그저 노예에 불과한 것이다. 그들은 명령을 따르고 있으면 정부 당국의 노복일 뿐이다. 교사들은 학자들이 구상한 기획안을 기초로 하여 자신이 할 일을 덧붙여 넣을 뿐이다.
7.2. 다시 한 번 교육부가 정부의 한 부서일 뿐이라는 것이 문제라는 점을 강조한다. 교사는 국민의 지성과 정신의 안내자로서 행동해야 한다. 그렇게 때문에 교사는 큰 힘을 갖고 있어야만 한다. 베다에서는 교사를 가장 큰 권능을 가진자, “가장 뛰어나고 강력한 자”란 뜻에서 “샤치싯트”라 부르거나 가투윗, 즉 인도자라고 부른다. 무지와 배고픔, 그리고 질병들에서 해방될 수 있는 방도를 제시하는 것이 교사의 사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