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자 다지원 소식
2010.07. 02
柄谷(がらたに)行人(こうじん) 世界(せかい)共和国(きょうわこく)へ
2.「交換(こうかん)」の今日的(こんにちてき)意味(いみ)
2. [교환]의 오늘날의 의미
「交換(こうかん)」と「交通(こうつう)」
私(わたし)はマルクスがいったことを、「生産(せいさん)」ではなく「交換(こうかん)」という観点(かんてん)から見直(みなお)し、また、交換(こうかん)を広(ひろ)い意味(いみ)で考(かんが)えようとしています。しかし、これは必(かなら)ずしも、マルクスを否定(ひてい)することにはならない。実(じつ)は、マルクスは若(わか)いとき「交換(こうかん)」と同(おな)じように広(ひろ)い意味(いみ)で、「交通(こうつう)」という概念(がいねん)を頻繁(ひんぱん)に用(もち)いていたのです。たとえば、[ドイツ∙イデオロギー]では、交通(こうつう)という語(ご)はつぎのように使(つか)われています。それを四ヶ所(よんかしょ)から引用(いんよう)します。
[교환]과 [교통]
저는 마르크스가 말한 것을, [생산]이 아닌 [교환]이라는 관점에서 재검토하고, 또한, 교환을 넓은 의미에서 사유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마르크스을 부정한다고 할 수는 없다. 실은, 마르크스는 젊을 때 [교환]과 같은 넓은 의미로, [교통]이라는 개념을 빈번히 사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독일 이데올로기]에서는, 교통이라는 말은 다음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그 단어를 4군데에서 인용합니다.
貨幣(かへい)によって、あらゆる交通形態(こうつうけいたい)と交通(こうつう)それ自体(じたい)とが、諸個人(しょこじん)に偶然的(ぐうぜんてき)なものにされる。
したがって貨幣(かへい)のうちにすべて、いままでの交通(こうつう)が、すべて決(き)められた諸条件(しょじょうけん)のものにおける諸個人(しょこじん)の交通(こうつう)ではなかったということが内在(ないざい)する。
화폐에 의해, 모든 교통형태와 교통 그자체가 , 여러개인에게 우연적인 것으로 취급된다. 따라서 화폐안에 이미, 지금까지의 교통이, 모두 결정되어진 여러 조건에 있어서의 여러 개인의 교통이 아니었다 고 하는 의미가 내재한다.
分業(ぶんぎょう)のそのつぎの拡大(かくだい)は、生産(せいさん)と交通(こうつう)との分離(ぶんり)であり、商人(しょうにん)という特殊(とくしゅ)な階級(かいきゅう)の形成(けいせい)だった。
いままでのすべての歴史的段階(れきしてきだんかい)に存在(そんざい)する生産力(せいさんりょく)によって制約(せいやく)されていながら、またこれらを制約(せいやく)もしているところの交通形態(こうつうけいたい)は、市民社会(しみんしゃかい)である。これは、まえにのべたところからもすでにわかるように、単純(たんじゅん)家族(かぞく)と複合(ふくごう)家族(かぞく)、いわゆる種族制(しゅぞくせい)をその前提(ぜんてい)および基礎(きそ)としており、そしてそのくわしい規定(きてい)はまえにのべたところにふくまれている。
분업의 그 다음의 확대는, 생산과 교통과의 분리이며, 상인이라는 득수한 계급의 형성이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적 단계에 존재하는 생산의 여러 작용하는 힘에 의해 제약되어져 있으면서, 또한 이것들을 제약도 하고 있는 점에서의 교통형태는, 시민사회이다. 이것은, 앞에서 서술한 부분에서도 이미 알수 있는 것처럼, 단순 가족과 복합 가족, 소위 종족제를 그 전제로서 포함하는 기초로서 두고, 그리고 그 자세한 규정은 앞에서 서술한 곳에 포함되어 있다.
制服(せいふく)する蛮族(ばんぞく)のばあいには、すでにうえにふれておいたように、戦争(せんそう)そのものがまだ一(ひと)つの正常(せいじょう)な交通形態(こうつうけいたい)である。([ドイツ∙イデオロギー]、古在(こざい)由(よし)重(しげ)訳(やく))
정복하는 야만족의 경우에는, 이미 위에서 언급해둔 것처럼, 전쟁 그 자체가 아직 한 개의 정상적인 교통 형태인 것이다.([독일 이데올로기]. 코자이 요시시게 번역)
右(みぎ)の例(れい)は、交通(こうつう)という概念(がいねん)が、家族(かぞく)や部族(ぶぞく)のような共同体(きょうどうたい)、さらに、共同体(きょうどうたい)と共同体(きょうどうたい)の間(あいだ)の交易(こうえき)、さらに戦争(せんそう)までをふくんでいることを示(しめ)しています。それは交換(こうかん)を広(ひろ)い意味(いみ)で考(かんが)えるのと同(おな)じことです。それに対(たい)して、この時期(じき)、マルクスは生産様式(せいさんようしき)という語(ご)を狭(せま)い意味(いみ)で用(もち)いています。のちに生産様式(せいさんようしき)と呼(よ)んだものを、彼(かれ)はこの時期(じき)、マルクスは生産様式(せいさんようしき)と呼(よ)んでいたのです。
오른쪽의 예는, 교통이라는 개념이, 가족이나 부족같은 공동체, 더 나아가, 공동체와 공동체간의 교역, 또 더 나아가 전쟁까지를 포함하고 있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교환을 넓은 의미에서 사유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이 시기, 마르크스는 생산양식이라는 단어를 좁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후에 생산양식이라 불렀던 것을 , 그는 이 시기, 교통형태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ヘスの交通論(こうつうろん)と有機的(ゆうきてき)共同社会(きょうどうしゃかい)
헤스의 교통론과 유기적 공동사회
交通(こうつう)という概念(がいねん)を最初(さいしょ)に提唱(ていしょう)したのは、モーゼス∙ヘスです。彼(かれ)は、マルクスより少(すこ)し年長(ねんちょう)の青年(せいねん)ヘーゲル派(は)(ヘーゲル左派(さは)の哲学者(てつがくしゃ)でフォイエルバッハの宗教批判(しゅうきょうひはん)(自己(じこ)疎外(そがい)論(ろん))を、国家(こっか)や資本(しほん)の批判(ひはん)に転化(てんか)∙拡張(かくちょう)した最初(さいしょ)の人物(じんぶつ)です。彼(かれ)は[貨幣体(かへいたい)論(ろん)]という本(ほん)で、交通(こうつう)という概念(がいねん)を提起(ていき)しました。それによって、人間(にんげん)と自然(しぜん)、人間(にんげん)と人間(にんげん)の関係(かんけい)をとらえようとした。
교통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제창한 것은, 모제스 헤스입니다. 그는, 마르크스보다 약간 나이 많은 청년 헤겔파(헤겔좌파) 철학자로, 포이엘바하의 종교비판(자기소외론)을, 국가나 자본의 비판으로 젼환, 확장한 최초의 인물입니다. 그는 [화폐체론]이라는 책에서, 교통이라는 개념을 제기했습니다. 그 책에 의하면,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파악하려 했습니다.
ヘスは、第一(だいいち)に、人間(にんげん)と自然(しぜん)の関係(かんけい)を[物質(ぶっしつ)代謝(たいしゃ)](Stoffwechesel)という観点(かんてん)からとらえた。ドイツ語(ご)では、代謝(たいしゃ)(Wechsel)は交換(こうかん)を意味(いみ)するので、人間(にんげん)と自然(しぜん)の関係(かんけい)は交換(こうかん)あるいは交通(こうつう)ということになるのです。
헤스는, 맨 처음에,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물질대사](Stoffwechsel)이라는 관점에서 파악했다. 독일어로는 , 대사(Wechsel)은 교환을 의미하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교환 또는 교통이라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つぎに、ヘスは人間(にんげん)と人間(にんげん)の交通形態(こうつうけいたい)として、「略奪(りゃくだつ)と奴隷制(どれいせい)」、さらに「商品取引(しょうひんとりひき)」をあげています。彼(かれ)の考(かんが)えでは、商品取引(しょうひんとりひき)という形態(けいたい)が拡大(かくだい)すると、それは略奪(りゃくだつ)と奴隷制(どれいせい)(つまり、暴力(ぼうりょく)によって人(ひと)の生産物(せいさんぶつ)を奪(うば)うかもしくは人(ひと)に労働(ろうどう)させる)にとってかわるが、結局(けっきょく)、それを別(べつ)の形(かたち)、つまり、貨幣(かへい)によって行(おこな)うことに帰結(きけつ)する。貨幣(かへい)をもつことで、人(ひと)は他人(たにん)を強制(きょうせい)することができるからです。そこでは、各人(かくじん)の諸能力(しょのうりょく)は、貨幣(かへい)というかたちで疎外(そがい)されている。
다음으로, 헤스는 인간과 인간의 교통형태로서, [약탈과 노예제], 거기에 [상품거래]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그의 생각으로는, 상품거래라는 형태가 확장하면, 그것은 약탈과 노예제(즉, 폭력에 의해 다른 사람의 생산물을 빼앗던가 또는 다른 사람에게 노동을 시킨다)로 대신하지만, 결국, 그것을 다른 형태, 즉, 화폐에 의해 실행하는 것으로 귀결한다. 화폐를 가진 것으로, 사람은 타인을 강제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곳에는, 각자의 여러 능력은, 화폐란 형태에 의해 소외되어져 있다.
さらに、ヘスは、真(まこと)に共同(きょうどう)的(てき)であるような交通形態(こうつうけいたい)は、資本主義経済(しほんしゅぎけいざい)のあとにのみありうると考(かんが)えました。すでに資本制(しほんせい)生産(せいさん)において人々(ひとびと)は資本(しほん)の下(した)で協業(きょうぎょう)しているのですが、資本(しほん)を廃棄(はいき)し、自分(じぶん)たちが共同(きょうどう)で働(はたら)くようにすれば、「有機的共同社会(ゆうきてききょうどうしゃかい)」が真(まこと)に実現(じつげん)されるだろう、と。これは、プルードンによって提唱(ていしょう)されていた「アソシエーション」あるいは協同組合的(きょうどうくみあいてき)生産(せいさん)の言(い)い換(か)えです。実(じつ)は、マルクスもこのような考(かんが)えを終生(しゅうせい)保持(ほじ)したのです。
덧붙여서, 헤스는, 정말로 공동적인 것 같은 교통형태는, 자본주의경제 다음에서만이 있을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자본제생산에 있어서 사람들은 자본 밑에서 협업하고 있는 것입니다만, 자본을 폐기하고, 자신들이 공동으로 일하고자 한다면, [유기적공동사회]가 정말로 실현되겠지요, 라고. 이것은, 프루동에 의해서 제창되어진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또는 협동조합적 생산으로 바꿔 말한 것입니다. 실은, 마르크스도 이러한 사유를 평생 유지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