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産様式(せいさんようしき)」がもたらす誤謬(ごびゅう)

생산양식이 초래한 오류

 

 

マルクスは「経済的社会構成体(こうせいたい)が進歩(しんぽ)してゆく段階(だんかい)として、アジア的、〔古典(こてん)〕古代的(こだいてき)、封建的(ほうけんてき)、および近代(きんだい)ブルジョア的生産様式をあげることができる」とかいています(同前どうぜん)。しかし、資本制以前(いぜん)の社会構成体においては、国家もいわば生産様式の一部(いっぷ)です。つまり、そこでは経済的構造と政治的(せいじてき)構造の区別(くべつ)がありません。にもかかわらず、「生産様式」という観点に立(た)つと、まるでそのような区別があるかのように見えてしまいます。したがって、このような混乱(こんらん)を避(さ)け、資本制以前をふくめて社会構成体の歴史(れきし)を普遍的(ふへんてき)に見るためには、「生産様式」という言い方をやめたほうがよいのです。

마르크스는 ‘경제적사회구성체가 진보해가는 단계로서, 아시아적, 〔고전〕고대적, 봉건적, 그리고 근대 부르주아적 생산양식을 들 수 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본제 이전의 사회구성체에 있어서, 국가도 이를테면 생산양식의 일부입니다. 즉, 거기에는 경제적 구조와 정치적 구조의 구별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산양식’이라고 하는 관점에 서면, 마치 그와 같은 구별이 있는 것처럼 보여져 버립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혼란을 피하고, 자본제 이전을 포함한 사회구성체의 역사를 보편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생산양식’이라고 말하는 것을 그만두는 편이 좋겠습니다.


 マルクスは「経済学批判序説(じょせつ)」で、個人(こじん)と個人の間の商品(しょうひん)交換(こうかん)からはじめるアダム․スミスに対して、それは近代社会での在(あ)り方を原始(げんし)段階に投影(とうえい)することだと批判しました。だが、そうだとしたら、史的唯物論(してきゆいぶつろん)にも同じ誤謬があるといわねばならないでしょう。

마르크스는 ‘경제학비판서설’에서, 개인과 개인 사이의 상품 교환에서부터 시작한 애덤 스미스에 대해서, 그것은 근대사회 본연의 모습을 원시 단계에 투영하는 것이다라고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다면, 역사유물론에도 똑같은 오류가 있다고 말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生産様式」から「交換様式」

생산양식에서부터 교환양식으로


マルクスは経済的な下部構造(かぶこうぞう)を重視(じゅうし)したのは、人間をまず自然(しぜん)との関係において見るという観点をとったからです。そのために彼は、人間が自然に働きかけて財(ざい)を作り出す「生産」を重視した。さらに、彼は、生産が人間と人間の関係を通(とう)してなされること、いいかえれば、一定(いってい)の生産関係の下で生産がなされることを見た。それが生産様式という概念(がいねん)です。

마르크스는 경제적인 하부구조를 중시한 것은, 인간을 우선 자연과의 관계에 있어서 본다고 하는 관점을 취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위해 그는, 인간이 자연스럽게 작용하여 재물을 만들어내는 ‘생산’을 중시했다. 게다가 그는 생산이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 달리 말해, 일정한 생산관계의 아래에서 생산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았다. 그것이 생산양식이라고 하는 개념입니다.


 本来、生産様式とは、生産が一定の交換や分配(ぶんぱい)の形態(けいたい)でなされる形態を意味します。つまり、生産があって、そののちに交換․分配がなされるのではない。ところが、「生産様式」という表現(ひょうげん)をとると、交換や分配が二次的(にじてき)なものとみなされてしまいます。

본래, 생산양식이라는 것은, 생산이 일정한 교환과 분배의 형태에서 이루어지는 형태를 의미합니다. 즉, 생산이 있고, 그 후에 교환, 분배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생산양식’이라고 하는 표현을 취하면, 교환과 분배가 이차적인 것으로 보여지게 됩니다.


 たとえば、原始的氏族(しぞく)的生産様式という場合(ばあい)、それは狩猟(しゅりょう)採集(さいしゅう)というようなこと-人間と自然の関係-を指(さ)すのではありません。それは、生産物が互酬によって全員(ぜんいん)に分配されるような生産の様式─人間と人間の関係─を指します。であれば、それは生産様式というよりも、「交換様式」と呼ぶべきだと思います。

예컨대, 원시적 씨족적 생산양식이라고 하는 경우, 그것은 수렵채집이라고 하는 것-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산물이 서로 갚는 것으로서 전원에게 분배되는 것과 같은 생산의 양식-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가리킵니다. 그렇기에 그것은 생산양식이라고 하기보다도 ‘교환양식’이라고 불러야한다고 생각합니다.


 その場合、交換様式は一つではありません。交換は普通(ふつう)、商品交換のようなイメージで考えられています。それは相互(そうご)の合意(ごうい)と契約(けいやく)によって成立(せいりつ)するものです。しかし、そのような交換は、交換一般の中ではむしろわずかの部分(ぶぶん)でしかありません。

그 경우, 교환양식은 하나가 아닙니다. 교환은 보통, 상품교환과 같은 이미지에서 생각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상호 합의와 계약으로서 성립하는 것입니다. 즉, 그와 같은 교환은, 교환일반 중에서는 오히려 약간의 부분밖에는 없습니다.


* 단어

もたらす 가져오다 초래하다

として ~로서

および 및, 과

いわば 말하자면 이를테면

にもかかわらず 그럼에도 불구하고

に立(た)つと ~에 서면

したがって 따라서, 그러므로

避(さ)ける 피하다 멀리하다 삼가다 조심하다

ふくめる 포함시키다 포함하다 타이르다 납득시키다

在り方 본연의 자세 모습 태도

だが 그러나 그렇지만 하지만

働きかける 작용하다 손을쓰다 움직이다

いいかえる 바꾸어말하다 달리말하다

ところが 그런데 그러나

であれば 그러니

わずか 조금, 약간, 불과, 겨우, 간신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