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자 다지원 소식
시간의 행진1)
예측하지 못한 것이었으며, 놀랄 만한 규모였고, 공격의 타격점이 새로웠고, 평화로웠지만 매우 급진적인, 임금투쟁이 11월에서 12월 말 사이에 파리만이 아니라 프랑스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말하자면 이 투쟁은 크리스마스 휴가 때문에 잠시 중단되었을 뿐이다. 모든 사람들은 이 투쟁이 간헐적으로, 전염적 방식으로, 대규모로 다시 일어날 것을 기다린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개인적 의식 속에서, 그리고 집단적인 상상계 속에서 무언가가 변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 투쟁을 통해서 우리가 자유주의에 의해서 지시된 "새로운 세계질서"(통화주의적인 질서와 규칙, #부채의 감축#, 사유화, 노동의 이동적이고 유연한 재조직화, 삶의 새로운 준칙)에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확신하게 된다. 그것을 넘어서 새로운 가능성이 떠올랐다.
이 투쟁은 공기업 노동자들이 제기한 몇몇 범주들(교통, 에너지, 통신, 교육)에서의 요구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예측을 불허하는 속도의 그 운동에는, (사회보장제도의 억압적인 수정, 공공부채의 급격한 축소라는) 정부 계획을 철회하게 하는 것,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시장의 세계화에 의해서 그리고 유럽 건설의 규범에 종속되는 것에 의해서 부과되어진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을 재검토하는 것이 목표로 주어진다. 파업운동은 주민 대부분의 적극적인 지지를 획득했다. 투쟁은 일반적인 이익을 갖는 것으로 매우 빠르게 인정받았다. 미디어는 파업 파괴운동을 동원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사용자들을 파업노동자들에 맞서도록 조직하려는 모든 시도들은 애처롭게도 좌초하였다. 그래서 한 달이 넘도록, (걸어서, 자전거를 타고, 혹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밤낮으로 도시를 점거했던 비파업 노동자들의 그에 못지않게 위협적인 거대한 운동이 시위자들의 거대한 행렬에 상응했다. 그리고 이들이 그 투쟁을 함께 만들어갔다. 그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파업이 발명되었다. 그것은 메트로폴리스에서의 축제적 파업이다.
1) 1995년에 『전미래』지에 게재되었던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