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지원 성정치자본주의세미나∥2012년 02월 18일∥발제자: 젤리(루드님 부분)

실비아 페데리치,『캘리번과 마녀』, 갈무리, 2011, 184-188쪽

 

[요약]

1. 신프랑스 총독의 후원을 받은 예수회는 신대륙의 몽타녜-나스피카 족을 설득하여 족장을 옹립하고 여성에게 질서를 부과하는 데 성공했다. 지나치게 독립적이거나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는 여성을 악마의 자식이라고 주입했다.

2. 프랑스 예수회의 르죈 신부는 몽타녜-나스피카 족에게 남녀간의 일대일 성적결합에만이 정상성을 지닌다고 주입하고 그렇지 않은 몽타녜-나스피카 족이 “프랑스인들은 자기 자식만 사랑하지만 우리는 우리 종족의 모든 아이들을 사랑한다.”라고 한 말을 멍청한 논증이라 했다 또, 몽타녜-나스피카 족 남성에게 여성에 대한 통제권을 쥐어준 것에 대해 기적에 가깝다고 자찬하기도 했다.

3. 예수회는 또한 몽타녜-나스피카 족이 자기 아이들을 때리도록 만들었다. 자식에 대한 지나친 애정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데에 걸림돌이 된다고 보았다. 당시 몽타녜-나스피카 족이 자기 아이를 때린 것은 민족 최초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4. 프랑스인들은 몽타녜-나스피카 족 남성들을 사유재산에 대한 본능을 가진 믿음직한 무역상대로 만들기 위해 이들에게 남성우위 관념을 훈련시켰다. 이와 반대로 플랜테이션 농장에서는 노동인구에 대한 농장주의 필요와, 노예가 생산한 재화의 세계시장가격에 의해 노동의 성적분업이 자리잡았다.

5. 노예무역 폐지 전까지는 남성과 여성이 비슷한 강도로 착취당했는데, 이는 노예의 재생산을 장려하기 보다는 노예를 ‘소비’한다는 관점에서 죽을 때까지 부려먹었기 때문이었다. 이때에는 성적 분업이나 성적 계서제가 없었다. 하지만 여성은 적은 음식을 먹었고 주인의 성적 학대에 시달렸다.

6. 1870년 노예무역 폐지 이후 카리브 제도와 아메리카 대륙의 플랜테이션 농장주들이 “노예번식” 정책을 택하면서 상황이 변했다. 이들은 여성노예의 출산패턴을 통제하려고 했다. 그러나 더 정확하게는, 여성의 성생활과 출산패턴에 대한 규제가 더욱 강화되고 체계화된 것은 아프리카 노예공급이 감소하면서 부터다.

7. 하지만 플랜테이션의 출생률은 “비정상적으로 낮게” 유지되었다. 이것이 노예제에 대한 공공연한 저항의 결과였는지, 여성노예가 처한 가혹한 환경으로 인한 육체적 쇠약의 결과였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하지만 출생률 통제 실패의 일차적 원인은 여성의 출산거부였다. 당시 해방노예 공동체들이 수적으로 급증했던 까닭이다.

8. 노동의 성적분업에도 변화가 일었는데, 농장주가 노예 스스로 먹을 양식을 조달하라고 준 자족농지에서 여성 노예들이 생산물을 일궈 시장에 내다 팔기 시작했다. 이로써 이들은 플랜테이션 체재 내에서 이들이 하던 일을 재전유하고 재생산하게 되었다. 18세기 중엽, 카리브 제도의 여성 노예들은 플랜테이션 경제 안에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 섬의 식료품 시장 형성과 향상에 기여했고 거의 모든 음식의 생산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