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자 다지원 소식
□ 다지원 성정치자본주의세미나∥2012년 02월 18일∥발제자: 젤리
실비아 페데리치,『캘리번과 마녀』, 갈무리, 2011, 173-178쪽
[요약]
1. 17~18세기 프롤레타리아트의 대부분은 약정노예계약이나 “수송”을 통해서만 신세계에 접근할 수 있었다.
2. “수송” - 잉글랜드의 기관들이 국내외 죄수, 정치종교적 반체제인사, 인클로져로 인한 부랑자와 거지를 처벌의 일환으로 추방하는 것.
3. 신대륙의 매력은 계몽사상에도 영향을 끼쳐 주인없음의 상태를 지칭하는 “자유”라는 새로운 개념을 탄생시켰고, 이 개념은 그때까지 기존 유럽 정치사상사에 존재하지 않던 것이었다. 몇몇 유럽인은 일부러 신대륙으로 가 잃어버린 공동체적 소유의 경험을 되찾으려 하기도 했다. 이주한 많은 사람들이 인디언식 생활방식을 따랐고, 잉글랜드 당국은 이런 사람들에게 사형 등의 선고를 내리는 등 무제한적 이민에 대한 공포를 드러냈다.
4. 약정노예계약 - 약정노예계약을 통해 신대륙에 온 유럽 프롤레타리아트는 그야말로 노예였다. 이들은 주인에 대한 적개심이 강해 위험분자로 분류됐고 17세기부터, 유럽 출신 노동자를 덜 쓰고 이들을 아프리카 노예들과 분리시키는 법안이 도입됐다.
5. 흑인, 토착민, 백인 간의 동맹 가능성이 항상 존재했고 지배계급의 상상 속에서 이런 동맹은 항상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18세기 말에 이르러서 인종적 계서제가 완전 정착됐다.
6. 1640년대부터 시작된 남아메리카 식민지들과 카리브 제도의 노예화된 프롤레타리아트의 축적이 인종적 계서제 구축을 동반했던 이유는 피부색을 넘어선 하인들의 동맹이 빈번했기 때문이며 1675~1676년의 베이컨 반란에서는 최고조에 달했다.
7. 미국독립전쟁 이후 약정노예계약이 잉글랜드 지배의 잔재로 간주돼 일소되고, 그 결과 18세기 말 아메리카 식민지는 “노예들이 있는 사회”가 아닌 “노예사회”로 이행했다. “백인”은 사회경제적 특권의 표식뿐만 아니라 사회적 패권을 정당화하는 방편으로서의 도덕적 속성이 되었고 “흑인” 또는 “아프리카인”은 노예와 동의어가 되었다. 그래서 자유로운 흑인들은 자신이 자유인임을 증명할 것을 항상 강요받게 되었다.
식민지에서의 성, 인종, 계급
1. 셰익스피어의 희극 <템페스트>는 마녀의 아들이자 토착민 반란자인 캘리번과 유럽 프롤레타리아트인 트린큘로와 스테파노가 조직한 음모를 통해, 억압받는 자들의 치명적 동맹 가능성을 제시하고 또한 지배자들간의 불화를 치유하는 극적 대조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유럽 프롤레타리아트를 좀도둑, 술주정뱅이로 묘사하고 캘리번은 나중에 식민지배자에게 용서를 빌게 그림으로써 이들의 음모를 불명예스럽게 만든다.
2. 만약 캘리번의 음모의 주인공들이 여성들이었다면 이야기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 질문을 통해 식민지에서 이루어진 노동의 성적 분업의 본질을 폭로하고, 신대륙에서의 유럽인, 토착민, 아프리카 여성들이 경험한 공통된 성차별 경험을 통해 결속 가능함을 제기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