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리입니다~

세미나 발제양이 좀 더 늘어나도 괜찮을 것 같다는 의견을 반영해,

이번 세미나 발제양은 지난 시간의 두 배로 늘어났습니다.

16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초축적의 과정 속에서 일어난 다양한 폭력의 양상들과 이에 맞서는 반란들, 그리고 생산과 재생산의 분리로 통해 어떻게 '여성'을 통제하고 억압하기 시작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 앞 장까지를 보게 될 예정입니다.

 

각자 맡은 발제부분을 확인해 주세요^^

 

이하 발제입니다. (쪽수와 마지막 문장을 확인해 주세요.)

 

-김하은: 109~112
유럽의 토지사유화, 기근의 생산, 생산과 재생산의 분리 ~ 공동체적 토지에 대한 어떠한 긍정적 평가도 "과거를 향한 그리움"으로 치부될 뿐이다.

 

-젤리: 112~116
토지를 상실한 이후로는 임금을 노예화의 도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유별라: 116~120
그러나 경제생활의 상업화가 이 현상의 물질적 조건을 제공했다는 것은 명백하다.

 

-한태준: 120~124
이는 하단의 14~18세기 잉그랜드 목수의 임금을 곡물구매력으로 나타낸 표를 보면 알 수 있다.

 

-이혜영: 124~128
남자들은 포대를 지고 가고 여자들은 치마폭에 곡물을 담아 갔다.

 

-멍구: 128~133
이는 도둑맞은 공동체의 부를 다시 개간하고 전유하는 과정의 일환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이영란: 133~137
사망자 장부를 유지해서 죽은 사람의 이름으로 구호를 타가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했다.

 

-루드: 137~140
역사가들은 이를 17세기의 "일반적 위기"라 부른다.

 

-201: 140~145
그들과 친분을 맺는 사람들은 공공의 비난을 받게 되었다.

 

-돌민: 145~150
이것은 서출이 처벌받는 상황에서, 그리고 여성들이 임신을 이유로 사회에서 배척당하고 심지어는 죽음에 이르는 상황에서 더욱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