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지원 성/정치/자본주의 세미나 -

캘리번과 마녀읽기 2012128일 발제자: 멍구

 

<요약 page 83-85>

노동의 가치에 대한 호소는 기사 같은 무인들이 지배하는 봉건권력의 자의성을 폭로하는 작용을 했지만 이는 봉건제 몰락에 중요한 역할을 한 새로운 사회세력의 등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2. 노동에 대한 가치평가는 도시프롤레타리아트의 형성을 반영한다. 이 계급은 주로 수출산업에 종사하는 부유한 상인에 고용된 날품팔이 노동자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14세기 중엽엔 피렌체, 시에나 플랑드르 직물 산업에서 이런 노동자(직조공, 축융공, 염색공)가 많게는 4천 명까지 한 곳에 모여 일했다.

 

3-1. 그들에게 도시의 삶은 또 다른 형태의 농노제와 마찬가지였으며, 단지 이번에는 직물상인의 지배하에 있다는 것이 다른 점이었다. 도시 임노동자들은 집회, 결사의 자유가 엄격히 금지되었으며 무기는 물론이고 직업 공구조차 휴대할 수 없었다. 파업도 당연히 불허.

 

3-2. 피렌체에서 그들은 시민권이 전혀 없었다. 직인과 달리 동업조합 회원이 아니었고, 상인들의 손아귀에 갇혀 가혹한 대접을 받았다. 상인들은 시정부를 통제하고, 사적으로 법정을 보유했으며, 임노동자들을 감시하고 체포하고 고문하고 교수형에 처해도 아무 처벌을 받지 않았다.

 

4-1. 이 노동자들에게서 가장 극단적인 사회적 저항과 이단적 사상의 수용을 관찰 할 수 있다. 14세기 내내, 특히 플랑드르지방에서 직물노동자들이 지속적으로 주교, 귀족, 상인, 심지어 동업조합에 까지 반기를 들었다. 모직공들은 동업조합이나 부르주아지들이 권력을 장악하거나 반란을 일으킬 때 그것을 더 멀리 끌고 나아가노동자 민주주의혹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실현 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일시적으로 성공하기도 하였다. 1378년 겐트의 반란 성공은 과장을 섞으면 최초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정권 수립이라 부를만하며 1382, 로즈베크 평원 전투에서 26천 명이 목숨을 잃고서 패배하게 된다.

 

4-2. 독일과 이탈리아의 사례들:

피렌체 직물산업 일용노동자들인치옴피의 반란도 일시적으로 노동자 정부를 수립.

저지대 리에쥬 지역 노동자들은 한 세기 넘게 지속된 저항으로 귀족과 부유층이 항복하게끔 했고, 이후 동업 조합이 도시를 완전히 지배했고 시정부의 결정권자가 됨.

플랑드르 해안지대에서 1323~1328의 농민 반란에는 장인들도 힘을 보탬. 피렌은 이 반란을 진정한 사회혁명 시도라고 함. 봉기의 기세가 엄청나서 성벽 안쪽에 살던 선량한 사람들이 저속한 자들로 부터의 보호를 위해 도시 내벽을 허물지 못하도록 하라고 왕에게 간청을 하였다고 함.

 

논의일부 반란은 성공 후 민주적 정부 수립까지 했는데 왜 다시 무너질 수 밖에 없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