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빈의 『경제사상사』(신지평)에 대한 정리를 통해 지금까지의 『잉여가치학설사』 공부의 줄거리를 짚어보자.[http://amelano.net/owner/entry/edit/1665]

1. 아담 스미스
중상주의자들은 상인자본의 이익을 옹호했다. 중농주의자들이 상인자본의 지배에 도전했지만 미약했고 도시 산업부르주아지의 고전파가 중상주의의 지배를 분쇄했다. 아담스미스는 고전파의 창시자이다. 그는 사회전체를 분업이 행해지는 거대한 작업장으로 보고 상업, 농업노동 외에 공업노동의 중요성을 파악했으며 서로 다른 생산분야들 간의 교환을 동일량의 노동지출에 기초한 등가 생산물의 교환으로 보았고 상이한 사회계급에게 돌아가는 여러형태의 수입(임금, 이윤, 지대)을 정확히 분류했다.

스미스는 분업의 사회적 형태가 아니라 물적 기술적 장점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그 결과 그는 개별기업들 간의 사회적 분업을 기업 내부의 기술적 분업과 혼동했다. 하지만 그는 중농주의자들이 갖고 있었던 가치와 물적 소재의 혼동을 어느 정도 극복했다. 하지만 그는 가치나 잉여가치를 낳는 노동을 생산적으로 정의하면서 동시에 가치를 지닌 물적 생산물에 대상화된 노동을 생산적인 것으로 정의하는 혼란을 보여준다.

스미스는 자본과 노동의 등가교환 속에 들어 있는 부등가의 원리를 설명할 수 없었다.  그는 생산물을 생산하는 데 지출된 노동량과 생산물이 교환될 때 구입할 수 있는 노동량을 혼동한다. 그래서 그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생산물의 가치가 그것을 생산하는 데 지출된 노동량보다 평균이윤만큼 더 크다는 결론을 내리며 결국 노동가치법칙을 부인하고 속류 생산비 이론에 이끌린다. 앞서 서술한 스미스의 가치론적 가닥은 리카도의 고전파 이론으로 다른 가닥은 세이의 속류경향으로 발전한다. 특히 가치 설명에서의 그의 생산비론적 경향은 분배론에서 그를 수요공급 원리에 의지하도록 만들었다.

2. 데이비드 리카도
리 카도의 활동기는 영국의 산업혁명기와 일치한다. 그는 새로운 기계의 도입과 노동의 기술적 생산성의 상승에 기인한 공업상품 가격의 급격한 하락을 노동가치론으로 설명한다. 또 그는 분배고정에서 부르주아지의 이윤과 지주의 지대 사이의 첨예한 투쟁을 고찰했다.

리 카도는 스미스의 내적 모순을 제거하여 상품의 가치를 그것을 생산하는 데 지출된 노동량으로 간주하는 노동가치론으로 일원화하고 분배에까지 그것을 일관되게 적용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가 가치의 질적 문제, 즉 그것의 사회적 본질을 무시하고 가치론을 자본주의 경제에 한정했지만 가치의 양적 문제는 해결했다.

스미스는 생산물의 가치가 생산자에게 철저히 귀속되지 않고 임금과 이윤으로 나눠지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노동가치법칙이 작용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것은 자본이 노동력과 교환되는 원리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지만 적어도 스미스는 생산관계가 사람들 사이의 관계임을 주목했다. 하지만 리카도는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가치 문제를 상품 A와 B의 상대적 가치문제에 한정하고 이로부터 임금과 이윤의 반비례관계를 확정한다.

리카도는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노동가치법칙이 어떻게 생산가격이라는 매개를 통해 간접적으로 자본주의를 규제하는가를 설명할 수 없었다. 다시 말해 그는 노동가치법칙과 자본주의의 관찰가능한 현상 사이의 모순을 설명할 수 없었다. 유기적 구성의 변화가 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그는 예외론의 도입으로 궁지를 피하려 한다. "상품 A와 B의 상대적 가치는 그 생산에 필요한 노동량의 상대적 변화에 따라 변할 뿐 아니라 이윤율의 변화에 따라서도(또는 그에 상응하는 임금의 변화에 따라서도) 변하게 될 것"(407)이라는 식이다. 그 결과 자본에 대한 이윤이 노동과 더불어 생산물 가치를 규제하는 하나의 독립된 인자로 등장하게 된다. 예외의 이러한 허용은 맬더스, 제임스 밀, 매컬록 등이 노동가치론을 폐기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맑스는 노동가치법칙이 자본주의 경제 현상을 직접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리카도 체계에서 예외로 기능했던) 생산가격에 의해 간접적으로 규제함을 밝힌다. 즉 노동가치 법칙을 기초로 해서만 생산비 법칙이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384)

리카도는 분배이론을 가치론으로부터 파생되는 것으로 이해했고 영국의 실제 분배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것으로 발전시키려 했다. 지대론에서 그는 지대를 최열등지에서의 단위당 곡물 생산에 필요한 노동량을 기준으로 정의된 곡물의 사회적 가치와 비옥도가 다른 토지들에서 생산된 곡물의 개별 가치 사이의 차액으로 설명했다. 그는, 인구증가의 결과 경작 필요가 증대하고 경작이 더 척박한 토지로 옮겨가면 곡물의 단위당 가치는 상승하고 차액지대는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았다. 실제로는 급격한 공업화, 나폴레옹의 대륙봉쇄, 곡물수입에 대한 높은 관세제도 등에 의해 발생한 곡물가격 등귀를 리카도는 자본주의 경제의 영원한 법칙으로 보았다. 곡물가격의 상승의 결과 노동자의 명목임금은 상승하더라도 실질임금은 생계수단의 최저에 머물고, 이윤은 명목임금의 상승으로 하락하여 모든 이득은 지주에게 돌아가고 경제발전은 지연되거 마침내 중단될 것이라는 것이 리카도의 견해였다. 그의 논리는 농업노동의 생산성 성장을 못보는 오류에 기초하고 있지만 그는 수입의 이동과 계급들간의 밀접한 상호관계를, 계급들의 이익의 갈등을 제시했다.

3. 고전학파의 해체

자본가와 노동자의 투쟁이 본격화되면서 정치경제학은 점점 변호론적이고 속류적(본질이 아닌 현상에 대한 설명에 그치는 것)인 것으로 변했다. 해체는 노동가치론의 폐기로 나타났다. 세 이는 이윤이 생산수단의 생산성에 기인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자 본가를 옹호했고 시니어자본가의 절욕의 댓가가 이윤이라고 설명했다. 맬더스는 지주계급들의 부가 공산품 판매의 시장을 제공한다면서 지주계급을 옹호했고, 시스몽디는 자본주의가 농민과 수공업자를 몰락시켜 총인구의 구매력을 떨어뜨리고 항상적 공황의 조건을 창출한다고 주장하면서 소부르주아, 농민, 수공업자들을 옹호했으며, 공상적 사호주의자들은 노동계급을 옹호하기 시작했다.
 
밀은 사회철학에서 사회주의를 옹호하지만 경제이론에서는 속류이론들을 종합한다. 예컨대 맬더스의 인구이론을 받아들이고, 세이의 공황이론을 받아들이며, 토렌스이 생산비 이론을 받아들이고, 베일리와 마찬가지로 분석을 상대적 가치에 한정하며, 제임스 밀과 매컬록의 임금기금설(일정한 사회상태에서는 임금으로서 지급되는 기금이 일정하며, 노동자 개인이 받는 임금액은 이 기금총액을 노동자총수로 나눈 것이라고 생각하여 임금인상운동은 무의미하다고 보는 생각)을 수용하고 시니어로부터 절욕설을 받아들이며 시스몽디의 소농경제론을 열렬히 옹호한다. 여기에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의 사회주의를 결합시키려 하는 모순은 노동가치론에 기초하여 속류화와 변호론을 청산한 맑스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