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지원 세미나강좌 PRAB & NEHU ∥2010년 3월 23일∥발제자: 쿠다

텍스트: 맑스,『잉여가치학설사3』, 아침, 601~645쪽

 

1. 요약

1.1. 공황의 가능성은 상품의 형태변화가 그 운동에서 통과하는 형태상의 차이들이 필연적으로 서로 보충하는 형태들인 것과 동시에 서로 분열되고 분리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1.2. “공황의 일반적인 추상적 가능성은 내용이 없는, 공황을 일으키는 (내용이) 풍부한 원인이 없는, 공황의 가장 추상적인 형태 외에 다른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판매와 구매는 서로 분리될 수 있다. 따라서 그것들은 잠재적인(potentia) 공황이며 그것들의 일치는 상품에 있어서 언제나 위급한 계기로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거침없이 서로 이행할 수 있다.... 따라서 공황의 가장 추상적인 형태는 상품의 형태변화 그 자체이며, 공황의 이 가능성을 공황으로 되게 하는 그것은 이 형태 자체내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것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다만 공황을 위한 형태가 존재한다는 그것만이다.”(603) 즉 공황의 가능성은 그 자체의 내용적 가능성이 가득 차 있는 유한한 가능성이 아니라, 그 자체가 텅빈 형식으로 존재하는 무한한 가능성이다. 상품의 형태변화가 공황의 원인이 아니라, 현실화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의 공황을 품고 있는 존재 같은 것이지 않을까? 이럴 때에 우리는 공황으로 인한 자본주의의 낙관론이나 비관론과 어렵지 않게 결별할 수 있지 않을까?

1.3. 첫째 형태의 공황은 상품의 형태변화 자체(구매와 판매의 분리)이며, 둘째 형태의 공황은 지불수단으로서의 화폐의 기능과 관련되어 있다. 이 두 형태는 아직 추상적 형태에 불과하며 이 자체로서는 왜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모순이 현실적으로 나타나게 되는가 하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 현실적 공황은 자본주의적 생산, 경쟁 및 신용의 현실적 운동으로부터만 설명할 수 있다. 공황의 요소는 잠재적으로 자본에 포함되어 있다. 왜냐하면 생산과정은 잉여가치의 취득이며 따라서 그 생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접적인 생산과정에서는 공황이 나타날 수 없는데, 그 내에서는 재생산된 가치뿐만 아니라 잉여가치의 실현이 아직 문제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사태는 재생산과정인 유통과정에서 비로소 나타날 수 있다.

1.4. 자본의 총유통과정 또는 총재생산과정은 자본의 생산국면과 그 유통국면의 통일이며 자체의 국면들로서의 상술한 두 과정을 통과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바로 여기에 가일층 발전한 공황의 가능성 또는 가일층 발전한 추상적 형태가 있다.

1.5. 공황의 일반적 가능성은 자본의 형식적인 형태변화 그 자체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공황의 원인은 아니다.

1.6. 공황을 부정하기 위해 자본주의적 생산에서는 소비자(구매자)와 생산자(판매자)가 동일하다고 주장하는 것보다 더 황당한 것은 없다. 노동자는 개인적 소비에 들어가는 상품들에 대해서만 구매자로서 나타날 수 있다. 그들은 원료와 노동수단을 구매하지 못한다. 따라서 절대 다수의 생산부문에 있어서 생산에 참가하는 노동자들은 그들 자신이 생산한 생산물의 구매로부터 절대적으로 배제되어 있다. 또한 노동자들이 사실상 생산하는 것은 잉여가치이다. 즉 그들이 소비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자기들의 소비를 위한 등가물을 생산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보다 더 많은 잉여가치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1.7. 변호론자들은 공황을 부정하기 위해 대립과 모순이 존재하는 데서 통일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균등화 자체에는 그것이 균등화의 대립물을 전제로 하며 따라서 공황을 포함할 수 있으며, 공황 자체가 균등화의 한 형태일 수 있다는 사정이 존재한다.

1.8. 모든 공업부문들간의 상호의존성으로 말미암아 특정 부문에서의 과잉생산이 전반적인(상대적인) 과잉생산을 초래한다. 이때에 전반적인 과잉생산의 의미는 일부 분야들에서의 과잉생산은 언제나 주요한 거래품들의 과잉생산의 결과, 영향일 따름이며 그것은 언제나 상대적일 따름이고 또 다른 분야들에서 과잉생산이 존재하므로 과잉생산인 것이기 때문이다.

1.9. 자본주의적 생산이란 일정한 제조건하에서 특정 분야들만 자유롭게 발전할 수 있다. 만약 모든 분야에서 동시에 균형적으로 발전하지 않으면 안된다면 어떠한 자본주의적 생산도 결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때문에 과잉생산은 절대적으로 존재하며, 그 때문에 과잉생산이 없는 분야들에서도 상대적으로 존재한다.

1.10. 그런데 과잉생산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오류는 범하게 한다. 사회의 가장 절실한 수요가 충족되지 않았거나 집적적인 수요밖에는 충족되지 않은 동안에는 생산물의 과잉이란 절대로 문제될 수 없다. 그와 반대로 자본주의적 생산의 기초 위에서는 이런 의미에서는 언제나 생산이 부족하다고 말해야 한다. 생산의 한계로 되는 것은 결코 생산자들의 수요가 아니라 자본가들의 이윤이다. 생산물의 과잉생산과 상품의 과잉생산은 전적으로 다른 두 개의 사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