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지원 세미나강좌 PRAB & NEHU ∥2010년 3월 5일∥발제자: 이선화

텍스트: 게오르크 루카치,『루카치 미학2』, 미술문화, 2000, 220~234:18


3. 동질적 표현매체와 미적 영역의 다원성

1. 요약

1.1. 미적반영의 본질은 다원성(pluralistisch)이라는데 있다. 이런 특성은 모든 예술작품의 자립성에서 정점을 이루며, 그렇기에 포괄적인 범주체계로서 다원성을 가진 동질적 표현매체는 ‘독자적인 미적 근거’를 가지는 예술장르의 질서 속에 편입되어 있다. 동질적 표현매체의 미적 환기작용이라는 특성에 힘입어 각각의 미적형상의 형식적 완결성과 자립성은 인류의 자기의식의 매개체가 된다. 여기에선 동질적 표현매체를 올바른 전망 속에서 개념적으로 구체화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것으로 생각해본다.

1.2. 동질적 표현매체의 차원에 의해 본질적 규정들의 내포적 총체성이 얻어지는 것이 예술작품이라고 한다면, 현실의 모상으로부터 내포적 총체성의 관점에서 주변적인 연관들이 적절한 집중과 배제를 통해 조화를 이룰 때에 (고립된 미적형상은 총체적인)‘세계’로 만들어질 수 있다. 창작과정의 부정은 형상화된 긍정성과 변증법적으로 결부되어있다. 긍정성에 대한 부정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닌 까닭에 전적으로 본질적인 것으로 충만 된 계기(일상성에 위배되지만 삶에 관해 본질적인)구성이 된다. 헤겔은 에릭시마코스가 조화를 평면적 동질성으로 파악한 것을 음악의 예를 들어 논박을 한다. - 음들은 서로 달라야 하지만, 또한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달라야 한다. 이것이 음의 본질이다.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일정한 대립이 존재해야 한다. 색채의 조화가 그렇듯이 자기와 다른 그 무엇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1.3. 레오 포퍼(Leo Popper)는 피터 브뤼겔의 형상화 방식을 분석 하면서 고정된 물체들이 대기의 상호작용을 통해 동질적이고 온전히 사물들로 만들어져 있으면서도 작가와 혼연일체가 되는 것을 설명한다. 여기서 혼연일체가(혹은 최종적인 동질성이) 되는 것은 소재들의 차이가(혹은 대립의 관계를 포함하는 차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심오한 친화성을 맺어주며, 삶에서 서로 낯선 것들의 사이의 통일성을 감각적으로 드러냄으로써 하나의 작품 속에 형상화된 모든 관계들을 하나의 통일된 분위기로 감싼다. 그러므로 가장 위대한 예술이야말로 최고도의 통일성과 최고도의 차별성 사이의 이러한 긴장을 드러낸다.

1.4. 인간의 의식으로 해낼 수 있는 가장 내밀하고 유기적인 통일성은 그 자체로 모순되며, 서로 배타적은 대립물의 통일로서 자기 속에 대립성을 간직한다. 이런 모순성의 주관적 측면이 가장 분명하게 들어나는 건 예술장르의 동질성이다. 포퍼는 작품 창작과정에서 브뤼겔은 이와 같은 혼연일체를 의도되지 않았으며 도리어 소재의 고유함에 집중하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의도는 대기(의 상호작용)와 색채로 인한 통일성으로 좌절되었고, 이런 모순으로 인해 브뤼겔 회화의 위대함이 탄생하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루카치는 브뤼겔의 예를 다른 예술가들에 일반화 할 수 없다고 예술의 원칙적 다원성과 예술창작의 사회역사적 제약성 등에 의해여 의미 있는 작품 내의 독특한 통일성이 성립한다고 주장한다.

1.5.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예술적 종합원리, 모순의 통일과 지양 그리고 개별예술의 동질적인 표현매체가 그때그때마다 개별작품의 개성적 특질 속에 반드시 구현된다는 것이 명백하게 밝혀졌다. 이는 미적영역의 무제한적 다원성(Pluralismus)을 말하지만 미의 전 영역을 포괄하는 보편적인 규정이 없다기 보다는 개별예술이나 작품에 적용할 때에는 이러한 다원성이 반드시 토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1.6. 동질적 표현매체에 대한 창조적 주관성의 관계역시 마찬가지이다. 브뤼겔의 의도와 성취 사이의 불일치는 예술 장르의 객관성 객관적 법칙성이 개인의 의지에 맞서 관철되는 모든 예술창작의 보편적 현상 중에 하나이다. 이는 (아무리 의도가 존귀하더라도) 자체의 반예술적 본성이나 요소로 인해 미적 차원으로부터 전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벗어나는 어떤 것을 만들어 낼 때 좌절하게(또는 일상생활이나 과학과 구분되지 않게) 된다는 사실이다. 미적인 것에 특별한 예외적 지위가 주어진 것은 아니지만 주관의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인간의 사회역사적 행위는 비본질적이라고 할 수 없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헤겔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기에 작용하는 “이성의 간지(奸智-간사한 지혜)”는 언제나 주관성의 순화와 고양을 가져오며 이건은 이와 병행하는 삶의 현상들에서 결코 사건의 본질에 속하지 않는다는 차이점이 존재한다.

1.7. 이런 고양은 개인의 측면에서 특수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을 떨쳐버리는 과정으로 개인의 특수한 속셈을 제거하는 것이야 말로 개체성의 핵심을 더 강력하고 신축성 있게 하는 것임이 밝혀진다. 이런 계기로 선입견의 탈각과정, 진부해져버린 생각이나 감정, 일시적인 생각이나 느낌을 벗어나는 과정은 동질적 표현매체가 건강하지 못한 것을 저항하는 생겨나는 것이다. 창작가와 동질적 표현매체 사이의 상호작용은 의도한 바를 동질적 표현매체를 상대로 관철하지 못하는 갈등, 무능력 속의 개인 자신의 심오하고 포괄적인 층위에 대한 호소력이 내재할 때 가능한 일이다. 의도와 결과의 변증법은 모순에 의해 움직이는 창조적 개성 자체의 상승운동이다. 브뤼겔과 렘브란트가 그 예로써 가장 본질적인 힘과 특징들이 겉표면에 들러나게 됨으로써 인류적인 차원으로 승화시키게 되는 것이다.

1.8. 동질적 표현매체의 존재와 기능을 근거로 그 본질을 일반적으로 규정하고자 한다면 안내(Leiten)라는 개념과 마주치게 된다. 예술작품은 수용자가 받아들일 수 있게 안내할 수 있는 가능성을 항상적으로 갖추고 있을 경우에 작품 자체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 미적인 것의 객관성은 과학적 진리들의 인정받는 통념으로 논거 될 수 없다. ex)티치아노의 비너스상이 그림은 코페르니쿠스처럼 실제 모델과 그 모상의 관계로 비교될 수 없다.-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은 과학적 진리이지만, 티치아노의 작품은 인류발전에 의미있는 규정들의 총체성을 형상화한 미적 원리들의 구현이다.

1.9. 과학적 객관성은 실재 대상자체가 인간의 의식과 무관하게 존재한다는데 근거하고, 미적 객관성은 개념상 인간의 사고감정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과학과 예술은 질적으로 다른 의의를 가진다. 물론 과학의 경우에도 대상에 대한 서술에 따라서 새로운 생각을 촉진시키기도 혹은 억제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를 미학과 유추하려는 경우가 있다. (이런 유추는 오류라는 가정 아래)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연극론에서 ‘...정밀과학과 같은 미학도 서술될 수 있을지 모른다...’주장했는데, 루카치는 이렇게 된다면 예술적 내용을 그 본질상 형식화된 표현으로부터 독립된 것으로 파악하고, 형식의 기능을 부차적인 것으로 격하시키는 예술적 내용관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루카치는 거듭 브레히트의 예술적 실천은 이를 피해간다고 주장한다.)

1.10. 미적형상의 내용은 실재 자체와의 연관에만 좌우되지 않으며, 형식적 차이야 말로 미적 형상의 사상적 깊이를 결정하며 그 속에 복합적인 반영관계에 대한 개인적 태도와 직결 되있다. 과학에서는 이론의 이론적 정의의 간결성 여부에 따라 (의식으로부터 독립된) 사태에 관한 정확성에 변화를 가해지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미적 형식의 관계가 개인적 태도와 직결된다 해서 객관성이 철폐되기보다는 새롭게 부각된다.

1.11. 수용자의 체험에 정서적 감동을 주면서 질서와 체계를 부여하는 작품의 구성이 지닌 힘. 즉, 수용체험을 이끌어가는 기능(안내-Leiten)은 작품의 미적 존재를 나타내는 본질적 지표라고 해도 좋다. 예술적 작품을 구성하는 것은 그자체로 완결된 내포적 총체성을 요구하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며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상관없이 타당하고 정확하게 정의할 수 있는 객관적 법칙이 이런 연관의 바탕에 깔려있다.

1.12. 고전적 대가들이 정한 엄밀한 미적 이론을 -올바르게- 준수한 (예술적 실천에서 인간의 영혼이 빠져있는 아카데믹한)극작품, 음악작품이 수없이 쏟아져 나오지만, 이들이 진정한 극작품이나 교향악에 미달된 경우 역시 허다하다. 이는 예술작품 특유의 미적 법칙성은 미적작용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분명하게 파악하거나 합리적으로 구체화 할 수 없다는 점과 이론적으로도 형식과 내용의 올바른 관계가 거세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13. 여기서 진정으로 미적인 것과 임시변통물을 구분해주는 것은 바로 미적 체험을 환기하는 힘이다. 인간과 사회, 사회와 자연사이의 본질적인 관계들에 의해 매개되어 다양다기한 경로와 각양각색의 방식으로 인간존재의 핵심을 드러내고 일깨워주는 심오한 미적 체험을 환기시켜주는 형상으로 구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1.14. 작품의 구성(Komposition)은 미적 체험을 환기하는 열정이 전면적으로 모든 세부에 이르기까지 충만 할 때, 미적인 의미에서 완성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수용자의 정서를 이끌어가는 능력이야 말로 예술적 구성의 본질을 이룬다. 물론 인간의 사유생활과 감정생활은 현실에서도 부단히 이끌림을 당하지만, 생활과 예술 간 결정적인 차이가 몇 있다.

1.15. 첫째, 연속성의 계획의 차이-생활 속에서 작용하는 연속성은 그 자체로서는 물론, 개인적 의식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무계획적이지만, 예술 작품은 그런 연속성을 계획적으로 일깨운다. 둘째, 태도의 차이- 일상 속 외부세계의 인상에 대해 능동적으로 반응해야만 하지만, 예술작품에 대해서는 수용하는 태도를 취하게 되며, 대상세계로서 대면한다. 셋째, (중요함)방향의 차이. 일상의 인간은 이질적 경향의 소용돌이에 처해있지만, 예술작품의 동질적 표현매체는 전적으로 일상에 파묻혀 있던 상태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매개되는 집중을 통해 자신의 모든 체험이 하나의 흐름 속에 합류하게 하여, 자신의 능동적인 힘과 수용능력이 하나의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려지게 되는 유적 인간의 상태로 접어들게 된다.

2. 이해가지 않는 대목

2.1. (221:14)여기서 잠정적으로 다시 확인되는 것은 미적 반영은 기계적인 사진술과 아무 상관도 없다는 것이다. -> 기계적인 사진술이란 사진의 매체와는 거리가 있는 것인지요? 그렇다면 사진이라는 매체와는 상관없이 단순히 현실을 그대로 옮기는 행위가 미적반영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여도 좋을지 확인 차 적어보았습니다.

2.2. (222:2) 지금은 이것이었다가 나중에는 다른 어떤 것으로 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본질적인 것은 모든 차이나 특수성이 다른 어떤 것과 다르다는 사실이지만, 그러나 추상적으로 막연히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과 다르다는 것이다. 다르다는 것은 자신의 개념 속에 다른 어떤 것도 들어있지 않을 때만 가능하다. -> 헤겔이 뒤에서 예시로 ‘음이 서로 달라야 하지만 또한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달라야 한다.’는 음에 대한 본질과 조화에 관한 예를 들 때 제가 이해하기로는 -실험군을 검증하기 위한 대조군처럼- (기준이 되는)‘자기’와 다르기 위해서는 (기준의 차이를 보여주는) 무엇이 있어야 함을 말한다고 이해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해 할 때 갑자기 ‘다르다는 것이 자신의 개념 속에 다른 어떤 것도 들어 있지 않을 때 가능...’라고 말하니 어떤 맥락인지조차 이해가 안갑니다.

3. 질문하거나 토론해 보고 싶은 문제

3.1. (231:3) 루카치는 브레히트의 연극론에서 과학을 미학에 유추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반박하면서도 그의 예술적 실천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한 작가의 이론은 작품 내부에 내포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는 루카치의 모순인가요? 아니면 브레히트가 브뢰겔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예술창작의 사회역사적 제약성에 의해 통일된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