ꡔ자본ꡕ 제1권
제 3편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제10장 노동일  
제 3절 착취의 법적 제한이 없는 영국의 산업부문


* 맑스는 이 절에서 노동일 연장, 즉 잉여노동에 대한 갈망이 자본을 법적으로 규제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과정을 기술한다. 그 예로 ‘착취의 법적 제한이 없는 영국의 산업부문’의 구체적 실태를 소개하면서, 당시 노동자들의 처지와 자본에 대한 법적 규제에 있어서 자본과 국가가 취하는 입장, 그리고 그 속에서 진행되었던 노동자들의 투쟁을 다루고 있다. (1860년대의 보고서와 기사를 인용하고 있음.)

* 레이스, 도자기, 성냥, 벽지, 빵 등 제조업과 스코틀랜드의 농업노동, 런던의 철도노동 등이 구체적인 사례로 언급되고 있다.

- 아동(13세 미만)노동과 미성년(18세 미만)노동

- 장시간노동(과도노동) : 당시에 유효했던 1850년의 공장법은 1일에 평균 10시간의 노동을 규정하고 있었지만, 실제 노동시간은 10시간을 훌쩍 뛰어넘는다. (노팅엄 시의 경우, 성인남자들의 노동시간을 1일 18시간으로 제한하기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업종에 따라 대목에는 만 하루 이상을 거의 중단 없이 노동하기도 했다. (벽지제조업의 경우 10월초~4월말, 부인복제조업의 경우 사교철.)  

- 야간노동 : 레이스제조업의 경우, 노동자들은 새벽 2~4시 기상해서 밤 10~12시까지 노동하도록 강요당했다. 빵제조업의 경우, 노동자들이 청원서를 통해 과도노동을 호소하여 18세 미만의 제빵공에게는 오후 9시~오전 5시 노동이 금지되었다.  

- 위협받는 건강 : 수면시간과 식사시간 등 육체적 능력을 회복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며 불규칙하다. (정신적 충족을 위한 시간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따라서 당연히 건강이 악화될 수밖에 없는데, 업종에 따라 특정 질병(도공들은 폐질환, 성냥제조공들은 저작근 경련증)에 노출되며 경우에 따라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 열악한 물리적 환경 : 좁은 공간에 수용 불가능한 인원을 배치하기 때문에 공기가 늘 부족하며 탁하다. 노동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해물질들이 걸러지지 않는 공간에서 장시간노동에 시달리며 심지어 식사도 한다. (제빵공들은 제빵실의 엄청난 열기까지 견뎌야 한다.) 숙소 역시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이다.

- 기소 : 철도노동자들의 경우, 철도사고로 인해 살인죄로 재판에 회부된다. 철도노동자의 부주의가 일차적 원인이기는 하지만, 그 부주의를 가져온 것은 (5~6년 동안 14시간에서 20시간까지 늘어났고, 가끔 중단 없이 40~50시간 계속되었던) 과도노동이다. “노동자는 보통의 인간이지 신화에 나오는 장사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 시간의 손실과 시간외노동
- 자본가들은 타인의 노동을 취득할 시간, 즉 이윤을 잃어버리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어떻게든 시간외노동을 늘리려 한다. 그러나 시간외노동을 멈춘다고 해서 잉여노동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 “10시간 반 노동을 표준노동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 표준노동일도 표준적인 잉여노동량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 소위 표준노동일 동안 수행된 노동은 그 가치 이하로 지불되고 있으며, 따라서 ‘시간외노동’이라는 것은 더 많은 ‘잉여노동’을 짜내기 위한 자본가의 책략 이외의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 비록 ‘표준노동일’ 동안에 사용되는 노동력이 현실적으로 그 가치대로 지불되는 경우일지라도 … ” (각주 40)

* 빵제조업
- “자본은 처음에는 그것이 지배하는 노동과정의 기술적 성격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 처음에는 노동과정을 있는 그대로 접수한다.”
- 불순한 빵을 제조하여 정가 이하로 판매하는 빵집이 등장하면서 ‘싸구려 빵집’과 ‘정가판매 빵집’으로 나뉘어 경쟁하게 된다. 제빵공들의 “부불노동이 그들의 경쟁의 기초”가 되었고, “정가판매 제빵업자는 경쟁자인 싸구려 빵집을 타인노동의 도적이며 불순품 제조자라고 고발”한다.
- 싸구려 빵집은 “명목상의 빵집 주인의 배후에 자본가가 제분업자 또는 밀가루 상인으로서 나타나”고부터 형성되었다. “이와 더불어 자본주의적 생산의 기초, 노동일의 무제한적인 연장과 야간노동의 기초”가 마련되었다.

* 아일랜드 제빵공들의 운동과 영국 정부 위원회의 입장
- 1858~1860년 아일랜드 제빵공들이 야간노동과 일요노동에 반대하며 일어났고, 군중들이 결합하였다. 그 결과 야간노동 없이 주간노동만 실시되는 지역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자본가들은 해고와 주동자에 대한 박해를 통해 투쟁을 무력화했다.
- 이에 대한 영국 정부 위원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고용주들은 해고의 위협으로써 자기의 노동자들에게 종교적 신념의 위배와 국법에 대한 불복종과 여론의 무시를 강요”한다. 이는 “노동자와 고용주 사이의 불화”를 조장하며, “종교, 도덕 및 사회질서에 대하여 위험한 실례를 제공”한다. “하루 12시간 이상의 노동은 노동자의 가정생활과 개인생활을 침해”하며, 이로써 노동자의 건강과 가정이 붕괴되는 등 “해로운 도덕적 결과를 초래한다.”

* 농업노동자들의 운동 (각주 54)
- (스코틀랜드) 1865년 노조 결성, 1866년 1월 5일 농업노동자 집회.
- (잉글랜드) 1867년 3월 버킹엄셔 주급인상을 위한 파업.
- “영국의 농업노동자의 운동은 1830년 이후의 그 정력적인 시위운동들이 진압당한 이래, 그리고 또 특히 새로운 빈민구제법이 실시된 이래 완전히 좌절되고 있었으나, 60년대에 다시 시작되었고 1872년에는 드디어 획기적인 것으로 되었다.”

* “자본 앞에서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
- 부인복을 만드는 여공이나 원기왕성과 쾌활함의 상징인 대장장이 모두 과도노동으로 자본에 의해 착취당하면서부터 파괴된다. 그들은 “백인노예”이다. 이전의 노예들과 차이가 있다면, “북부의 베드로는 자기 노동자를 ‘일당’으로 고용”하고 “남부의 바울은 ‘평생 동안’ 고용”한다는 것 정도이다. (각주 58)
- “죽도록 노동한다는 것, 이것은 비단 부인복 재봉소에서 뿐만 아니라 몇 천 개의 장소에서, 더 정확히 말하면 사업이 잘 되는 모든 곳에서 일상적인 것으로 되어있다.”